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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96화 (96/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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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96화

35. 이번에야말로(2)

“역시, 역시 떠난 게 아니었어! 이렇게 돌아올 줄 알았다니깐? 하하! 대체 어디를 다녀온 게냐? 응? 여행이라도 다녀온 게야? 아니면 수련? 그것도 아니라면…….”

황태자의 말이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묻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나 황태자는 곧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로서는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으니까.

“이럴 때가 아니다. 지금 아바마마께서…….”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고……?”

“폐하께서 쓰러지신 원인은 이미 찾아냈고, 현재는 치료제를 연구 중에 있습니다. 그 문제로 부탁을 드릴 것이 있어 이렇게 불쑥 찾아왔습니다. 무례를 용서해 주시길.”

황태자의 창백했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모자라, 아바마마께서 쓰러지신 원인까지 찾아냈단다. 심지어 치료제까지 연구 중이라니? 과연 이안이었다. 황태자 인생 최고의 아군이자 복덩이, 어찌 그에게 무례함 따위를 운운할 수 있겠는가? 지금 당장 황태자 자신의 뺨을 때려도 웃을 수 있으리라.

“무례는 무슨, 당치도 않다! 그보다 그 부탁이라는 것부터 얘기해 보아라. 무엇이 되었든 내 전력을 다해 도와주도록 하마.”

이안이 급하게 황태자를 찾아온 이유.

바로 레디오와 더글라스의 요청 탓이었다.

“예 전하. 무리한 부탁은 아니옵고, 황실 연금술사들의 연구실과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합니다.”

“연구실과 도구?”

란데오르의 꽃을 연구하기 시작한 레디오와 더글라스는 곧 ‘도구의 한계’에 부딪쳤다. 돈으로 구할 수 있는 도구들은 모두 저택 연구실에 구비해 줬지만, 그 외의 특수한 도구들이 문제였다. 예컨대 국가적으로 판매가 금지되어 오직 황궁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최고급 도구들, 그러한 도구들의 힘이 절실했다.

“혹시, 저와 함께 사는 이들을 기억하십니까?”

“그 땀 잘 흘리는 집사를 말하는 게냐?”

“집사…… 는 아니고, 연금술사입니다.”

“응? 그 친구가 연금술사였어?”

실로 의외라는 표정이 역력한 황태자.

지금껏 레디오를 집사로 여긴 모양이었다.

“이건 상아탑의 추천서입니다. 전하께서 최종 승인만 내려주신다면, 그 레디오가 황실 연금술사장의 권한을 받게 됩니다. 물론 임시로 말이죠. 기간은 폐하의 건강에 특별한 변화가 생기는 순간까지입니다.”

란데오르의 꽃은 마법사들에게 치명적인 존재다. 최대한 비밀리에 연구할 필요가 있었다. 연금술사장의 권한을 받아둔다면 출입하는 연금술사들도 통제할 수 있을 터, 연구실을 마음껏 사용함과 동시에 비밀 유지 또한 쉬워지리라.

“연금술사들의 반발이 심하지 않겠느냐?”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필요 이상의 반발은 힘들 겁니다. 그들은 폐하의 치료는커녕 원인조차 밝혀내지 못했으니까요. 두고 보겠다는 심정이 전부겠죠.”

황실 연금술사들로서는 입이 열 개라도 부족한 상황 아니겠는가? 외부의 연금술사가 며칠 전권을 받아 휘두를지언정 반발할 입장이 아니었다. 심지어 황태자와 상아탑의 공동된 허가까지 받아낸 실력자라면 더더욱 그럴 거다.

“그리고, 저의 복귀는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어째서?”

“폐하의 건강 악화에 배후가 있습니다.”

“뭐라? 배후?”

황태자가 크게 놀라며 되물었다.

올리버의 눈매 또한 날카로워졌다.

“그, 그것들이 누구지?”

“전하께서도 곧 아시게 될 겁니다. 그때까지만 비밀로 해주십시오. 그래야 그 배후도 꼬리를 마음껏 내놓지 않겠습니까?”

“으음…….”

잠시 고민에 빠졌던 황태자.

그 배후라는 존재가 궁금하긴 했다.

당장 추포해 엄벌을 내리고 싶었다.

하나 일단은 꾹 참기로 마음먹었다.

이안의 말뜻을 이해한 까닭이었다.

