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73화 (73/342)
  • 73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73화

    27. 상아탑의 주인

    “받게. 허버트를 감금했을 때 회수한 지팡이라네.”

    탑주로부터 회수한 탑주의 지팡이.

    이를 이안에게 주는 이유가 뭘까?

    간단했다. 권한을 주겠다는 거다.

    “자네도 잘 알겠다만, 새 상아탑주를 선출하는 과정이 썩 간단하지만은 않아. 확실한 계승자가 있어도 이래저래 할 일이 많지. 원래대로였다면 탑주가 직접 인수인계를 해두고, 상아탑의 모든 동의를 얻은 뒤 황실의 허가까지 받아야 하는 일이니까. 법도와 절차란 것이 원래 그렇거든.”

    하지만 지금의 경우는 달랐다. 탑주가 갑작스럽게 사형을 당해 버렸다. 물론, 그 전까지 인수인계는커녕 후계자조차 두지 않았다. 절차가 크게 꼬여 버렸다는 얘기다.

    “하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일련의 과정을 축소하는 편이 좋을 거라 판단했네. 하여 짐은 자네에게 이 지팡이를 맡겨두고자 해.”

    황실의 허가 등, 따로 복잡하고 번거로운 절차 없이 차기 상아탑주를 선별, 혹은 스스로가 직접 오를 수 있는 권한, 그 권한을 이안 페이지에게 맡기겠다는 얘기였다.

    “직접 탑주의 자리에 앉든, 조금 이르다 싶으면 다른 이에게 그 자리를 먼저 맡기든, 어디 마음 가는 대로 해보게나. 내 기꺼운 마음으로 구경토록 하지.”

    황제의 말에 이안이 내심 혀를 내둘렀다. 탑주의 재산 처리도 그러더니만, 왜 이렇게 모든 권한을 다 주고 선택하게 하는 걸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보통 황자들한테나 내주는 숙제 아닌가?’

    의구심과 함께 이안이 황제를 바라봤다.

    황제의 금안은 여전히 총기가 넘쳐흘렀다.

    “송구하오나, 그 모든 것을 하사받기 전에, 감히 소인도 폐하께 여쭐 것이 있습니다. 그리해도 되겠습니까?”

    “말해보아라.”

    “소인은 황태자 전하의 무사 계승을 도울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제국의 백성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5황자 전하의 야심, 그 야망은 분명 걸리적거릴 수밖에 없겠지요.”

    라그나르의 처리를 논하는 이안이었다.

    “물론 탑주를 잃고 지지 세력이 무너졌다고는 합니다만, 폐하께서도 아시듯 이대로 포기할 분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5황자 전하를 어찌하시겠습니까?”

    이안이 원하는 가장 완벽함에 가까운 복수, 그것은 단순한 죽음을 넘어선 ‘이름의 죽음’이었다. 전 상아탑주 허버트가 그랬듯, 대대손손 최악의 인물로 회자할 불명예스러운 죽음 말이다.

    “……라그나르, 그 아이는 앞으로 어떠한 야심도 펼치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할 예정이네. 새장 속의 새처럼 말이지.”

    황제의 어조가 짐짓 무거웠다.

    “다만, 그 또한 내 아들이 아니겠는가? 황자로서 최소한의 권리만큼은 지켜주고 싶군. 적어도, 내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자신의 목숨이 다하기 전까지는.

    그 부분이 이안의 귀에 쏙 박혔다.

    ‘얼마 남지 않았을 텐데.’

    이안은 황제의 죽음을 알고 있다. 그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안다는 얘기다. 전생의 라그나르가 황제로 등극하기 2년 전에 승하했으니, 큰 변화가 없다면 앞으로 6년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최상품의 엘릭서를 꾸준히 복용하는 황제치곤 일찍 죽는 편이다.

    ‘당시에도 말도 많았지.’

    암살이나 독살 등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되었다. 급속도로 병약해지기에는 너무 건강했던 황제였으니까. 엘릭서의 효능까지 있었으니 말할 것도 없었다. 하여 제국 역사상 최초로 죽은 황제의 시신을 검시했으나, 결국 아무런 문제도 밝혀지지 않았다.

