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84화 (84/342)

8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84화

30. 덫(4)

(스파르토이?)

중년 남성의 목소리를 가진 드래고니안. 셋 중 가장 연장자이자 우두머리로 보이는 그가 놀란 듯 중얼거렸다.

동족이 아닌 다른 권속과 수백 년 만에 조우하는 상황이 아니던가? 특히 스파르토이는 쭉 수면에 들어 있었기에, 다른 권속들보다도 오랜 세월을 만나볼 수가 없었다.

(자네가 왜?)

(에반투스…… 오랜만에…… 보는군.)

드래고니안 ‘에반투스’를 본 용아병 스파르토이의 심정이 복잡해졌다. 하나 권속의 힘을 뿌리치기도 힘들었다. 그 힘을 가진 인간, 이안 페이지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는.

(도리가…… 없음을…… 용서해 주게.)

스파르토이를 중심으로 수많은 용아병 부대가 이안의 주변에 포진했다. 방패의 진이었다. 그들은 본디 드래곤의 방패, 그 권능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 마법사, 이안 페이지를 지키기 위하여.

(스파르토이! 이게 무슨 짓인가?)

드래고니안들의 우두머리, ‘에반투스’가 어금니를 뿌득 물었다. 도대체 왜 스파르토이가 저 인간 마법사 따위를 돕고 있단 말인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괜찮다. 당황할 필요는 없지.’

하지만 곧 침착함을 되찾는 에반투스였다. 그래봐야 용아병이다. 방패는 될지언정 느려터진 권속들이다. 비행 역시 불가능하다. 강력한 투창 능력을 보유했으나, 그마저도 한계가 있다. 반면 드래고니안들은 자유로운 비행 능력을 가졌다. 그 움직임 또한 재빠르다. 일단 도망치면 그만이라는 거다.

(인간 마법사여.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물러가도록 하지. 조만간 다시 보는 날이 올 거다. 그대는 상아탑의 주인, 도망칠 수도 없을 터이니.)

이안에게 으름장을 놓는 에반투스.

협박이라도 하듯 으르렁거렸다.

하나 이안의 표정은 여전했다.

태연했고, 여유로움마저 묻어났다.

“누구 마음대로?”

(용아병을 믿는 모양이군. 그들에게도 한계가…….)

에반투스의 목소리가 일순간 끊어졌다. 기척이 느껴진 탓이었다. 아래가 아닌, 바로 자신들과 비슷한 높이의 공중. 그것도 사방으로부터 전해졌다. 한둘이 아니라는 얘기다.

(저들은…….)

세 마리 드래고니안의 퇴로를 포위하며 몰려드는 존재, 하나같이 작은 몸뚱이를 가졌으며, 하얀 머리칼과 날개를 가졌다. 개중에는 연분홍빛 머리와 날개를 가진 이도 있었다.

(페어리…… 일족?)

용아병 스파르토이에 이어 페어리 일족이라니? 도대체 이 꽁꽁 숨어살던 권속들이 어디서 튀어나오고 있단 말인가?

(여왕까지……?)

무수히 많은 페어리 일족 중 페어리 퀸의 존재까지 확인한 에반투스. 그의 낯빛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갑작스런 전개에 상황조차 제대로 가늠하기 힘들었다.

(오랜만이구나. 에반투스.)

(여왕, 당신도 저 인간을 돕는 건가?)

(사정이 그렇게 되었느니라.)

(어째서? 이유가 뭐지?)

(말로 하긴 복잡해. 겪어봐야 알지.)

드래고니안 에반투스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답답했다. 당장의 정황도 이해가 되지를 않거니와, 용아병과 페어리 퀸 모두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 떠들고 있었으니까. 도대체 무슨 도리가 없고, 무엇이 복잡하며, 뭘 겪어봐야 안다는 걸까?

(나도 그냥 스파르토이, 저 뼈다귀 놈처럼 생각하기로 했단다. 이 모든 게 그분들의 뜻이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너무들 하시잖아? 그렇지 않느냐?)

(무, 무슨 소리를…….)

(곧 알게 될 거야. 너도.)

졸지에 전세가 역전되어 버렸다. 공중은 페어리 퀸과 그 일족들이. 아래로는 용아병 부대와 이안 페이지가. 그야말로 하늘과 땅 모든 곳을 적에게 장악당한 상태였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아버지?)

여인의 육신과 목소리를 가진 드래고니안이 에반투스에게 물었다.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딸인 것 같았다.

(…….)

