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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03화 (10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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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03화

    38. 장인의 발자취(1)

    전생의 이안은 자신이 만들어낸 마나호흡법, 일명 ‘이안식 호흡법’을 상아탑에 공개했었다. 아카데미의 어린 학생부터 4클래스 고위마법사까지 모두가 그 호흡법을 익혔는데, 가진바 역량에 따라 익히는 속도만 다를 뿐 실패하는 이는 없었다.

    ‘아카데미 학생들은 일 년 가까이 걸렸었지.’

    그 위로 1클래스 내지 2클래스의 마법사들은 반 년 이하, 3클래스의 마법사들은 세 달 가량을. 4클래스를 넘어선 고위마법사들은 한 달이면 충분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물론 마법적 재능 말고도 타고난 이해력과 노력의 차이는 있겠으나, 대부분 그랬다.

    분명 그랬을 지언데…….

    ‘설마 삼 주 만에 익힐 줄이야.’

    공주는 무려 삼 주, 그러니까 이십여 일 만에 이안식 마나호흡법을 익혀 버렸다.

    비록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호흡법의 창시자인 이안조차 놀라는 중이었다. 이런 재능을 가진 마법사가 전생에는 그토록 암울하게 요절해 버렸다니.

    ‘사람 앞날 모르는군.’

    물론 술식 계산의 요령이야 두고두고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니 오래 걸리겠다만, 이 기세라면 그마저도 금방 익힐 것 같았다. 적어도 반 년은 족히 전전긍긍할 거라 여겼거늘.

    ‘머리 자체를 타고난 편이다.’

    이안이 살펴본 결과, 공주의 재능은 마법적 역량에만 그치지 않았다. 이해가 빠르고 기억력이 탁월했다. 이안의 생각처럼 두뇌의 성능 자체를 타고난 부류였다.

    ‘황태자부터 라그나르까지, 그 어떤 황족보다 부모의 장점을 제대로 물려받았어. 여자로 태어난 게 한이라면 한인가.’

    황태자는 외모를 물려받았고, 라그나르는 명석한 머리를 물려받았다. 한데 공주 하이리는 외모와 심성, 머리까지 몽땅 물려받은 ‘완전체’였다. 심지어 마법사이기도 했다. 자식을 작품에 비유한다면, 아마 황제의 최대 걸작은 바로 하이리 그린리버가 될 터.

    “확실히, 느껴지는 게 달라요.”

    “그럴 겁니다.”

    공주 하이리 또한 곧바로 체감되는 변화에 당황하면서도 기뻐했다. 어찌되었든 그녀도 마법사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자신의 역량에 기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타고나셨습니다. 스승 된 보람이 있군요.”

    “지금 그거, 그냥 하시는 말씀 아니죠?”

    “마마께 아부를 해봐야 어디다 쓰겠습니까?”

    공주에게 아부를 떨어봐야 써먹을 데도 없다, 이안의 그 직설적인 언행이 그녀에게는 오히려 믿음을 줬다.

    “이제부터는 계산 요령만 연습하시면 됩니다. 어려운 걸로 따지자면 호흡법보다 이쪽이 본선이고, 그만큼 오래 걸리겠지만······.”

    “꾸준히 연습하는 게 중요하다, 맞죠?”

    “제가 빤한 얘기를 자주 했나보군요.”

    “음! 그런 경향이 없지는 않으세요.”

    지난 삼 주, 두 사람의 관계 역시 크게 달라졌다. 이제 농담까지 주고받을 정도였다. 약간의 서먹서먹함이 남아있긴 했으나, 이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었다.

    “아, 그리고 말씀하셨던 그 재산, 예전 상아탑주가 남긴 은닉재산 문제 말이에요. 제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이안은 본래의 목적이었던 재산처분과 관련된 얘기도 이따금씩 꺼내왔다. 그 결과, 공주 또한 이안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답까지 찾아낸 모양이었다.

    “괜찮은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일종의 구호사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조만간 밑바탕을 그려서 보여드릴게요.”

    “그 분야로는 저보다 해박하시니까, 부탁드리겠습니다.”

    “넵! 맡겨만 주십시오! 스승님!”

    공주가 장난스러운 표정과 동작으로 기사의 예를 취하며 외쳤다. 그 훅하고 들어오는 애교에 이안은 그만 헛기침마저 내뱉었다.

    ‘이런.’

    당혹감을 느끼는 이안이었다. 그가 비록 청년의 겉모습을 가졌다곤 하나, 영혼은 엄연한 40대의 중년이다. 42세에 회귀했고, 이후 7년 가까이 지났으니 곧 50대에 진입한다는 얘기다. 대륙의 평균 수명을 고려해볼 때, 결코 적지 않은 나이였다.