    ‘의혹을 제기했던 사람들만 피를 봤고.’

    그 기억대로라면 조만간이다. 아니, 6년이란 세월이 조만간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넉넉한 시간조차 아니지 않던가?

    ‘6년이라.’

    황제가 건재한 이상 라그나르를 당장에 죽일 명분은 없다. 암살? 물론 가능하다. 아무런 증거조차 남기지 않을 자신도 있다. 문제는, 그렇게 된다면 놈이 ‘비운의 황자’로 영원토록 남게 된다는 거다. 세상은 아직 놈을 ‘진정한 성군감’으로 여기니까. 뿐이랴? 그 배후로 황태자가 지목될 터.

    ‘죽음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자리 잡은 그 이후.’

    5황자쯤이야 어떠한 불명예와 함께 죽든, 세상 누구도 의아함을 품지 않을 만큼 모든 자리가 확고할 때, 놈의 죽음은 그 순간 이루어지리라. 그때까지는 황제의 뜻대로 해줄 수밖에 없겠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6년간 갇혀 사는 것, 그것도 놈에게는 제법 그럴싸한 형벌이 될 거다. 오히려 죽음보다도.

    ‘뭔가 해내지 못하면 미치는 놈이니까.’

    생각을 마무리시킨 이안이 황제에게 말했다.

    “하오면, 그 감시의 총괄을 소인에게 맡겨주십시오.”

    “자네가 직접?”

    “예. 5황자 전하께서 아무런 야망도 가질 수 없도록, 그 어떤 계략도 펼칠 수 없도록 상아탑이 직접 감시하겠습니다.”

    이안의 제안에 고민이 깊어졌던 황제.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읊조렸다.

    “알겠네. 그리하도록 하지.”

    “황은이 망극하나이다. 폐하.”

    예를 갖춘 이안이 내관들에게 다가갔다. 상아탑 최정상의 상징, 거대한 박달나무로 만든 ‘탑주의 지팡이’를 받아들기 위함이었다.

    “잘 부탁하오.”

    이안이 지팡이를 받자 흐뭇한 듯 입을 여는 황제. 더는 하대조차 하지 않았다.

    “상아탑의 관리자, 이안 페이지여.”

    * * *

    이안은 깊게, 다방면에 걸쳐 고민했다.

    또한, 몇 가지 결론과 판단을 내렸다.

    상아탑 최고 권력자의 위치.

    ‘상아탑주’의 자리, 그 자리에 앉기로.

    ‘조금 이른 감도 있지만.’

    애당초 이번 생의 이안은 시작부터 앞당겨졌다. 12살의 고위마법사부터가 상식을 벗어나 버린 존재 아니겠는가? 이제 와서 이르고 적당함을 따져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해가 넘어간 탓에 18살이 되었다는 것.

    ‘쥘 수 있는 권력은 반드시 쥔다.’

    또한, 그 권력을 일신의 성장을 위해 백분 활용한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상아탑주 이안에게 엄청난 기대를 걸고 있겠으나, 아쉽게도 이안은 그들의 생각처럼 마냥 희생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어머니?”

    자신의 방에서 나온 이안이 어머니를 찾았다. 한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커녕 레디오와 더글라스, 심지어 하녀들까지도. 전부 다 집을 비울 리는 없는데, 이상하다.

    ‘이제 슬슬 나갈 시간인데…….’

    오늘, 이안은 상아탑주가 된다.

    이미 공표하여 널리 알려진 일.

    이런 날 모두 어디에 있는 걸까?

    ‘바깥에 계신가?’

    페어리 퀸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딱히 별일은 없을 거다. 애완고양이 취급을 당하며 함께 있을 테니까. 그 강력한 뇌전의 마법사가.

    “흐음.”

    어깨를 으쓱거린 이안.

    그는 저택 밖으로 나섰다.

    화단을 지나 대문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곧, 놀랄 수밖에 없었다.

    “……?”

    그럴 수밖에. 저택 앞으로 수많은 사람이 보였으니까. 엄청난 인파가 모여 기다란 길을 만들고 있었으니까. 끝조차 가늠키 어려운 길, 그 길은 명백히 ‘상아탑’으로 향했다.

