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80화 (8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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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80화

29. 느림보 손님(3)

총 6개월의 휴가 중 절반이 지났다.

벌써 88일째에 도달한 이안의 수련. 수련 장소는 첫날의 땅 그대로였다.

쿠웅!

용아병 스파르토이의 육중한 창날이 흙바닥을 내려찍었다.

흙먼지가 폭발하듯 퍼져나갔다. 동작은 굼떴지만, 그 파괴력 하나만큼은 어지간한 마법과 견줘도 손색이 없었다.

“흐읍!”

이안은 그 창날이 내리꽂힌 자리로부터 한 박자 빠르게 물러난 뒤였다. 동시에 냉기로 가득한 주문 하나를 그 자리에 설치했다. 닿는 순간 발동되는 얼음의 족쇄.

‘프로즌 셰클스.’

실로 강력한 냉기가 용아병의 창날을 타고 빠르게 올라갔다.

창대부터 쥔 손과 팔, 어깻죽지까지 꽁꽁 얼려 버린 거다. 인간이었다면 전신을 동결시키고도 남았겠으나, 타고난 안티매직의 육신을 가진 용아병에게는 팔 한쪽이 전부였다.

‘아이스 붐.’

저대로 둬봐야 곧바로 털어내 버릴 터. 그 전에 폭발시켜 스스로의 마나를 소모하는 편이 옳았다.

이안의 첫 번째 목적은 어디까지나 ‘마나 소모’였으니까.

퍼벙! 펑!

용아병의 오른팔에 엉겨 붙었던 얼음이 무수한 파편을 흩뿌리며 폭발했다.

만약 살덩이였다면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버렸을 폭발, 그러나 용아병 스파르토이의 뼈는 흠집 하나 없이 멀쩡하기만 했다.

“배틀 필드.”

상식을 한참 넘어선 내구도.

하나 이안에게는 익숙한 광경이었다.

일말 멈칫거림도 없이 마법을 이어갔다.

잘 사용하지 않는, ‘기상 마법’의 차례였다.

“윈터.”

배틀 필드, 윈터. 그 읊조림과 함께 계절이 바뀌기 시작했다. 하늘 위로 눈구름이 생성되었다. 시린 바람도 휑하니 불어왔다.

“아이스 존.”

이안의 주문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땅에 살포시 꽂힌 지팡이 끝으로부터 광범위한 냉기가 쭉쭉 퍼져나갔다. 일대의 흙바닥을 아예 빙판길로 만들어 버렸다.

“후우……!”

추위를 대변하듯, 이안의 입김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바깥에는 봄기운이 몰아쳐 꽃봉오리가 피고 있다지만, 수련장 내부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그야말로 겨울이 찾아온 거다.

“시원하니 좋네.”

마법사마다 전투적 취향이 다양했다.

지금은 수감 중인 헬레느가 화염 마법을 고집했던 것처럼, 이안 역시 일관된 취향이 있었다.

얼음과 냉기. 그 차가운 취향과 어울리는 무대가 수련장에 꾸며졌다. 겨울이란 주제를 가진 ‘마법 쇼’의 무대를.

콰득! 콰드드득! 콰드득!

물 만난 물고기가 이럴까?

이안은 그저 손짓 한 번 했을 뿐이다. 한데 사방으로부터 뱀처럼 휘어지는 얼음기둥이 솟아났다.

겨울과 빙판이란 환경적 요소가 얼음기둥의 생성을 잔뜩 부추겼다.

(또…… 얼음판인가.)

그 광경에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중얼대는 스파르토이였다.

어지간한 충격은 몽땅 흡수해 버리며, 정신적 피로조차 느끼지 않는 그였지만, 움직임이 굼뜨다는 게 유일한 약점이었다. 하물며 이런 빙판길에서는 더더욱 도드라졌다.

(처음에는…… 알 수 없었다.)

용아병 스파르토이가 사방에서 엄습해오는 얼음기둥을 박살 내며 읊조렸다.

