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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01화 (10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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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01화

37. 스승과 제자?(1)

이안의 수련 상대로 두들겨 맞던 시절, 용아병 스파르토이는 기이한 꿈을 하나 꿨다.

그 꿈의 내용을 페어리 퀸과 상의해 볼까 말까 오랫동안 고민했으나, 끝끝내 털어놓지 않았다. 대신 권속의 영향이 사라져버린 지금 혼자서 알아볼 참이었다. 꿈속에서 목격했던 모든 것, 그 참담한 광경의 진실을 말이다.

(헛것…… 이겠다만…….)

그는 반년에 가까운 시간을 오직 영혼의 모습으로만 움직였다. 육신이 없어서 그럴까, 빠르기도 제법 빨랐다. 비행까지 가능했다. 단지 실체가 없어 이동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을 뿐.

(그래도…… 확인을…… 해둬야…….)

용아병 스파르토이의 영혼이 어느 지점부터 하늘을 향하기 시작했다.. 올라가고, 올라가고, 또 올라갔다.

(어쩌면…… 그분들의…… 행방을…….)

얼마나 높이 올라갔을까?

구름보다 높은 곳까지 닿았다.

그 높이에서도 한참을 더 움직였다.

(알아낼 수…… 있을지도…….)

이윽고 용아병 스파르토이의 영혼이 도달한 지점, 그곳에는 놀랍게도 널따란 땅덩어리가 부유하고 있었다. 잡티 하나 없이 평평한 평야였으며, 아무런 생명체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

용아병 스파르토이의 영혼이 평야에 들어섰다. 그리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꿈에서 목격했던 부유의 평야가 확실했으니까.

(설마…….)

아예 부유의 평야 속으로 스며들어간 용아병의 영혼. 당장 확인해볼 것이 있었다. 꿈에서 본 모든 광경이 사실이라면, 그렇다면 이 땅 속 어딘가에는 분명히!

(그분들의…….)

스파르토이의 목소리가 거기서 끊어졌다. 대신 부유의 땅 전체가 흔들렸다. 뿐인가? 무언가 평야 위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용아병 스파르토이의 ‘육신’이었다.

쿠구구구구…….

하나 평야 위로 튀어나온 육신은 하나가 아니었다. 이안이 드래고니안 에반투스를 상대하며 소환했던 용아병 육신들, 당시의 머릿수보다 훨씬 많은 육신이 끝을 모른 채 기어 나왔다.

(…….)

스파르토이가 자신의 수많은 육신들을 바라봤다. 그는 분명 꿈속에서 이 부유의 땅을 봤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땅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목격했다. 자그마한 인간에게 수많은 드래곤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는 광경 말이다.

(절반…….)

그 인간에게 당한 드래곤들은 모두 이 부유의 땅 아래 묻혔다. 숫자가 거의 드래곤 일족 중 절반에 해당할 정도였고, 스파르토이는 바로 그 여부를 확인하고자 여기까지 온 거다.

(그분들의…… 절반…… 이상…….)

그리고 방금 확인해 본 결과, 꿈은 모두 사실인 것 같았다. 본디 스파르토이의 육신은 드래곤의 뼛조각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존재, 그러한 육신을 이렇게나 많이 불러냈다. 무엇을 뜻하겠는가? 수많은 드래곤의 뼈가 묻혀있단 얘기였다.

(이곳에…….)

그렇다. 구름보다도 높은 곳을 노니는 부유의 땅, 이 널따랗고 두툼한 대지의 정체는 바로 ‘무덤.’ 하늘을 하염없이 떠도는, 드래곤 일족 중 일부가 매장된 무덤이었던 것이었다.

* * *

“여왕님. 스파르토이 님은 어디에 계시죠?”

(알게 뭐냐? 갈 곳도 없는 놈이긴 하다만.)

“에반투스 님께서도 전혀 모르십니까?”

(모른다. 그는 예전부터 방랑자의 면모를 풍겼었지.)

(흥! 방랑자는 무슨, 친구가 없는 거겠지! 친구가!)

이안은 밀린 업무나 약속들을 하나하나 처리해 내기 시작했다. 그 시작으로 페어리 퀸과 에반투스에게 해줬던 약속, ‘드래곤’을 만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물론 진짜 드래곤이 아닌 드래곤의 정신체일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뭐, 어차피 두 병이 한계니까요.”

남은 재료, 특히 가고일의 눈이 부족한 탓에 시간의 보고로 진입하는 비약을 두 병밖에 만들어내지 못했다.

하여 페어리 퀸과 에반투스만 다녀오게 되었다. 물론 이안도 당장 드래곤을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여러모로 의심스러운 존재였으니까.

