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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90화 (9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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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90화

33. 수습, 그 이상(2)

새하얀 빛줄기로부터 형성된 존재. 그린리버 제국의 상아탑주, 이안 페이지는 불쾌함을 느꼈다. 콜드우드의 황태자 헥토르 콜드우드가 내뱉은 말들, 그 연설이 문제였다.

“빼앗고, 겁간하고, 죽이라니.”

듣자마자 가족들이 떠올랐다. 크고 작은 인연으로 맺어진 몇몇 사람들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그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저 연설의 대상이야말로 그들이 아니겠는가?

“수준하고는.”

이안이 혀를 차며 말했다.

저번 생에도 저렇더니만.

이번 생 또한 마찬가지였다.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콜드우드 제국의 황태자.

헥토르 콜드우드란 놈이.

“네놈은……?”

헥토르가 이안을 알아봤다. 동부 대초원 토벌에 관한 삼국 협정, 바로 그 협상의 자리에서 두 차례 만나봤으니까. 어찌 잊겠는가? 소문이 자자한 마법 천재의 얼굴을.

“네가 어떻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황태자 헥토르 콜드우드는 물론, 일대에 모여 병영을 이룬 병사와 기사, 마법사들까지 모두가 그랬다.

‘죽거나, 중태에 빠진 것이 아니었나?’

분명 그렇게 조사되었다. 그것이 콜드워커를 포함한 수많은 정보망으로 하여금 완성시킨, 가장 확신할 수 있는 첩보 활동의 결과였다.

‘분명히…….’

분명 놈은, 마법사 이안 페이지는 사라졌었다. 반 년 전, 폐관 수련을 한답시고 행방이 희미해졌던 3개월, 이후 코빼기조차 볼 수 없었던 나머지 3개월까지 종합 6개월 간.

‘수련 중 마법 사고로 죽었거나.’

혹은 문제가 생긴 지는 오래고, 그 사실을 엄폐하고자 휴가로 처리한 것이라든지. 실로 다양한 추측이 거론되었으며, 끝내 확신할 수 있었다. 이안 페이지가 세상에서 지워졌음을.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고?’

헥토르 콜드우드가 이를 뿌득 물었다.

낭패였다. 당혹감이 물밀듯 밀려왔다.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르는 기회였다.

아니, 명백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보다 신중하게, 신속하게, 정확하게.

분명 그렇게 준비했던 전쟁이거늘.

‘썩은 사다리였나.’

썩은 밧줄로 꼬아진 사다리.

그 조악한 사다리를 잡은 걸까?

헥토르의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

하지만 그 흔들림도 잠시.

곧 안정감을 되찾는 헥토르였다.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아주 튼튼한 사다리가.

‘어떻게 나타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놈은 혼자다.’

필시 마법을 통한 눈속임이었을 터.

겁먹을 필요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

‘죽인다. 큰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안다. 놈이 6클래스 마법사란 사실을.

그러나 이곳은 적진 중에도 적진이다.

5클래스의 마탑주를 포함한 마법사들.

마나를 다루는 기사에 병사들까지.

‘아무리 6클래스라도 이들을 전부 당해낼 순…….’

“없다고 생각하겠지. 아마도.”

헥토르의 생각을 방해하는 목소리.

이안 페이지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잘못된 생각은 아니야.”

이안은 순순히 인정했다.

마탑주에 마법사, 기사와 병사들.

이들로부터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이안이라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헥토르 콜드우드는 알고 있을까?

“다만.”

눈앞의 적국 상아탑주, 이안 페이지가 6클래스를 뛰어넘었단 사실을, 클래스란 높으면 높을수록 단계간의 차이가 극명해진다는 사실을, 심지어 그 격차는 이안의 경험과 응용력이 더해지는 순간 더더욱 벌어진다는 사실을.

“정보가 늦었을 뿐.”

가볍게 중얼거린 이안.

