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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75화 (7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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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75화

    28. 드래고니안(2)

    “드래고니안?”

    이안으로서도 생소한 존재였다. 용언을 연구하고자 별의별 이족까지 다 조사해 본 그다. 그런 그조차 접해본 바 없는 종족이라면, 사실상 미지의 종족이나 다를 바 없으리라.

    (일족의 수가 여덟? 그 정도로 알고 있다. 단순하게 그분들의 씨를 받아 태어났다고 드래고니안이 되는 건 아니거든. 오히려 불가능에 가깝지. 대부분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버리니까.)

    새로운 사실에 흥미가 동하는 이안이었다. 단순한 표현인 줄 알았거늘, 정말 드래곤과 인간, 혹은 여타종족 사이에 탄생한 ‘혼혈후손’이라도 존재하는 걸까.

    (외형은 기본적으로 너희 인간들과 비슷하나, 어울리지도 않게 그분들의 눈, 날개, 꼬리까지 가졌느니라. 그리고…… 그래. 네 녀석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군.)

    “비슷하다?”

    (인간들의 마법, 술식의 마법이라고 하지? 용언을 물려받지 못한 대신에 그 분야만큼은 타고난 놈들이니라. 아마 지금의 네놈과 비슷하거나, 어쩌면 더 강할 게야.)

    이안 자신보다 강할지도 모른다?

    들으면 들을수록 흥미가 생겼다.

    일말 호승심마저 느껴졌다.

    (아무튼 그 반룡인이, 드래고니안 놈들을 뜻하는 게 맞을 게다. 아마 숨결이란 표현도 브레스를 뜻하겠지. 꼴에 그분들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흉내까지 내더군. 아, 브레스가 무엇인고 하면…….)

    “알고 있습니다. 브레스 정도는.”

    드래곤 브레스.

    이야기책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드래곤의 필살기쯤 될까?

    (물론 그분들의 브레스와 비교하자면 알량하기 짝이 없지. 브레스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란다. 엘릭서라고 했던가? 너희 인간들의 그 조잡한 약이나 따뜻하게 데워주기로는 안성맞춤일 것 같구나.)

    그녀의 말이 확실한 것 같았다.

    반룡인의 뜨거운 숨결.

    드래고니안의 브레스.

    딱 들어맞지 않던가?

    ‘찾기만 하면 된다.’

    그 이후는 걱정할 게 없었다.

    권속의 힘이 작용하지 않겠는가?

    생각을 정리한 이안이 페어리 퀸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죠? 그분들.”

    (모르지. 일전에도 한번 얘기하지 않았더냐? 얼굴 안 보고 산 지가 수백 년이 지났다고. 오히려 그놈들의 행방은 너희 인간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침착하게 입을 여는 이안이었다.

    “그럴 리가요. 저는 그 드래고니안이란 존재를 처음 들었습니다. 방금 여왕님께 말이죠. 용언까지 연구했던 제가 처음 듣는다면, 웬만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결코 허언이 아니다. 그런 존재가 있음을 알았다면 이안이 모를 리가 없다. 일생의 업적으로 용언을 연구했던 이안에게 용의 혈족이란 그야말로 꿈같은 존재 아니겠는가?

    (흐응, 이상하구나. 어찌 페어리의 존재를 알면서 그놈들은 모를 수가 있단 말이냐? 그놈들이야말로 너희 인간들과 가장 가까이 지냈던 권속이거늘.)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페어리 퀸이었다. 하나 이해가 되지 않는 쪽은 이안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세상과 가장 가까이 지내는 권속? 드래고니안들이?

    ‘인간과 가까이 지내는 이족이라고 해봐야…….’

    ‘브룬 힐 산맥’에 거대한 지하 요새를 이루어낸 드워프나, 몇몇 숲의 엘프 일족들이 전부였다. 역사를 통틀어 따져 봐도 그렇다. 한데 드래고니안이라니? 뜬금없어도 너무 뜬금없다.

    (특이한 정신세계를 갖고 있거든. 그 드래고니안 놈들 말이지.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그분들의 위대함을 널리 알리고 싶어서 안달이 난 놈들? 그 과정에서 반쪽짜리 후손인 자신들의 자존감도 덩달아 챙기고자 애쓰는 놈들? 옳지, 딱 맞는군!)

    스스로의 표현이 만족스러운 듯 조그마한 고개를 주억거린 페어리 퀸. 그녀가 계속해서 말문을 이어갔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그랬느니라. 무지몽매한 인간들에게 그분들의 위대함을 알려야 한다. 우월한 권속들이 직접 나서 계몽시켜야 한다. 심심하면 그런 소리를 조잘대고 다녔었지. 실제로 인간 세상에 나가 무슨 짓을 벌이기도 했었을 텐데?)

    드래곤의 위대함을 인간에게 알린다.

    무지몽매한 인간들을 ‘계몽’시킨다.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기는 했다.

    ‘종교, 아마 이름이 용의 교단이었나?’

    이안이 전생에 찾아본 자료 중 하나였다.

    드래곤이란 존재를 신처럼 떠받드는 종교.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사이비보다 못한, 시골구석 종교였지.’