창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두터운 얼음기둥들이 뭉텅이로 파쇄되었다.

(그대가 이런…… 인간이었을 줄은.)

용아병 또한 감정이 있다. 페어리 퀸만큼의 기복을 갖진 않았으나, 기쁨과 분노, 슬픔과 지루함 등 기본적인 감정은 느낄 수 있다.

그런 그가 현재 품고 있는 감정, 그것은 바로 ‘후회’였다.

(내 진즉…… 알았다면.)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자그마치 88일째다.

88일째 이안의 상대가 되어줬다. 아니, 말이 상대지 사실상 허수아비나 다를 바 없었다. 조금 움직일 줄 알고, 가끔가다 팔 한 번씩 휘두르는 허수아비. 스파르토이의 꼴이 딱 그랬다.

(그대를 찾아오지…… 않았을 터.)

하염없이 창대를 휘두르는 용아병 스파르토이.

이제와 누구를 탓하겠는가? 하필 이런 시국에 잠에서 깨어나, 기이한 흐름에 휘말려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자신의 실책인 것을.

(이 또한…… 그분들의…… 뜻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괜찮아지는 것도 같았다. 아마 드래곤을 향한 충성심만큼은 권속 중 으뜸에 속하리라.

(둔한 놈. 나였으면 벌써 한방 먹여줬을 텐데!)

한편 이안과 스파르토이의 격돌을 지켜보는 한 무리가 있었으니, 바로 베네사와 레디오, 더글라스였다. 심지어 페어리 퀸조차 인간의 모습으로 함께 있었다. 뒤편에 가득 쌓인 하프 엘릭서와 회복 물약도 보였다.

(아주 그냥 권속 망신을 다 시키는구나!)

“권속? 여왕님. 그게 무엇인가요?”

(으응? 아, 그런 것이 있단다. 너희 인간들은 말해줘도 알아듣지 못하느니라. 관심두지 말도록.)

“네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인과 고양이의 관계였던 베네사와 페어리 퀸, 바로 그녀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녀들은 수련장 멀찍이 흙의 장벽으로 만들어진 보호지대 속에서 수련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가까워진 것 같았다.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들이 국가에 소속되었듯 이 몸 또한 저 뼈다귀와 소속이 같다는 뜻이다. 물론 너희가 계급이란 것을 나누는 것처럼, 이 몸 또한 저 뼈다귀와는 격이 다르지. 내가 황족이라면, 저 놈은 노예니라, 노예.)

이안은 페어리 퀸의 정체를 가족들에게 딱 절반 정도 털어놓았다. 물론 드래곤의 권속이니 용언이니, 그런 자세한 정보는 말하지 않았지만, 페어리라는 종족들의 여왕이며 이안의 일을 돕고 있다는 수준까지만 얘기해 뒀다.

“그렇구나. 그럼 여왕님과 저기 저분…….”

(뼈다귀 놈.)

“아뇨. 성함이 그…… 스파르토이 님께서는 몬스터가 아니신 건가요? 오크나, 고블린처럼…….”

(뭐라? 무엄하도다!)

“죄, 죄송해요! 제가 그만 실수를……!”

물론 대외적으로는 여전히 방도가 없었다.

하여 가족들과 있을 때에만 인간의 모습을 허락해 둔 상태였다. 임시방편에 불과했으나, 그럭저럭 잘 따라주는 페어리 퀸이었다.

(아, 아니다. 착각할 법도 하지. 우리는 오랜 세월 인간들과 교류하지 않았으니까. 고개 숙일 것 없느니라.)

오히려 베네사의 말이라면 꼼짝을 못하는 편에 속했다.

내뱉는 말투만 권위적일 뿐, 행동은 전혀 권위적이지 않았다. 잠시나마 애완 고양이로서 베네사에게 받았던 애정 때문일까?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낀 것이지만, 마기는커녕 한 점 얼룩조차 느껴지지 않는군. 이런 인간은 처음이로다.’

