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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74화 (7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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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74화

    28. 드래고니안(1)

    붉은 용의 다섯 숨결.

    5년 전, 이안이 ‘가고일의 눈’을 레디오에게 가져다줬을 때, 그의 선조가 남긴 도감으로부터 찾아낸 미지의 엘릭서다. 무지막지한 재료를 자랑하는 만큼 레디오와 더글라스가 꾸준히 연구했고,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재료까지 몽땅 구비해 둔 상태였다.

    -슬슬 모든 재료를 구해두고 싶습니다. 감이 제대로 잡혔거든요. 조제법 연구의 성과도, 저와 더글라스의 실력도. 아직 이론일 뿐이기는 합니다만.

    몇 달 전, 레디오가 이안에게 그리 언질을 줬다. 이미 구해둔 재료와 도감의 내용, 기타 연구로 낼 수 있는 성과가 극에 도달했다는 뜻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돈으로 구하기 힘든 재료를 마저 구하는 것, 그로 말미암아 엘릭서 조제를 시작하는 것.

    ‘대부분 상아탑에 보관 중인 약재였어.’

    전생의 이안 또한 상아탑주였다. 원체 연금술에 관심이 적었고, 탑주로서 임기조차 짧았던 탓에 정확하지는 않았으나, 보관 중인 약재에 관한 업무라면 여럿 처리해봤다. 마법과 연금술은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까.

    ‘전부 다 있었으면 좋겠는데.’

    물론 탑주라 해도 상아탑의 물건을 마음껏 빼낼 수는 없다. 단지 약재의 일부 정도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개인적인 연금술 연구에 투자한다는 명목쯤이야 탑주의 재량이라는 얘기다. 좋은 엘릭서나 비약을 만드는 것, 그 자체로 상아탑의 큰 힘이 되기에.

    ‘챙길 만한 물건도 별로 없고.’

    상아탑의 창고, 탑주가 직접 관리하는 공간치고는 보유 중인 아티펙트 수준이 대단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 상아탑주 허버트가 숨겨둔 재산, 본래 그중 대부분이 상아탑의 창고에 보관되어야 할 물건이었으니까.

    우우우우웅-!

    이안이 수정구에 마나를 주입하자 방 뒤편 책장 사이로 비밀의 문이 열렸다. 대대로 창고의 관리인이 탑주였던 까닭, 그 까닭은 전혀 거창하지 않았다. 창고의 위치가 탑주의 방 뒤편에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그게 전부였다.

    쿠궁! 쿠구구구구……!

    요란한 소리와 함께 책장 너머 창고가 나타났다. 보여지는 규모만 해도 엄청나게 넓었다. 당연한 얘기였다. 탑주의 방이 넓다고는 하나 다른 층과 비교해 본다면 협소한 축에 속했다. 하면 그 나머지 공간이 어디로 갔겠는가? 절반은 이 창고라고 볼 수 있다.

    “약재저장고가…….”

    수많은 보관품을 지나쳤다. 마법용품부터 아티펙트, 완성된 엘릭서와 고서들까지. 살펴볼 가치는 있겠지만, 당장은 약재가 보관 중인 약재저장고가 우선이었다.

    “저쪽이었나?”

    창고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

    그 오른쪽 귀퉁이에 문이 보였다.

    ‘약재저장고’라는 팻말도 걸려 있었다.

    “흐음.”

    저장고의 내부는 바깥 창고와 달랐다. 역재의 특성에 따라 온도부터 조명, 보관함의 형태와 환경까지 각양각색이었다.

    ‘먼저 만드라고라의 뿌리.’

    보관 중인 약초다.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흉측하게 생긴 꽃잎에 비해 그 뿌리는 평범한 식물과 마찬가지였다. 차이가 있다면 색이 피에 절인 것처럼 붉다는 점.

    ‘암브로시아의 꽃.’

    보라색의 거대한 꽃잎을 자랑하는 암브로시아의 꽃. 이 또한 상아탑 창고에 보관 중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억만금을 쥐고 있어도 구할 수 없었던 진귀한 재료들이다. 한데,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쉬워졌다. 고작 탑주가 되었을 뿐이거늘.

    ‘하기야, 일국의 2인자가 되는 자린데.’

    이안은 상아탑주의 자리가 가진 힘을 사소한 부분에서 체감했다. 지금까지는 너무 익숙했으며, 탑주의 고유 권한으로 무언가 이익을 취해본 적도 없었으니까. 새삼 전생의 자신이 얼마나 세상물정에 어두웠는지 제대로 느껴졌다.

    ‘이 정도면 되겠지.’

    필요한 약재는 전부 챙겼다. 다행이 종이에 적힌 모든 약재가 보관 중이었다.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사상 최고의 엘릭서가 만들어지겠지. 기대감이 절로 부풀어 올랐다.