“저의 복귀가 비밀이니만큼, 레디오를 추천하는 주체 역시 상아탑의 의지로 공표될 예정입니다. 임시 상아탑주인 데커드 님과 로난 님의 뜻으로 말이죠. 상아탑주 이안 페이지의 전속 연금술사를 황실에 천거한다는 명분입니다.”

그 말에 황태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전이라면 몇 번은 더 되물었을 이야기.

“과연, 무슨 뜻인지 알겠다.”

하나 이제는 달랐다. 단번에 알아들었다.

이안 역시 의외인 듯 황태자를 바라봤다.

그 옆에 선 올리버와도 눈이 마주쳤다.

가볍게 고개만 끄덕거리는 올리버.

6년의 변화가 빛을 보기 시작했다.

“조만간 정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벌써 가려는 거냐? 얼마 만에 본 건데…….”

“아직 처리할 일이 많아서……. 송구합니다.”

아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황태자의 얼굴에, 이안은 새삼 두 번째 삶의 변화를 느껴졌다. 본디 사람이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한데 지금 저 황태자를 보라.

‘참 많이 변했어.’

전생과 비교해서. 아니, 그렇게 멀리가지 않아도 된다.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더라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당시 이안은 황태자 하이든을 쥐고 흔들 수 있는 도구쯤으로만 여겼으니까. 쓸모가 다한다면 가차 없이 버릴, 딱 그 정도의 도구 말이다.

‘잘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황태자와 필요 이상으로 가까이 지내는 게 옳은 판단일까? 확신할 순 없었다. 하지만 저번 생과는 여러모로 달라졌다.

이미 배신을 경험해 봤고, 한결 단단해졌다. 사람을 보는 눈도 생긴 것 같았다. 결코 똑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진 않을 것이리라.

“그럼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이, 이안!”

“하명하시지요.”

잠시 망설였던 황태자.

그가 어렵게 입술을 뗐다.

“……또 말없이 사라지거나, 그러지는 말아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피식 웃으며 대답한 이안이 새하얀 빛과 함께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사라짐에 황태자와 올리버는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곧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이안은 표현 그대로 상상을 초월하는 대마법사였으니까. 이제 뭘 하든 고개부터 끄덕여졌다.

“…….”

한동안 말이 없었던 두 사람.

황태자 하이든과 단장 올리버.

먼저 정적을 깨는 쪽은 황태자였다.

“단장.”

“예, 전하.”

“가자.”

“예?”

“식사하러.”

한없이 어두웠던 황태자의 얼굴.

그 표정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제 아바마마만 쾌차하신다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다면.

더는 바랄 게 없으리라.

“아바마마도 뵙고.”

황태자는 한동안 아버지를 찾아가지 않았다. 모두 자신의 탓이라는 자괴감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달랐다. 이안이라면 황제의 건강을 반드시 회복시켜 줄 터.

‘믿고 기다리자.’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일국의 황태자로서.

한 가정의 장남으로서.

황태자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요 근래 가장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 * *

이안의 전속 연금술사, 레디오와 더글라스가 황실 연금술 기관을 독점한지도 수십여 일이 지났다. 처음 그 소식이 알려졌을 때, 5황자 라그나르는 불안함을 느꼈다. 설마 이안 페이지가 돌아온 건 아닐까?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문제였다.

‘역시, 괜한 걱정이었어.’

하나 그 걱정들은 기우에 불과했다. 어떠한 이변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이안 페이지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으며, 놈의 연금술사들도 이렇다 할 성과가 전혀 없었다. 모든 것이 라그나르의 계획대로 순조롭게 흘러갔다.

‘교단까지 나를 전폭적으로 돕기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는 용의 교단도 라그나르의 계획을 적극 도와주기 시작했다. 강력한 마법사이자 교주, 그 날개 달린 반룡인이 직접 나서 상황을 살펴줄 정도였다. 이안 페이지의 행방은 물론, 상아탑의 추천으로 들어온 연금술사들의 성과까지 말이다.

‘이제 정말 조만간이란 뜻이야.’

무려 그 교주란 존재가 확언을 줬다.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계속 진행하라.

정말이지, 그보다 더 든든할 수가 없었다.

전 탑주 허버트의 비호를 받던 시절보다 훨씬 믿음직스러웠다. 그만큼 떨쳐내기도 힘들겠지만, 지금은 방해꾼들부터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공주만 아니었다면 더 빨리 끝을 봤을 텐데.’

유일한 문제가 있다면 공주였다.