페어리 퀸은 베네사의 영혼을 볼 때마다 그 점이 신기했다.

자신의 권능인 ‘마기를 보는 눈’.

그 눈으로 아무리 들여다봐도 한결같았으니까. 표현하자면,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인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신기하단 말이지.’

단언컨대 처음이다. 바로 옆에 있는 인간 남자, 레디오도 얼룩이 존재한다. 그 아들이라는 소년 역시 마찬가지다.

뿐일까? 거의 모든 인간은 저마다 마기의 얼룩을 지녔다. 단지 그 농도가 무척 미미하며, 침식되지 않았을 뿐.

‘그에 비해 아들이란 놈은…….’

사실 이안도 깨끗한 심성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평범한 인간보다 수십 배는 얼룩진 존재였다. 한데도 페어리 퀸이 처음부터 이안을 믿었던 이유, 간단했다. 침식될 확률이 제로였으니까.

‘믿기는 힘들지만, 그렇게 보인다고. 내 눈에는.’

저토록 얼룩이 졌음에도 침식되지 않을 존재나, 아예 얼룩 한 점 없이 깨끗한 존재나. 쌍방이 참으로 진귀한 인간이었다. 심지어 그 둘이 모자지간이라니?

(어미 인간.)

“네에?”

(내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

“말씀하셔요. 무엇이든.”

(네 아들의 아비는 도대체 어떤…….)

여왕의 질문이 이어지는 그때였다.

“여왕님.”

그 소리는 마치 지척에서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나 실상은 저 멀리, 수련을 빙자한 마나 태우기에 한창인 이안 페이지의 목소리였다.

“슬슬 들어오시죠.”

마나를 통해 전해지는 이안의 한마디.

그 한마디에 페어리 퀸의 쪼그만 날개가 힘껏 저어졌다. 화색까지 돌았다. 단언컨대 오늘 보여줬던 표정 중 가장 생기발랄한 표정이었다.

(오냐, 사양하지 않으마!)

그녀는 쏘아진 화살과도 같았다.

단숨에 수련장 중심으로 날아들었다.

지금부터 제2막의 시작이었으니까.

이안의 마나와 체력, 정신력까지.

3요소를 몽땅 소모시키는 수련.

바야흐로 1 : 2 매치의 차례였다.

“아……!”

이를 눈치챈 베네사가 탄식했다.

매번 만신창이로 돌아오는 아들을 살피고자 직접 수련장에 대기해온지도 88일째.

용아병 스파르토이와의 수련까지는 괜찮았다. 이안에게 접근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을 88일간 지겹도록 봐왔으니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페어리 퀸까지 가세한 수련은 정말이지 오장육부가 타들어가는 심정이었다.

“사, 살살해 주세요.”

그녀의 바람은 페어리 퀸에게 닿지 않았다. 이미 수련장 한복판까지 날아가 번개를 불러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제한은 존재했다. 이안의 명령에 따라 2클래스 수준의 번개밖에 불러올 수 없었다. 그 이상으로 내리쳤다간 주변 일대가 남아나지 않을 터이니.

“…….”

베네사의 두 눈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방금 전 수다를 떨던 그녀가 아니었다.

찔끔거리면서도 결단코 놓치지 않았다.

하나뿐인 아들, 이안 페이지의 모습을.

‘집중해야 해. 집중.’

그래야 필요할 때 멈출 수 있으니까.

탈진하자마자 대처할 수 있으니까.

‘대단하시군.’

그런 베네사의 모습에 바로 옆 레디오는 감격했다. 아무리 여린 심성의 소유자라도 어머니는 어머니였다. 그녀를 보고 있자니 문득 더글라스의 친어미가 떠올랐다.

‘그녀도…… 강한 어머니였지.’

잠시 상념에 잠겼던 레디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갑작스레 보호지대 밖으로 튀어나가기 시작한 베네사였다. 덕분에 레디오 또한 상념 속에서 빠져나왔다.

