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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95화
35. 이번에야말로(1)
“해독할 수 있는 방법부터 알려주세요. 이유는 아시겠죠?”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너희 황제에 관련된 일은 내가 내린 명령이 아니다. 교단의 인간들은 5황자를 허수아비로 만들고자 청했고, 기회가 왔다기에 수단을 내어줬을 뿐이다. 그대도 일전에 얘기하지 않았던가? 교단을 계속 키우라고.)
그렇게 말해봐야 연관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인간을 드래곤 찾기의 도구로만 여겼던 에반투스에게 거기까지 바라는 것도 무의미했다. 마치 숫돌로 칼을 갈듯, 도구가 도구로서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줬을 뿐일 테니까.
‘덕분에 라그나르가 빠져나갈 길도 사라졌다. 이번에야말로 끝을 볼 수 있겠어.’
더불어 라그나르에게 씻을 수 없는 불명예가 생기기 직전이었다. 이안이 가장 원했던 복수의 형태, 이른바 ‘이름의 죽음’이 조만간 가능해질 거라는 얘기였다.
“지금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해독의 방법이나 알려 달라.
이안은 구태여 뒷말을 잇지 않았다.
(모른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도 해독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는 뜻이다.)
“이제 와서 거짓말이라도 하시는 거라면…….”
(거짓이 아니다.)
단호하게 대꾸하는 에반투스였다.
(그 꽃은 과거, 그분들이 자주 사용하셨던 약재다. 잎사귀와 줄기는 비약으로 만들어 숙면을 취하실 때 복용하셨고, 꽃잎은 햇빛에 말려 태우시곤 했지. 뿜어지는 특유의 향을 즐기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즉 잎사귀와 줄기, 꽃잎의 효과가 각각 다르다는 얘기였다. 그러고 보니 레디오의 도감에도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파란색의 잎사귀와 줄기는 치명적인 극독이며, 자주색 꽃잎은 마나를 중화시키는 효능이 있다고.
‘분명 라그나르도 잎사귀를 탕약에 넣었다.’
그 줄기와 잎사귀를 수면제로 썼단다.
무려 드래곤 일족의 수면제 말이다.
따로 해독제 따위가 필요했을까?
(믿지 못하겠다면 권속의 주문, 그 힘으로 확인해도 좋다.)
심지어 권속의 힘까지 자처하다니, 진심인 것 같긴 했다. 새삼 놀라움도 느껴졌다. 오만하고 적대적이었던 에반투스다. 이안에게 주어진 권속의 힘도 인정하지 않았다. 한데 그런 존재가 한순간 돌변해 버렸다.
(내 아이들의 명줄이 걸린 문제다. 어찌 거짓을 말하겠나?)
그리 말하며 모든 경계를 푼 에반투스.
권속의 주문으로 확인해 보라는 표시였다.
‘확실하게 해서 나쁠 건 없지.’
이안은 시간의 보고로부터 돌아온 이후, 권속의 주문을 사용하지 않았다. 페어리 퀸에게도 그랬고, 에반투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이안은 앞으로 시간의 보고에 들어갈 일이 종종 있을 거다. 그럴 때마다 권속의 힘이 풀린다면 여러모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는가? 특히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강압적으로, 혹은 아무런 동의 없이 사용할 경우 더더욱 위험해질 터.
‘원만한 관계를 맺어둘 필요가 있어.’
그러한 바, 지금은 기회였다.
아무런 강압성도, 속임수도 없이.
정당하게 권속의 주문을 펼칠 기회.
“에반투스 님의 말씀을 믿습니다만, 저도 급한지라 확인부터 좀 해보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약속만 지킨다면.)
“물론입니다.”
이윽고 권속의 주문이 발동되었다. 이안으로부터 뿜어진 황금색 마나가 에반투스를 휘감았고, 권속의 영향이 양측 모두에게 새겨졌다. 효과는 백일 전 당시와 똑같았다.
“정말 해독법을 모르십니까?”
(모른다.)
역시나 에반투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이제 남은 방법은 두 가지로 추려졌다.
‘드래곤들의 수면제라…….’
시간의 보고로 들어가 꽃을 사용했을 당사자, 드래곤에게 직접 물어보는 방법이 첫째다. 하지만 이 방법에는 문제가 있었다. 먼저 불확실하다는 것, 과연 수면제 따위에 해독제가 필요했을까?
‘그렇지는 않을 텐데.’
인간 역시 수면제는 존재한다. 길거리 연금술사들의 구멍 가게만 들어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나 그 수면제의 효과를 지워주는 비약?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다.
‘전혀 쓸모가 없으니까.’
드래곤들에게도 불필요했을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시간의 보고로 들어가는 열쇠, 그 붉은 용의 다섯 숨결을 당장 만들어내기도 어렵다. 몇 가지 희귀한 재료들을 추가로 구해야 하는 데다가, 가고일의 눈은 극소량만 남았다. 곧장 빠져나올 수 있다는 보장조차 없다. 저번처럼 보고 속에서 백 일이나 있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큰일이지.’
