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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85화 (8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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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85화

31. 붉은 용의 다섯 숨결(1)

“공주 마마. 어딜 다녀오셨습니까?”

“그냥, 볼일 좀 보고 왔지.”

공주궁으로 돌아온 공주 하이리.

그녀에게 전담 하녀들이 물었다.

“너무 늦으셔서 얼마나 놀랐는데요!”

“걱정이 아니라 놀라기만?”

“걱정이야…… 조금?”

이전까지도 종종 황궁 사람들 몰래 도시 구경을 하곤 했던 그녀였지만, 오늘처럼 늦게 돌아온 경우는 처음이었다. 물론 걱정까지 하진 않았다. 지금 곁에 있는 하녀들은 모두 오래된 친구나 다름없는 아이들, 공주가 마법사란 사실 또한 알고 있었으니까.

“세나, 아리아, 캐서린.”

“네?”

갑작스런 공주의 호명에 놀란 듯 대답하는 하녀들이었다. 평소에도 하녀들의 이름을 자주 부르는 공주였지만, 이번만큼은 목소리로부터 무거움이 느껴졌다.

“미안해.”

“무,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전부 다.”

뜬금없는 사과까지.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길 걸까?

하녀들이 눈에 걱정이 차올랐다.

“아니, 그렇게 볼 건 없어. 너희들한테 사과하고 싶었거든. 예전부터 항상, 나 때문에 휘말렸잖아? 상아탑 눈치나 봐야 하고.”

철없는 판단으로 마법사임을 숨기기 시작한 이래, 공주는 단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자신의 안위에 대한 걱정 탓이 아니었다. 바로 지금, 주변의 하녀들과 같은 측근들의 안위가 문제였다. 오늘 이안의 부탁을 수행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미안해. 모두들. 정말로.”

얼마 전, 불쑥 자신을 찾아온 이안에 얼마나 놀랐던지. 심지어 도와달란다. 이 황궁에 공주는 필요가 없으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라, 매몰차면서도 홀가분한 조언을 해줬던 그가 도움을 요청했다. 따지자면 거래였다. 상응하는 부탁도 들어준단 조건이었으니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다시 한 번 부탁해 볼까도 했지만…….’

이왕 기회가 온 김에 다시 한 번 부탁해 보고자 했다. 자신이 마법사임을 숨겨준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죄라도 덮어달라고.

하나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흑마법 검사 당시 이안이 보여줬던 완강함, 그 신념을 깨트리기가 조심스러웠다. 하여 스승이 되어달라는 부탁을 했다.

‘공범으로 만들면, 조금은 더 안전해질 테니까.’

이안을 스승으로 만들어 불법적인 마법 교육의 공범으로 만들어 버린다, 공주가 택한 안전장치는 그것이었다. 물론 이안에게 마법을 배우고 싶은 마음도 컸다.

보다 강력한 마법사가 되고자 하는, 하여 지금보다 높은 지위에 오르고자 하는 목적이 생겨버렸으니까. 물론 그 까닭은 일신의 명예 따위가 아니었다.

‘내가 저지른 일에.’

이안의 충고를 받았던 그날 이후, 많은 고민에 밤잠까지 설쳤던 하이리였다. 정말 세상 밖으로 나가볼까? 아님 다 잊은 채 공주로서의 행복을 누리며 살까? 아니, 그녀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책임을 져야 해. 어떻게든.’

이안이 눈을 감아준다 한들 평생토록 숨길 수 있을까? 들킬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뿐인가? 들키는 순간 다치는 건 본인이 아니다. 자신의 비밀을 지켜줬던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겠지.

‘혹시라도, 내가 고위마법사의 경지에 오른다면. 만에 하나 그 이상까지 오르게 된다면…….’

자력으로도 가능하지 않을까? 철없는 공주의 부탁을 들어줬던 사람들, 죄가 있다면 황족의 말을 거역하지 못한 죄밖에 없는 그들을 무죄로 만들어주는 것이.