“페이지 부인!”

허겁지겁 달려가는 베네사의 손에 포션이 들려 있었다. 이안이 쓰러져 버린 탓이었다.

이제 적응할 때도 되었거늘, 베네사는 언제나 그렇듯 목숨이라도 걸린 것처럼 달려갔다.

“이런!”

그 모습을 본 레디오와 더글라스도 뒤늦게 뜀박질을 시작했다. 일대의 겨울철 같았던 추위도, 빙판이 되어버렸던 흙바닥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술자의 의식이 끊어져 버렸다는 증거였다.

“이안! 이안!”

물론 죽지는 않는다.

죽을 가능성조차 없다.

한데도 베네사는 눈물을 글썽였다.

이안에게 회복 포션을 먹여주면서.

“이거 참.”

뒤늦게 온 레디오가 그 광경을 바라봤다. 이제 이안을 업고 장벽 너머 마차로 가 저택으로 돌아가는 일정이 남았다.

벌써 수십 일째 반복되어 온 일상,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다.

‘이게 정말 수련이 맞기는 한 건지…….’

레디오의 아주 솔직한 심정.

비단 레디오 뿐만이 아니었다.

여기 모인 모두가 생각했다.

* * *

툭! 툭!

그야말로 익숙한 침실.

이안이 두 눈을 천천히 떴다.

수련 시작일로부터 89일 차였다.

툭! 툭툭!

이안이 혼절에서 깨어난 직후 가장 먼저 확인해 본 것, 그것은 바로 마나하트의 상태였다.

마나와 체력, 정신력까지 완벽하게 방전시킨 뒤 혼절한다. 이후 깨어나 마나하트의 동향을 살핀다. 벌써 수십 일째 반복되어 온 일상이었다.

‘아직…… 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안.

여전히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6클래스에 도달했었던 당시의 느낌.

그런 확실한 박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간질거리는 느낌은 있는데.’

얼마 전부터 느껴지기 시작한 간질거림. 분명 마나하트로부터 느껴졌다. 이안에게 희망을 주면서도, 막막함까지 선사하는 간질거림이었다.

“흐음.”

수십 일째 거듭된 방전과 회복의 수련.

전생에도 해본 바 없었던 무식한 수련의 방향이 아직 잡히지조차 않았다. 이 간질거리는 느낌으로 봐서는 변화가 있을 것도 같다만.

“으윽……!”

문제는 정말 죽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강렬한 통증이 침대에서 일어나고자 했던 이안의 전신을 강타했다. 표현 그대로 뼈 마디마디가, 근육 하나하나가, 모든 장기가 찢어질듯 욱신거렸으니까.

‘마나의 보호도 소용없다더니만.’

이안은 문득 올리버와의 대련 중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육신을 극한까지 담금질하다 보면, 어느 지점부터 마나의 보호 따위는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다고. 극악의 통증을 느끼게 될 거라고.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진짜였을 줄이야.’

결국 그대로 누워버린 이안.

아무런 생각 없이 천장만 바라봤다.

가끔 멍을 때려주는 것도 괜찮았다.

두뇌가 재조립되는 기분이 들었다.

툭! 툭툭!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까 전부터 들려오는 소리.

창문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어디 우박이라도 떨어지는 걸까?

툭툭! 툭! 툭!

창가 쪽으로 시선을 돌린 이안.

소음의 원인은 우박이 아니었다.

아주 까만 깃털을 가진 새였다.

“까마귀?”

부리로 창문을 두들기는 녀석의 다리에 작은 쪽지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전문적으로 훈련된 ‘연락책용 까마귀’인 것 같았다.

‘아, 그러고 보니.’

도둑 길드에 조사를 맡긴 지도 89일째.

보고할 만한 내용이 생겼을 법도 했다.

‘용의 교단.’

통증을 꾹 참고 창가까지 걸어간 이안.

창문 밖 까마귀가 가져온 쪽지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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