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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78화 (78/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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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78화

    29. 느림보 손님(1)

    “그것이, 남쪽 관문으로 웬 괴물이 접근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통신역참을 통해서 첫 보고가 들어왔고, 목격한 마을마다 사람을 보냈더군요.”

    “괴물이라니요?”

    다짜고짜 무슨 괴물이란 말인가?

    몬스터라도 출몰했다는 걸까?

    “보고론 도마뱀 뼈 같은 언데드 종류의 괴물인 것 같습니다. 일단 느리고, 사람을 공격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합니다만…… 지금쯤 선발대가 대치중에 있을 겁니다.”

    도마뱀 뼈가 두 발로 걷는다?

    한 가지 짚이는 것이 있었다.

    옛 상아탑 지하에서 봤던 괴물.

    아니, 드래곤의 권속이라는 존재.

    ‘그때 그 용아병?’

    이안은 설명을 듣자마자 용아병부터 떠올랐다.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보통 이러한 경우 예상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정확한 위치가 어디죠?”

    “황성 쪽으로 접근 중에 있습니다. 롤프 마을까지 넘어섰다고…….”

    그 길로 성문을 나선 이안. 정확한 위치는 남부 관문에서 조금 떨어진 지점이었다. 이미 수많은 제국군과 마법사들이 남부 관문으로 이어지는 포장 길 한복판에 진을 치고 있었고, 대형 그대로 조금씩 밀려나는 추세였다.

    쾅! 콰앙! 쾅!

    마법사들의 공격적인 마법이 괴물을 강타했다. 표현 그대로 ‘도마뱀의 뼈’를 가진 커다란 뼈 괴물이었다. 머리만 도마뱀의 두개골처럼 생겼을 뿐, 전체적인 몸뚱이는 인간의 것과 흡사했다.

    “무, 무슨……!”

    마법사들의 집중 공격에 눈 하나, 아니, 뼈마디 하나 흔들리지 않는 도마뱀 뼈 괴물. 마치 모든 타격을 ‘흡수’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리 멀쩡할 수 있겠는가?

    “말이 돼……?”

    “꾸, 꿈쩍도 안 하잖아?”

    마법사들이 동요하든 말든, 괴물은 어떠한 대응도 취하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그 목적지는 제국의 수도, 그린리버디움인 것 같았다.

    “아이스 월 준비!”

    이안이 부재중인 이상, 몇몇 고위마법사가 앞장서 선발대 마법사들을 통솔했다. 오직 저 난데없이 나타난 뼈 괴물의 진격을 막기 위하여 모든 역량을 쏟아내고 있었다.

    “사방으로 펼쳐 놈을 가둔다!”

    단단한 얼음의 장벽이 뼈 괴물을 중심으로 동, 서, 남, 북 모든 방향에 수 겹씩 펼쳐졌다. 놈은 이제 빠져나갈 틈조차 없는 상황, 한시름 놓아도 될까 싶었던 그때였다.

    쿵!

    얼음 장벽 전체가 쩌렁쩌렁 울리더니.

    콰앙!

    장벽이 박살 나는 소리가 안쪽으로부터 들려왔다.

    쾅! 콰앙! 쾅!

    그야말로 순식간에 뚫고 나왔다.

    한 겹도 아닌, 여러 겹의 장벽을.

    쿠웅!

    공성 병기조차 부수기 힘든 장벽을 부수고 나온 뼈 괴물.

    놈이 다시금 황성으로 나아갔다.

    여전히 사람을 공격하진 않았다.

    “대체 저런 괴물이 어디서……?”

    중년의 고위마법사 로난이 전의를 잃은 듯 중얼거렸다. 일평생 저런 몬스터는 처음 봤다. 마법사들의 집중 공격에도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단단한 얼음 장벽조차 놈의 진격을 막을 수 없다. 대체 어디서 굴러들어온 괴물이란 말인가?

    “비키시오!”

    마법사 부대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뒤이어 제국군이 나섰다. 말을 탄 수십 명의 제국군 기수들이 넓게 두 갈래로 나뉘어져 달려왔다. 그 사이로 여러 겹의 쇠사슬이 펼쳐져 있었는데, 뼈 괴물의 양쪽을 스쳐가며 옭아맬 계획인 것 같았다. 무려 수십 마리의 전투마다. 진격을 멈춰볼 만도 했다.