현 황제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
신중하고 또 신중한 편이 좋았다.
‘게다가 그 환술 속에서 들었던 경고.’
최초의 마법사로 추정되는 존재가 이안에게 남긴 말, ‘드래곤을 절대로 믿지 말라’ 그 말이 자꾸만 거슬렸다. 그래서일까? 드래곤을 만나는 일이 조금은 꺼려졌다.
“흐음.”
일단 첫 번째 방법은 보류였다.
이제 남은 건 두 번째 방법.
“그럼 혹시, 란데오르의 꽃을 채집하는 방법은 알고 계십니까?”
(그것은 어렵지 않다.)
이번에는 꽤나 쓸 만한 답변이 돌아왔다.
(인간들이 란데오르의 꽃이라 부르는 꽃, 그 꽃은 태생부터 저주를 타고난다. 뿌리 내린 자리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지. 하지만 그분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성한 불꽃, 브레스를 통해 저주를 정화시킬 수 있다.)
그 확신으로 가득한 대답에 조금 허탈함을 느낀 이안이었다. 지난 6년간 란데오르의 꽃을 채집할 수 있는 방법, 나아가 약재로 탈바꿈시킬 방법 하나 찾으려고 얼마나 고생했던가?
상아탑의 기록은 물론 황실 기록까지, 그야말로 찾아봄직한 기록들은 다 찾아봤다. 한데도 단서 한 줄 없더니만.
‘이래서였나.’
용의 불꽃으로 타고난 저주를 푼다.
아이들 이야기책에나 나올 법한 방법.
하물며 그게 정답이었으니 오죽할까?
“그 저주가 풀린 꽃이라도 구해주셨으면 합니다만.”
(어렵지 않다. 따라와라.)
힘겹게 몸을 추스린 에반투스.
그가 둥지의 한쪽 벽면으로 향했다.
‘이건 벽이 아니군.’
그곳은 벽이 아닌, 마법으로 감춰진 통로의 입구였다. 아직 에반투스를 쓰러뜨리며 사용했던 마법, ‘메타모포시스 마나’의 영향이 이안에게 남아 있었다. 마나친화적으로 변화된 상태이기에 마나의 흐름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스스스…….
과연, 에반투스가 벽면으로 손을 뻗자 그대로 통과되었다. 내부는 동굴과 같은 모습이었는데, 라이트 주문과 비슷한 빛의 구체들이 둥둥 떠다녔다.
(이 둥지는 비교적 최근에 발견한 곳이다. 그때부터 쭉 우리들의 보금자리로 사용 중이지. 어느 분께서 사용하셨던 둥지인가는 나도 알 방도가 없다만, 사용하셨던 물건이나 수집품들은 남아 있더군. 그 꽃도 마찬가지다.)
깊숙이 들어가자 곧 창고로 추정되는 원형의 공간이 나타났다. 왜 창고냐? 간단했다. 금은보화가 마치 고물처럼 나뒹굴고 있었으니까.
(꽃은 여기, 이 상자에 담겨있다.)
손때가 묻은 평범한 나무상자.
그 안으로부터 찬 기운이 뿜어졌다.
수북하게 쌓인 란데오르의 꽃도 보였다.
(필요한 만큼 가져가라. 전부 가져가도 좋다.)
이안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상자 자체를 잡았다. 전부 다 가져가겠다는 의지였다. 해독제의 연구와 조제는 전적으로 레디오와 더글라스에게 맡겨볼 생각이었다. 재료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리라.
‘실력들이 어마어마하게 늘었지.’
올해로 연금술 아카데미의 졸업반인 더글라스는 말할 것도 없었다. 실력으로만 따진다면 이미 3년 전에 졸업을 했어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레디오의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본디 천재까진 아니어도 수재 정도는 되었던 연금술사 아니겠는가? 그런 자가 6년간 모든 역량을 연금술에 집중시켰다. 지금 당장 황실 연금술사장을 맡아도 문제가 없을 실력이었다.
(내가 또 도와줄 일이 남았나?)
하루아침에 적극적으로 변한 에반투스였다.
자식들의 명줄이 달린 문제 아니겠는가?
자존심이고 뭐고, 내던진 지 오래다.
“오늘 일로 교단이 시끄러워지지 않도록, 신경을 좀 써주셨으면 합니다. 특히 5황자 라그나르가 계속 허튼 수작을 부릴 수 있게, 그렇게 만들어주십시오.”
곧 호들갑을 떨기 시작할 오번 파커.
그자의 입구멍부터 막아 달라.
이안의 말은 그러한 뜻이었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거린 에반투스,
그가 조심스레 본론을 꺼냈다.
(이제…… 그분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말해다오.)
두 눈과 표정이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방법 자체는 간단합니다.”
이안 역시 그 기대감에 응답을 해줬다.
“제가 마시고 사라졌던 비약, 기억하십니까?”