    용언 연구에 도움이 될까 싶어 찾아봤던 ‘용을 모시는 종교,’ 일명 ‘용의 교단’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다. 아니, 종교나 규모 따위를 논하기도 우스웠다. 시골구석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농민들의 등골이나 뽑아먹자고 세워진 사기꾼 단체였으니까.

    ‘그 사기꾼 중에 드래고니안들이 있을 리는 없고.’

    페어리 퀸의 말에 따르자면, 그들은 적어도 현재의 이안과 동일한 힘을 가진 마법사다. 드래곤을 향한 충성과 존경은 물론이거니와, 그런 존재의 후손이라는 자부심 또한 남다를 터.

    “얼마 전까지라 하시면, 정확히 언제쯤이십니까?”

    (글쎄다? 못해도 백 년은 지났겠지.)

    “하…….”

    이안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진즉에 그럴 줄 알았다.

    최소 백 년, 길면 수백 년이겠지.

    사정이 달라졌을 수밖에 없을 터.

    ‘내가 찾았던 교단이 가짜였거나.’

    혹은 세월이 흘러 쇄락했거나.

    최소한으로 잡아도 백년이다.

    고려할 만한 가능성은 많았다.

    ‘20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어났을 수도 있다.’

    이안이 본격적인 용언 연구에 들어갔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이후의 일이다. 그 사이 ‘용의 교단’이란 단체가 지각변동을 일으켰을 가능성도 농후했다.

    ‘조사를 해봐야겠어. 처음부터, 제대로.’

    물론 이안 혼자서 모든 것을 조사하기란 어렵다. 상아탑 고유의 정보조직이 존재하기는 하나, 그들에게 이런 개인적인 조사까지 맡길 수도 없는 노릇, 이번 일은 제3의 힘을 빌리는 편이 옳았다.

    ‘도둑 길드.’

    전생의 이안도 이따금씩 이용했던.

    아니, 오히려 많이 애용했던 힘.

    ‘데이 브레이크.’

    그곳의 수장이란 자가 쓸 만하다.

    썩 마음에 드는 놈은 아니다.

    단지, 입이 상당히 무겁다.

    그 바닥에서도 특히.

    * * *

    뒷골목 세계에서 정보를 파는 단체.

    대륙의 백성들은 그러한 단체를 통틀어 ‘도둑 길드’라고 부르지만, 사실 도둑 길드는 하나의 단체가 아니었다. 도시마다 수많은 도둑길드들이 존재하며, 그중 대부분은 하루 먹고 하루 살기조차 바쁜 ‘좀도둑 길드’나 마찬가지였다.

    “길드장. 손님께서 오셨습니다.”

    “누구지? 이 시간에.”

    반대로, 영세한 좀도둑 길드가 있다면 대형 길드 또한 존재하는 법. 제국의 수도 그린리버디움뿐만 아니라 여러 도시에 분점까지 둔 대형 길드, 통칭 ‘데이 브레이크’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처음 보는 손님이십니다.”

    우락부락한 수하가 말하자 데이 브레이크의 젊은 수장, 뒷골목 세계 여덟 거두 중 하나인 ‘크루드’가 읽고 있던 성서를 내려놓았다. 보기 드문 은발의 소유자였다.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길드장 크루드가 의아함을 느끼며 물었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손님을 가려 받기 시작했다. 철저한 추천제로, 오직 기존의 손님에게 추천받은 사람만이 길드와 접촉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검증된 고객이 되는 것은 그 다음 문제, 물론 첫 만남 역시 추천인과 동행을 해야 한다.

    “그, 그것이, 혼자 오셨습니다.”

    “혼자 왔다고?”

    데이 브레이크 길드와의 접촉 방법은 복잡하다. 심지어 일정한 기간을 두고 그 순서가 바뀐다. 기존의 고객이 아니라면, 혹은 기존의 고객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우연으로라도 접촉하기 힘든 구조다.

    “제기랄, 또 어디서 샜나보군.”

    그렇게 판단한 크루드가 벌떡 일어났다.

    탁자 위 단검 두 자리도 챙겼다.

    아주 고급스러운 단검이었다.

    “가자. 어떤 놈이 흘리고 다니는지 알아내야겠다.”

    데이 브레이크 본점의 대외적인 사업장은 ‘몬스터 투기장’이었다. 인간 검투사 이상의 전투력과 포악함을 가진 몬스터이니만큼 그 인기가 대단했다. 심지어 불법이 아닌 합법이기도 했다. 가축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몬스터의 싸움이었으니까.

    “어디 있지?”

    “구경이나 하면서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몇몇 부하가 사방으로 흩어져 그 손님을, 아니 불청객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마침내 수하들이 투기장 손님 무리로부터 누군가를 데려왔다. 펑퍼짐한 갈색 후드로 얼굴의 절반을 가린 남자였다.

    “그쪽이십니까? 저희와 거래를 바라신다는 분께서?”

    길드장 크루드가 예의를 지키며 묻자.

    “필요한 정보를 살까 해서 왔습니다만.”

