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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81화 (8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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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81화

    30. 덫(1)

    “음.”

    쪽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아직 핵심적인 정보는 없지만, 흥미롭고도 자잘한 몇 가지 얘깃거리는 있다.

    1차적인 보고를 원한다면 저택 앞으로 나와 달라. 나오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조사를 진행하고 있겠다.

    “그러니까…….”

    별거 아닐지도 모르니 듣고 싶으면 나와라,

    그런 얘기였다. 흥미롭고도 자잘한 몇 가지라.

    ‘들어나 볼까.’

    마음을 정한 이안이 몸뚱이부터 일으켰다.

    여전히 따라오는 통증에 탁자 위에 약병을 집어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더글라스가 만들어준 일종의 진통제였다.

    ‘쓰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속을 다 버릴 정도로 독하게 조제된 진통제였으나, 이안은 마나의 보호 덕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저 확하고 퍼져오는 쓴 향과 맛이 싫을 뿐.

    ‘왜 이렇게 쓴 거지?’

    물론 무엇을 넣고 만들었는지는 안다. 조제과정도 직접 지켜봤다.

    독살의 경험이 있는 이안이다. 남이 주는 물약을 아무런 의심도 없이 꿀꺽꿀꺽 삼켜줄 리 있겠는가? 다 알아보고 마시는 거다. 그럼에도 알 도리가 없었다. 이 쓴맛의 원인을.

    ‘이런 맛이 날 이유가 없을 텐데.’

    이안이 본 약재와 조제과정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섞이게 되면서 무언가 다른 맛이라도 내는 걸까.

    실없는 생각과 함께 약병을 비워버린 이안이 저택 밖으로 나왔다. 아직 이른 아침이었다.

    “탑주님.”

    보통 이런 경우는 수하를 보내게 마련이다. 한데 직접 왔다.

    도둑 길드 데이 브레이크의 수장, 크루드가. 첫 만남의 강렬했던 인상 때문일까? 여전히 겁을 먹은 눈치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그렇게 무탈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예? 어째서…… 아, 휴가를 내셨단 소식은 들었습니다. 수련에 한창이시라고. 그 여파로 많이 피곤하시겠지요.”

    이안의 휴가는 상아탑의 일.

    딱히 기밀에 붙이지는 않았다만, 마법사들이 떠들고 다녔을 리도 만무할 터. 한데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크루드였다. 괜히 정보 장사꾼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서 말씀을 올리는 것인데, 약소하지만 이놈이 드리는 성의라고 봐주십시오. 불미스러웠던 일도 있었고, 마침 수련 중이시라 하시기에…….”

    길드장 크루드의 손짓과 함께 멀찍이 대기 중이었던 수하가 목함을 대령했다. 이안은 어렵지 않게 내용물을 파악해 냈다. 아마 엘릭서겠지.

    “엘릭서로군요.”

    “탁월하신 눈썰미십니다.”

    “마법사가 엘릭서라면 사족을 못 쓰는 거야 세상이 다 알죠.”

    물론 그러한 이유로 엘릭서임을 알아본 것은 아니었다.

    전생에도 많이 받아봤다. 약소한 선물이랍시고 가져오는 저 뇌물 엘릭서를, 눈앞에 이 크루드란 자에게도 자주 받아봤다. 본인도 몇 년에 한 번이나 맛보는 엘릭서라고 했던가?

    “나라님만 잡수신다는 엘릭서에 비견될 정도로 귀한 놈입니다. 억만금을 준다 해도 몇 년에 한번 꼴이나 볼 수 있지요. 그 귀함을 수련 중이신 탑주께 양보토록 하겠습니다.”

    역시 이번에도 똑같다.

    멘트만 조금 달라졌을 뿐.

    이안이 목함을 받았다.

    어머니께 드려야겠다.

    “받도록 하죠.”

    “예? 아, 예. 감사합니다!”

