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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77화 (77/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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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77화

    28. 드래고니안(4)

    “정말…… 똑같군.”

    5황자 라그나르의 침소.

    황궁의 하인 하나가 라그나르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놀랍게도 라그나르와 똑같은 얼굴, 백금발의 머리칼까지 갖고 있었다. 숨겨진 쌍둥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찌 나간단 말이냐? 바깥에는 상아탑의 마법사들이 나를 감시하고 있다. 이안 페이지, 그 빌어먹을 놈이 깔아둔 마법사 놈들이지. 변복 정도로는 속일 수 없을 텐데?”

    라그나르가 황궁에 감금된 지도 어느덧 수십 일이 지났다. 공식적인 감금령은 아니었으나, 먹고, 자고, 독서하고, 산책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 감금이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얼마 전부터는 마법사들까지 대거 황실 안으로 들어와 라그나르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교주께서는 현재의 상아탑주, 그자보다 훨씬 위대한 마법사이기도 하시니.”

    “뭐? 교주?”

    라그나르도 안다. 6클래스의 마법사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한데 그보다 뛰어난 마법사라니? 그보다 교주는 또 무엇이고?

    “자세한 건 직접 뵙고 말씀을 나누시지요.”

    라그나르와 똑같은 얼굴의 하인. 그가 서책 한권을 펼치자 침소에 ‘포탈’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전 탑주 허버트가 사용했던 ‘포탈의 서책’, 그것과 똑같은 효과였다.

    “이, 이건 뭐지?”

    “들어가시지요. 수도 밖으로 통하는 포탈입니다.”

    “포탈?”

    의심스러움을 느낀 라그나르가 머뭇거리자, 포탈 안으로부터 누군가의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노쇠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전하. 소장의 손을 잡으시옵소서.”

    “덤필 경?”

    손과 목소리의 주인은 제1 황실기사단장 ‘덤필 모릿’이었다. 탑주가 처형되던 날, 절망 속으로 빠지기 직전이었던 라그나르에게 사다리를 내려준 바로 그 노기사 말이다.

    “…….”

    마음을 굳힌 라그나르가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그 건너편은 밤하늘이 깔린 숲이었다. 흔히 볼 수 있는 불빛 한 점 없었다. 단 한걸음 만에 수도 밖 어딘가로 빠져나온 거다.

    “허……?”

    매사에 냉정한 라그나르도 당혹감을 피하지 못했다. 기상천외한 마법이 아니던가? 커져 버린 두 눈과 벌렁거리는 심장을 쉬이 진정시키기가 어려웠다.

    “너무 놀라실 것 없습니다.”

    “탑주도 이런 재주는 없었는데……?”

    “전하. 허버트 그 친구가 정말 스스로의 힘으로 탑주의 자리까지 이르렀다 보십니까? 과분한 힘을 받았음에도 일신의 영달만 쫒았던 자입니다. 어차피 숙청의 대상이었지요. 스스로 자멸해준 덕분에 할 일을 덜었습니다만.”

    와인색 후드를 뒤집어쓴 노기사.

    덤필 모릿이 앞장서 걸으며 말했다.

    “세상은 넓습니다. 선택받은 소수의 존재들만이 그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지요. 전하께서는 선택을 받으셨습니다. 폐하께서도 받지 못했던 선택을 말이옵니다.”

    “선택?”

    “예. 선택입니다. 교주께서는 전하를 가장 이상적인 군주로 여기셨습니다. 무지몽매한 백성들로부터 낡은 진리를 멸하고, 새로운 진리의 시작을 알릴 이상적인 군주 말이지요.”

    낡은 진리, 새로운 진리.

    라그나르는 알아듣지 못했다.

    ‘도대체 뭐지? 이놈들.’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딱히 들은 게 없으니까. 탑주의 처형 당일 받았던 편지의 내용은 그저 ‘도와줄 테니 잠자코 기다리라’는 내용이 전부였다. 하여 덤필과 관련된 세력이 반정이라도 노리는가 싶었다. 한데 아닌 것 같았다. 아까 그 자신과 똑같이 생긴 하인하며, 포탈과 같은 신비로운 마법에 교주란 호칭까지.