‘한 단계만 더 올라가면 돼. 한 단계만.’

이안의 제자가 되는 것을 선택한 이유.

계속 마법사의 길을 걷기로 한 이유.

책임을 지고자 다짐한 까닭이었다.

자신을 도와준, 죄 없는 사람들을.

“에이, 뭐가 미안하세요?”

“……응?”

사과를 들은 하녀들이 말했다.

별거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그 비밀을 분담한 덕에 마마께서 아껴주시고, 챙겨주시잖아요? 마마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저흰 그래서 엄청 편해졌어요. 공주 마마 파벌이라고도 불려요. 저희가.”

“파, 파벌?”

공주 마마 파벌이라니.

하이리로서는 듣도 보도 못했다.

딱히 파벌을 이룬 적은 없었으니까.

“네. 모르셨죠? 저희가 이래보여도…….”

“공주궁의 실세랍니다.”

“시녀장님도 함부로 못해요.”

세 하녀들의 딱딱 맞는 화답에.

“시, 실세라니…….”

전혀 몰랐던 공주가 중얼거렸다. 위험한 비밀을 짊어진 그녀들은 나름대로, 일종의 보상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 무게에 비할 바 있겠냐만, 저리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움이 느껴지는 공주, 하이리 그린리버였다.

“참, 공주 마마. 이것 좀 보세요.”

하녀 캐서린이 고급스러운 함을 하나 가져왔다.

겉보기로도 화려한 장식과 문양으로 가득했다.

딸칵!

그 안은 더더욱 가관이었다.

온갖 장신구에 보석들이 즐비했다.

“말론 가문의 소가주님께서 보내신 선물이에요.”

“말론 가문? 선물?”

“이번에 혼담이 오고갔던 그분이요.”

“아…….”

황성의 실세 가문 중 하나. ‘말론 가문’의 소가주, 아담 말론이란 이름을 가진 미청년이었다. 하이리와 혼담이 강력하게 연결된 귀족이기도 했다.

“예쁘죠? 소가주님께서 안목이 좀 있으시네요.”

“얘는, 그 가문 공녀님이나 하녀들 시켰겠지.”

“아, 그런가? 그래도 예쁘다아.”

하녀들이 한마디씩 거드는 그때.

“나, 나는 별로.”

하이리가 함의 뚜껑을 툭 닫으며 말했다.

적어도 지금은 혼담 따위, 떠올리기도 싫었다.

‘아직 할 일이 많아.’

그래, 그녀는 할 일이 많다.

한데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혼인에 거부감부터 드는 이유가.

‘왜 자꾸 생각나는 거지?’

상아탑의 젊은 탑주 이안 페이지. 그의 냉랭한 얼굴과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는 단지 주변 사람들을 지킬 수단일 뿐인데, 말론 가문의 소가주와 비교하자면 그리 미남도 아닌데, 심지어 자신보다도 2살씩이나 어린데. 그런데 왜?

‘내, 내가 무슨 생각을.’

하이리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머리가 다 어지러워질 정도로.

* * *

이안이 경매의 참여자로 공주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가 높으면서도 할 일 없기로 소문난 위치, ‘공주’였으니까. 귀족의 취미 생활에 초대장 없이 스며들 수 있되, 그 행동으로부터 별다른 의심조차 사지 않을 존재 아니겠는가?

‘약점도 있고.’

심지어 이안은 그녀의 약점까지 쥐고 있으니, 이런 일에 전면으로 써먹기 딱 좋은 도구였다. 심지어 3클래스 마법사이기도 했다. 문제시 자기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으리라.

‘다시 부탁할 줄 알았는데.’

한 가지 의외가 있다면 공주의 부탁이었다. 흑마법 검사 당시 언급했던 그 문제를 부탁할 거라 여겼다. 자신이 자수할 테니, 주변 사람들이라도 무죄로 만들어달라는 부탁 말이다. 한데 아니었다. 제자로 받아달란다. 물론 꿍꿍이가 빤히 보이긴 했다.