    “히이이이잉!”

    하나 그 기대감도 잠시, 달리던 말들이 어느 순간 앞발을 들며 울어댔다. 달고 있던 쇠사슬이 뼈 괴물에게 걸쳐져 팽팽해진 탓이었다. 뿐인가? 오히려 질질 끌려가기까지 했다.

    수십 마리의 전투마가, 뼈 괴물 단 한 마리에게 말이다.

    “마, 말도 안 되는…….”

    그 광경에 선발대로 짜여 괴물을 맞이했던 상아탑의 마법사, 그리고 제국군들 모두가 당혹감에 물들었다. 오직 하나의 생각만을 떠올렸다.

    “지원이 도착해야…….”

    공성 병기든, 더 많은 수의 마법사든, 적어도 선발대 인원만 가지곤 놈의 진격을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지금처럼 무의미한 공격을 반복하며 조금씩 물러나는 게 전부였으니까.

    “선발대 전원, 물러나세요.”

    선발대에 무력감이 짙어지는 순간.

    모두를 안도시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나로 한껏 증폭된 목소리였다.

    “탑주님……?”

    그 어떤 지원보다도 압도적인 차이를 보여줄 존재, 제국의 가장 강력한 무기. 상아탑주 이안 페이지가 새하얀 유니콘과 함께 달려오고 있었다.

    “탑주님, 늦으셨습니다!”

    “전부 물러나! 상아탑주께서 오셨다!”

    선발대의 환호와 함께 유니콘에서 내린 이안. 그가 커다란 뼈 괴물 앞에 섰다. 도마뱀과 흡사한 두개골에 창을 쥔 괴물,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용아병.’

    비록 옛 상아탑의 지하에서 봤을 때보다 커진 것 같았지만, 심지어 그 커져 버린 덩치만큼이나 강력해진 것 같았지만, 어찌 되었든 용아병이 분명했다. 아니, 정확히는…….

    ‘빈껍데기라고 했지.’

    당시 페어리 퀸의 설명으로는 저 모습이 빈껍데기라고 했다. 본체가 영혼이며, 행방을 알지 못한다고도 들었으니까.

    ‘설마 복수라도 하러 왔나?’

    제국의 수도 그린리버디움을 콕 집어 찾아온 이상, 원인은 두 가지밖에 없었다. 이안 자신이 그 원인이거나, 같은 권속인 페어리 퀸을 찾아왔거나.

    ‘일단 막는다.’

    당장 괴물의 진격부터 막아야 했다. 누구도 저 용아병 껍데기가 도시에 닿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혼란이 발생하지 않겠는가?

    ‘물리적인 힘이 먹히지 않는다면.’

    이미 앞선 선발대의 대처를 보았다.

    보다 색다른 저지 방법이 필요했다.

    “인탱글.”

    땅속 덩굴을 불러내는 인탱글 주문. 낮은 클래스의 주문이지만, 6클래스 마법사가 지닌 정수를 활용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안이 새까만 지팡이로 바닥을 내려치자, 곧 압도적인 숫자의 덩굴들이 지면 아래로부터 용솟음치듯 튀어나왔다. 마법에 익숙한 마법사들조차도 경악해버릴 규모였다.

    “저게 인탱글이 맞긴 맞아……?”

    마법사들이 이럴 지언데, 상대적으로 익숙하지 못한 제국군은 어떻겠는가? 입만 쩍 벌린 채 이안의 마법 쇼를 감상할 뿐이었다. 마법사들이야 말이라도 꺼내지, 그들은 페럴라이즈 주문이라도 걸린 것처럼 굳어버렸다.

    “잡아.”

    이안의 작은 한마디.

    사람들은 듣지 못했을 그 한마디가 수만 갈래 덩굴들에게는 똑똑히 전해졌다. 즉시 용아병의 빈껍데기를 바라봤고, 달려들었다. 뼈로 이루어진 놈의 팔, 다리, 목, 몸뚱이, 그리고 거대한 창대까지. 모조리 휘감아 버렸으니까.

    우직! 우지직!