“먼저들 다녀오세요.”

비약을 마시고 시간의 보고로 들어갔던 페어리 퀸과 드래고니안 에반투스, 그들은 현실의 시간으로 오십여 일이 지나고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이안이 백여 일을 그곳에 있었음에도 일주일 내지 이주일, 길어봐야 삼 주일 정도로 체감했듯, 두 권속 역시 일주일쯤으로만 여겼다. 한데 오십 일씩이나 지났다니? 페어리 퀸의 큼직한 두 눈이 동그라미를 그렸다.

(오십 일이나 지났다고? 설마 그럴 리가!)

“사실입니다. 그 안이 좀 이상하더라고요.”

페어리 퀸은 시간의 보고에 머물었던 오십여 일 내내 울기만 했는지, 눈가가 아주 퉁퉁 불어터졌고.

(그럼 나는 서둘러 가고일의 행방부터 찾도록 하겠다.)

에반투스는 곧장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사라진 가고일을 찾아야만 시간의 보고로 통하는 비약을 계속 조제할 수 있는 탓이었다. 자식들의 수명이 걸린 비약이니만큼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그, 그럼 난…….)

페어리 퀸이 쭈뼛쭈뼛 이안에게 날아왔다. 그녀는 에반투스와 달리 아직까지 권속의 힘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원하지 않는다면 사용하지도 않겠다는 이안의 배려 탓이었다. 물론 필요한 상황이 닥칠 경우 그 배려 또한 바뀌겠으나, 아직은 유효했다.

(그분께서 그러시더구나. 인간, 네놈을 도와주라고.)

“그 드래곤의 정신체가 말입니까?”

(무엄하다! 아무리 정신체라 한들 그분께서는 모든 권속들의 주인이시자 용일족의 수장, 예의를 갖추어라!)

“그분께서 왜 저를?”

호칭만 간단히 바꾼 이안이 물었다.

(나 따위가 그분의 깊고 심대한 뜻을 어찌 알겠느냐? 하지만 그분께서 명하셨으니, 나는 앞으로도 당분간 네놈의 부탁을 들어주도록 하겠다. 네 가족들을 지키는 일, 그것이면 되겠지?)

항상 오만한 태도로 일관하는 페어리 퀸이다. 그런 그녀가 자신을 저토록 낮출 줄이야. 과연 드래곤은 드래곤인 모양이다.

“네. 그거면 충분합니다.”

(권속의 주문을 걸어도 좋다.)

“진심이십니까?”

(이왕 돕기로 정해진 것, 그렇다면야 권속의 힘에 묶이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다. 그 힘은 명령에 복종하는 능력 외에도 몇 가지 효과가 더 있거든.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니라.)

페어리 퀸이 조막만한 날개를 파닥거렸다. 이안의 어깨 위로 빙글빙글 도는가 싶더니 곧 분홍빛 가루가 떨어졌다. 페어리 더스트, 그중에도 독보적인 ‘페어리 퀸의 더스트’였다.

(이 몸의 가루에는 단지 마기를 정화시키는 권능만 주어진 것이 아니란다. 권속의 주인이 나의 가루를 품에 한 톨이라도 지니고 있는 이상, 그 위치의 방향과 생명력의 대략적인 상태가 나에게 전달되느니라. 본래 그분들을 더 완벽하게 보좌하고자 존재하는 권능이다만, 지금은 네놈에게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구나.)

생각보다 편리한 능력이었다.

또한 그렇기에 의구심이 생겼다.

“그 능력으로도 드래곤의 행방을 찾지 못했던 겁니까?”

(네놈이 시간의 보고로 들어갔을 때와 똑같은 경우다. 본디 그분들로부터 느껴져야 할 권능의 영향이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버렸다. 하여 그분들의 위치와 생명도 느낄 수가 없게 되었지. 어디까지나 권능의 주인에게만 발휘되는 힘이니까.)

충분히 납득할 만한 대답.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만.’

적어도 그들의 권속들은 당장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더불어 그 보고 속의 정신체, 즉 천여 년 전의 드래곤과 현재의 드래곤은 다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컨대 시간의 보고 속 정신체가 ‘멀쩡했던 시절의 드래곤’이라면, 라그나르를 처리할 때 만났던 골드 드래곤은 몇몇 사정과 기나긴 세월 끝에 ‘변질되어버린 드래곤’이라고 표현할 수 있으리라.

‘확실히 느낌 자체가 다르긴 했어.’

