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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86화 (86/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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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86화

31. 붉은 용의 다섯 숨결(2)

(뭐, 뭐야?)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페어리 퀸이었다. 이안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커다란 불꽃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는 얘기다. 대체 어떻게? 어디로? 왜? 그녀가 당혹스러운 눈으로 용아병 스파르토이를, 드래고니안 에반투스를 바라봤다. 하지만.

(인간…… 갑자기…… 사라졌다.)

스파르토이 또한 페어리 퀸과 마찬가지로 당황한 눈치였다. 그러고는 에반투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안이 마신 그 엘릭서라는 액체, 분명 아는 액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 나도 그 액체의 효능까지는 모른다!)

다른 권속들의 눈빛에 급히 해명하고 나서는 드래고니안 에반투스였다. 그는 액체를 직접 마셔본 적도 없거니와, 마시는 드래곤들의 모습을 목격한 적도 없었다. 단지 그분들의 요청에 따라 브레스만 뿜어줬을 뿐. 이번에도 똑같았다.

(무슨……. 혹시 그분들한테만 허용되는 액체인가? 주제파악 못 한 인간이 마셔서 부작용이라도 일어난 상황이고?)

페어리 퀸이 제법 그럴싸한 가설을 세웠다.

인간의 몸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음료.

그것을 이안이 마셔 버린 거다.

(그 부작용은…… 사라지는…… 것인가?)

(감당하지 못하고 소멸해 버렸을 수도 있지.)

섬뜩한 말을 건조하게 내뱉는 페어리 퀸이었다. 정말 소멸된 것이라면, 방금 그 불꽃과 함께 죽어버렸다는 소리일 터. 다른 누구도 아닌, 이안 페이지가.

(일리가…… 있는 얘기…… 같군.)

(그리 쉽게 죽어버릴 인간은 아닐 줄 알았는데.)

(그분들의 힘…… 앞에서 인간…… 은 무력하다.)

(뼈다귀야. 누가 그걸 몰라?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아주 오래 전부터 천적이었음이 분명한 페어리 퀸과 스파르토이, 두 권속의 말싸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드래고니안 에반투스의 눈빛이 번뜩거렸다.

(……!)

비단 에반투스뿐만이 아니었다. 페어리 퀸과 스파르토이 역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씨름을 멈췄다. 몸속에 내제된 특수한 기운의 이변을,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 특수한 기운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으니까.

(권속의 힘이…….)

페어리 퀸이 중얼거렸다.

이안으로부터 연결된 힘.

본디 그분들, 드래곤의 권능.

권속의 힘이란 기운이.

(사라졌어?)

비단 페어리 퀸만이 아니었다. 용아병 스파르토이도, 불과 몇 시간 전에 권속의 힘으로 굴복 당했던 드래고니안 에반투스까지. 세 권속들의 육신과 정신으로부터 사라졌다. 이안 페이지를 향한 복종, 그 절대적인 영향력이.

(정말…… 죽어버리기라도 했다는 거야?)

페어리 퀸이 당혹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지금으로선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불꽃과 함께 흔적도 없이 소멸해 버렸다.

그 절대적인 영향력마저 사라졌다.

(이렇게…… 갑자기?)

단언컨대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다. 인간의 몸으로 엄청난 경지를 이루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이루어나갈 가능성이 무궁무진했던 놈이었다. 뿐이랴? 용언을 읽고 용언의 마법까지 부릴 수 있다. 마치 그분들에게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권속의 힘까지 얻어냈다. 그 행보가 결코 심상치 않았다. 흥미로웠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럴 리가…….)

허망함을 느끼는 페어리 퀸, 에스펠이었다.

* * *

사방이 칠흑처럼 어두웠다.

한 치 앞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단순한 밤은 아닌 것 같았다.

빛이 한줌도 존재하지 않을 뿐.

마법으로 차단해 버린 모양새였다.

모든 빛을, 그와 흡사한 모든 기운을.

‘또 환술인가?’

이안은 몇 달 전의 일이 떠올랐다.

포탈 아티펙트로부터 걸렸던 환술.

자신과 똑같은 머리칼을 가진 마법사.

하나 그때와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지금은 오감이 모두 정상적이었다.