    ‘예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젊어진 육신을 따라간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심지어 이안은 전생에도 노회한 중년과는 거리가 먼 존재였다. 인간관계를 포함한 세상 경험이 평균적인 동년배에 비해서 너무나도 일천했으니까.

    ‘주책이 심해졌군.’

    생각에서 벗어난 이안의 눈이 하늘로 향했다. 벌써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너무 늦게까지 공주와 함께 있는 것은 여러모로 곤란한 일, 슬슬 돌아갈 시간이 임박한 거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도록 하죠.”

    이안이 손을 내밀었다. 공주도 자연스럽게 잡고자 했다. 첫날과는 달랐다. 여전히 수줍음을 느꼈으나, 홍당무가 되지는 않았다. 이 또한 장족의 발전이리라.

    “아! 잠깐만요.”

    하이리가 뻗었던 손을 거뒀다.

    이안과의 거리까지 벌렸다.

    무엇을 하려는 걸까?

    “후우우······!”

    호흡부터 가다담은 공주 하이리.

    그녀가 마나를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파이로 블레스트.”

    파이로 블레스트.

    불덩이 작렬.

    이안이 콜드우드의 첩자 세실리아를 상대하며 사용했던 바로 그 마법이었다. 공주는 다짜고짜 그 거대한 불덩이를 소환하더니, 수련장 주변에 펼쳐진 흙의 장벽으로 발사했다.

    콰아아앙-!

    곧 거대한 불덩이가 흙의 장벽에 부딪치며 폭발했다. 이안의 강력한 마나가 실린 장벽인지라 흠집도 나지 않았지만, 공주는 만족한 듯 으쓱거리며 이안에게 다가왔다.

    “오늘은 왜 안 하시나 했습니다.”

    “헤헤.”

    가끔가다 튀어나오는 공주의 진심어린 웃음소리였다. 단아한 분위기와 정반대인 웃음소리였지만, 그것도 나름 나쁘지 않았다.

    “뭔가 속이 뻥! 하고 뚫리는 기분이거든요. 지금까지는 이럴 기회가 없었는데, 한번 해보고 나니까 중독성이 있네요.”

    “이해합니다. 마법의 즐거움 중 하나죠.”

    이곳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안과 용아병 스파르토이의 수련장이었다. 그때보다 바닥이며 장벽이 조금 손상된 것 같더니만, 아무래도 공주 하이리의 소행인 것 같았다.

    * * *

    공주를 황궁으로 무사히 데려다준 이안. 그는 밤공기와 함께 저택으로 걸어갔다. 텔레포트 주문도 좋지만, 가끔가다 이리 걸으면서 생각에 잠기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복수만 끝나면 다 끝일 줄 알았건만.’

    푸념 섞인 생각을 접어둔 채, 이안이 아공간 주머니로부터 책 한권을 꺼냈다. 공주에게 받은 ‘미첼 그린리버의 일기’였다. 벌써 이십일 째 꼼꼼히 읽어보고 있었다.

    ‘삼백여 년 전의 상아탑주.’

    미첼 그린리버의 대표적인 이미지였다.

    일기에 적힌 내용과도 정확하게 일치했다.

    ‘자유롭게 세상을 모험했던 황족.’

    그는 황제의 자리를 노리는 경쟁선에서 일찌감치 빠져나갔다. 이후 십 년이 넘도록 대륙 이곳저곳을 누볐으며, 복귀하고부터는 상아탑주가 되었다. 마법적 역량은 이안보다 일천했으나, 세상 경험으로 따지자면 이안보다 훨씬 우위에 선 존재였다.

    ‘덕분에 아티펙트도 만들었지.’

    미첼 그린리버의 아티펙트, 그 푸른색 로브를 얻어낸 과정은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랬다. 십 년간의 모험 중 어떤 장인을 만났고, 그를 도와준 대가로 손수 제작된 아티펙트까지 받았다는 내용이 주류였다.

    [제국력 227년.

    먹구름이 가득한 날씨. 황금 염소자리의 마지막 날.

    어릴 적 꿈을 이루어낼 역사적인 날이다.

    나는 언제나 새처럼 하늘을 날고 싶었다. 하지만 플라이 주문의 한계는 명확했다.

    5클래스의 경지까지 올라섰음에도, 아무리 연구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달라지리라.

    저 푸른색 로브가 이루어주겠지?

    나의 오랜 염원을.

    기대된다.]

    미첼 그린리버의 로브와 관련된 내용 중, 이 문구가 가장 마지막이었다. 이후로 로브에 관한 언급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서술된 내용으로 볼 때, 그 장인은 미첼 그린리버가 원했던 능력 하나를 로브에 새겨준 것으로 보였다. 아마 플라이 주문의 강화였을 터.

    ‘아티펙트를 만드는 장인이라.’

    이미 죽었겠지? 300년이나 지났는데.

    그래도 후계자는 존재하지 않을까?