    “이안!”

    그 틈으로 베네사가, 더글라스와 레디오까지 보였다. 저택의 하녀들과 근위병도 있었다. 어머니의 품에 안긴 분홍색 고양이, 페어리 퀸 에스펠 역시 못마땅한 표정으로 이안을 노려봤다.

    ‘날 보러 온 건가? 전부?’

    제아무리 이안 페이지가 상아탑주에 오른다는 발표가 퍼졌다 한들, 도시 내 사람들이 단체로 모여 축하할 중대사는 아니었다.

    단지 지금껏 보여줬던 이안의 행보, 특히나 전 상아탑주 허버트를 처단하고 백성들을 구해낸 활약상이 컸다. 자신, 혹은 가족이나 이웃, 그 이웃의 가족까지 구해준 영웅이 아니던가? 이안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널리, 많은 이들에게 펴졌다.

    ‘전생에도 겪어본 적 없는데.’

    단언컨대 백성들의 환호를 받아본 바가 없었다. 심지어 대륙일통의 선봉장으로서 수많은 공적을 쌓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환호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직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한 눈, 그 눈빛만을 받으며 살아왔다. 세상 모두가 알았으니까. 이안의 마법이 얼마나 많은 목숨을 빼앗았는지.

    “이안 님! 여기에요, 여기!”

    “이안 공!”

    “으음.”

    계속 걷다 보니 반스를 필두로 한 마도공학자들도 보였다. 뿐이랴? 이안과 5년간 훈련고락을 함께했던 제2 황실기사단의 기사들도, 그 단장인 올리버도.

    “이- 안-!”

    하물며 그들의 주군인 황태자까지도 이안이 상아탑으로 향하는 길을 구경하고자 나왔다. 공주 하이리 또한 황태자 옆에서 수줍게 고개를 숙였다.

    ‘이런 건가? 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깨끗한 손이.’

    길을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그러한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늦추고 풍족한 삶을 선사시켜드렸을 때와 흡사한 만족감이 느껴졌다. 그 많은 용언 중 황금용 일족의 용언부터 연구하기 잘했다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오기 잘했다는 만족감 말이다.

    ‘썩 나쁘지 않군.’

    어떤 인간이 사람들의 진심 어린 존경을 싫어하겠는가? 배배 꼬인 성정이 아닌 이상에야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으리라. 이안은 그 괜찮은 기분과 함께 한걸음, 또 한걸음. 사람들이 펼쳐준 길을 따라 걸었고, 마침내 상아탑까지 도착했다.

    “오셨습니까. 이안 님.”

    상아탑 마법사들 역시 층층마다 특정한 형태로 모여 있었다. 층의 한가운데에 원형을 그리며 모여든 모양새였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오늘처럼 특별한 날에만 사용되는 ‘중앙 승강기’를 중심으로 모여든 형태였다.

    “이쪽으로.”

    상아탑의 승강기는 총 세 가지다. 모든 마법사가 사용할 수 있는 보랏빛 승강기와 고위마법사 전용의 황금빛 승강기. 마지막으로 상아탑의 정중앙 설치되어 있으며, 모든 층의 마법사들이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도록 개방적이고 큼직하게 설계된 푸른빛 승강기, 바로 ‘중앙 승강기’가 존재한다.

    “타시지요.”

    이안은 마법사들의 안내에 따라 바로 그 거대한 중앙 승강기에 올라탔다. 그러자 푸른빛의 승강기가 아주 느릿느릿한 속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층을 올라갈 때마다 승강기 주변으로 둥그렇게 모여든 마법사들이 보였다.

    “상아탑의 주인이시여.”

    동시에 해당 층 모든 마법사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복창했다. 상아탑의 새로운 주인, 이안 페이지를 향하여.

    “상아탑의 주인이시여.”

    한 층.

    “상아탑의 주인이시여.”

    또 한 층.

    “상아탑의 주인이시여.”

    총 22층으로 나뉜 상아탑.

    수많은 마법사를 지나쳤다.

    이윽고 그 탑의 꼭대기에 도착했다.

    전생에도, 이번 생에도 익숙한 방.

