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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00화 (10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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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00화

    36. 조공(2)

    “선물?”

    이안이 반사적으로 말했다. 콜드우드 제국의 황태자가 보낸 선물이란다. 무슨 뜻인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바꿔서 말하자면 뇌물. 아니, 조금 더 그럴싸한 표현이 존재했다. 이안도, 상인 로베르토도 지금쯤 떠올리고 있을 바로 그 표현.

    ‘조공이지.’

    한 국가가 국가로 보내온 조공이 아닌.

    오직 이안에게만 맞춰진 조공이었다.

    “콜드우드의 황태자 전하께서 소인과 소인의 상단에게 따로 부탁을 하셨습죠. 아무래도 저희가 양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대표적인 상단인지라, 이안 님과도 인연이 닿아있고 말이죠.”

    포이언 상단은 그린리버와 콜드우드의 국경선, 모그리안 영지로부터 시작된 상단이었다. 여러 상단들과 차별화를 두고자 국가 간의 교역을 시도했고, 그 결과 양국 모두에서 꽤 탄탄한 입지까지 다져둔 상태였다.

    “이안 님께서도 놀라실 겁니다. 아주 다양하거든요. 보석이며 황금이며, 콜드우드 특산품도 많고, 그쪽 황실에서 직접 엄선된 것들까지. 먼저 이쪽 수레를 보시면…….”

    상인 로베르토가 짐수레를 하나하나 지목하며 콜드우드의 황태자, 헥토르 콜드우드의 조공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것 봐라?’

    그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안은 한 가지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동시에 헥토르 콜드우드의 노림수까지 파악해 냈다.

    놈은 조공이랍시고 단순한 재물이나 보낸 것이 아니었다. 물론 재물도 많았으나, 그것은 전체 물품 중 2할 정도에 그쳤다.

    ‘대부분 내가 아니라…….’

    이안은 대륙적인 유명인이다.

    그만큼 소문도 무성하게 돌았다.

    수식어 또한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지극한 효자.’

    ‘어머니를 위한 물건들이군.’

    그랬다.

    콜드우드의 황태자, 헥토르 콜드우드가 보내온 조공, 그것들은 대부분 귀부인을 위한 최고급 장신구, 최고급 향수, 명성 높은 디자이너의 드레스와 같은 '미용 용품'이었다.

    뿐만 아니라 여인의 몸에 좋다고 소문난 콜드우드의 특산물부터 약재, 엘릭서까지. 그야말로 이안 페이지의 취향을 자극하는 '맞춤형 조공'이었다.

    ‘머리 좀 썼네.’

    이안이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설마 이런 식의 조공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콜드우드 제국의 귀부인들도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들이지요. 그린리버 쪽에서는 아예 공수조차 불가능한 것들이 대다수입니다.”

    아마 평범한 금은보화의 행렬이었다면 이안은 시큰둥했을 거다.

    재물? 이미 차고 넘치니까.

    저택의 창고에도, 전 상아탑주 허버트로부터 획득한 포탈의 서책 너머 지하 창고에도, 페어리들의 보금자리에도, 하물며 이제 마음만 먹으면 에반투스가 발견했다는 드래곤 레어의 창고조차 이용할 수 있다. 다다익선도 다다익선 나름 아니겠는가? 한데 헥토르는 이안을 보란 듯이 만족시켰다.

    “그리고 이것은…….”

    조공들을 설명하던 로베르토의 발걸음이 짐수레 너머 마차 앞에 멈췄다. 그러더니 마차 안쪽 깊숙이 모셔둔 보관함 하나를 끄집어냈다. 푸른색 비단이 보관 중인 함이었다.

    “비단이네요.”

    “평범한 비단이 아니지요.”

    로베르토가 비단을 꺼내 펼쳤다.

    일단 겉모습은 여전히 평범했다.

    도대체 뭐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까?

    “콜드우드의 황태자 전하께서 제게 그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이 비단은 콜드우드 황실에서 오래토록 보관해온 마법의 비단이니, 분명 이안 님께서도 마음에 드실 거라 하시더군요.”

    마법의 비단이라.

    로베르토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 옛날 아티펙트의 재료로 사용되었을 비단이 아니겠느냐 하는, 콜드우드 쪽 마탑 마법사 분들의 추측이 있었다고도 하셨습니다.”

    “아티펙트의 재료?”

    이제야 시큰둥했던 이안의 눈빛이 생기를 되찾았다. 아티펙트의 재료로 사용되는 비단이라, 만약 사실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충분히 흥미를 자극할 만한 선물이었다.

    “한 번 살펴보시겠습니까?”

    이안이 푸른색 비단을 건네받았다.

    아티펙트는 그야말로 미지에 휩싸인 물건이다.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째서 마나와 공명하는지, 어떠한 이론으로 술식을 발현시키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알아낼 방법도 없다. 그런데 어찌 아티펙트의 재료라고 추측을 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마나를 주입시켜 보면 알 수 있지.’