그 물음에 에반투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으니까. 난데없이 등장한 페어리 퀸과 용아병, 심지어 아군조차 아니다. 모두 저 인간 마법사 이안 페이지를 돕는 것 같았다.

‘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에반투스는 당혹스러웠다.

예상이나 해봤겠는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이 녀석들을 대동한 게 오히려 패착이군.’

에반투스의 마법적 경지는 순간이동 주문 ‘텔레포트’를 사용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혼자의 몸이었다면 여전히 도망칠 수 있다는 소리다.

문제는 나머지 드래고니안들, 이들의 마법적 역량은 에반투스 자신보다 현저히 떨어졌다.

(아, 아버지…….)

나머지 두 명의 드래고니안들도 어렵지 않게 깨달았다. 상황은 한순간에 역전되었고, 자신들은 아비의 짐이 되어버렸단 사실을.

(인간, 원하는 게 무엇이냐? 여왕과 용아병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짐작하건대, 아마 뚜렷한 요구사항이 있어 나를 추적했겠지. 정확히는 우리 드래고니안이란 존재를…….)

드래고니안 에반투스는 선택했다.

협상이 가능하다면, 하는 수밖에.

퇴로는 없다. 이길 방법 역시 없다.

용아병 부대와 페어리 일족들.

6클래스의 인간 마법사까지.

저들을 무슨 수로 이길까?

(가능한 것이라면 들어주겠다. 원하는 바를 말해라.)

우선 권속들의 비호를 받는 인간 마법사, 이안 페이지가 원하는 것부터 들어봐야 했다. 그래야 놈의 목적과 권속들의 사정을 대략적으로나마 짐작해 볼 수 있을 터.

“대화부터 좀 나눠볼까요?”

이안이 정중해진 어조로 말했다.

적의가 한풀 꺾인 목소리였다.

“할 얘기가 많은데.”

그 제안에 잠시 멈칫거렸던 에반투스.

마음을 먹은 듯 지상으로 내려갔다.

다른 두 명의 드래고니안도 함께.

“세 분 다 이쪽으로.”

이윽고 이안과 드래고니안들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이렇게 보니 날개와 꼬리가 더더욱 눈에 들어왔다. 얼굴만 놓고 보자면 꽤나 미남미녀였는데, 파충류와 같은 눈동자가 유일한 흠이었다. 물론 그들에게는 용의 핏줄을 증명하는 자랑거리일 테지만.

“제가 드리고 싶은 부탁은…….”

살짝 말꼬리를 흐린 이안.

그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지금이라면 가능했다.

지척까지 다가왔다.

반항하지도 않는다.

딱 좋은 조건이었다.

‘권속의 힘을 발동시키기에.’

이안의 의도를 눈치챈 걸까? 페어리 퀸도, 용아병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곧 자신들과 똑같은 처지가 될 권속 동지, 드래고니안 에반투스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뭔가? 말해보라.)

“그러니까…….”

이안의 권속의 주문을 발동시켰다.

동시에 황금빛 마나가 일렁거렸다.

아주 강렬한 황금빛이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뭐……?)

황금빛 마나가 에반투스를 감쌌다.

페어리 퀸 에스펠이 그랬던 것처럼.

용아병 스파토이가 그랬던 것처럼.

에반투스 역시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저 당혹스러운 눈으로 바라볼 뿐.

이안을, 페어리 퀸을, 스파르토이를.

그리고 자기 자신의 양쪽 손바닥을.

(이, 이게 도대체…….)

권속이라면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분들, 용에게나 느낄 수 있는 힘.

그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이 느껴졌다.

인간 마법사, 이안 페이지로부터.

(그분들? 아니, 그럴 리가.)

드래고니안은 유독 심해 보였다.

권속의 힘에 혼란을 느끼는 정도가.

페어리 퀸과 스파르토이보다도 훨씬.

품은 감정이 남다르기 때문일까?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부모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음……?”

드래고니안들이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줬던 이안, 그의 눈에 의아함이 서렸다. 분명 에반투스는 권속의 힘이 닿았다. 그 여파로 저토록 혼란스러워하고 있지 않던가? 한데 나머지 두 명의 드래고니안은 전혀 그러한 기색이 없었다.

“두 분께서는 문제가 없으십니까?”

이안이 묻자 움찔거리는 드래고니안들. 정곡이었다. 이안의 질문 그대로였으니까. 권속의 힘은커녕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에반투스의 반응에 당혹감을 느끼고 있을 뿐.