‘그래도.’

이편이 더 마음에 들었다. 의외이기도 했다.

예상보다 처신머리가 깊은 공주였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책임까지 지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새장 속의 새처럼 살다 요절한 전생과는 다르게, 아주 능동적인 모습이었다.

(도대체 나와 뭘 하고 싶은 거지?)

그때였다.

이안의 생각을 끊어주는 목소리.

붉은 드래고니안, 에반투스였다.

그는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이안이 얘기할 ‘본론’이란 것을.

“아, 미안합니다. 생각 좀 하느라.”

사과부터 건넨 이안이 생각을 정리했다.

공주에 관한 생각은 서랍 속에 넣었다.

대신 지금부터 처리할 일을 끄집어냈다.

“일단, 여쭤보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용의 교단.”

먼저 용의 교단에 관한 모든 것부터.

“에반투스 님께서 세우신 교단이 맞습니까?”

(맞다.)

“오번 파커면 황성의 귀족 중에도 꽤나 파급력을 가진 귀족입니다. 저런 귀족까지 수하로 부릴 정도라, 교단의 규모도 제법 클 것 같네요. 맞습니까?”

(그 또한 맞다.)

드래고니안 에반투스의 대답은 짧았다. 권속의 힘이 작용되어 대답을 하긴 했으나, 어떻게든 비협조적인 자세를 고수했다. 체념해 버린 페어리 퀸이나 인정해 버린 스파르토이와는 달리, 그는 체념도, 인정도 할 수 없었다.

‘인간 따위가 그분들의 힘이라니?’

페어리 퀸은 체념.

스파르토이는 인정.

드래고니안은 부정.

각자의 성격이 묻어났다.

물론 그러든지 말든지.

이안은 신경 쓰지 않았다.

드래고니안이 대답을 대충한다?

상세하게 물어보면 그만이다.

“좋습니다. 교단의 자세한 구성원과 규모는 나중에 듣도록 하고, 다른 질문부터 드리죠. 정확한 목적이 뭡니까? 교단의 목적 말입니다.”

(그분들을 찾기 위해서다.)

“자세히.”

(…… 세상의 9할을 너희 인간들이 차지하고 있지 않나? 어딜 가나 존재하는 너희들을 이용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분들의 행방에 관한 단서를 찾아낼 수 있도록.)

“그건 드래고니안 분들의 목적이겠고, 오번 파커와 같은 귀족들은 아닐 텐데요?”

(물론, 인간의 지배층에게는 몇몇 허상을 심어줬다.)

“허상?”

(입맛대로 움직일 수 있는 허수아비 황제, 국교의 변경, 내가 지닌 강력한 마법과 도구를 통한 절대적인 보호 등. 그들이 원하는 부분들을 보장해 줬다.)

쉽게 말하자면 ‘실세’가 되는 것.

귀족들의 욕심을 자극했다는 거다.

이안도 충분히 예상했던 바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알 수 없었다.

이 정도의 규모를 가진 교단.

뚜렷한 목적까지 가진 교단.

그런 자들이 전생에는 왜?

‘아무런 두각도 나타내지 못했지?’

그 사실을 알아볼 차례였다.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전생과 현재의 차이점을 조금씩 대조해 보는 수밖에.

“교단 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하셨죠?”

(네놈이 수십 곱절을 살고 죽어야 할 정도로 오래되었다만, 지금처럼 너희 인간들의 하찮은 욕심까지 자극하며 활동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목적이 생겼다.)

“목적?”

(내 아이들.)

드래고니안 에반투스가 자신의 아들딸을 바라보았다.

(내 아이들은 그분들께 세월의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 그래야 드래고니안으로서 타고난 수명을 끝까지 누릴 수 있지. 나는 오래 전에 받았지만, 내 아이들은 그러지 못했다.)