    갈색 후드의 ‘손님’이 대답했다. 손에는 몬스터 투기장 도박표가 잔뜩 쥐어져 있었는데, 그 짧은 사이 돈이라도 왕창 걸어버린 모양새였다.

    “잘 찾아오셨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싱긋 웃어준 크루드가 앞장서 걸었다. 그 목적지는 길드의 본부가 아닌, 투기장 건물 한편에 마련된 2층 응접실이었다. 말이 좋아 응접실이지, 고장난 물건을 대충 박아둔 잡동사니 창고나 마찬가지였다.

    “누추하지만 앉으시지요.”

    “어디에 앉으면 됩니까?”

    “뭐 대충, 아무 곳이나요. 하하.”

    크루드의 대답에 갈색 후드를 눌러쓴 남자가 낡은 의자를 세워 앉았다. 그조차도 삐걱거려 제대로 앉기는 힘들었다. 이쯤 되면 낌새를 느낄 법도 한데, 후드의 남자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다른 의자를 뒤적거리는가 싶더니만, 포기하고 바닥에 앉아버리는 기행마저 뽐냈다.

    ‘멍청하거나, 믿는 구석이 있거나.’

    그 여유로운 모습을 지켜본 크루드가 생각했다. 믿는 구석이라고 해봐야 돈이겠지. 가끔가다 존재한다. 이렇듯 돈만 믿고 달려드는 파리들이. 애당초 데이 브레이크는 평범한 도둑 길드가 아니다. 정보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업에 손을 대 돈을 갈퀴로 쓸어 담고 있다. 어지간한 액수나 신분에는 꿈적도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알 만한 놈들이 이럴 리는 없고, 근래에 돈 좀 만진 상인인가?’

    후드 속 남자의 얼굴을 살펴본 크루드. 정보조직의 수장으로서 어지간한 거물들은 꿰고 있었다. 대상인부터 귀족, 상아탑의 마법사, 심지어 황족들의 얼굴까지도.

    ‘후드를 벗겨봐야 알겠는데.’

    정체 파악을 잠시 접어둔 크루드가 수하들에게 턱짓하자 쿵, 하고 문이 닫혔다. 그 앞을 가로막기도 했다. 명백한 감금이었다. 물론 그 대상은 갈색 후드의 손님, 아니 돈만 믿고 여기까지 찾아오신 ‘불청객’이리라.

    “저희 아이들이 먼저 질문을 드렸겠습니다만, 어째서 추천인 분과 함께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거, 꽤 중요시 여기는 규칙인데 말입니다.”

    그래도 확인은 한번 해두자.

    그러한 마음으로 묻는 크루드였다.

    “이 세상 분이 아니십니다.”

    “예?”

    “그 추천인 말이죠.”

    “하하, 이 세상 분이 아니십니까? 어디 다른 세상에서 오셨나?”

    더 들을 것도 없었다.

    횡설수설하는 꼴을 보라.

    벌써부터 당황한 티가 역력하다.

    “누구한테 들었지?”

    크루드가 위협적인 어조로 물었다.

    더는 격식을 차리지 않았다.

    볼 눈도 없고, 들을 귀도 없다.

    애당초 이럴 용도로 만든 거다.

    이 누추한 외부 응접실은.

    “무얼 말입니까?”

    “우리와 접촉하는 방법. 아마 우리 쪽 고객에게서 들었을 텐데, 돈으로 샀나? 아니면 몰래? 그것도 아니면 협박? 친분?”

    빈번한 상황이니만큼 온갖 경우를 언급하는 크루드였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예외란 없었다. 싹 다 블랙리스트 행이다. 유출시킨 손님도, 눈앞에 저 불청객도.

    “정보, 정보 좋지. 근데 그건 아무한테나 파는 줄 아나? 개나 소나 정보 좀 사겠소~ 하면서 몇 푼 휙 던져주면 살 수 있는, 뭐 그런 건 줄 알았나보지? 거 참, 우리가 무슨 정보 창녀라도 되는 줄 알았나 보군.”

    비아냥거렸던 크루드가 단검 한 자루를 뽑았다. 빙그르 돌리는 모양새로 보건데 예사 실력이 아니었다.

    “혹시나 해서 말해주는데, 입 다문다고 끝날 문제는 아니야. 내가 방금 말했지? 거래를 시작하자고. 저기, 저 문으로 멀쩡하게 나갈 수도 있겠지만, 계속 그렇게 다물면 영원히 다무는 수가 있어. 아주 영원히.”

    팍!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크루드가 던진 단검이 불청객의 얼굴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 나무 벽에 꽂히기까지는.

    “일단 얼굴부터 보자고. 어디서 굴러먹던 분이신가?”

    덕분에 불청객의 갈색 후드가 뒤로 젖혀졌다. 가장 먼저 갈색 머리칼과 푸른 눈이 보였고, 햇빛과 친하지 않은 흰 피부도 드러났다. 그래서일까? 아직 완벽한 성인이라고 보기에는 아쉬운 얼굴이었다. 또한.

    “……어?”

    눈에 익다. 크루드 뿐만 아니라 주변의 수하들도 마찬가지였다. 저 얼굴을 모르고서야 이 바닥에서 도둑 길드라고 떠들 수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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