    물론 그 수만 갈래 덩굴만 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했다. 놈이 팔을 휘두르자 감겨 있던 덩굴들이 뿌리째 뽑혀 나올 정도였다. 실로 무지막지한 힘이었다. 옛 상아탑 지하에서 상대했을 때와는 근본부터 달랐다.

    “소환술.”

    물론 이안의 수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침착하게 마법진을 그려냈다. 늑대정령이나 유니콘, 살라만다를 소환할 때보다도 복잡해진 마법진, 그 안쪽으로부터 무언가가 소환되기 시작했다.

    “땅의 정령, 노에스.”

    상급 땅의 정령 ‘노에스’.

    그 흙빛 피부의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결코 용아병보다 떨어지지 않는 크기였다.

    “노에스, 저놈 밑으로.”

    짧은 명령과 함께 노에스의 커다란 몸뚱이가 지면 아래로 스며들었다. 그로부터 몇 초나 지났을까? 덩굴을 찢거나 뽑아내던 용아병의 발 아래로 큼직한 손바닥이 튀어나왔다. 노에스의 구릿빛으로 물든 양쪽 손이었다.

    “묻어.”

    이안의 명령은 역시나 짧았다.

    그럼에도 역시나 알아듣는 노에스였다.

    용아병의 양쪽 발목을 낚아채는가 싶더니.

    쿵! 쿠웅! 쿠우웅!

    바닥으로 끌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쑥쑥 처박혀 구덩이까지 생겨났다.

    한 치의 망설임도, 막힘도 없었다.

    구덩이 자체가 노에스의 의지.

    완력이 아닌, 순리의 결과였다.

    “…….”

    마법에 익숙한 마법사들마저 입이 벌어졌다. 저 광경을 보고 무슨 소리를 지껄일 수 있겠는가?

    자신들의 마법으로는 단 몇 초조차 멈춰 세우지 못했던 뼈 괴물, 그 괴물을 순식간에 매장해버렸다. 그야말로 더한 괴물이 나타난 거다.

    “후우!”

    한숨 큼직하게 고른 이안.

    그가 구덩이 앞으로 다가갔다.

    마무리를 짓기 위함이었다.

    “씨 오브 라바.”

    이안이 구덩이 속으로 용암을 불러냈다.

    용아병도 용암 속에서 버틸 수는 없으리라.

    (페어리의…… 여왕…… 함께 있었던…… 인간인가?)

    머릿속으로 울려 퍼지는 목소리.

    페어리 퀸과 똑같은 방식이었다.

    단지 여인의 목소리가 아닐 뿐.

    중후하면서도 느릿한 목소리였다.

    ‘……?’

    이안이 황급하게 주문부터 거두었다.

    그러고는 용아병의 얼굴을 살펴봤다.

    구덩이 밖을 올려다보고 있는 용아병.

    그의 옹이진 눈 뼈에 푸른빛이 고였다.

    ‘영혼이 있다?’

    옛 상아탑의 지하에서 용아병을 만났을 때, 페어리 퀸은 용아병의 눈부터 보았다. 분명 영혼이 없으니 뵈는 것도 없다며 마음껏 공격하라 했다.

    그때는 텅 비었던 양쪽 눈 뼈가, 지금은 푸른빛의 안광을 살벌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껍데기가 아닌 겁니까?”

    몸을 낮춘 이안이 물었다. 사일런스 마법을 펼쳐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무형의 주문이며 방금까지 마나가 뿌려졌던 땅이다. 아무도 눈치챌 수 없었다.

    (껍데기라…… 그렇게…… 말했나 보군……. 지금의 나는…… 빈껍데기가…… 아니다. 그분들의 방패…… 스파르토이라는 이름을…… 가졌지…….)

    느릿느릿한 걸음과 참으로 잘 어울리는 말투. 문득 옛 상아탑의 지하에서 페어리 퀸이 내뱉었던 한마디가 떠올랐다. 빈껍데기라 답답한 목소리 안 들려서 좋다고 했던가?

    ‘이래서 그런 거였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던 이안.

    그가 용아병 ‘스파르토이’에게 말했다.

    물어볼 것이 참으로 많았으나, 당장은 하나였다.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가 뭡니까?”

    그 까닭부터 물어야 했다.

    이후의 선택을 위해서라도.

    (페어리의…… 여왕을 만나러…… 왔다.)

    “여왕을 말입니까?”