(……그들은 나의 자손, 그분들의 권속이 아니다. 그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이미 그분들께서는 자취를 감추신 뒤였다. 만난 적도 없는데 어찌 권속이 될 수 있겠나?)

에반투스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렇다. 에반투스를 제외한 나머지 두 드래고니안은 드래곤의 자손이 아닌, 에반투스 본인의 자손이란 뜻이었다. 일종의 3대 후손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으리라.

(하기야, 그렇겠네. 우리 일족의 아이들도 비슷하느니라. 내가 그분들의 권속일 뿐, 일족의 아이들은 여왕인 나의 말에 복종하는 권속들이지. 비슷할 게다.)

에반투스의 설명에 페어리 퀸이 고개를 끄덕이며 첨언했다. 조금 더 간단히 표현하자면 ‘권속의 권속’이란 뜻이다. 페어리 퀸과 페어리들이 그런 것처럼, 에반투스와 나머지 드래고니안들도.

“흐음.”

권속의 힘이 먹히지 않는 반룡인이라.

난감함을 느끼는 이안이었다.

불확실한 존재가 아니겠는가?

하나 곧 생각을 정리시켰다.

묘수가 떠오른 덕이었다.

“자손이라면, 아마 당신께서.”

(에반투스다.)

“에반투스 님께서 아버지가 되시는 입장입니까?”

(그렇다.)

“인간들과 비슷한 관계겠죠? 드래고니안 분들도. 예를 들자면 부정이라든지…….”

(인간과 비슷한 관계? 권력과 돈 앞에 서로를 팔아먹는 너희 인간들과 우리 일족을 비교하는 것인가? 모욕적이군.)

“그거 다행이군요.”

에반투스의 비아냥거림에도 태연하게 대꾸하는 이안이었다. 오히려 그 비아냥거림이야말로 이안이 가장 듣고 싶었던 얘기였으니까.

“그럼, 지금부터.”

이안이 에반투스를, 이어서 두 명의 드래고니안을 한 번씩 훑어보며 말했다. 방금까지와는 다르게 조금 싸늘해진 목소리였다.

“권속의 힘으로 명하겠습니다.”

권속의 힘이라는 표현에 에반투스가 집중했다.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불가항력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함께 듣고 있는 페어리 퀸과 스파르토이도 마찬가지였다.

“권속의 힘이 미치지 않는 두 드래고니안께서는 이후, 어떠한 수작도 꾸미지 마시기를 권합니다. 만약 허튼 수작을 부리신다면, 에반투스 님께서 직접 관련자들을 처리하고 자결하시길 명합니다.”

(뭐…… 뭐라고?)

자식이 허튼 수작을 부린다면, 아비 된 자가 그 자식들을 죽이고 자결하라.

당혹스럽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한 명령이었다. 심지어 따라야만 한다. 권속의 힘이 작용되는 이상에는 무조건적으로.

(그, 그런 말도 안……!)

“만약 자손들께서 꾸민 수작에 저와 제 주변이 다치거나, 죽거나, 곤경에 빠진다면 그 역시, 에반투스 님께서 직접 자손들을 처리하고 자결하시길 명하겠습니다.”

(……!)

이안의 명령에는 거침이 없었다.

이어지는 명령 또한 마찬가지였다.

권속의 힘이 통하지 않는 드래고니안.

그 둘을 무력화시킬 명령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여왕님과 스파르토이 님께 명합니다. 에반투스 님의 자손들이 허튼 수작을 부릴 경우, 두 권속께서는 드래고니안을 평생토록 추적해 멸족시키십시오.”

이안의 명령이 거기까지 닿았을 때.

그 누구도 말소리를 내지 못했다.

붉은 드래고니안 에반투스도.

에반투스의 두 아들과 딸도.

페어리 퀸과 스파르토이까지.

다만, 공통된 생각들을 떠올렸다.

‘……지독한 인간이다.’

권속들의 속내를 읽은 걸까?

피식 웃어 보이는 이안이었다.

물론 그 누구도 따라 웃진 못했다.

“대충 정리가 된 것 같은데…… 본론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죠. 드래고니안 분들께 물어볼 얘기도 많고, 듣고 싶은 것도 많긴 합니다만, 일단은.”

알아내고 싶은 것 천지였다.

먼저 용의 교단이 맞는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건지.

교단의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전생과 다른 점은 무엇인지.

‘내 손에 넣을 수 있는 세력인지.’

무엇보다도.

‘엘릭서도 완성시켜야겠지.’

할 일이 많아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