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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93화 (9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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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93화

    34. 채찍과 당근(1)

    “뉘신데 자꾸 알짱거리쇼? 엉?”

    이안은 잠시간 고민했다.

    뭐라고 대꾸를 해야 좋을까?

    빠르게 제압하는 편이 나을까?

    ‘아니, 그보다는.’

    이내 이안의 고개가 저어졌다.

    엄한 곳에 힘 뺄 이유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편이 옳았다.

    “아, 저는…….”

    경호원은 여전히 험상궂었다.

    경계보단 깔보는 쪽에 가까웠다.

    한껏 만만해진 외모의 힘이었다.

    “오번 파커 공을 뵙고자 왔습니다.”

    “그분께서 무슨 여관방 주인인 줄 아나?”

    “교단의 일로 상의 드릴 것이 있다 전해주신다면…….”

    “교, 교단?”

    이제야 표정에 변화가 생기는 경호원.

    그들도 용의 교단을 아는 듯 보였다.

    “5황자 전하께서 보내셨습니다.”

    라그나르가 교단의 힘을 빌렸다는 것, 아직 정황만 있을 뿐 확실한 사실은 아니었다. 다만 가능성이 높았다. 란데오르의 꽃은 결코 라그나르가 스스로의 능력으로 다룰 수 있는 꽃이 아니었으니까.

    “화, 황자 전하께서?”

    그렇기에 ‘5황자’라는 수를 넌지시 던져봤다. 일단 경호원에게는 먹혀든 것 같았다. 흠칫 놀라는 꼴이 확실했다. 정말 라그나르가 연관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그저 황족이 거론되어서인지는 모르겠다만, 곧 알 수 있으리라.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깔보던 태도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이안이 빙그레 웃으며 화답했다.

    “다녀오세요.”

    평소였다면 호감을 살 법한 미소.

    하나 지금의 모습은 아니었다.

    물론 이안은 그 사실을 몰랐다.

    그저 버릇처럼 웃었을 뿐.

    “그, 그럼…….”

    흉한 미소에 당혹스러움 반, 떨떠름함 반이 섞인 표정으로 들어갔던 경호원, 그가 얼마 지나지 않아 저택을 빠져 나왔다. 누군가와 함께였다.

    “이상하군.”

    경호원의 안내에 따라 천천히 걸어 나온 중년인, 오번 파커가 중얼거렸다.

    “네놈은 누구지?”

    “말씀 올렸듯, 5황자 전하께서…….”

    “그러니까 누구냐고, 네놈이.”

    오번 파커의 얼굴에 이안을 향한 의심과 오만함이 서렸다. 에반투스 앞에서 설설 길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교단 내 상당한 입지를 가진 것 같았다.

    “5황자 전하와 관련된 일이라면, 담당자를 따로 뒀을 텐데?”

    거기까지 이야기한 오번 파커.

    그가 경호원들에게 턱짓을 보냈다.

    그러자 경호원들도 검을 뽑아 들었다.

    이안을 향한 경계의 증거였다.

    “똑바로 얘기하는 게 좋을 거다.”

    “…….”

    다소 갑작스런 위협.

    이안은 빠르게 판단했다.

    아까부터 확신하고 있었던 추측.

    그 추측들을 활용할 때가 찾아왔다.

    ‘제1 황실기사 단장, 덤필 모릿.’

    황제의 침소를 지키던 노기사 덤필.

    그자는 분명 5황자의 수작질을 봤다.

    탕약에 잎사귀를 섞는 모습 말이다.

    한데 아무런 대응도 보이지 않았다.

    추측해 볼 만한 까닭은 한 가지.

    ‘용의 교단과 한통속이겠지.’

    아마 오번 파커가 말한 5황자의 담당자.

    그 또한 황제의 호위기사, 덤필 모릿이리라.

    “지금 덤필 경께서는 중요한 업무를 처리 중에 계십니다.”

    덤필이 언급되자 눈썹을 씰룩거린 오번.

    이안은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하여, 전하께서는 오번 공의 도움으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십니다.”

    “현재의 문제?”

    “여기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이안이 경호원들을 바라봤다.

    오번 역시 그 시선을 따랐다.

    “으음…….”

    5황자가 다루고 있을 ‘현재의 문제’.

    오번도 의미하는 바는 알고 있었다.

    ‘5황자가 보낸 놈이 맞는 것 같군.’

    오번이 경호원들에게 손짓했다.

    무기를 거두라는 표시였다.

    “따라오게.”

    이안은 오번을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그 내부는 정말이지 ‘사치’의 표본이었다.

    황족의 사가가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 무엇을 논의하고자 왔지?”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안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란데오르의 꽃으로부터 뜯어온 것들.