일말의 위화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어둠만 걷어낸다면 완벽하겠지.

‘라이트.’

자그마한 빛의 구체가 생성되었다.

하나 어둠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라이트의 빛이 삼켜질 정도였으니까.

‘라이트.’

이안이 라이트 주문을 강화시켰다.

이제야 주변 일대가 조금씩 비춰졌다.

그리고.

“……?”

어지간해서는 놀라는 법이 없다.

그게 두 번의 삶을 사는 이안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불빛에 비춰진 커다란 무언가.

그 정체는 바로.

‘눈?’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드래고니안, 그들과 같았다.

인간이 아님을 말하는 붉은 안구.

파충류처럼 세로로 갈라진 동공.

눈 하나가 이안만큼 거대했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점은.

‘지켜보고 있다. 나를.’

그 거대한 눈이 이안을 바라봤다.

아니, 노려보고 있었다.

‘설마…….’

(누군가.)

순간 경직되어 버린 이안의 오감.

권속들과 똑같은 대화 방식이었다.

귀가 아닌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인간의 언어로 들려오는 목소리.

단지, 그 위압감부터 달랐다.

8클래스까지 올라섰던 대마법사.

그 이안조차 꼼짝을 못할 정도로.

목소리만 들었음에도 말이다.

(나의 본신은 아닌 것 같고.)

“…….”

(영락없는 미물인데.)

무지막지한 위압감

그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자존감.

이안은 단언컨대 처음 느껴봤다.

‘드래곤……?’

사방이 어두운 탓에 모든 몸뚱이가 보이지는 않았다. 오직 눈과 눈 주변의 붉은 가죽만 보일 뿐, 그럼에도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거대한 존재인지, 얼마나 위압적인 존재인지.

(대답해라. 기억의 보고에 들어온 자여.)

드래곤으로 추정되는 존재가 계속해서 이안에게 답변을 요구했다. 아무래도 이안의 정체에 관한 대답을 원하는 것 같았다.

“당신은…… 드래곤입니까?”

이안이 위압감을 억누르며 대답하자.

(그렇다.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그들은 아니다.)

곧장 대답이 돌아왔다.

의도를 알 수 없는 대답이었다.

이안은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했다.

“저는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그런가.)

“당신을 방해할 생각도, 무언가를 바라고 여기까지 온 것도 아닙니다. 저는 단지 드래고니안의 브레스를 이용해 완성시킨 엘릭서, 그것을 마셨을 뿐입니다.”

(그렇군.)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당장 이안을 해칠 것 같지는 않았다.

목소리의 감정만 읽어본다면 그랬다.

(하면.)

바로 그 순간부터였다.

사방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마법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움직였을 뿐이다.

드래곤의 몸뚱아리가.

(돌아가라.)

“……!”

그 어떤 마법도, 브레스도 아니었다.

드래곤의 손바닥이 이안을 내려쳤다.

앞발이라 해야 할지, 손이라고 해야 할지.

무엇이 되었든 간에 무지막지했다.

무지막지하게 빠르고, 컸다.

콰아앙!

평범한 생물이었다면 진즉에 육고기로 다져졌을 충격, 하나 이안은 마법을 부릴 줄 아는 생물이 아니겠는가? 강력한 마나의 배리어가 이안의 육신을 지켜줬다. 물론, 그 손바닥 내리치기 한방으로 너덜너덜해졌다.

상아탑의 모든 마법사가 공격하더라도 흠집조차 낼 수 없는, 6클래스 마법사의 배리어가.

‘크윽……!’

비정상적으로 압도적인 파괴력.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니다.

용언 마법도, 드래곤 브레스도.

그저 손바닥 내리침에 불과하다.

‘이것이…… 드래곤?’

어느 때보다도 생명의 위협이 느껴졌다.

이런 존재를 상대한다? 지금의 상태로?

아니, 전생의 경지라 한들 마찬가지다.

승산? 없다.

죽는다.

반드시.

‘멈춰야 해. 어떻게든.’

상황 파악은 나중의 문제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하나.

드래곤의 공격을 중지시킬 방법.

그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잔재주를 익혔군.)

여전히 무미건조한 목소리.

물론 멈추는 법은 없었다.