특유의 감과 추측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야하는 현 상황.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어쩔 도리도 없었다. 적어도 현재의 이안으로서는 불가항력이나 마찬가지였다.

“좋습니다.”

생각을 멈춘 이안.

그가 나지막이 답했다.

“대신 나중에 딴 소리 하시면 안 됩니다. 저는 분명 여왕님을 속인 적도, 주문을 몰래 걸지도, 약점을 잡아 강요하지도 않았으니까요.”

(속고만…… 아니지. 속이고만 살았느냐? 예민하구나.)

“정확하시네요.”

이안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전생에는 참 많이도 속았다.

이번 생에는 참 많이 속였고.

“그럼.”

황금빛 마나가 페어리 퀸의 전신을 휘감았다. 더불어 거부할 수 없는 권속의 영향이 이안과 그녀 사이에 연결되었다.

(예전부터 느끼는 거다만, 그분들 외의 존재에게 복종심이 생기는 이 느낌, 참으로 불쾌하도다. 심지어 인간이라니.)

“다시 말씀드리지만 나중에 딴 소리…….”

(알겠다니깐? 누가 불신의 족속 아니랄까 봐!)

언제는 단명의 족속이라더니, 이제는 불신의 족속이란다. 어찌되었든 페어리들의 여왕 에스펠, 그녀 또한 길지 못했던 자유로부터 벗어나 다시금 이안의 권속으로 돌아왔다.

“그럼 앞으로도 가족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여왕님.”

(부탁하든지 말든지.)

가장 시급한 일은 마무리되었다. 다음으로 처리해야 할 문제는 바로 ‘재산의 정리’였다. 현재 이안의 재산이란 그야말로 무지막지했다.

옛 상아탑의 터로부터 가져온 보석들은 물론, 황제가 이안에게 처분을 떠넘겨버린 전 상아탑주의 사유 재산, 거기다 헥토르 콜드우드의 조공 중 일부를 차지한 귀금속까지.

‘황제가 남긴 말도 있고.’

적어도 황제가 이안에게 시험처럼 맡겨둔 허버트의 재산, 그것들만큼은 반드시 조속한 시일 내에 처분하고 싶었다. 문제야 있겠냐만, 이대로 계속 꿀꺽하고 있기에도 조금 불편한 재물이었으니까.

‘다 어찌 처리한다?’

허버트가 몰래 모아둔 아티펙트나 마법물품은 상아탑과 황실에 귀속시키면 그만일 터. 핵심은 근본적인 재산이었다.

‘모양새 좋게 처분해야 할 텐데.’

문제는 그 모양새가 이안 자신과 어울리지 않고, 그럴 시간도 없거니와, 방법 또한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막연히 어려운 이들에게 베풀며 민생의 안정을 도모하는 새 상아탑주의 모습? 황제가 원하는 그림이야 분명 그런 쪽일 테지만…….

‘해본 적이 있어야지.’

전생의 이안은 백성들의 삶에 큰 관심이 없었다.

아니, 그럴 기회가 없었다고도 얘기할 수 있으리라. 피붙이는커녕 친구조차 손가락으로 꼽아졌던 전생, 그마저도 통일 전쟁 당시 대부분을 잃어버렸고, 마지막 남았던 친구 라그나르에게는 독살이나 당해 버렸던 인생 아니겠는가?

‘좁아터진 인간관계의 절정.’

마음 둘 곳이 적으니 마법에만 매달렸고, 그나마 마음 둘 수 있는 친구의 야욕을 도와 전쟁 병기로 소모되었던 첫 번째 삶, 그 42년이란 세월은 그게 전부였다.

‘믿고 맡길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안이 저택을 빙 둘러봤다.

마침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웬일로 바느질에 한창이셨다.

갑자기 무얼 만드시는 걸까?

‘확실히 어머니라면…….’

이안의 어머니 베네사 페이지, 그녀는 아주 선한 존재다. 어떻게 자신과 같은 자식이 태어났을지 모를 정도로 순백의 심성을 가지셨다. 적어도 이안이 아는 인물 중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라는 개념에 가장 가까운 존재이기도 했다.

‘적어도 나보다는 수백만 배 이상으로.’

애당초 이안에게는 어울리지도 않거니와, 억지로 해봤자 가식이며 모순에 불과하다. 그런 선행을 진심으로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는 편이 옳다. 현재로선 어머니가 가장 어울렸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도 방법을 모르시지.’

마냥 거액의 돈을 던져주며 어디 착한 일에 쓰십시오,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일의 진행을 도와줄 사람이, 그 방면으로 지식이 풍부한 존재가 필요했다. 누가 좋을까?

“아.”