    각각 한 장씩의 꽃잎과 잎사귀였다.

    “꽃이 더 필요합니다.”

    “뭐? 충분하지 않던가?”

    “전하께서 몇 번 실수를 하시는 바람에…….”

    “거 참, 뭐가 어렵다고 실수씩이나.”

    이안이 계속해서 승부수를 던졌다.

    오직 감과 추측에 의존한 승부수.

    그럼에도 거리낌은 없었다.

    만약 수가 통하지 않는다?

    힘으로 해결하면 그만이다.

    단지 마나를 아끼고 싶었을 뿐.

    ‘드래고니안과 만나기 전까지는.’

    아마 부딪칠 확률이 높다.

    페어리 퀸처럼 거리를 둘 터.

    오직 마법으로 제압해야만 한다.

    마나를 최대한 아끼는 이유였다.

    “지금이 기회니, 어쩌니 하면서 방법 하나만 알려달라고 난리를 치더니만. 교주께서 그만큼 챙겨드렸으면 어련히 잘해내셔야지! 실수가 뭔가? 실수가.”

    오번은 무려 5황자에게 핀잔을 줬다.

    그의 교단 내 위치가 예상이 되었다.

    더불어 가능성 또한 높아졌다.

    ‘이 정도 교단 내 위치라면.’

    분명 에반투스와도 연락이 닿겠지.

    제대로 찾아왔다 싶은 이안이었다.

    “전하께서도 죄송하단 말씀부터 꼭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교주이신 드래고니안 님께도, 그리고 교단의 어른이신 오번 파커 공께도 말이지요.”

    “죄송하다? 내게?”

    “예. 분명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하하! 그렇단 말이지? 이 오번 파커에게?”

    오번 파커가 신이 난 듯 히죽거렸다. 아무리 교단 내 서열이 높다고는 하나, 상대는 엄연한 황자다. 그런 존재가 귀족인 자신에게 먼저 죄송하다며 숙이고 들어왔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만족감과 성취감이 오번의 허파를 간지럽혔다.

    “크흠흠! 잘 알겠네. 내 특별히 5황자 전하의 급박한 심정을 헤아려, 교주께 직접 청을 올려보도록 하지. 여기서 잠깐 기다리고 있게나.”

    “감사드립니다. 오번 공.”

    기분이 좋아진 오번 파커.

    그가 저택 내 서재로 들어갔다.

    경호원을 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와중에 제법 철두철미한 성미였다.

    ‘서재 안에 있는 건가?’

    에반투스와 연락을 취할 수단이.

    이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주변에 붙은 경호원들을 모조리 제압한 뒤, 곧장 따라 들어갈 수도 있었다. 하나 지금은 아닌 것 같았다. 돌아가는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볼 필요성이 느껴졌다.

    ‘통신구일까? 아니면 포탈?’

    이안은 저들의 연락책을 가늠해 봤다.

    당장 떠올릴만한 방법은 두 가지였다.

    전 탑주 허버트가 사용했던 포탈의 서책.

    그리고 이안도 소지 중인 고성능 통신구.

    혹은 그 이상의 성능을 가진 통신구.

    ‘포탈은 아니겠지.’

    이안의 상식으로는 그랬다. 통신구야 마나 저장기를 연결해 평범한 사람들도 사용할 수 있다지만, 포탈의 아티펙트는 아니었다. 그것은 마도공학의 작품이 아니니까. 오직 마법사만이 발동시킬 수 있는 아티펙트란 얘기였다.

    ‘음?’

    한데 그 예상을 뒤집어버리는 존재가 나타났다. 바로 오번 파커의 아들이자 상아탑의 마법사이며, 한때는 이안의 보조마법사이기도 했던 ‘파본 파커’였다. 그는 저택의 2층으로부터 내려왔다. 꼴을 보아하니 호출이라도 받은 모양새였다.

    “공자님.”

    경호원 하나가 파본에게 다가갔다.

    “지금 오번 공께서 서재를 사용하시고 계십…….”

    “알아, 알아. 부르셔서 온 거야.”

    파본 파커는 귀찮다는 듯 경호원을 밀쳤다. 동시에 대기 중인 이안과 눈이 마주쳤다. 물론 이안의 얼굴이 크게 바뀐 탓에 알아볼 수는 없었다.

    “뭐야 저건?”

    이안을 향해 툭 던진 파본이 서재 안으로 들어갔다. 6년 전, 12살이었던 이안에게 오만방자한 태도로 일관했던 놈이다. 이후 이안이 고위마법사로 등극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온갖 아부를 다 떨었던 그놈이기도 하다. 그런 놈이 뭐? 뭐야 저건?

    ‘버릇은 평생 간다더니만.’