이번에는 꼬리였다.

(돌아가라.)

그 육중한 꼬리가 휘둘러졌다.

목표점은 명백히 이안이었다.

배리어로는 힘들 것 같았다.

저 꼬리를 막아내는 것이.

‘이건 피할 수도 없다.’

블링크 주문은 거리가 부족하다.

허공으로 피하기에는 시간이 없다.

‘아이스 블록?’

완전무결한 얼음의 방어막.

하나 이안은 그마저도 보류했다.

과연 막아낼 수 있을까?

아이스 블록 따위로?

드래곤의 공격을?

‘아니야.’

가망이 없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1초도 되지 않는 시간 내로.

‘저 괴물이 정말 드래곤이라면.’

비록 마나가 거덜나 버리겠지만.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상대다.

‘용언 마법.’

드래고니안에게는 포기했던 용언.

이후 무방비 상태에 빠져 버릴 용언.

그 위험한 수단을 선택할 차례였다.

드래곤이라면, 분명 반응할 테니까.

인간이 선보이는 용언 마법에.

(드라코쉬.)

페어리 퀸 앞에서 선보였던 마법과 또 다른 계열의 용언 마법, 그때 펼쳤던 것이 붉은 용의 불꽃을 일으키는 공격 마법이었다면, 이번에는 방어에 치중된 용언 마법이었다. 모든 마나를 소진해버릴 테지만, 적어도 지척까지 다가온 꼬리만큼은 버텨낼 수 있으리라.

(젠타르.)

드라코쉬, 젠타르.

드래곤, 비늘.

이안의 용언이 울려 퍼졌다.

생각보다 간단한 용언이었다.

하나 그 효과는 엄청났다.

“크으으……!”

이안의 피부가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온통 뒤덮이기 시작했다.

붉은 빛깔의 비늘로 하여금.

눈앞에 저 커다란 드래곤.

놈의 비늘과 똑같은 형태였다.

쿠웅!

설령 마법으로 강화된 강철이었다 해도 무사하지 못할 충격, 한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드래곤의 꼬리가 조금 이상했다. 마치 기둥 같은 장애물에 가로막히기라도 한 듯, 활처럼 휘어진 채로 멈춰져 있었다.

(……?)

그 장애물은 바로 붉은 ‘용의 비늘’이 온몸에 돋아난 이안이었다. 물론 그 비늘은 오래 붙어 있지 않았다. 이안의 마나가 조금도 남지 않는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으니까. 그야말로 마법 그 자체였다.

(그것은……?)

하나 드래곤으로 추정되는 괴물은 이안이 꼬리를 멈춰낸 것에 놀라지 않았다. 단지 용언 마법을 사용했다는 점, 그 점 하나만으로 놀란 듯 보였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용언 마법을 사용한 이상 꼬리 따위,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을 터.

“후, 후우…… 후우!”

이안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반응을 보자니 먹혀든 것 같았다.

비록 모든 마나를 소모해 버렸지만.

(기억의 보고에 들어온 자여.)

이윽고 드래곤으로 추정되는 괴물이 꼬리를 거두었다. 더는 적대적인 반응을 취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 육중한 몸을 들어 이안에게 다가왔다. 다가올 때마다 쿵쿵 울려대는 대지, 그러면 그럴수록 주변의 어둠도 함께 물러갔다. 이제야 그 모습이 보였다.

(다시 한 번 묻겠다.)

도마뱀을 닮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포악한 얼굴, 용암이라도 담긴 듯 피어오르는 콧김, 머리 위로 달린 세 개의 거대한 뿔, 이빨, 몸집, 날개, 꼬리, 전체적으로 붉은 가죽과 비늘, 살아 움직이듯 꿈틀대는 회색의 수염.

(그대는.)

괴물의 모습은 그랬다.

많은 인간들이 떠올리는 모습.

드래곤이라는 존재의 대중적인 모습.

그 상상 속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럼에도 차이가 있다면.

(누구인가.)

말이나 글, 그림으로 보고 듣는 것보다 수백 배, 수천 배, 아니 수만 배의 위압감을 내뿜는 존재, 더불어 8클래스의 경지에 올랐던 이안조차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라는 사실, 그것들이 유일한 차이라면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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