요즘은 황태자까지 가세해 버렸다.

둘이 밤낮으로 황제의 곁을 지켰다.

덕분에 독을 투여하기가 어려웠다.

‘성가신 연놈들.’

하지만 괜찮았다.

계속해서 천천히 죽어가는 황제.

그 질긴 명줄도 얼마 남지 않았을 터.

조만간 끝장을 볼 수 있으리라.

“하하하……!”

라그나르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렴풋한 광기가 실린 광소였다.

이제 그는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했다.

‘오늘도 확인을 해줘야겠지.’

라그나르는 매일같이 황제를 찾아갔다.

하루가 다르게 창백해져가는 얼굴.

죽어가는 모습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잎사귀 몇 장 뜯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린 거다.

‘이왕이면 내가 보는 앞에서…….’

인간의 탈마저 벗어던진 라그나르.

그가 황제의 침소로 들어섰다.

“……?”

한데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공주도, 황태자도 보이지 않았다.

노기사 덤필 모릿 역시 없었다.

오직 황제만 누워있는 침소.

‘다 어디 갔지?’

침소 앞 근위병에게 물어볼까?

그런 고민이 드는 찰나.

‘탕약……?’

탁자 위로 약병 하나가 보였다.

보온 마법이 걸려 따듯한 약병.

바로 탕약을 담은 약병이었다.

‘아직 먹이지 않은 건가?’

황태자와 공주의 부재.

덩그러니 남아있는 탕약.

다소 의심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러나 명백한 기회이기도 했다.

추가적으로 극독을 투여할 기회.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내버릴 기회.

“…….”

라그나르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소매 속 잎사귀를 만지작거렸다.

‘어떻게 하지?’

확 저질러 버릴까?

그래도 되는 건가?

조금 수상한데?

온갖 고민이 순식간에 스쳐갔다.

‘……하자.’

증거는 없다.

보는 눈도 없다.

독을 찾아낼 수단 역시 없다.

그저 탕약이 눈에 보였을 뿐이다.

하여 아비께 먹여드렸을 뿐이다.

와병 중인 아비와 따끈한 탕약.

대체 무엇이 문제겠는가?

지극히 정상이다.

그래, 정상이야.

‘어차피 다 죽어가는 몸.’

예정보다 빨리 죽는 것뿐이다.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약간의 의심은 있을 수도 있다.

해봐야 황태자와 공주의 의심이겠지.

그쯤이야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리라.

증거가 없는데, 의심은 무슨 의심?

‘이번에야말로.’

라그나르의 결심이 세워졌다.

소매 속 잎사귀들을 꺼냈다.

탕약에 그대로 집어넣었다.

사르르 녹아내리는 잎사귀.

색이나 향의 변화조차 않았다.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않는 ‘극독의 탕약’이 완성된 것이다.

“후우! 후! 후우우…….”

라그나르가 탕약을 집어 들었다.

거친 숨이 목구멍에서 쏟아졌다.

극도의 김장감마저 느껴졌다.

갑작스레 죄책감이라도 살아난 걸까?

아니, 그러한 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

“아바마마…….”

이윽고 라그나르가 황제 앞에 섰다. 반듯한 자세로 잠든 황제로부터 숨소리가 들려왔다. 심장마저 일정하게 뛰고 있었다. 눈만 뜨지 못할 뿐, 그는 아직도 건재했다.

“당신도…… 심장이 뛰긴 뛰는군요.”

신기한듯 중얼거린 라그나르.

그가 아비의 상체부터 부축했다.

탕약을 한술씩 떠먹이기 위함이었다.

“부디 저승에 가시거든…….”

라그나르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동시에 탕약 한술을 크게 떴다.

이미 5황자의 마음은 정해졌다.

조금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절대로 저를, 용서하지 마십시오.”

아비의 턱을 당겨 벌리고자 했다.

그 안으로 탕약을 털어 넣고자 했다.

단언하건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온몸이 떨려 쉽지가 않았을 뿐.

“용서받을 필요도, 그걸 바라지도 않으니까요.”

바로 그때였다.

“정녕.”

철근이 달린 것처럼 무거운 목소리.

그럼에도 깊은 애통함이 동반된 목소리.

황제의 목소리가 침소를 진득하게 울렸다.

“그러하더냐?”

죽어가고 있는 줄만 알았던 황제.

이제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던 황제.

라그나르의 아비, 테리 그린리버.

그가 충혈된 두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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