    아티펙트는 마나와 공명한다.

    그 재료라고 크게 다르진 않을 터.

    이안이 비단으로 마나를 주입시켰다.

    우우우우웅-!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진동하는 비단.

    마나와 공명하고 있단 증거였다.

    마법의 비단이 확실했다.

    “음?”

    한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비단으로부터 냉기가 뿜어졌다.

    희미했으나, 분명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평범한 비단은 아니다.’

    마나와 공명한다.

    일말 냉기마저 뿜어낸다.

    내제된 주문이 있다는 증거였다.

    “어떠십니까? 마음에 드시는지요?”

    “……마법의 비단, 맞는 것 같군요.”

    좀처럼 비단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는 이안이었다.

    강렬한 호기심이 동해 버렸다. 만약 이 비단을 시작으로 아티펙트 제작의 비밀까지 알아낸다면? 기존의 아티펙트가 아닌, 철저히 이안을 기준으로 제작된 맞춤형 아티펙트를 사용할 수 있다면?

    '제법 쓸 만한 선물을 보냈네.'

    참으로 재미난 선물 아니겠는가? 동시에 헥토르의 생각도 읽어졌다. 놈은 이 비단을 오랜 세월 연구해왔을 거다. 그러나 통상적인 추측만 가능할 뿐, 가공할 방법은 끝내 찾아내지 못했을 터.

    ‘갖고 있어봐야 답 없는 애물단지였겠지.’

    반대로 남 주기는 아까웠던 고대의 유물이란 얘기다. 한데 그 남이 언제든지 목숨을 취해갈 수 있는 이안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여 이참에 이안의 마음을 살 조공으로 써먹었으리라. 이안쯤 되는 마법사라면 필시 비단의 잠재력에 매료될 테니까.

    ‘놈의 생각대로 놀아나는 꼴이긴 하는데.’

    이안보다는 어머니를 향한 선물 공세.

    아티펙트의 재료로 추정되는 비단까지.

    지금쯤 헥토르는 확신하고 있으리라.

    이안 페이지를 구워삶을 수 있다고.

    심지어 사실이기도 했다.

    ‘그래도 마음에 든단 말이지.’

    그렇다. 그것이 문제였다.

    생각보다 마음에 쏙 들었다.

    “참, 이것도 받으시지요, 전하께서 이안 님께 보내신 친필 서신입니다.”

    로베르토가 이안에게 편지 한통을 건넸다.

    콜드우드의 인장으로 봉해진 서찰이었다.

    -존경하는 대마법사, 이안 페이지님께.

    이안은 장소에 아랑곳하지 않고 황태자의 친필 서신을 펼쳤다.

    시작하는 문장부터 나쁘지 않았다. ‘친애’가 아닌 ‘존경’, 이안 페이지‘에게’가 아닌 이안 페이지‘님께’. 어지간히도 자존심을 꺾은, 혹은 아예 지워버린 흔적들이 빼곡하게 남아있었다.

    -일전에는 경황이 없어 제대로 인사조차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하여 이렇게 서신으로나마 올리지 못했던 인사를 드립니다.

    목소리가 아닌 글자임에도 극진한 태도가 전해졌다.

    흡사 무서운 어른을 대하는 어린아이의 편지처럼 느껴졌다. 권좌를 탐하여 피붙이들조차 모조리 도륙시킨 헥토르 콜드우드가, 그 무자비한 옆 나라 황태자가 말이다.

    -그날 이후, 저는 일국의 국본으로서 얼마나 부족하고 어리석었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륙일통이라는 허황된 업적에 눈이 멀어 날붙이를 잡았고, 국경마저 침범하고자 했습니다. 만약 이안 님께서 그 잘못된 판단을 꾸짖어주시지 않았다면,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게 되었겠지요.

    거기까지 읽었을 때, 이안은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놈이 편지를 쓰며 얼마나 부들부들 떨었을지, 그 분노를 어떻게 참아냈을지 궁금할 지경에 이르렀다.

    ‘속으로는 나를 수천 번도 더 죽였겠지. 아예 시체까지 뜯어먹지 않았을까? 현실이었어도 충분히 그럴 놈인데.’

    이안은 헥토르 콜드우드를 잘 안다. 방해되는 피붙이들을 몰살시킨 거야 유명한 일화다.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더더욱 가관이다.

    통일 전쟁에서 끝까지 저항한 자, 전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서라면 백성 수천의 목숨이야 망설임 없이 희생시키는 자. 사람을 발판이자 도구쯤으로만 여기는 그 잔혹한 성정은, 라그나르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한 존재는 아닐 것이리라.