    ‘……교단?’

    국교인 란데오르의 교단을 제외한 수많은 종교들. 그런 이단에 관련된 여러 풍문은 라그나르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혹시 이들도 그런 교단 중 하나가 아닐까?

    ‘낡은 진리를 멸하고 새로운 진리를 시작한다. 국교의 변경이라도 원하는 건가? 그 도구로 황족인 나를 이용하려는 것이고.’

    과연 라그나르의 두뇌회전은 빨랐다. 몇 가지 단서만 가지고도 진리를 조합해냈다. 또한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런 도구라면 환영이다. 황제로 만들어준단 소리가 아니겠는가?

    ‘물론, 도구는 내가 아니라 네놈들이야.’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인 라그나르.

    덤필의 뒤를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수도와 제법 떨어진 야산의 숲속.

    그곳에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오셨군요.”

    눈에 띄는 것은 바위였다.

    아주 큼직하기 짝이 없는 바위.

    그 바위를 중심으로 모여 있었다.

    덤필처럼 와인색 후드를 쓴 사람들이.

    “황자 전하를 뵈옵나이다.”

    덤필과 라그나르의 접근을 인지한 와인색 후드의 사람들이 먼저 예를 갖추었다. 정석적으로 배운 예법이 묻어났다.

    ‘귀족이다.’

    대략 스무 명 정도 될까? 잘 다듬어진 예법으로 볼 때 귀족에 준하는 인물들이었다. 밤인데다가 후드까지 써 얼굴을 살피긴 어려웠으나, 그 점 하나는 확실했다.

    ‘평범한 집단은 아니다.’

    어찌 이 정도의 집단을 아무도 모를 수 있었겠는가? 그만큼 많은 것들을 통제할 힘이 있다는 거다. 전 탑주 허버트조차 한통속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었을 터.

    “인사 나누시지요. 오늘은 교주께서 직접 방문하시는 비밀 집회이니 만큼, 황성 내 최상위 교원 분들만 따로 모셨습니다.”

    덤필의 안내에 따라 교원이란 자들과 인사를 나눈 라그나르. 그럴수록 놀라움이 뒤따랐다. 생각보다 익숙한 얼굴이 많았으니까.

    ‘이 정도라면…….’

    생각했던 것보다 커다란 세력이다.

    지푸라기의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반갑습니다. 설마 여기서 공을 만나게 될 줄은.”

    빠르게 생각을 마무리한 라그나르.

    그가 더 적극적으로 인사를 나눴다.

    이들이야말로 새로운 지지 세력.

    또한 황제로 가는 길의 도구였다.

    저들 역시 자신을 도구라 여길 테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어.’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 아니겠는가? 지금은 아무런 미련 없이 도구로 쓰여 줄 차례였다. 상상 이상으로 거대한 세력의 손바닥 위에서.

    “한데, 제가 아직 잘 모릅니다. 여러분이 어떤 대의로 모였는지, 어떤 존재를 위하여 일하시는지. 같은 배를 타게 된 이상, 저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씀을 해주시지요.”

    방향을 확실하게 정한 라그나르가 모두에게 말했다. 듣는 이로 하여금 신뢰를 주는 목소리, 라그나르의 무기 중 하나였다.

    “물론입니다. 다만, 전하께 모든 진리를 일깨워 드릴 분은 저희들이 아니옵니다. 어찌 미물 따위가 세상의 진리를 왈가왈부할 수 있겠습니까? 그 권한자께서는 따로 계십니다.”

    세상의 진리, 미물.

    지극히 광신도적인 표현이다.

    그 권한자는 ‘교주’란 인간이겠지.

    가까스로 조소를 참아낸 라그나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마침 오시는군요.”

    덤필의 목소리에 전원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놈처럼 하늘이라도 날아다니나?’