    ‘얼마나, 아니 어떤 효과가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재료들이다. 이러한 재료로 만들어질 엘릭서, 이름부터 거창한 그 엘릭서의 효능은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지금껏 복용해본 엘릭서와 차원이 다를 터. 창고를 빠져나가는 이안의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 * *

    이안이 창고로부터 챙겨온 약재들을 레디오 부자에게 전해준 지 하루가 지났다. 두 연금술사는 저택 지하에 마련된 연구실로 들어가 밤새도록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이안 또한 한잠도 잘 수 없었다. 마나호흡만 제대로 했어도 피곤함까지 느끼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 마나호흡조차 빼먹은 채 밤을 새버렸다.

    ‘집중할 수가 있어야지.’

    이안의 발목을 잡아온 미성숙한 마나하트, 그 마나하트로 인해 5년이란 세월을 5클래스에 머물렀다. 얼마 전 약간의 성장과 함께 6클래스까지 올라왔다지만, 이마저도 멈춰 버린 지 오래였다. 딱히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이안은 지금 누구보다도 불만족스러운 상황이었다. 마법사 특유의 욕구불만이 극에 달했다는 얘기다.

    ‘7클래스, 8클래스, 그 이상까지. 갈 길이 멀다.’

    물론 ‘붉은 용의 다섯 숨결’이라는 엘릭서가 마나하트의 성장을 촉진시켜줄 거란 보장은 없었다. 그 효과에 대한 기록은커녕 조제의 성공 여부조차 기록되지 않았으니까. 아이의 육체를 어른의 육체로 탈바꿈시키는 것과 똑같은 이치 아니겠는가? 다만…….

    ‘가능한 모든 것을 동원해야 해.’

    그 심정 속에서 얼마나 기다렸을까? 지하 연구실로부터 인기척이 느껴졌다. ‘지푸라기’의 조제와 밤새도록 씨름했던 레디오와 더글라스, 그들이 올라오는 소리였다.

    “아, 이안 님.”

    “대장.”

    피곤에 푹 절은 레디오, 그리고 더글라스가 먼저 이안에게 인사했다. 한데 그들의 표정이 썩 좋지가 못했다. 이안 역시 그 표정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뭔가 문제가 있으신 겁니까?”

    이안의 조심스런 물음에.

    “네. 확실히 있네요. 문제가.”

    고개를 끄덕이는 레디오였다.

    더글라스 또한 한숨을 푹 쉬었다.

    “어떤 문제죠?”

    “……재료 부족입니다. 표현상으로는.”

    “어떤 재료입니까?”

    “그것이…….”

    이안이 적극적으로 나서자 오히려 난색을 표하는 레디오였다. 가능하다면 상아탑의 창고까지 털어오라고 당당히 요구했던 레디오가 아니던가? 그런 자가 저리 난색을 표하다니, 아무래도 보통 재료가 아닌 것 같았다.

    “저희도 당혹스럽습니다. 재료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알 수 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레디오. 그가 손짓하자 더글라스가 이안에게 다가갔다. 녀석의 손에는 레디오 가문의 가보라 볼 수 있는 서책, ‘도감’이 들려 있었다.

    “대장님. 여기 좀 읽어보시겠어요?”

    더글라스가 가리킨 도감의 구절.

    그 부분을 빠르게 읽어보는 이안이었다.

    “용의 피를 물려받은 반룡인의 뜨거운 숨결과 함께, 비로소 붉은 용의 다섯 숨결은 제 빛깔을 찾는다.”

    엘릭서의 대략적인 재료와 조제법이 적힌 페이지, 바로 그 페이지의 마지막 문단이었다. ‘용의 피’를 물려받은 ‘반룡인’의 ‘숨결’이라니? 이안으로서는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이게 무슨 소립니까?”

    “처음에는 그냥 추상적인 구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번 가열하라는 얘기를 거창하게도 써놨구나 싶었죠. 이 도감이 전체적으로 그렇거든요. 이름도 그렇고, 설명도 그렇고. 조상님들 중에 음유시인이라도 겸업하신 분들이 많았던 건지……. 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만, 이 구절은 조제법의 일부분인 것 같더군요.”

    레디오의 얘기는 그랬다. 한 번 가열시켜야만 완성되는 엘릭서라고 여겼다는 거다. 한데 아무리 시도를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새롭게 조제해 본들 마찬가지였다. 밤새도록 방법을 찾았고, 끝내 찾지 못했다.

    “물론 조제법이 틀렸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구절이 걸립니다. 반룡인의 뜨거운 숨결, 정말 반인반룡을 뜻하는 건 아닐 텐데…….”