에반투스의 자손들은 드래곤들이 사라진 이후 태어났다고 했다. 그 ‘세월의 허락’이란 것을 받고 싶어도 불가능했으리라.

(우리 드래고니안은 그분들의 핏줄이긴 하나, 동시에 불명예이기도 하다. 하찮은 종족과 정을 통했다는 증거 그 자체니까. 그분들께서 원치 않으신다면 언제든 지워져야만 하는 존재, 그것이 바로 나와 내 동족, 그리고 후손들이지.)

에반투스의 길어진 대답.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비통함마저 묻어났다.

(내 아이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

아마도 수명을 뜻할 터.

두 자손들의 수명이.

“정확히 얼마나 남았습니까?”

(아마 백 년도 남지 않았을 거다.)

“…….”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이 백 년이라니.

이안으로서는 전혀 공감할 수 없었지만.

(백 년조차 남지 않았다니…….)

(그것은…… 정말이지…… 문제로군…….)

페어리 퀸과 스파르토이의 반응은 달랐다.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분위기가 넘쳤다.

‘어이가 없네.’

누구는 두 번을 살아도 백 년이 안 될 것 같은데, 새삼 단명의 족속으로서 애환을 느끼는 이안이었다.

(내 아이들이 성년의 수명을 부여받기 위해서라도, 나는 그분들을 찾아야만 한다. 교단은 그분들을 찾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거기까지 들었을 때.

이안은 짐작할 수 있었다.

교단이 알려지지 않은 까닭을.

“만약에, 드래곤을 찾아 목적을 이룬다면 말입니다. 그러니까 세월의 허락이란 걸 받아서, 자손 분들의 수명이 늘어난다면.”

또한 확인해 보고자 했다.

에반투스의 대답을 통하여.

“교단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내 알 바 아니다.)

명쾌하고도 무책임한 대답.

하나 그것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진실인 것 같았다.

‘전생의 드래고니안은 목적을 이뤘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진다. 쓸모를 다한 용의 교단은 버려졌을 테고, 구심점이 사라진 교단은 자연스레 와해되었을 터. 현재로선 가장 그럴듯한 추측이었다.

“흐음.”

상황은 대충 파악이 되었다.

용의 교단이란 집단의 정체도.

그 목적과 미래의 수순까지도.

이제 남은 것은 처분인데.

“그 교단.”

고민을 끝낸 이안이 말했다.

대상은 드래고니안 에반투스였다.

“계속 키우십시오.”

(……계속?)

에반투스가 다소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인간 마법사 이안 페이지는 그린리버 제국의 영웅으로 소문이 자자한 상아탑주 아니던가? 분명 교단의 해산을 원하거나, 본인이 직접 해체시킬 거라 여겼다. 제국의 입장에서는 아주 불손한 세력일 테니까. 한데 그 세력을 오히려 키우라고?

“그렇습니다. 계속.”

(해산이 아니라, 키워라?)

“네. 드래곤을 찾는 일도 계속 하세요.”

이안의 계산은 빨랐다.

어차피 주인은 에반투스.

권속의 힘이 미치는 존재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겠는가?

‘사실상 내 손아귀에 있는 거나 다름없지.’

생각보다 큰 규모를 자랑하는 세력, 용의 교단. 그 단체가 이안의 손바닥 위에 들어온다는 얘기다. 유용하게 써먹을 만한 세력을 어찌 해산시키겠는가?

‘황실, 상아탑, 황성 귀족.’

수도를 이루는 세 가지 권력.

그것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황실은 황태자를 주축삼아.

상아탑은 탑주로서의 권한으로.

황성 귀족은 용의 교단을 통해서.

‘쓸데없는 견제나 음모는 막을 수 있겠군.’

적어도 수도 그린리버디움만큼은 완벽한 안전지대로 만들 수 있으리라. 이안과 그 가족들에게 있어 가장 완벽한 안전지대 말이다.

“다음은.”

교단에 관한 대화를 일단락 시킨 이안. 앞으로 더 추가할 사항들이 있겠지만, 일단은 넘어가기로 했다. 아직 진정한 목적이 남아 있었으니까.