    ‘그놈’이란 ‘이안 페이지’를 뜻했다.

    놈 역시 하늘을 날아다니지 않던가?

    물론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리라.

    놈보다 강한 마법사라고 했으니까.

    “용의 하나뿐인 후손이시여.”

    이윽고 그 교주란 존재가 나타났다.

    예상처럼 하늘로부터 내려왔다.

    한데, 어딘가 조금 이상했다.

    이안의 비행과는 달랐다.

    마법이 아닌 것 같았다.

    “용의 하나뿐인 후손이시여.”

    “용의 하나뿐인 후손이시여.”

    “용의 하나뿐인 후손이시여.”

    노기사 덤필을 시작으로 속속들이 꿇어앉는 교원들. 라그나르 또한 양쪽 무릎을 꿇었다. 결코 익숙하지 않은 자세였으나, 꾹 참고 고개부터 올렸다. 교주를 보기 위함이었다.

    ‘용의 후손?’

    신이 아니라 용의 후손이라니?

    용을 모시는 종교라도 되는 걸까?

    마법의 시초라 불리는 드래곤을 왜?

    ‘……?’

    정말이지 한순간이었다.

    보자마자 짐작할 수 있었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교주란 존재.

    그 존재의 외형만 봐도 느껴졌다.

    용의 하나뿐인 후손이라는 말.

    말 속에 담긴 진정한 의미가.

    ‘사람이…… 아니라고?’

    교주란 자는 결코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사람과 비슷한 구석도 보였다.

    인간과 흡사한 얼굴과 몸뚱이.

    두 팔과 다리까지 가졌으니까.

    단지, 예외가 있다면.

    ‘날개, 그리고…… 꼬리?’

    그렇다. 인간의 몸에 날개와 꼬리가 달린 형상이었다. 실로 괴기스러운 날개와 꼬리였다. 저 커다란 날개를 보라. 깃털로 이루어져 풍만한 날개가 아닌, 거칠게 뻗어나간 가지와도 같은 날개를. 붉은 비늘까지 더해지자 흉악함마저 느껴졌다.

    ‘꼬리도 흉기나 다름없군.’

    날개도 날개다만, 라그나르의 눈에는 날개보다 꼬리가 더 흉측했다. 붉은 빛깔의 비늘로 뒤덮인 꼬리였는데, 날카로운 뿔들이 불규칙적으로 울퉁불퉁 돋아나 있었다. 한 번 휘두르기만 해도 인간의 사지를 찢어버릴 기세였다.

    “라그나르, 그린리버라고 했던가?”

    태어나 처음 받아본 극하대.

    그럼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눈앞에 이 괴물이 가진 권력.

    생김새만으로 느껴지는 무력.

    반드시 잡아야 할 ‘끈’이었다.

    “그린리버 제국의 다섯 번째 황자, 라그나르 그린리버라고 합니다. 용의 후손을 뵙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그런 라그나르를 무표정으로 응시하는 교주의 눈. 그것은 결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눈동자가 아니었다. 단언컨대 악어나 뱀, 파충류의 것과 흡사한 형태였다.

    * * *

    이안이 도둑 길드 ‘데이 브레이크’에게 일을 맡긴 이유는 생각보다 다양했다. 미리 언급했듯 실력 좋고 입이 무거운 까닭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바로 그곳의 길드장 크루드가 ‘독실한 신자’라는 점이다.

    ‘어울리지는 않지만.’

    제국의 국교이자 타 종교를 완강하게 배척하는 ‘란데오르 교단’. 놈은 바로 그 교단의 신자였다. 여유가 생길 때마다 성서를 꾸준히 읽고 필사할 정도로 독실하다. 즉, 크루드의 입장에서 용의 교단이란 반드시 배척해야 할 사이비나 마찬가지. 보다 공격적인 정보수집에 나서지 않겠는가?

    ‘이제 남은 건…….’

