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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02화 (10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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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02화

37. 스승과 제자?(2)

“그럼 마마, 저희는 이만 나가볼게요!”

“또 우물쭈물하지 마시고!”

“힘내세요! 힘!”

저마다 응원 한마디씩 해준 하녀들이 자리를 피했고, 곧 기다렸던 스승 이안 페이지가 안으로 들어왔다. 로브를 벗어서 그럴까? 예전보다도 팔다리가 길어진 것 같았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공주 마마.”

공주의 심장이 다시금 두근거렸다.

이유까지는 알 방도가 없었다.

아니, 알지만 외면해 버렸다.

“잊어버리신 줄 알았어요.”

“아시다시피, 조금 바빴습니다.”

“그렇게도 생각했지요. 지금이라도 찾아와주셔서 감사드려요.”

공주 하이리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조금 상기된 볼과 반짝이는 눈도 인상적이었는데, 그 모든 행동이 절세의 미와 어우러져 엄청난 파급효과를 이루어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다, 그런 추상적인 표현이 누구보다 어울렸다.

‘대단하군.’

이안이 진심으로 감탄했다.

표현 그대로 순수한 감탄이었다.

작품을 감상하는 느낌과 같았다.

걸작 반열에 오른 예술 작품의 자태.

공주로부터 그러한 느낌이 전해졌다.

“마마와 저는 사제의 연을 맺지 않았습니까? 계속 미룰 수가 없더군요.”

잘도 거짓을 늘어놓는 이안이었다. 그는 전 탑주의 재산 처분과 관련된 문제를 떠올리기 직전까지, 공주와의 관계를 떠올려 본 바가 한 번도 없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얘기다.

“다만 마법이라는 게, 딱히 가르쳐드릴 것이 없습니다. 마마께서 아카데미 학생이었다면 모를까, 이미 3클래스의 반열에 오른 마법사가 아니십니까? 그래서 고민을 좀 해봤죠.”

물론 고민 또한 해본 적 없었다. 이래저래 가르치는 시늉만 좀 해보고, 아직 상아탑에 공개하지 않은 마나호흡법이나 슬쩍 알려주면 그만일 터.

“일단 새로운 마나호흡법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때 그, 흑마법 검사를 해주실 때 말씀하셨던……?”

“맞습니다. 기억하고 계셨군요.”

대충 구색이나 맞추려고 했던 이안과 달리, 공주 하이리는 눈까지 초롱초롱 빛내며 경청했다. 쫑긋 세워진 귀로부터 ‘학구열’이란 단어가 절로 튀어나왔다.

“원래는 상아탑에 공개할 예정이었는데, 워낙 바쁘다보니 아직까지는 미공개입니다. 그래도 마마께서 명색의 제자시니까, 조금 먼저 알려드리도록 하죠.”

“머, 먼저 말씀이신가요?”

이안은 정말 별 뜻 없이 내뱉은 말이다.

하나 공주에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나한테만 먼저…….’

특별대우를 받는 느낌.

그런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덕분에 웃음까지 흘리고 말았다.

“헤헤.”

“갑자기 왜 웃으십니까?”

“아, 아니에요!”

황급히 웃음을 주워 담은 공주.

그녀가 계속해서 귀를 쫑긋 세웠다.

“……호흡법이 다 그렇습니다만, 어려운 점은 딱히 없습니다. 마마께서 가지신 재능이라면 며칠 내로 익숙해질 겁니다.”

“저한테 정말 재능이 있나요?”

“아시지 않습니까?”

공주도 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3클래스를 달성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결과인지를. 첫 번째 스승인 황궁 마법사 케빈으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듣지 않았던가?

“그래도…….”

공주 자신한테도 재능이 있다는 사실.

그 얘기를 이안에게 직접 듣고 싶었다.

“제가 마마께서 마법사란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경로는 황제의 안식처, 그 지하였습니다. 아마 라이트 주문을 처음 사용하셨던 때로 기억합니다.”

“아, 그때!”

공주 또한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라이트 주문을 펼쳤던 날이 아니겠는가? 그녀로서도 역사적인 날이었던 만큼 뚜렷하게 떠올랐다. 가만있자, 그 날이 분명…….

“스승님께서 처음 입궁하셨던 날, 맞죠?”

“맞습니다. 황궁을 구경하다가 거기까지 들어갔는데, 마침 마마와 황궁 마법사분이 들어오시기에 구석으로 숨었죠. 덕분에 봤습니다.”

정확히는 '돌 심장 버섯'을 구하려고 들어갔으나, 거기까지 얘기할 필요는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 그때의 기억으로 마마의 재능을 판단했습니다. 많이 성장해봐야 2클래스 초입, 어지간하면 1클래스도 넘지 못할 것 같다. 그 정도로 말입니다.”