    하나 이안에게는 그 건방진 태도보다, 놈이 서재 안으로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오번 파커의 아들 파본 파커, 놈은 명백한 마법사다. 이게 무엇을 뜻하겠는가?

    ‘아티펙트를 발동시킬 수 있다.’

    이안의 생각이 거기까지 닿았을 때.

    행동에 대한 결론 역시 함께 내려졌다.

    더는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없다.

    바로 그러한 결론이 도출되었다.

    “슬립, 페더 폴.”

    이안의 나지막한 한마디와 함께 경호원들이 우후죽순 쓰러졌다. 소리가 커지지 않도록 페더 폴, 저속낙하 주문도 친절하게 걸어줬다. 그는 불필요한 희생, 그리고 마나의 소모량까지 겸사겸사 줄이고자 일부러 하급 마법만 사용했다.

    ‘한숨들 주무시고.’

    이안이 서재 쪽으로 다가갔다.

    문 앞에 멈춰서 귀부터 기울였다.

    마나로 하여금 청각까지 강화시켰다.

    서재 안의 소리를 듣기 위함이었다.

    “파본. 어서 그 포탈을 열어다오.”

    “바깥에 저놈은 누구죠? 처음 보는 얼굴인데.”

    “황궁에서 나온 자다. 5황자가 보냈다고 하더구나.”

    역시 이안의 예상대로였다.

    저들의 연락책은 포탈의 아티펙트.

    물론 파본이 포탈을 만들 리는 없을 터.

    에반투스에게 아티펙트라도 받았으리라.

    “그럼 열겠습니다. 아버지.”

    “오냐, 부탁하마.”

    잠시 후, 서재 안에 포탈이 생성되었다.

    탑주 허버트가 사용하던 것과 비슷했다.

    아니, 똑같다고 표현해도 문제될 게 없었다.

    검푸른 타원형의 포탈, 그것이 나타났으니까.

    “용의 자손이시여.”

    오번 파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포탈 너머를 향한 목소리였다.

    “미천한 종, 오번 파커가 뵙기를 청하나이다.”

    (말하라. 무슨 일인가?)

    “예. 다름이 아니오라, 용의 자손께서 친히 그린리버의 황제로 선택하신 5황자, 라그나르 그린리버로부터 요청이…….”

    이안의 입 꼬리가 씩 올라갔다.

    일사천리란 말이 딱 들어맞았다.

    오번 파커를 찾아온 것은 정답이었다.

    숨어버린 에반투스를 끄집어낼 정답 말이다.

    콰앙-!

    잠겼던 서재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거의 부서질 지경까지 이르렀다.

    마법의 효과였으니 당연했다.

    “이, 이봐! 지금 무슨 짓을……!”

    오번 파커가 급히 이안을 막아섰다.

    무려 교주와 독대를 나누는 자리.

    하급 교단원이 낄 자리가 아니었다.

    “네놈 따위가 영접할 분이…….”

    “비켜.”

    서재 안으로 들어온 이안.

    그가 오번 파커를 치웠다.

    파본 파커도 마찬가지였다.

    간단한 마법이면 충분했다.

    (……!)

    이안이 포탈을 노려봤다.

    동시에 사라지기 시작한 포탈.

    하나 이안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사실 움직임이랄 것도 없었다.

    “블링크.”

    이안은 아주 단거리의 공간이동 마법, ‘블링크’ 주문과 함께 포탈의 내부로 진입했다. 역시 그 건너편에는 에반투스가 있었다. 수명이 백년 남짓 남았다는 자식들도 함께였다.

    (네놈은……?)

    검푸른 포탈을 건너 도착한 공간.

    그곳은 그야말로 색다른 공간이었다.

    구름이 가까울 정도로 높은 고지.

    전체적으로 움푹 파여버린 형태.

    아주 푹신하고도 고운 흙바닥.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둥지.’

    그렇다. 새의 둥지를 연상케 만들었다.

    아마 무지막지하게 큰 새의 둥지겠지.

    그러한 생물이라면 이안도 안다.

    얼마 전에 직접 만나기도 했다.

    비록 정신체에 불과했다만.

    큰 새도 아니지만.

    아, 날개는 달렸다.

    ‘드래곤.’

    용의 둥지.

    드레곤 레어.

    페어리들의 보금자리도 분명 드래곤 레어를 물려받았다고 들었다. 하면 이 드래고니안들 역시 비슷한 장소를 찾아 일종의 보금자리로 삼지 않았을까?

    ‘물어보면 알겠지.’

    일련의 생각을 갈무리시킨 이안.

    그가 세 명의 드래고니안에게 웃어줬다.

    “백 일 만에 뵙네요.”

    또한 나지막한 어조로 인삿말을 건넸다.

    “에반투스 님, 그리고 자손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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