그가 주문을 발동시켰다.

이제는 남색에 가까워진 마나.

그 진득한 마나가 사방으로 방출되었다.

“아크 페럴라이즈.”

결코 평범한 페럴라이즈가 아니었다.

이안만의 정수가 담긴 ‘군중제어 마법’.

그 주문의 영향력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널따란 군영 전체를 순식간에 뒤덮었다.

“뭐, 뭐야?”

두 눈을 껌뻑거리는 병사들.

마법이 펼쳐진 것 같긴 했다.

한데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

아니, 그것은 착각이었다.

이변은 벌써 일어났다.

단지 조용했을 뿐.

“모, 몸이……!”

자각이 가능해졌을 때에는 이미 누구도 움직일 수 없었다. 마나 하트가 없는 병사들은 몸뚱이가 돌처럼 굳어버렸고, 마나 하트를 가진 기사들은 미약하게나마 꿈틀거릴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이 가능한 전부였다.

“스펠.”

이안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직 마법사들이 남았으니까.

“디소더.”

스펠 디소더.

마법의 두뇌나 마찬가지인 ‘마나 브레인’을 먹통으로 만드는 마법, 그 악령과도 같은 마나의 안개가 마법사들의 코와 입, 귀로 스며들어갔다. 효과 역시 빠르게 나타났다.

“크윽……!”

“무, 무슨 짓을……?”

이안이 나타난지 몇 초나 지났을까?

움직이지 못하는 기사와 병사들.

마법이 불가능해진 마법사들까지.

누구 하나 멀쩡한 자가 없었다.

일차적으로 집결시켰던 정예군.

그들이 순식간에 제압된 거다.

단 하나의 마법사로 하여금.

“흐음.”

그럼에도 이안은 부족함을 느꼈다.

본디 ‘경고’란 강렬해야 하는 법.

“안 되겠다.”

그가 오른쪽 발을 들어올렸다.

마나 또한 그곳으로 집중되었다.

“강도 좀 올리자.”

마나가 잔뜩 실린 오른쪽 발.

그 발이 바닥을 내리찍음과 동시에.

“그래비티 필드.”

병사들의 몸이 짓눌리기 시작했다.

기사와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한층 더 강렬해진 ‘중력’의 세기.

바로 ‘그래비티 필드’의 힘이었다.

“크, 크허억!”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이안에게 제압당한 모두의 무릎이 꿇어졌다. 차라리 다행이기도 했다. 꿇어지지 않았다면 하반신과 척추가 박살 나버릴 것 같았으니까.

“하…….”

실로 믿을 수 없는 광경 속에서.

오직 헥토르만이 멀쩡히 서 있었다.

그가 특별해서는 절대로 아니었다.

이안의 마법이 그를 피해갔을 뿐.

“하하…….”

그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가득했다.

헛웃음마저 비집고 튀어나왔다.

응당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얘기 좀 나눠볼까?”

이안은 평소처럼 정중하지 않았다.

“헥토르 콜드우드.”

이안의 발언에 검부터 뽑아드는 헥토르 콜드우드. 그는 황족이면서도 마나 하트를 타고난 기사였다. 재능도 상당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6년 전의 올리버와 비슷한 수준이리라.

“이, 이놈……!”

고강하다는 검술이 다 무슨 소용일까?

손에 쥔 칼자루조차 덜덜 떨리는 판국에.

“준비가 덜됐네.”

한데도 영 못마땅한 이안.

그가 헥토르에게 다가갔다.

탱그랑!

간단한 마법으로 칼을 치워 버렸다.

그러고는 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재미난 구경, 시켜줄까?”

“무슨…….”

“텔레포트.”

뭐? 텔레포트라고? 헥토르는 분명 그렇게 묻고 싶었다. 하나 말문을 채 이어갈 순 없었다. 이미 정체불명의 새하얀 빛으로부터 공간과 단절되기 시작했으니까.