(또 할 얘기가 남았나?)

“얘기는 아니고.”

이안이 아공간 주머니로부터 자그마한 약병을 꺼냈다. 보호 마법이 수 겹씩 걸려 어지간한 돌덩이보다 튼튼한 약병이었다.

“이겁니다. 제가 에반투스 님을 찾았던 이유.”

(그게 뭐지?)

“엘릭서입니다.”

(엘릭서?)

“아직 미완성이죠.”

숲의 바닥에 약병을 세워둔 이안.

그가 계속해서 말문을 이어갔다.

“혹시 브레스, 가능하십니까?”

(내게 주어진 권능 중 하나지.)

“이 약병에 쏴주셨으면 합니다.”

(……브레스를?)

에반투스가 이안을 한번, 약병을 한 번씩 바라봤다. 그러더니 곧 무언가가 떠오른 듯 읊조렸다.

(이것은…….)

“아시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사실 이안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라. 드래고니안의 브레스가 필요한 엘릭서다. 그런 엘릭서의 존재를 당사자가 모를 리 있겠는가?

(……나도 잘은 모른다. 다만, 그분들께서도 가끔 이런 부탁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액체가 담긴 그릇을 두고, 내게 브레스를 뿜어 달궈달라고 하셨었지. 그분들의 브레스로는 액체가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드래곤조차 마셨던 엘릭서란 뜻일까?

이안의 심장이 조금씩 두근거렸다.

결코 평범한 엘릭서는 아니리라.

“그때와 똑같이 해주십시오. 제대로만 완성된다면, 도와드리겠습니다.”

(무엇을?)

“용을 찾는 일.”

(……진심인가?)

“물론입니다.”

이안의 목소리와 눈빛에 흔들림이 없었다. 비록 믿을 수 없는 인간이지만, 어차피 권속의 힘으로 거절조차 불가능했다.

(알겠다. 믿어보도록 하지.)

동시에 검붉은 불꽃이 에반투스의 목구멍 깊숙한 곳으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그 브레스는 주변 바닥과 잡풀 따위에 옮겨 붙지 않았다. 오직 엘릭서가 담긴 약병만을 뜨겁게 달궜다.

불꽃 자체가 에반투스의 의지, 옮겨 붙지 말라 명한다면 옮겨 붙지 않는다. 꺼지지 말라 명한다면 그 어떠한 경우에도 꺼지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드래곤 브레스’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달궈졌을 거다.)

과거의 기억 그대로 불꽃을 멈춘 에반투스, 그 감은 정확했다. 분홍색 액체가 담겼던 약병이, 지금은 아주 새빨간 홍염을 머금고 있었으니까. 겉이 아닌, 액체의 속으로부터.

‘붉은 용의 다섯 숨결.’

이안이 그 완성된 엘릭서를 집어 들었다.

브레스로 달궈졌음에도 뜨겁지 않았다.

퐁!

특수하게 제작된 마개를 열자, 그 내용물로부터 진한 향이 피어올랐다. 마나하트와 마나브레인을 가진 존재라면 결코 거절할 수 없는 마력의 향, 오죽하면 권속들까지 흠칫거리겠는가?

‘마시자.’

도저히 제어가 불가능했다.

이안의 이성도, 본능도, 지식도.

그 모든 게 한통속이었으니까.

마셔라, 이 타오르는 액체를.

결코 후회하지 않을 터이니.

꿀꺽!

이안이 자그마한 약병에 든 엘릭서.

붉은 용의 다섯 숨결을 입으로 가져갔다.

동시에 목구멍을 타고 넘겨버렸다.

활활 불타오르는 미지의 액체를.

그러자.

화아아아악!

불꽃이 이안을 집어삼켰다.

단순한 비유 따위가 아니었다.

강렬하게 타올랐던 불꽃과 함께.

이안의 육신이 사라져 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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