    이안이 아무런 망설임이나 겸양, 심지어 고맙다는 말조차 없이 받아버리자 조금 당황해 버린 크루드였다.

    이는 명백한 뇌물이다. 물론 상아탑주가 뇌물 좀 챙겼기로서니 무슨 문제가 되겠냐만, 그래도 약간의 망설임은 있을 줄 알았다. 높으신 분들 겸양 떠는 척이야 자주 겪어봤으니까.

    ‘아직 어려서 그런가?’

    그리 생각한 크루드가 이번에는 서류를 몇 장 이안한테 건넸다. 지금껏 조사했던 정보, 사실 정보랄 것도 없는 자잘한 이야깃거리들이 가득 담긴 종이뭉치였다.

    “이런 말씀을 드려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만, 의뢰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직접적으로 이렇다 할 소득이 없습니다. 단지.”

    크루드의 목소리가 가늘어졌다.

    이안의 귓가로 가까이 들어왔다.

    엿듣는 사람은 없었으나,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서류를 검토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드래곤에 관련해서는 최근 몇 가지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일종의 유행이라고 하더군요.”

    “유행?”

    “예를 들자면 드래곤과 관련된 고서라거나, 조각상이라거나, 기타 등등이 존재하지 않습니까? 그런 물건들을 수집하는 유행이 황성 내 귀족들 사이에서 번지고 있다 합니다.”

    드래곤과 관련된 유행이라?

    이안의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유행 따위와 거리가 멀긴 했다만.

    감안하더라도 생소한 이야기였다.

    “이게 의뢰하신 교단과 관련이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만, 귀족들의 수집 유행엔 반드시 이유가 있지요. 사소한 이유든, 무언가 심상치 않은 계획이 있든. 그렇지 않습니까?”

    “흐음…….”

    귀족간의 유행에는 이유가 있다.

    분명 귀담아 들을 만한 얘기였다.

    “물건의 유통방식도 상당히 폐쇄적이더군요. 이미 시중에 나와 있는 물건들은 눈에 차지 않는 건지, 유행을 따르는 귀족들끼리 모여 비밀 경매장까지 만들었습니다.”

    말문이 길어지자 숨부터 고르는 크루드였다.

    어휘를 구성함에 더듬거나 뜸들임이 없었다.

    “알아본 바로는 초대받은 귀족들만 경매에 참여할 수 있고, 드래곤과 관련된 골동품을 납품하는 상단 역시 엄격하게 가려 받는 것 같았습니다. 적어도 제국의 상권을 나눠가진 여섯 대상단 정도는 되어야 말이 통하는 것 같더군요.”

    제국의 여섯 대상단.

    이안에게도 익숙한 표현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다섯 상단으로 알고 있었는데.’

    전생에는 분명 제국의 ‘다섯’ 대상단이었다. 한데 여섯 대상단이라니? 상단과 관련된 상아탑의 업무를 처리해본 경험이 있다. 잘못된 기억일 가능성은 없으리라.

    “여섯 상단이 각각 어디입니까?”

    전생과 달리 대상단으로 거듭난 상단이라.

    궁금해진 이안이 크루드에게 물었다.

    “간단히 이름부터 말씀드리자면, 먼저 제임슨 상단, 몰튼 상단, 하이베 상단, 마리오와 형제들. 이것도 상단의 이름입니다. 원래 용병단을 했던 자들인지라.”

    “알고 있습니다. 계속해 주십시오.”

    알고 있는데 왜 물어?

    입이 근질거리는 크루드였다.

    만만한 자였다면 이리 외쳤으리라.

    아니, 애당초 만나주지도 않았겠지.

    “예. 무라트라 상단과 마지막으로…… 포이언 상단입니다. 탑주님께서도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본래는 탑주님의 고향인 북부 모그리안 영지에서 활동했던 상단입니다. 수완이 좋아진 건지, 몇 해 전부터 대륙적으로 놀더군요.”