    이제 고작 하나의 일을 시작했을 뿐이다. 할 일이 태산과도 같았다. 먼저 상아탑의 결정권을 분산적으로 재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행동이 자유로워질 테니까. 이안은 탑주의 방에 박혀 업무만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도둑 길드에만 의존할 수는 없어. 개인적으로 수소문을 해보는 게 좋겠지. 페어리 퀸의 지식도 빌리고.’

    거기까지 생각하자 할 일만 더 떠올라 버렸다.

    바로 정보를 들으며 맺은 페어리 퀸과의 약속.

    ‘그 요구도 들어주긴 해야겠는데…….’

    인간의 모습으로 생활하고 싶단 그녀의 부탁,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가족들한테야 진실을 얘기해도 되겠다만, 나머지가 문제다. 근위병과 하녀들, 심지어 외부의 시선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상한 소문이라도 돌면 난감하니까.’

    상식 밖 엄청난 미녀가 상아탑주의 저택을 들락거린다, 아니, 같이 사는 것 같다! 여기까지만 떠올려도 그려진다. 수많은 소문들이. 소설로 집필해도 수백 권이리라.

    ‘어째 더 바빠지는 것 같네.’

    이안의 한숨이 뿜어지는 그때였다.

    지팡이 주둥이에 장식된 통신구.

    그 통신구로부터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아주 야심한 시각이다. 저택 모두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왔다. 한데 통신구로 연락을 해오시다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이안? 이 시간에 외출이라도 한 거니?]

    통신구로부터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졸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볼 때, 큰일이 난 것 같지는 않았다.

    “잠깐 볼 일이 있어서요. 무슨 일이세요?”

    [난리도 아니야. 상아탑에서 사람들이 오셨었단다. 그…… 상아탑주의 통신구인가? 그 통신구를 놓고 나갔더구나? 명색이 탑주 나리께서 그런 걸 깜빡하면 어쩌니?]

    상아탑주에게는 전용 통신구가 주어지는데, 깜빡한 게 아니라 일부러 두고 나온 거다. 이 지팡이도 몬스터 투기장 건물 근처에 감춰놨었다.

    [그래서 이 통신구를 드릴까 하다가…… 처음에 그랬지? 아무한테도 알려주지 말고, 무조건 장식용 수정구인 척하라고.]

    5년 전, 이안이 어머니에게 고성능 통신구를 드리며 당부했던 말이다. 물론 상아탑주까지 되어버린 지금에 와서야 별 타격은 없겠지만, 부스럼을 만들어 좋은 것도 없다.

    [마법사 분들께서 네가 오면 전해 달라 하셨어. 한시라도 빨리 북쪽 관문으로 와달라고. 병사들도 몰려가는 것 같던데…… 또 무슨 위험한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북쪽 관문.

    수도의 성문 중 북쪽의 문을 일컫는 표현이었다.

    “걱정 마세요.”

    [네가 걱정되니까 그렇지.]

    “세상에 6클래스 마법사 걱정하는 사람, 어머니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편히 주무시고 계세요. 아, 그 고양이…… 에스펠도 꼭 곁에 두시고요.”

    [당연하지. 이미 옆에 있는걸?]

    “그럼 다행이네요.”

    페어리 퀸만 있다면 저택이야 안심이다.

    “소환술, 말의 정령 유니콘.”

    이안은 지팡이를 숨긴 것과 같은 까닭으로 미첼 그린리버의 로브 또한 입지 않았다. 덕분에 자유로운 플라이 주문이 불가능한 상황, 유니콘을 소환해 타고 가는 쪽을 선택했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어머니의 말마따나 문제가 생기기는 생긴 듯 보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황성 내 병사들이 북쪽 관문을 향해 집결되고 있었으니까. 아직 비상을 알리는 종소리까지 울리진 않았으나, 이 기세라면 곧 울릴 것도 같았다.

    “오, 탑주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수도의 북쪽 성벽 관문.

    그곳에 이안을 기다리는 무리.

    상아탑의 정식 마법사들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유니콘에서 내린 이안이 그들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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