공주의 표정이 조금은 시무룩해졌다. 이미 2클래스를 뛰어넘은 3클래스인데도, 이안의 얘기가 정답인 것처럼 느껴진 탓이었다.

“한데 그 예상이 틀렸더군요. 3클래스에 달성하셨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솔직히 놀랐습니다. 마마께서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재능을 가지셨습니다.”

이어지는 말에 공주의 표정 역시 제자리를 찾았다. 오히려 처음보다 밝아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안의 입으로부터 재능을 확인받았으니까. 실로 듣고 싶었던 얘기였다.

“과찬이셔요.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4클래스.”

이안이 손가락 네 개를 펼쳤다.

“적어도 4클래스 초입은 가능할 거라 봅니다.”

“4클래스라면…….”

“고위마법사의 경지죠.”

하이리가 일순간 얼어붙었다. 4클래스의 고위마법사, 그녀 역시 간절히 바라는 경지였다. 고위마법사쯤 된다면 자신을 도와줬던 모든 이들, 그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으니까. 물론 자신이 고위마법사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지, 진심이신가요? 제가 4클래스라니…….”

“진심입니다.”

이안의 어조로부터 확신이 느껴졌다. 당장 호흡법만 바꿔줘도 마나의 최대치가 4클래스 초입을 넘보게 될 터, 거기다 술식 계산의 요령까지 귀띔해준다면 충분하리라.

‘재능도 확실하니까.’

물론 이안의 재능에 비한다면야 보잘 것 없는 수준이겠으나, 그건 너무 불공평한 비교였다. 애당초 이안이 비정상일 뿐, 공주의 재능이야말로 충분히 손꼽힐만했다.

‘동기부여도 탄탄하고.’

이안은 공주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자신을 스승으로 만들어 불법적인 마법전수의 공범으로 만들어 버린 것도 그렇고, 다 눈에 빤히 보이는 속셈 아니겠는가?

‘잘 키워두면 쓸모가 있겠어.’

황족이라는 혈통과 고위마법사.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조합이었다.

그런 제자, 하나쯤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슬슬 시작해 보도록 하죠. 일단 장소부터…….”

“아, 참!”

시작해보자는 이안의 말에 공주가 손뼉을 쳤다. 무언가 준비해둔 것이라도 있는 모양새였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무슨 문제라도?”

“아, 아뇨.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공주 하이리가 물건 몇 가지를 가져왔다.

두꺼운 책 한 권, 그리고 한 쌍의 반지였다.

“사제지간의 시작을 기념 삼아 드리는 선물이에요. 이 제자가 스승님께 잘 보이려고 드리는 뇌물이기도 하지요.”

그 말에 이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칭 뇌물들을 살펴봤다. 먼저 책은 두껍고 낡기만 했을 뿐, 평범한 책에 불과했다. 반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티펙트는커녕 마법물품조차 아닌 것 같았다.

“뇌물치고는 소소하군요.”

이안의 한마디에 공주가 피식 웃었다.

빈 말 따윈 절대 없다는 태도, 여전했다.

“정말 그럴까요?”

반지부터 집어 든 공주 하이리.

그녀의 붉은 입술이 스르르 떨어졌다.

“먼저 이 반지는…… 사실 소소한 거 맞아요. 기념 삼아서 제작한 반지거든요. 여기 보시면 이름이 적혀 있지요?”

장식 하나 없이 은으로만 제작된 반지 한 쌍, 그 반지의 안쪽으로는 각각 ‘이안 페이지’와 ‘하이리 그린리버’의 이름이 둥그렇게 새겨져있었다. 말 그대로 기념 반지였다.

“지금 착용하라는 뜻입니까?”

“아, 아뇨! 그냥 가지고만 계셔도…….”

이안의 직설적인 물음에 공주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지만, 그 대답과 관계없이 은반지를 착용해 주는 이안이었다. 모그리안 링이 자리 잡은 오른손 검지 대신 왼손 약지에 착용했다.

‘반지를 왼손 약지에…….’

공주 하이리의 얼굴에 뜻하지 않았던 홍조가 피어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왼손 약지에 착용하는 반지, 그린리버 제국의 귀족들 사이에서는 뜻하는 바가 제법 컸다. 주로 ‘약혼반지’를 착용하는 자리였으니까.

“반지가 좀 크군요.”

물론 이안은 그러한 의미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귀족들의 문화나 유행, 알아서 무엇하겠는가? 그저 오른손에 두개의 반지가 착용되는 것이 꺼려졌다.

마찬가지로 양손 다 검지에 끼우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중지는 좀 그렇고, 엄지는 불편했다. 새끼 역시 반지가 커 헐렁거렸다. 단지 그뿐이었다.

