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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83화
30. 덫(3)
“이런 젠장할, 이백만 골드라니!”
모든 경매 일정이 종료된 밤. 참여했던 귀족들은 모두 돌아갔다. 진행자와 상단도 빠져나갔다. 오직 별장의 주인 오번 파커만이 남아 와인으로 목을 축이고 있었다.
“별것도 아닌 계집년 장난질에……!”
아까 전의 경매를 떠올리니 분노가 치솟았다. 그 공주, 하이리 그린리버는 분명 장난질을 친 거다. 이백만 골드란 거액을 사치품 구입에 투자한다고? 황제도 아니고, 황태자도 아니고, 심지어 황자도 아닌 공주, 그러니까 계집 따위가?
‘아무리 황제의 총애를 받는다 해도!’
값비싼 와인을 병째로 들어 벌컥거리기 시작한 오번 파커였다.
이백만 골드라는 자금이야 새로운 주인께서 충당해 주실 거다. 문제는 자신의 위신이었다. 경매에 참여했던 이들 중 대부분은 아직 교단에 속한 자가 아니다. 차차 속하도록 노력을 기하는 대상일 뿐, 그들이 자신을 어찌 생각하겠는가?
‘공주의 빤히 보이는 장난질에 넘어가 이백만 골드를 골동품에 투자한 얼간이? 골동품 수집에 미친놈? 하, 이런 말도 안 되는!’
오번이 와인 병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속은 쓰리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새로운 주인께서 시킨 일이었으니까.
‘왜 그토록 집착을 하신 거지?’
분명 대단한 책이긴 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졌다.
문제는 이백만 골드라는 거다.
침착하기만 했다면 보다 쉽게 얻어낼 기회가 있었다.
‘그런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하나 새로운 주인, 교주는 침착하지 못했다. 용의 눈과 날개, 꼬리를 가진 그의 흥분 가득한 목소리, 단언컨대 처음이었다. 이 책에 정말 용의 언어라도 담긴 걸까?
“확실히, 확실히 신비롭긴 한데…….”
멍하니 용언서를 펼쳐본 오번.
그 순간이었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건을 가져와라. 그곳으로.)
흠칫 놀란 오번이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멀찍이 문 밖에서 자신을 지키는 경호원들 밖에는. 도대체 어디서 들려오는 걸까? 자신의 아들이자 마법사인 파본 파커도 이러한 마법은 없다고 했거늘.
‘상아탑주, 그 꼬맹이보다 위대한 마법사시니.’
그 점을 떠올리자 비로소 편안해졌다. 방금 전까지 오번 파커를 괴롭혔던 모든 걱정거리가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애당초 ‘용의 교단’에 충성을 맹세한 까닭, 그 까닭이 바로 교주의 힘이었으니까.
‘나와 내 가문을 지켜줄 강자.’
오번 파커는 6년 전부터 불안함 속에 살았다. 아들의 장난으로 도망쳤던 레디오, 그 연금술사 놈이 이안 페이지에게 들러붙어 있단 소식을 접했다. 가족처럼 아낀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때부터 쭉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놈이 고위마법사가 되었을 당시 뇌물도 보내봤으나, 답례는커녕 반응조차 없었다.
‘아직까진 낌새가 없었지만, 언젠가는 압박이 시작될 거다. 분명해. 이제 상아탑주라는 막대한 권력까지 틀어쥐었으니…….’
불안함 속에 살던 몇 년 전, 노기사 덤필 모릿을 통해 용의 교단을 만났고, 그때부터 교단의 일원이 되었다. 제국 수도의 ‘담당 전도사‘라는 직책도 받았다.
‘황제든, 용이든, 국교든, 그따위 것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와 내 가문, 내가 쥔 모든 것을 지키고, 계속 누릴 수만 있다면!’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은 오번 파커. 그가 용언서와 함께 별장에서 빠져나갔다. 별장과 조금 떨어진 숲속으로 통하는 통로, 바로 그 비밀 통로를 이용했다. 경호원들을 따돌리기 위함이었다.
‘별장에 이런 통로라.’
물론 아까부터 근처에 있었던 이안은 달랐다. 조금 거리만 둔 채로 오번의 뒤를 밟았다. 투명화 마법인 인비저빌리티도 해제시켰다. 마나를 아끼기 위함이었다.
‘어떤 놈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대신 그보다 하급의 마법들을 걸었다.
기척을 지워주는 몇몇 보조 마법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사박. 사박…….
풀을 밟으며 나아가는 소리.
오번 파커의 발이 내는 소리였다.
숲속 깊숙이, 더 깊숙이.