    포이언 상단이라면 이안 역시 아는 곳이다. 여섯 해 전, 모그리안 산의 고블린 사체들을 팔아넘겼던 바로 그 상단이 아니던가?

    ‘나의 개입으로 미래가 바뀐 건가?’

    물론 고블린 사체 좀 팔았기로서니 갑작스레 대상단으로 탈바꿈되지는 않았을 거다. 단지 흘러가는 흐름이나마 한 가닥 바꿔놨겠지. 어찌되었든 반가움이 느껴졌다.

    “자세한 사항은 서류에 적어두었습니다. 한번 검토해 보시고, 추가적으로 시킬 일이 있으시다면 연락주시길. 아, 번거롭게 본부까지 찾아오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처음 저희들과 접촉하시면서 보셨겠지만, 저쪽 상업지구 1번 도로 술집들이 전부 저희가 소유한 영업장입니다. 그쪽을 통해 연락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끝까지 이안의 눈치를 살피는 크루드였다. 전생에도 이렇지는 않았거늘, 제국의 2인자 상아탑주로서 대면했던 첫인상이 강렬하게 각인되긴 되었나 보다.

    “그렇게 하죠.”

    크루드를 돌려보낸 이안이 저택으로 돌아왔다.

    침실에 도착하자 아까는 없었던 이들이 보였다.

    (이것이…… 그분들의 언어가…… 담긴 책인가.)

    (그렇다니까? 심지어 그 인간은 읽기까지 한다고.)

    (그분들의…… 언어는 오직…….)

    (그분들만 읽고 말할 수 있지.)

    바로 페어리 퀸과 영혼 상태의 용아병 스파르토이였다. 페어리 퀸은 자신의 몸뚱이보다 커다란 용언서를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겨가며 용아병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뭣들 하십니까?”

    이안의 물음에도 그들은 용언서만 바라봤다. 지난 몇 달간 지켜본 결론인데, 그들에게 드래곤이란 부모와 같은 존재인 같았다. 느낌상 어머니보다는 아버지 쪽이라고 표현할 수 있으리라. 물론 이안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단지 가늠했을 뿐.

    “여왕님. 여쭤볼 게 하나 있는데.”

    (말해 보려무나.)

    “혹시, 그 드래고니안이란 권속도 그렇습니까?”

    (다짜고짜 무엇이 말이더냐?)

    “그 용언서라면 사족을 못 쓰냐는 뜻입니다.”

    용언서라면 사족을 못 쓴다.

    상당히 거슬리는 표현이었다.

    그럼에도 넘어가는 페어리 퀸이었다.

    딱히 반박할 만한 거리가 없었으니까.

    (뭐, 그럴 테지. 권속이라면 누구나 이끌릴 거다. 그분들을 향한 충성심이 사라지진 않았을 테니까. 물론, 그분들의 둥지를 끝까지 지켜온 우리 페어리 일족만 하겠냐만.)

    (나 또한…… 그분들의 방패이자…….)

    (시끄럽다! 잠이나 잤던 뼈다귀 주제에.)

    (그 수면에는…… 나름의 이유가…….)

    용아병 스파르토이의 합류 이후부터 잦아진 말다툼, 이안은 딱히 마법을 쓰지 않아도 그 소란스러움을 차단해 내는 경지에 이르렀다. 대신 생각에 잠겼다.

    ‘사족을 못 쓴다 이거지. 그 반룡인들도.’

    이안의 뇌리로 생각 하나가 스쳐갔다. 용의 교단의 창시자일 가능성이 큰 드래고니안부터, 황성 귀족들 사이에 돌고 있다는 드래곤과 관련된 유행, 그로 말미암아 생겨난 비밀 경매까지. 바로 그것들의 관계유무를 확인할 방책 말이다.

    ‘어쩌면, 한 방에 끄집어낼 수도 있다.’

    방법만 놓고 보자면 간단했다.