    ‘그런 놈이 반성의 편지라.’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린리버의 황태자 하이든 그린리버를 사람 시늉이라도 하게 만드는 데만 6년이 걸렸다. 하물며 그보다 수백 배는 속이 뒤틀린 헥토르 콜드우드가 개과천선을 한다?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이안.

    그가 계속해서 편지를 읽어 내렸다.

    참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 같았다.

    거짓된 아부로 점철된 편지였다.

    “흐음.”

    그 아부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놈의 본성을 알고 있어서 그런 걸까?

    그러나 선물이랍시고 보내온 조공들.

    저것들만큼은 진심으로 괜찮았다.

    “……나도 답신을 해줘야겠지.”

    “그러시다면 소인이 전달해드릴까요? 이번 사절단의 모든 안내와 여행 중 편의를 저희 상단에서 책임지고 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안의 중얼거림을 들은 로베르토가 잽싸게 말했다. 그 또한 이안에게 잘 보여서 나쁠 것이 없었다. 오히려 좋은 일만 자꾸 생겼다. 어려웠던 시절 고블린의 시체 처리부터, 그 용언서란 물건을 출품해준 대가로 상아탑 제1 거래 상단까지 되었다.

    ‘이안 님께서 가는 길에는 항상 돈이 떨어진다.’

    심지어 이번 선물 전달을 통해 막대한 수고비마저 챙겼다. 뿐이랴? 콜드우드 제국의 황태자와 안면도 텄다. 로베르토에게 이안이란 그야말로 돈 나는 나무나 마찬가지였다.

    “아닙니다. 제가 직접 전달하죠.”

    “이안 님께서는 워낙 공사가 다망하신 분 아니십니까? 어찌 서찰을 직접…….”

    “금방 다녀올게요, 몇 분이면 됩니다.”

    “……예?”

    로베르토는 본능적으로 되물었다.

    하나 곧 이안의 말뜻을 이해했다.

    공간이동마저 가능케 만든 마법사.

    그것이 바로 이안 페이지였으니까.

    * * *

    콜드우드 제국의 황태자.

    실상은 황제보다 더한 권력을 휘두르는 헥토르 콜드우드가 집무실에 앉아있었다. 불과 몇 달 전, 앰버 영지에서 이안을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였다. 양쪽 볼이 홀쭉해졌음은 물론, 눈가에 시커먼 그늘마저 내리깔렸다.

    “제깟 놈이 대단해 봤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공간이동의 마법사, 이안 페이지에게 목숨을 위협당한 이후, 단 하루도 편하게 잠들기가 힘들었으니까. 항상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어쩌다 잠이 들어도 토끼잠일 뿐, 곧바로 깨어났다. 아니, 깨어나야만 했다.

    ‘아직도 어미의 치맛자락에서 벗어나지 못한 애새끼일 뿐이지. 별 쓸데없는 일에 미친놈처럼 몰두하는 마법사이기도 하고.’

    결국 헥토르는 특단의 결정을 내렸다. 일단 엎드리자. 자존심이고 뭐고 꿇자. 간, 쓸개 모두 내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놈의 주시로부터 도망치자. 그래야 살 것 같았다.

    “그러니까 먹고 떨어져라. 제발!”

    헥토르의 중얼거림이 속마음과 목구멍을 넘나들었다. 오락가락하다는 표현이 실로 정확했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상태였다.

    “그러죠.”

    “히, 히익……!”

    하마터면 헥토르의 숨이 그대로 넘어갈 뻔 했다. 두 번 다시는 듣기 싫었던 목소리, 아직 앳된 주제에 한없이 차가운 목소리가 등 뒤로부터 들려온 까닭이었다.

    “떨어져 드리겠습니다.”

    헥토르가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 이안 페이지가 있었다.

    환청일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환각일까? 역시 아닌 것 같았다.

    “사, 살려…….”

    “아, 오해는 마세요. 선물도 받았겠다, 편지도 받았겠다. 그냥 인사차 온 거니까요.”

    사실일까?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그리 믿은 헥토르의 안색이 조금 풀어졌다. 믿어지지 않아도 믿어야만 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보내주신 선물, 감사히 받겠습니다.”

    “…….”

    “진심어린 편지도 잘 읽었고요.”

    “그, 그게 끝인가? 아, 아니. 끝입니까?”

    “뭐 더 할까요?”

    “……!”

    이안은 그저 농담처럼 내뱉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헥토르는 기겁하기에 이르렀다.

    “얼굴이 많이 상하셨군요. 당분간 편히 주무시길.”

    글쎄.

    그가 과연 편히 잘 수 있을까?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았다.

    또한 이안의 노림수이기도 했다.

    놈이 보낸 조공은 제법 괜찮았다. 다만 우쭐함을 심어주기 싫었다.

    해서 답신을 핑계로 찾아온 거다. 주기적으로 밟아둘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럼,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종종?

    지금 종종이라고 했나?

    헥토르의 안색이 노랗게 떠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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