    충분히 그럴듯한 짐작이었다.

    ‘이때도 아티펙트 제작은 미지의 영역이야.’

    당연한 얘기지만, 삼백여 년 전 당시에도 아티펙트는 미지의 물건인 것 같았다. 단지 미첼 그린리버는 세상을 모험하던 도중 우연치 않게 장인과 연이 닿았고, 그 결과 로브까지 얻어낸 경우일 뿐, 거의 기연이나 마찬가지란 소리였다.

    ‘후계자가 있다면, 지금도 은밀하게 전승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페어리 일족처럼 아예 세상과 단절되었을 가능성이 커.’

    문제는 그 꽁꽁 숨어버린 장인 전승자를 어찌 찾느냐는 거다. 이미 페어리 퀸과 에반투스에게도 물어봤다. 아티펙트를 만들 수 있는 장인을 아느냐고, 대답은 ‘모른다’였다.

    ‘당장 드래곤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인데.’

    당장은 시간의 보고로 들어가는 비약을 조제할 수가 없었다. 핵심 재료인 가고일의 눈이 다 떨어져 버린 까닭이었다. 에반투스가 가고일의 행방을 찾을 때까진 불가능했다.

    ‘단서가 너무 적다.’

    하지만 없는 것도 아니다.

    일기에서 찾을 수 있는 단서들.

    수는 적지만, 핵심적이기도 했다.

    먼저 미첼과 아티펙트 장인의 첫 만남.

    그 위치는 삼백여 년 전 ‘필틴 왕국’이었다.

    현재에 와서는 멸망하고 사라져버린 국가였다.

    ‘지금은 로 공국의 서쪽을 책임지고 있지.’

    ‘필틴 왕국’은 이제 로 공국의 서쪽 ‘필틴 영지’가 되었다. 이안이 가본 적 없는 영지 중 하나이기도 했다. 콜드우드 제국의 영지는 오랜 전쟁 끝에 대부분 밟아봤으나, 로 공국은 전쟁 중반쯤 백기투항에 나섰다. 전쟁무기였던 이안과는 인연이 깊지 않았다.

    ‘장인의 특징도 적혀 있다.’

    두 번째 단서는 바로 특징. 미첼의 일기에는 장인에 관한 묘사가 제법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생김새부터 버릇, 말투까지 다양하기도 했다.

    [흔치 않은 검은색 머리칼의 소유자다.]

    [시체와도 같은 창백한 피부를 가졌다.]

    [젊은 얼굴을 가졌지만, 말투는 다르다.]

    [아주 노회한 늙은이가 말하는 것 같다.]

    [놀라울 정도로 수많은 언어에 능통하다.]

    [체력이 약한 것 같다. 틈만 나면 잠든다.]

    장인에 대한 핵심적인 묘사는 이러했다.

    장인이라 그런지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흐음.”

    반복하며 미첼의 일기를 읽었던 이안.

    걷다보니 어느덧 저택 앞에 도착했다.

    더불어 한 가지 결심 또한 세워졌다.

    ‘일단 필틴 영지로 가보자.’

    본래 이안은 작은 단서만으로 행동에 나서는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방도가 없었다. 급하기도 했다. 드래곤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수단, 그 대항마가 필요했으니까.

    ‘혹시 모르니까 비단도 챙겨두고.’

    조공으로 받은 마법의 비단을 아공간 주머니 속에 넣은 이안, 그가 서둘러 좌표부터 잡아내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로 공국의 필틴 영지, 물론 필틴 영지는 기억에 없다. 텔레포트 이동이 불가능하단 얘기다. 우선 가까운 위치로 이동해봐야 할 터.

    ‘그리 가깝지는 않지만······.’

    이안이 당장 이동할 수 있는 공국의 영토는 수도 ‘로하람’을 포함한 그 주변밖에 없었다. 이는 결코 가까운 위치가 되지 못했다. 수도 로하람과 필틴 영지의 거리는 공국 내 끝과 끝이라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였으니까.

    ‘별수 없지.’

    누구를 탓하겠는가? 전생에 조금 더 두루두루 경험해두지 않았던 이안 본인의 탓이지. 만약 자신이 미첼 그린리버였다면 갈 수 없는 영지가 한손가락으로 꼽혔으리라.

    ‘잠깐 다녀와볼까.’

    저택에는 한 장의 메모만이 남았다.

    잠시 외출을 다녀오겠다는 메모였다.

    * * *

    로 공국의 영토에 첫발을 내딛은 이안.

    텔레포트 주문은 성공적인 것 같았다.

    단지.

    “드디어!”

    웬 소년 하나가 이안을 향해 달려들었고.

    “나타났느냐!”

    서슬 퍼런 날붙이가 목전까지 들어왔다.

    바로 이안 페이지의 목전에 말이다.

    “자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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