얼마나 깊숙하게 들어왔을까?
큼직한 바위가 자리 잡은 공터.
그 바위 앞에 오번이 멈췄다.
“여기에 두겠습니다.”
오번 파커가 작은 소리로 중얼대더니 용언서를 내려놓았다. 비단을 한 장 깔아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용언서는 먼지 한 톨 묻어나지 않지만, 그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예? 아……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물러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시길. 바로 대령하겠습니다. 예.”
누군가에게 명령이라도 들은 모양새였다. 허둥대며 빠져나가는 꼴이 딱 그랬다. 이안 역시 오번으로부터 관심을 거두었다. 대신 오감의 강화에 집중했다. 이제 곧 용언서 앞에 나타날 존재, 그 기척을 한발 먼저 감지해 내기 위하여.
‘드래고니안일까?’
그랬으면 좋겠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사박!
오감이 집중된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 바위 앞으로 다가왔다.
겉은 인간과 비슷한 형상이었다. 머리와 몸뚱이, 팔과 다리까지는.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두 가지.
등에 돋아난 한 쌍의 징그러운 날개, 그리고 허리 아래에 늘어진 꼬리였다.
‘페어리 퀸이 말했던 모습과 일치한다.’
그녀의 설명으로는 분명 그랬다.
용의 날개와 꼬리, 눈을 가졌다고.
반룡인, 드래고니안이란 존재들은.
‘제대로 물었군.’
반신반의하며 계획했던 미끼.
생각보다 수월하게 흘러갔다.
‘제압이 먼저다.’
목표는 어디까지나 제압, 그래야 ‘권속의 마법’을 시도해볼 수 있을 테니까. 복잡하고 긴 주문 아니겠는가? 발동의 범위조차 좁다. 페어리 퀸과 용아병이야 가까이서, 적대적이지 않은 상태로 사용했다지만, 저항하는 적을 상대로는 준비가 필요했다.
‘최소한 움직임이라도 묶어놔야겠지.’
처음엔 대화부터 시도할까 고려했었다.
용언 마법을 보여준다면 쉽지 않을까?
페어리 퀸의 경우처럼 말이다.
결론은 보류였다.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
페어리 퀸에 대해서는 확실한 정보와 경험이 있었다. 하나 드래고니안은 아니다. 일면식조차 없는 존재이며, 인간 사회에 섞여 무언가를 꾸미고도 있다. 한데 무작정 용언 마법부터 보여준다? 그 용언 한 방이면 마나가 거덜나버린다. 적일지도 모르는 존재 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방치된다는 얘기다.
‘그건 좀 위험하잖아.’
좀이 아니라 많이 위험할 터.
곧장 행동으로 나서는 이안이었다.
놈의 정신이 용언서에 팔려 있을 때.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였으니까.
‘프로즌 셰클스.’
이안이 불러낸 냉기, 그 고리 모양 냉기가 드래고니안의 발목으로 접근했다.
‘잡아.’
드래고니안의 지척까지 도달한 고리 모양 냉기, 그 응축된 냉기가 가까워진 대상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물론 그 대상은 드래고니안의 발목이었다.
콰득! 콰드득! 콰득!
드래고니안의 하반신이 빠르게 얼어붙었다.
곧 상반신마저 모조리 얼어붙을 기세였다.
‘지금!’
기다렸던 이안이 드래고니안을 향하여 쏜살처럼 튀어나갔다. 동시에 권속의 주문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놈과 가까이 붙을 때쯤 주문 역시 완성될 터. 그야말로 속전속결!
“……?”
하나 이안의 첫 번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갈 것 같았다. 얼어붙은 놈의 육신이 흐릿해지고 있었으니까. 마치 소멸이라도 되는 것처럼.
‘분신?’
이안 역시 비슷한 분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 6클래스 상당의 마법, ‘퍼핏 플레이’로 하여금. 그렇기에 가늠하기도 쉬웠다. 페어리 퀸의 말이 옳았던 거다. 이 드래고니안이란 족속은…….
‘나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혹은 그 이상의 마법사.
생각이 거기까지 닿았을 때.
콰앙-!
놈의 분신이 폭발했다.
단순한 폭발이 아니었다.
대량으로 응집된 마나의 폭발.
빠른 배리어가 아니었다면 죽었을 터.
(제법이다. 그 순간에 배리어라니.)
동시에 들려오는 목소리.
권속들의 방식과 같았다.
귀가 아닌, 머리로부터 들려왔다.
이것으로 놈의 정체는 확실했다.
‘드래고니안.’
이안이 빠르게 마나를 끌어 모았다.