화아악!

이윽고 모든 빛줄기가 사라졌다.

동시에 주변의 풍경이 비춰졌다.

이안의 눈에도, 헥토르의 눈에도.

“여, 여기는…….”

주변은 더 이상 군영이 아니었다.

국경의 앰버 영지 역시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주 익숙한 장소였다.

“침소……?”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이곳은 명백한 콜드우드 제국의 황궁, 그 중에서도 자신이 기거하는 황태자궁의 침소였으니까.

“이게 도대체가…….”

“다음.”

이안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다시금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콜드우드 황궁의 대전부터 집무실.

협정이 있었던 자유도시 데미데라.

모그리안 영지부터 피에릭 영지.

심지어 동부 대초원 한복판까지.

그 여정의 마지막은 앰버 영지.

본래 있었던 정예군 군영이었다.

“헉! 허억! 허어억……!”

헥토르 콜드우드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지식과 판단력을 바삐 굴렸다. 방금까지 겪었던 모든 상황들, 도대체 그 정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설마…….’

어렵지 않게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가능성이 높은 가설이기도 했다.

‘테, 텔레포트?’

공간이동 마법, 텔레포트.

이미 널리 알려진 이름이었다.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 볼 법한 마법.

편리함과 실용성이 극에 달한 주문.

그것이 바로 텔레포트 아니겠는가?

‘그럴 리가.’

실로 수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마법.

연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되었다.

따라오는 결과가 성공적이지 못했을 뿐.

실현 가능한 마법사가 없었으니까.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것이 만국공통 과제였다.

‘그걸…… 저놈이?’

생각이 거기까지 닿았을 때, 헥토르는 이안이 자신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일종의 경고를, 그 섬뜩한 협박을 자각할 수 있었다.

‘나 정도는 언제든 죽일 수 있다.’

비단 헥토르뿐만이 아니다.

그 누가 되었든 마찬가지다.

놈, 이안이 마음만 먹는다면.

놈, 이안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결코 피할 수가 없다는 거다.

‘막아낼 방법은…….’

헥토르는 아주 영민했다.

지극히 현실적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없다.’

이미 콜드우드 제국의 황궁에는 ‘마나 감옥’과 동일한 원리의 ‘마법 차단 장치’들이 요소요소 깔려 있었다. 한데도 황궁을 제집 드나들듯 돌아다녔다. 통하지 않았단 증거였다.

“이해가 됐겠지. 머리는 좋으니까.”

아까부터 헥토르의 생각을 정확하게 꼬집어내는 이안이었다. 참으로 시기적절하게 자신이 할 말을 이어갔다.

“긴말하지 않겠다. 돌아가.”

이안이 마나를 형성화시키기 시작했다.

마치 모래시계와도 같은 형상이었다.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커다랄 뿐.

“딱 하루.”

모래시계처럼 생긴 마나의 시계가 거꾸로 뒤집혔다. 모래를 대신하여 마나가 조금씩 흘러내렸다. 딱 하루치였다.

“만약 내일까지 국경 근처에 어슬렁거리고 있다면, 그때부터는 우리…… 아니, 나도 전쟁을 준비하도록 하지.”

잠시 말문을 멈췄던 이안.

그가 건조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한 서너 명 정도만 죽이면 끝나지 않겠어?”

그중 하나는 바로 헥토르 자신일 터.

그야말로 위협적인 한마디였다.

단순한 협박 따위가 아니었다.

이미 이안은 증명했으니까.

전쟁을 멈춰버릴 수단.

공간이동 마법을.

“조용히 돌아가서, 쥐죽은 듯 살아.”

이안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유지는 시켜줄 테니까. 콜드우드 왕조.”

왕조만큼은 유지시켜 주겠다.

오만하고 또 오만한 발언.

하나 자격을 갖춘 발언이었다.

지금의 이안에게는 충분했다.