    마지막 층, ‘탑주의 방’이었다.

    “상아탑의 주인이시여.”

    그곳에는 그린리버 제국의 고위마법사들. 처형당한 탑주와 감금된 헬레느, 그리고 이안 본인이 빠진 나머지 9인의 고위마법사가 양쪽으로 정렬된 채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 의자가 하나 보였다.

    ‘마나의 옥좌.’

    제국의 모든 마법사를 움직이는 권력자.

    오직 상아탑주만이 앉을 수 있는 의자.

    이안이 그 의자를 향하여 걸어갔다.

    이미 전생에도 앉아본 자리다.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았다.

    한데 그렇지가 않다.

    떨림이 느껴졌다.

    ‘그때보다 할 수 있는 게 많아서 그럴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안.

    그가 마나의 옥좌에 앉기 직전이었다.

    “이 자리에 앉기 전에.”

    이안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펴졌다.

    통신구를 통하여 모든 층에 전해졌다.

    즉, 모든 마법사가 듣고 있다는 뜻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습니다.”

    모두가 의아함을 느낄 무렵.

    이안이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었다.

    황제에게 받은 탑주의 지팡이였다.

    “예로부터 상아탑의 실권을 상징하며, 오랜 세월 탑주에게 내려온 지팡이입니다. 아주 역사가 깊은 지팡이죠. 모르시는 분이 없을 거라고 봅니다.”

    이안의 말문이 계속되었다.

    “이 낡은 지팡이는 오늘부로 수명을 다했습니다. 직전의 상아탑주였던 허버트 레온, 그자의 흑마법으로 하여금 수많은 목숨과 영혼을 갈취한 매개체로 타락해 버렸죠.”

    그러더니 지팡이에 마법을 불어넣는 이안.

    마법의 정체는 바로 ‘파쇄의 주문’이었다.

    “이는 더 이상 탑주의 상징이 될 수 없음을 뜻합니다. 흑마법으로 타락해 버린 지팡이 따위가 어찌 마법의 중심, 상아탑의 상징이 될 수 있겠습니까?”

    파쇄의 주문을 잔뜩 머금은 탑주의 지팡이. 그 거대한 박달나무 지팡이에 작은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두 줄로 시작된 균열은 점차 수십, 수백 갈래까지 뻗어 나갔다.

    “지금부터 이 지팡이가 처해질 운명과 함께.”

    균열을 머금었던 탑주의 지팡이가 수백 조각으로 와르르 무너졌다. 오직 소리로만 접할 수 있는 아래층의 마법사들조차 단숨에 상황을 인지할 정도였다.

    “상아탑 또한 새롭게 거듭나기를 명합니다.”

    새롭게 거듭난다, 흔하디흔한 선언이었다. 하나 수백 년간 상아탑의 권위로 군림해 왔던 ‘탑주의 지팡이’가 와르르 조각나면서, 그 흔하디흔한 선언조차 큰 힘을 얻었다. 모든 마법사의 귀와 머리, 가슴에 똑똑히 박혔으니까.

    “가장 순수한 마나의 이름으로.”

    * * *

    오늘부로 탑주가 된 이안 페이지.

    그가 마나의 옥좌에 홀로 앉아 있었다.

    이미 상아탑의 주요 업무시간은 끝이 나버렸다. 지금부터 내일 아침까지는 오롯이 자유로운 마법연구의 시간. 어지간해선 그 어떠한 업무도, 간섭도 없으리라.

    “슬슬…….”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이안.

    그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살펴볼까.”

    그 종이에는 레디오와 더글라스가 알려준 ‘약재’들의 생김새, 그리고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5년 전, 레디오에게 ‘가고일의 눈’을 보여줬을 때 언급되었던 ‘붉은 용의 다섯 숨결.’ 바로 그 엘릭서의 주된 재료였다.

    “상아탑의 창고.”

    고위마법사라도 탑주의 허락이 있어야만 출입할 수 있었던, 대대로 상아탑주가 직접 관리해온 ‘상아탑의 창고.’ 그 창고의 자유로운 출입이 오늘부터 허락된 것이다. 새로운 상아탑주, 이안 페이지에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