(물론 기억하고 있다.)
“그걸 마시면 됩니다.”
(……?)
생각에 잠겼던 에반투스가 말문을 이어갔다.
(그대가 나의 아버지이자 그분들의 수장, 리시스 라덴쥬님의 이름을 언급했을 때부터 예상은 했다만, 사실이었을 줄은…….)
에반투스 역시 예상은 하고 있었다. 과거 드래곤이 마셨던 액체, 자신의 브레스를 통하여 완성되는 액체. 바로 그 액체를 복용함과 동시에 사라졌었으니까.
“급한 일이 있어 당장은 어렵습니다. 대신 문제가 해결되는 대로 비약을 만들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에반투스 님께서 도와주셔야합니다. 브레스가 필요하니까요.”
이안 특유의 정중함이 깃든 어조.
에반투스 또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겠다. 기다리도록 하지.)
거래가 이안의 생각대로 마무리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해독제를 만드는 일.
하여 현 황제의 목숨을 구하는 일.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여야한다.’
라그나르가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그래야 피날레도 즐거울 테니까.
‘이번에야말로.’
복수의 마침표를 찍어낼 기회.
그 기회가 지척까지 다가왔다.
* * *
황실의 황태자 전용 도서관, 그 조용한 공간에 사락사락 책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책에 적힌 내용을 입으로 웅얼거리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버릇인 것 같았다.
‘…….’
그 주인공은 바로 황태자, 하이든 그린리버였다. 한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책에 적힌 내용만 바라봤다. 평소 그를 안다면 결코 익숙하지 않을 모습, 하나 최근까지 주변에 있었던 측근이라면 슬슬 익숙해질 법도 했다.
“전하, 식사는…….”
“나중에.”
황태자의 곁을 지키는 단장 올리버가 말했으나, 황태자는 단칼에 거절했다. 목표했던 서책들을 독파해내지 못한 까닭이었다. 타고난 사람, 예컨대 5황자 라그나르였다면 이틀 내로 독파했을 서책들. 하나 황태자 자신은 그럴 수가 없었다. 벌써 일주일이 넘도록 매달렸음에도 마찬가지였다. 한계가 느껴졌다.
“식사는 단장부터 하도록 해. 괜히 나 때문에 배곯을 필요 없으니까. 이거, 명령이야.”
“하오나…….”
“명령이라니깐.”
“……알겠습니다.”
무어라 대꾸를 하고자 했던 단장 올리버.
그가 조용히 도서관을 빠져나갔다.
“하아.”
황태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에도 책은 계속 넘겼다.
읽고, 읽고, 또 읽어댔다.
단순한 공부만은 아니었다.
일종의 위안이자, 도피였다.
‘내가 멍청하기 때문일까?’
근자에 들어 몇 달.
황태자는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이런 자괴감, 단언컨대 처음이었다.
‘내가 멍청한 탓에 모두가 떠나는 걸까?’
건강하기만 했던 아바마마께서 병석에 누워버린 것도, 평생 자신의 곁을 지켜줄 것으로만 알았던 이안이 홀연 사라져 버린 것도, 전부 자신이 못나고 멍청한 탓은 아닐까?
‘내가 달라진다면, 다시 돌아올까?’
황태자 자신이 크게 달라진다면.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돌아올까?
사경을 해매는 아바마마의 건강도.
아무런 언질 없이 사라진 이안도.
‘내가 지금보다 나아진다면…….’
황태자의 자괴감이 깊어지는 그때였다.
콰앙-!
도서관의 문짝이 부서질 듯 열렸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올리버의 짓이었다.
“단장……?”
황태자가 채 의아함을 씻어내기도 전에.
단장 올리버가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 방향은 황태자를 향하고 있었다.
“무, 무슨?”
“숙이십시오!”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었던 올리버.
그가 책상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황태자의 머리마저 넘어갔다.
채앵-!
동시에 애검 ‘문드아일’을 뽑아 휘둘렀다.
올리버의 목표는 황태자가 아니었다.
바로 그 뒤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빛.
인간 형태의 백색 빛줄기를 노렸다.
“웬 놈이냐.”
올리버가 칼자루 쥔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인간 형태의 빛줄기는 마치 지팡이처럼 생긴 기다란 빛을 들고 있었는데, 그 빛줄기로 올리버의 검을 막아낸 것이었다.
“아휴, 깜짝이야.”
“……?”
한데 빛줄기로부터 사람, 그것도 익숙한 청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검을 겨눈 올리버에게도, 당황한 나머지 뒤를 돌아봤던 황태자 하이든에게도 그리운 목소리였다.
“그대는……?”
“마나를 감지하는 경지라도 이룬 겁니까? 이건 뭐, 진짜 괴물이 아니고서야.”
올리버의 검을 툭 밀치며 말하는 빛줄기.
곧 완연한 사람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이안……?”
황태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라진 줄만 알았던 이안 페이지.
가장 기다렸던 아군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