날선 적의가 명백한 폭발이었다.
싸움은 피할 수 없을 터.
한데, 조금 이상했다.
(저런 인간도 있어? 인간 수준이 아닌데?)
(아! 저놈이 그놈인가? 그 이안…… 뭐더라?)
(이안 페이지, 애써 키운 노인네 잡아 족친 놈.)
들려오는 목소리.
아니, 목소리들이었다.
한 명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여자 하나에 남자가 둘.’
총 세 부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안이 듣기로는 그랬다.
전부 드래고니안일까?
‘한 놈이 아니었군.’
문득 페어리 퀸의 설명이 떠올랐다. 드래고니안의 머릿수가 여덟은 될 거라는 얘기. 또한 그 수에서 멈춰있을 거라는 얘기까지. 아무래도 함께 활동하는 모양이었다.
(인간 마법사야. 네놈이 아까부터 경매장 주변을 기웃거렸단 사실, 진즉에 눈치 채고 있었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다만, 보아하니 이 책을 미끼삼아 수작질이라도 해보려는 것 같은데…….)
이윽고 하늘로부터 세 마리의 드래고니안이 나타났다. 셋 모두 붉은 날개와 꼬리를 가진 반룡인이었다. 붉은 용의 씨앗으로부터 태어났음이 분명해 보였다.
(아서라. 덫은 네놈이 놓은 게 아니야. 우리가 놓은 거지.)
드래고니안은 생각보다 철저했다. 경매가 시작되었던 그때부터 이안의 존재를 알아챘는데도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일족들을 불러냈다. 상대는 6클래스의 인간 마법사, 질 것 같지는 않았으나, 확실한 게 좋았다.
(뭔가 이것저것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무엇이냐? 네놈이 알고 있는 것, 하고자 했던 수작질. 숨김없이 말하는 게 좋을 거다.)
아까부터 대화를 주도해 나가는 드래고니안. 중후한 목소리를 가진 놈의 눈매가 이안을 훑었다. 먹잇감을 바라보는 맹수의 그것과 흡사했다.
(네놈 정도 되는 마법사라면 눈치 챘겠다만, 이미 도망치긴 글렀다. 아마 살아남기도 힘들겠지. 그러니 말해보아라. 경우에 따라 살려줄 수도 있다. 사실 죽이기는 또 아깝거든. 여러모로.)
드래고니안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셋 모두 이안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을 바라보는 마법사 아니겠는가? 제아무리 이안이라도 방법이 없었다. 혈혈단신으로 놈들을 제압해 내거나, 혹은 놈들의 추격을 뚫고 도망칠 방도가.
‘그래, 없지.’
그러나 이안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그래, 지금으로선 없다.
그 방법이란 수단이.
다만, 어디까지나.
‘혈혈단신으로는.’
이안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자그마한 주머니, ‘아공간 주머니’였다.
“그래서, 나 잡자고 셋이나 몰려왔습니까?”
(네놈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마법사가 아니더냐? 나로서도 부담이 되는 존재, 철저해서 나쁠 건 없지. 탓하려거든 홀로 여기까지 기어온 네놈의 발이나 탓해라.)
“홀로 왔다니요. 그럴 리가.”
(……뭐?)
이안의 말에 드래고니안 하나가 광범위 디텍트 주문부터 펼쳤다. 숨어 있는 자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하나 주변일대에는 아무도 없었다. 인즉.
(이 와중에도 허세를 부리는 건가?)
조소를 머금은 드래고니안의 말에.
“허세는 아니고.”
넌지시 내뱉어준 이안의 한마디.
그 한마디와 함께 묶음을 풀어냈다.
아공간 주머니의 주둥이를 막은 묶음을.
“당신들도.”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안의 오른손이 주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새하얀 조각을 한 움큼씩 끄집어냈다.
“간만에.”
그 조각들의 정체는 바로 ‘용의 뼛조각’.
그 수많은 뼛조각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한 움큼, 한 움큼, 또 한 움큼.
마나가 실렸기에 땅으로 쏙쏙 박혔다.
그로부터 몇 초나 지났을까?
쿠구구구구구……!
거센 진동이 느껴졌다.
생각보다 큰 진동이었다.
지진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친구들 얼굴이나 좀.”
진동의 결과는 더더욱 경악스러웠다. 뼛조각들이 심어진 흙바닥, 그 모든 곳에서부터 기어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가장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는 용아병 ‘스파르토이’와 함께, 뿌려진 뼛조각의 수대로 수십 마리에 달하는 ‘빈껍데기’ 용아병들이.
“보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