    저 용언서를 미끼삼아 귀족들의 비밀 경매에 출품하는 거다.

    ‘관계가 없어도 상관은 없어.’

    다시 회수하면 그만이니까.

    이안에게는 자금력이 있다.

    수수료만 조금 떼일 테지.

    ‘비밀 경매에 용언서를 출품할 방법, 그리고 구매자로 초대받아 참가하는 방법. 이 두 가지만 해결하면 되겠는데…….’

    그 두 가지야말로 가장 큰 문제였다.

    제국의 여섯 대상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출품도 문제인데, 하물며 구매자로 초대받기 위해서는 그들과 가까운 귀족이어야만 한다.

    ‘내가 귀족은 아니니까.’

    물론 마법사는 귀족과 같다. 하물며 상아탑주라면 대영주조차 뛰어넘는다. 하나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귀족끼리의 은밀한 취미에 끼어들기는 어렵다. 평소 친분이 없었다면 더더욱 그렇다. 마법사와 귀족,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가 아니던가?

    ‘이를 어찌 한다…….’

    이안의 머리가 빠른 속도로 회전했다.

    수많은 기억과 인연을 훑었다.

    전생의 42년과 이번 생의 6년.

    그 안에서 얻어낸 모든 것들을.

    * * *

    그로부터 며칠 후.

    황성 귀족 중 제법 영향력을 행사하기로 유명한 가문, ‘파커 일가’의 가주 오번 파커가 비밀 경매장을 주최했다. 주최자는 경매에 출품될 물건들을 미리 살펴볼 수가 있는데, 일종의 수질 관리라고 보면 된다. 오번 또한 그 수질 관리에 나서는 중이었다.

    “오번 공. 이리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아아, 자네가 그 포이언 상단의 행수인가?”

    “로베르토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번 파커와 인사를 나누는 배불뚝이 중년인. 그는 자신을 포이언 상단의 출품 책임자이자 행수라고 소개했다. 인상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악덕 상인의 표본처럼 생겼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순수하게 외모로만 보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야 물건의 품질에 달렸겠지.”

    “물론이십니다. 아주 만족하실 겁니다.”

    “호오, 자신감이 넘치는구먼.”

    “자신감뿐이겠습니까? 지금껏 장사밥을 먹고 살면서 온갖 물건이란 물건은 다 구경해 봤습니다만, 모든 경험을 통틀어도 이렇게 진귀한 물건은 처음입니다.”

    다짜고짜 찬양을 시작한 상인 로베르토.

    오번은 그 찬양에 의혹부터 느꼈다.

    오히려 역효과만 내버린 셈이었다.

    아직까지는 그랬다.

    “그렇게 과장하는 상인치고 제대로 된 물건을 출품하는 인사, 지금까지는 한 명도 없더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드래곤과 관련이 있어야만 하네. 이 경매장의 코드가 바로 드래곤이니까. 그 사실은 알고 있는 거겠지?”

    “이를 말씀이십니까?”

    “흠, 글쎄…….”

    오번 파커가 팔짱을 낀 채 쳐다보자, 상인 로베르토 역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한 번 보여달란 뜻이 아니겠는가?

    “잠시 이쪽으로 와주시지요.”

    포이언 상단의 행수, 로베르토의 마차.

    그 마차에서 보관함을 하나 꺼내든 로베르토가 오번 앞에 살며시 열어줬다. 안에는 큼직한 서책이 한 권 담겨져 있었는데,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표지부터가 인간의 창조물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미지의 서책이었다.

    “도, 도대체 이 책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몽롱해지는 자태.

    그 서책의 영향을 받은 오번 파커가 물었다.

    “무, 무엇인가? 어디서 온 책이지?”

    “놀라지 마십시오. 이게 바로 그…….”

    잠시 말꼬리를 늘어뜨렸던 상인 로베르토.

    그가 오번의 귓가에 대고 속삭거렸다.

    “용언서라는 물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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