“그 황태자라는 자리, 형이며 아우까지 닥치는 대로 죽여가면서 거머쥔 자리인데, 지켜야지.”

이안의 목소리는 더 없이 건조했다.

살기는커녕 비릿한 조롱조차 없었다.

“그치?”

장난스럽기까지 한 이안의 물음.

한데도 헥토르는 안심할 수 없었다.

놈에게 포식자의 냄새가 풍겼으니까.

아니, 단순한 포식자를 넘어서.

‘재앙.’

그래, 재앙이다.

놈은 재앙이 분명하다.

저 갈색 머리칼의 청년.

그린리버 제국의 대마법사.

이안 페이지란 이름의 ‘괴물’은.

“대답해.”

재차 돌아오는 이안의 물음.

헥토르가 잠시간 망설였다.

많은 이들이 보는 앞이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알겠다.”

일단은 살아야지 않겠는가?

체면은 잠깐의 문제였다.

하나 목숨은 당장의 문제.

“좋아.”

만족한 듯 끄덕거린 이안.

그가 검지와 엄지를 튕겼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허억! 헉!”

마법사와 기사, 병사들에게 걸렸던 ‘아크 페럴라이즈,’ 그리고 ‘그래비티 필드’의 영향력이 사라져 버렸다. 한데도 이안을 향해 달려드는 자가 없었다. 공격은커녕 눈치만 살피기 바빴으니까. 후유증이라도 남은 걸까, 아니면 겁에 질려 버린 탓일까?

“그쪽 마법사 분들은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넉넉하게 한 시간 정도 기다리면 정상적으로 돌아올 테니, 걱정 마십시오.”

헥토르 콜드우드한테는 하대로 일관하더니, 정작 그 수하 마법사들에겐 정중함을 되찾는 이안이었다. 애당초 타고난 혈통과 권위는 이안의 고려 대상이 못된다. 누가 주체적으로 귀찮은 일을 꾸미고 있는가, 오직 그것만이 중요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모래시계 형상의 마나시계.

이안이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시간은 내일, 이 시간까지.”

이윽고 새하얀 빛이 쏟아졌다.

텔레포트의 시각적 효과였다.

“부디 현명한 판단 내려주시길.”

경고는 충분하게 전해졌을 터.

이제 돌아갈 시간이었다.

“전하.”

* * *

“휴우.”

그린리버 제국의 상아탑.

탑주의 방으로 돌아온 이안.

그가 한숨 돌리며 의자에 앉았다.

“아슬아슬했네.”

헥토르 콜드우드와 그 정예군 앞에서야 태연했다지만, 이안은 생각보다 상당한 마나를 소모시킨 상태였다. 애당초 대규모 군중 제어 마법의 유지란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수차례 반복된 텔레포트야말로 마나를 잡아먹는 주범과도 같았다.

‘회귀자라는 게 도움이 되는군.’

직접 두 발로 밟아본 곳만 갈 수 있다, 그것이 텔레포트의 한계였다. 하나 이안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미 저번 생의 통일 전쟁과 여행으로 어지간한 장소는 조건을 충족시켜 놨으니까.

‘효과는 충분하겠지.’

실로 완벽한 협박이 되었을 터.

아마 잠조차 제대로 못 잘 거다.

헥토르 콜드우드, 그놈 말이다.

어찌 잠자리가 편하겠는가?

‘그놈이 자초한 일이니까.’

불면증에 시달리다 변을 당한다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애당초 전쟁을 준비하고자 했던 놈의 잘못이니까. 이안은 그저 완벽한 경고장을 쥐어줬을 뿐.

‘어느 정도 수습은 된 것 같고.’

이제 두 번째 문제가 남았다.

현 황제의 급작스런 건강 악화.

그리고 그 배후의 움직임까지.

‘그럼 이제…….’

커다란 책상에 턱을 괸 이안.

그가 고민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디서부터 손을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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