이안이 허벅지를 탁 쳤다.

한 사람, 떠오르는 이가 있다.

‘공주, 하이리 그린리버.’

그녀는 공주의 신분을 가졌다. 그런 만큼 할 일이 별로 없다. 그런 주제에 아는 건 상당히 많다. 황족으로서 지켜야할 의무, 그 중에는 민생의 보살핌도 반드시 들어갈 테니까.

‘마침 부려먹기도 좋은 위치지.’

무려 이안의 ‘제자’ 아니겠는가? 심지어 공주 본인이 자처한 관계이기도 했다. 아직 한 번도 무언가를 가르쳐줘본 적은 없다만, 이제 뭐가 되었든 시작하면 그만이리라.

‘마나 호흡법이라도 하나 던져주면 된다.’

그리 생각한 이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남 김에 바로 얘기해볼 참이었다.

처음에는 텔레포트를 떠올렸다.

하나 곧 생각이 바뀌었다.

‘텔레포트는 좀 실례일까?’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황족이다.

심지어 여인, 공주이기도 하다.

‘간만에 걷자.’

고개를 주억거린 이안.

그가 곧장 황궁으로 향했다.

오래간만에 로브도 벗어던졌다.

제대로 된 복장을 갖추기 위함이었다.

* * *

“하아아…….”

이안 페이지의 제자 자리를 얻어낸 공주, 제국제일의 ‘미녀 하이리 그린리버’는 심장이 콩닥거렸다. 적어도 몇 주 전까지는 그랬다.

곧 이안 님께서 제자가 된 자신에게 어떤 언질을 주시겠지. 그래, 아직은 바쁘시겠지. 처리할 일이 산더미 같으시겠지. 그런 믿음과 함께 연락을 기다린 지도 어느덧 수달 째.

‘도대체 언제?’

그러나 기다리고 기다렸던 위대한 스승님의 연락은 계절이 바뀌어도 찾아오지 않았다. 덕분에 한숨만 늘었다. 먼저 찾아가볼까, 연락을 취해볼까도 싶었으나, 이내 고개부터 저어졌다.

‘그건 너무…….’

구차해 보이지 않겠는가?

안달이 난 것처럼 보이겠지.

공주 하이리가 미간을 찡그렸다.

아름다운 얼굴에 주름이 그려졌다.

‘설마, 잊어버리시진 않았겠지?’

이안이라면 그럴 것도 같았다. 아주 냉랭한 남자가 아니던가? 황실에서 공주의 입지는 아주 적다며, 하고 싶은 일이나 하라며 오목조목 직언하는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래서 더 매력적인 거지만…….’

거기까지 생각했던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특정한 누군가를 생각하며 이리 설렜던 적, 단언하건데 처음이었다.

‘……그러면 뭐해! 잊어버리신 게 분명한데!’

공주의 속내가 싱숭생숭해진 그때.

친구나 다름없는 하녀들이 들어왔다.

“고, 공주 마마!”

무슨 문제라도 일어난 걸까? 유독 소란스러워 보이는 하녀들의 모습에 공주가 희고 갸름한 얼굴을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들 그래? 무슨 일 있니?”

공주의 말 한마디에.

“때, 때가 왔습니다!”

“그분께서 오셨어요!”

“드디어! 마침내!”

“로브 대신 정복 차림으로!”

하녀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었다. 너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 이야기들이라 그런지 알아듣기조차 힘들었으나.

‘이안 님께서 오셨다고?’

공주는 용케도 알아들었다.

정말 용한 재주를 가졌다.

“……얘들아.”

상황 파악이 완료된 공주 하이리.

그녀가 하녀들에게 읊조렸다.

사뭇 진중한 목소리였다.

“도, 도와줘!”

공주가 하녀들의 말을 알아들었던 것처럼, 하녀들 역시 척하면 척이었다. 무엇을 도와달라는지 단박에 알아챘으니까.

“맡겨만 두세요!”

머리는 어찌 만져야 하는지.

드레스는 무얼 입어야 하는지.

어울리는 화장법은 무엇인지.

장신구는? 구두는? 향수는?

하이리가 떠올렸던 모든 고민들이, 하녀들의 손으로부터 빠르게 해결되어가기 시작했다.

“공주 마마, 상아탑주 이안 페이지 공께서 뵙기를 청하고 계십니다.”

그렇듯 공주의 준비가 완료될 때쯤.

바깥에서 하인의 목소리도 함께 들렸다.

저 너머에 드디어, 그분께서 도착한 거다.

공주 자신보다 2살이나 어린 스승님.

냉랭한 상아탑주, 이안 페이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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