    (이해하기 힘든…… 문제가…… 생겼다. 권속들과 상의하고…… 싶었으나…… 찾을 수 있는 자…… 그녀밖에…… 없더군.)

    거기까지 들은 이안이 곧장 주변부터 살폈다. 용아병에게 사정이 있다는 건 알겠다. 누구를 만나러 왔는지도 파악했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적이 아니었으니까.

    ‘어떻게 빼내지?’

    지켜보는 눈이 참으로 많았다.

    곧 대규모 후발대까지 도착할 터.

    이야기나 나누고 있을 상황이 아니란 거다.

    “일단 페어리의 여왕을 만나러 오신 건 알겠습니다. 문제는, 방법이 틀렸다는 거죠. 이렇게 무작정 오시면 어찌합니까?”

    (방법이…… 없었다.)

    그래. 없었다니 없었던 거겠지.

    하지만 계속 없어서도 아니 된다.

    이 상황을 자연스레 타개할 방법.

    이안에게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하나 지금은…… 방법이…… 있을 것도…… 같군.)

    “뭡니까? 그 방법.”

    (간단…… 하다.)

    그 말을 끝으로 용아병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두개골로부터 푸른빛이 빠져나왔다. 안광도 사라졌다. 영혼이 본체라고 하더니만, 껍데기에서 빠져나온 모양이었다.

    (처리…… 하여라. 저것은 빈…… 껍데기…… 그대의…… 마법으로도 훼손…… 시킬 수…… 있으니.)

    약화된 빈껍데기를 처리함으로서 사태부터 종결시켜라. 용아병의 말은 그러한 뜻이었다. 생각보다 똑똑한 존재였다. 지나칠 정도로 느린 말투에 비하자면 더더욱.

    “씨 오브 라바.”

    이안은 용암의 물결을 불러내 구덩이 속으로 흘려보냈다. 초고열의 용암이 구덩이를 가득 채울 무렵, 고위마법사 데커드를 필두로 한 대규모 후발대가 도착했다.

    “어찌 된 게요? 그 괴물은?”

    후발대의 통솔을 맡은 데커드.

    그가 우두커니 선 로난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끝난 것 같소.”

    “뭐요? 어떻게?”

    “저기, 탑주께서…….”

    데커드가 상황을 살폈다.

    거대하고도 깊어 보이는 구덩이.

    그 속으로부터 피어오르는 연기.

    아마 저 속에 괴물이 빠졌을 터.

    “허어…….”

    노법사 데커드는 상황을 직접 보지 못하였다. 그렇기에 탑주가 직접 해결했구나, 그저 그 정도로만 여겼다. 하나 직접 본 로난, 그리고 선발대의 사람들은 달랐다.

    6클래스 마법사가 지닌 압도적 힘의 차이, 그 진정한 능력을 두 눈으로 목격했으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더…… 괴물이군.”

    로난의 얼빠진 중얼거림에.

    “괴물이라니? 그 괴물 말이오?”

    데커드가 의아함을 느끼며 물었다.

    “아니, 탑주. 우리들의 새로운 수장 말이오.”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는 로난.

    그 목소리에 경악스러움이 묻어났다.

    측정치와 기록으로만 접해본 6클래스.

    그리고 방금 두 눈으로 목도한 6클래스.

    감히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엄청난 간극의 차이를.

    “상아탑주가 어느 정도인지, 이제야 감이 조금 잡히는 것 같소. 분명 일부만을 보여줬을 터인데, 저런 힘이라니…….”

    뛰어난 경지를 본다면 닿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법이다. 특히 로난은 고위마법사다. 마법사 중에도 천재로 분류되는 존재 아니겠는가? 한데 그 천재조차 아득함만 느껴질 뿐이었다. 일말의 호승심도, 닿고 싶다는 욕구도 일어나지 않았다. 진심으로.

    “데커드 공.”

    “듣고 있소.”

    “어지간하면…… 따릅시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게요?”

    밑도 끝도 없는 로난의 제안.

    그 제안에 담긴 뜻은 간단했다.

    “앞으로 상아탑주가 행하고자 하는 모든 것, 웬만하면 따르자는 얘깁니다. 그는 아무래도…… 인간을 넘어선 것 같으니.”

    인외의 경지.

    로난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상아탑주, 이안 페이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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