“반지는 알겠고, 이 책은 무엇입니까?”

“…….”

“마마?”

“반지를…….”

“공주 마마?”

“아, 네!”

멍해졌던 공주 하이리가 정신을 차렸다.

양 볼이 화끈거렸고, 헛기침마저 나왔다.

설렘과 부끄러움으로 뒤엉킨 반응이었다.

“이 채, 책은…… 그러니까…….”

잠시 말문을 더듬거렸던 공주.

심호흡과 함께 안정부터 되찾았다.

“후우우……! 이 책은 제가 얼마 전에, 황실 창고 구석에서 찾아낸 일기에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누군가의 일기장을 서책으로 엮은 물건이지요.”

이안이 공주의 설명을 들으며 책장을 넘겼다. 설명 그대로 일기였다. 제국력과 날짜로 시작되는 흔한 형식의 일기, 한데 그 숫자가 사뭇 범상치 않았다.

“제국력 221년?”

현재가 제국력 508년이다.

한데 일기의 제국력이 221년이라니.

거의 삼백여 년 전의 일기가 아니던가?

“누구의 일기죠?”

“제 조상되시는 분의 일기장이에요.”

공주의 조상이라면 황족일 터.

무려 삼백여 년 전의 황족이란 거다.

“황족 중 처음으로 마법사의 재능을 타고나셨던 분이셨고, 스승님께서 하사받은 파란 로브의 첫 번째 주인이시기도 해요.”

설명은 충분했다.

황족 중 최초로 마법사가 된 존재.

상아탑주의 자리까지 올라섰던 대마법사.

‘미첼 그린리버.’

바로 그 마법사의 일기였다.

“제가 먼저 읽어봤는데, 스승님께서도 흥미를 가지실만한 내용이 여럿 있더라고요. 특히 여기서부터 여기, 이 부분들을 읽어보시면…….”

공주가 지정해준 페이지들을 빠른 속도로 읽어본 이안. 과연 그녀의 예상처럼 흥미로움이 느껴졌다. 어째서 흥미롭냐고? 이유는 간단했다.

“그 로브의 제작일지군요.”

공주 하이리가 지정해준 페이지들, 즉 제국력 223년부터 227년까지에 해당하는 4년간의 기록은 가히 ‘제작 일지’나 마찬가지였다. 이안이 하사받은 미첼 그린리버의 로브, 그 ‘아티펙트’의 제작과 탄생에 관한 모든 것이 적혀 있었다.

“읽으면서 계속 느꼈어요. 저보단 스승님께 더 도움이 될 것 같다고……. 그래서 이렇게 선물로 가져온 거예요.”

“이건 황실의 물건 아닙니까?”

“로브처럼 빌려드리지요. 기간은…….”

잠시 고민했던 공주 하이리.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제지간이…… 끝나는 날까지?”

“감사히 빌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안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이 선물이 꽤나 마음에 들었으니까.

‘아티펙트의 제작일지라.’

마침 아티펙트의 재료로 추정되는 비단까지 소유 중인 이안이었다. 재료가 있으니 제작법에 흥미가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내가 원하는 아티펙트를 제작할 수 있다면…….’

착용자의 역량에 맞춰진 전용 아티펙트. 비단을 받았을 때도 잠깐 떠올렸던 생각이지만, 그때보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앞으로의 난관에 도움이 되겠지.’

이안은 드래곤과 관련된 일에 휘말리고 있다. 한데 그들은 이안 자신보다 훨씬 강하다. 적어도 그 무지막지한 존재들과 동등해질 때까지는 끊임없이 성장해야만 한다. 그 성장에 강력한 아티펙트까지 더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는 얘기다.

‘생각지도 못한 소득이군.’

이안은 공주를 바라봤다.

뇌물이 마음에 들어버린 탓일까?

그녀의 얼굴이 한층 더 화사하게 느껴졌다.

“공주 마마.”

“네. 스승님.”

“잠시 제 손을 잡으시겠습니까?”

“……예? 예? 소, 손이요?”

갑작스런 요청에 공주가 말문을 더듬었다. 다짜고짜 손을 잡자니? 아무리 거칠 것 없는 이안이라 해도 너무 빠른…….

"여긴 호흡법을 배우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닙니다. 오고가는 눈이 많기도 하죠. 괜찮은 장소를 알고 있으니, 먼저 그곳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아……!”

공주는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소문으로만 접했던 이안의 텔레포트.

그 공간이동 마법을 펼치려는 생각일 터.

‘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상상을…….’

고개를 저으며 생각한 공주 하이리.

그녀가 수줍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조금 어지러울 수도 있습니다. 유의하시길.”

이윽고 두 남녀의 손이 맞닿았다.

동시에 새하얀 빛줄기가 그들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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