    이안과 레디오, 더글라스까지 고민에 휩싸인 그때였다. 아까부터 이안의 발목을 툭툭 치는 무언가가 있었으니, 다른 부위도 아니고 발목이라면 이 저택에 딱 한 명밖에 없다. 아니, 지금은 ‘한 마리’라고 표현해야 할까?

    “에스펠,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이안이 분홍색고양이 에스펠을 번쩍 안아 들며 말했다. 그녀가 페어리 퀸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때문에 그녀를 남들처럼 애완고양이 대하듯 다루는 이안이었다.

    (그 반룡인이라는 거, 이 몸은 알고 있느니라.)

    실로 청량한 목소리가 이안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귀가 아닌 정신으로 직결되어 들리는 페어리 퀸의 목소리였다.

    (간단한 문제다. 딱 봐도 알겠군.)

    자랑스레 떠드는 페어리 퀸.

    그 말에 이안이 레디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문제, 알 것도 같습니다.”

    “예? 저, 정말이십니까?”

    “살펴볼 게 있는데,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얼른 다녀오십시오. 얼른.”

    레디오에게 양해부터 구한 이안이 서재 안으로 들어갔다. 재빨리 문부터 걸어 잠근 뒤 사일런스 주문까지 펼쳤다. 아무도 고양이와 함께 들어가는 이안을 이상하게 여기진 않았다. 이안이 데려온 애완동물 아니겠는가?

    “이제 됐습니다.”

    (어휴, 내 팔자야.)

    곧장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페어리 퀸.

    푸념 한 마디 쏟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아까 하셨던 말씀, 계속해 주시죠.”

    (듣기를 원하느냐?)

    “물론입니다.”

    (하면 그 전에 내 부탁부터 들어줘야겠다. 아니, 부탁이 아니라 거래라고 해야겠지. 나는 네놈에게 정보를 주고, 너는 내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것이니까.)

    건수를 하나 단단히 잡은 페어리 퀸.

    그녀가 허공에 빙그르 돌며 말했다.

    분홍빛 더스트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부탁이라 하시면?”

    (이 몸을 지금 당장 보금자리로 돌려보내…….)

    “어차피 말씀 하실 수밖에 없을 텐데요. 기회 드릴 때 적당한 선에서 요구하시죠. 가족들 곁에서 수고하시는 거 아니까 기회도 드리는 겁니다. 여왕님.”

    돌려보내 달라는 요구를 단칼에 거절해버린 이안, 오히려 협박까지 하고 나섰다. 심지어 사실이었다. 당장 실토하라는 명령 한마디면 어차피 말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건방진 인간! 권속의 힘만 아니었어도……!)

    “앞으로 건방진 인간이라는 표현도 금지합니다.”

    (건……! 건…… 이익!)

    그저 말 한마디 들었을 뿐인데, 정말로 ‘건방진 인간’이란 표현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실로 분통이 터지고 또 터지는 페어리 퀸 되시겠다.

    (후우우…… 좋다.)

    결국 체념해 버린 그녀가 한숨을 쉬며 읊조렸다.

    (더는 못하겠다.)

    “뭘 말입니까?”

    (고양이! 더는 이 고양이 행세가 싫단 말이다! 수치스럽고, 불편하고! 차라리 인간의 모습으로 있게 해다오. 똑같이 수치스럽다면, 편하기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

    정말 어지간히 싫었나 보다. 애완고양이 행세가. 이안 역시 생각은 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페어리의 여왕인데, 애완동물 취급을 받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테니까. 권속의 힘만 아니었다면 진즉에 도시가 박살 났으리라.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저, 정말이냐?)

    “미리 말씀드리지만, 인간의 모습으로도 분명 불편한 점이 생길 겁니다.”

    (상관 없다! 무엇이든 고양이보다는 낫지 않겠느냐?)

    “글쎄요. 그럴까요?”

    이안은 아무리 생각해도 고양이의 모습이 더 편할 거라 여겼다. 상상을 초월한 미녀로 산다는 것, 결코 평화로운 삶이 아닐 테니까.

    “대신 며칠만 미루도록 하죠. 가족들한테 설명도 해야 하고.”

    (물론이다. 그들도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슬플 테니까. 특히 네 어미는 나를…… 아니, 고양이를 무척 좋아하더구나.)

    페어리 퀸의 말에 피식 웃은 이안.

    그가 본래의 주제로 돌아왔다.

    “그럼 이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 반룡인이란 존재가 뭔지.”

    (흥, 말씀하고 말 것도 없다. 간단하다니까?)

    허공으로 붕 날아오른 페어리 퀸이 이안의 어깨에 걸터앉았다. 귓가에 속삭이기 위함이었다.

    (반룡인, ‘드래고니안’이라고도 불리지. 나와 똑같은, 그분들의 권속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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