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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72화
26. 입장정리(2)
“이제부터 저는, 무엇을 어찌해야 할까요?”
다소, 상당히 뜬금없는 공주의 질문.
그런데도 이안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침착한 어조로 되물었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보세요.”
“어디서부터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그럼 제가 먼저 묻도록 하죠.”
이안은 둔하지 않다. 눈치와 감이 우수한 편에 속한다. 그런 그가 전생부터 지금까지 봐왔던 공주 하이리, 그녀의 모습으로 미루어볼 때 몇 가지 행보를 예상해 볼 수 있었다.
“왜 숨기셨던 겁니까? 마법사라는 사실을.”
사실 5년 전이나 지금이나 궁금하지는 않았다. 단지 얘기가 나온 김에 물어보는 거다. 하고자 했던 말과 연관이 있을 테니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것은…….”
잠시 마음을 다잡은 공주 하이리.
그녀가 긴 숨을 내쉬며 말문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단순했어요. 그저, 상아탑에 들어가면 상아탑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그러고 싶지 않아도 그렇게 변할 거로 생각했거든요. 그보다는 오라버니께 힘이 되어줄 대단한 마법사가 되어야겠다, 될 수 있다……. 그때는 철석같이 믿었어요. 참 어리석었지만,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어버린 뒤였죠.”
그녀의 표현처럼 단순하고 어리석은 이유였으나, 이안은 구태여 지적하지 않았다. 이미 스스로가 깨닫지 않았던가?
“만약 상아탑에 사실대로 고한다면, 저만 처벌을 받는 것이 아니니까요. 저를 도와주셨던 분들, 차마 공주의 부탁을 저버릴 수 없었던 그분들께서 저보다 크게 다치시겠지요. 그럴 수는 없었어요. 물론 저도 겁이 났고요.”
그 부분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허가되지 않은 마법 전수는 중죄 중의 중죄, 공주야 신분이 있으니 큰 처벌을 면하겠지만, 그녀를 도와뒀던 사람들, 예컨대 황궁 마법사라든지, 하인들이라든지. 그들은 실로 무시무시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을 터.
“해서, 계속 숨길 수밖에 없었다?”
“네. 하지만 처음의 목표는 계속 가지고 있었어요. 언젠가 오라버니께 큰 힘이 되어줄 마법사가 되는 것, 이렇게 된 이상 그것만 보고 달리자. 그런 심정이었거든요.”
“민폐 한번 제대로 끼치셨네. 주변 사람들한테.”
“…….”
이안의 허를 찌르는 한마디에 말문이 막혀 버린 공주 하이리였다. 민폐, 부정하기 힘든 단어다. 그녀도 오래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단지 남을 통해 들어본 바가 처음이었을 뿐.
“맞아요. 민폐 덩어리나 다름없지요. 저는.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사고를 치고, 수습도 못 한 채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인정하시니 다행입니다.”
이안은 진심으로 다행스러움을 느꼈다. 만약 어쩔 수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핑계로 인정하지 않았다면, 아마 공주를 향한 시선이 부정적으로 변했을지도 모르겠다. 딱 싫어하는 부류니까.
“이유도 속 시원하게 털어놨겠다. 이제 말씀해 보시죠. 용건이 뭡니까? 지금 얘기한 것과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확실히 그랬다. 이안의 질문에 상세히 대답하며 입장부터 정리해 보니,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조금 더 명확하게 그려지는 공주였다.
“먼저, 이안 님께 여쭈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듣고 있습니다.”
“이안 님께서 만약 탑주가 되신다면…….”
“불가능합니다.”
공주의 말을 싹둑 잘라 버린 이안.
계속 들어줄 이유가 없었다.
무얼 부탁하고 싶은지.
빤히 보였으니까.
“허가되지 않은 마법사와 마법교습이 중죄라는 법, 저로서도 매우 공감하는 법입니다. 그만큼 위험하기 짝이 없는 힘, 그리고 존재니까요. 결코 악법이 아니죠.”
아마 공주는 그러한 질문을 하고자 했을 거다. 이안이 탑주가 된다면, 해서 그 상아탑에 공주가 자진신고를 한다면, 주변인들의 처벌을 감형해 줄 수 없겠느냐고.
“계속 숨기실 요량이라면, 5년 전에 약속드렸던 것처럼 눈감아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원하는 바를 들어드리긴 힘들 것 같군요. 반드시 지켜져야 할 법도고, 처벌입니다.”
이안의 입장은 단호했다.
또한,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했어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명석하신 분이니.”
“하면, 이번에는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조언이라 하시면?”
이번만큼은 이안도 예측불허였다.
무슨 조언을 구하겠다는 말일까?
한계를 넘고 4클래스가 되는 법?
계속해서 안전하게 숨기는 법?
어떻게든 처벌을 피하는 법?
“제가 처음, 오라버니를 위한 마법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그때는 오라버니 곁에 아무도 없었어요. 오직 아바마마뿐이었죠. 올리버 경께서 계시긴 했지만, 그때는 주제넘게도 부족하다 생각했거든요.”
그럴 만도 했다. 올리버뿐만 아니라 기사에 대한 인식 자체가 그렇다. 지금에 와서야 검공의 칭호까지 얻었다지만, 그 전까지는 세상 누구도 기사를 마법사의 적수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오라버니 곁에는 제가 그토록 꿈꿨던 대단한 마법사, 이안 님이 계셔요. 제국의 검공 올리버 경도 계시구요. 무엇보다, 오라버니께서 올바른 방향으로 달라지고 계시지요.”
이제야 감이 좀 오는 이안이었다.
공주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목표를 잃어버렸다, 그런 겁니까?”
“비슷합니다. 훌륭하신 분들께서 주변에 계시는데, 오히려 불법적으로 마법을 익힌 제가 오라버니의 앞길에 방해만 되는 건 아닐지…….”
공주 하이리의 고민은 더 높은 클래스도, 안전하게 사실을 숨기는 것도 아니었다. 친 오라비이자 황태자인 하이든의 안위, 앞으로의 순탄한 계승. 바라는 것은 오직 그뿐인 것 같았다.
“간단한 문제네요.”
그러나 이안에게는 간단한 문제로 보였다.
가장 중요한 요소를 빠뜨리고 있었으니까.
공주가 말이다.
“본인의 삶을 사십시오. 그럼 됩니다.”
“……네?”
“황태자 전하의 곁이 안전한 것, 황태자 전하께서 황위에 오르시는 것. 그것들은 공주마마의 삶이 아니지 않습니까? 전부 황태자 전하께서 살아가실 삶이죠.”
이안이 계속해서 말문을 이어갔다.
“마법적 역량을 계속 키우고 싶다? 그럼 키우십시오. 어차피 3클래스부터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고 나아질 수준이 아닙니다. 타고난 재능의 문제죠. 아, 원하신다면 새로운 호흡법은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어차피 상아탑에 공개할 예정이었으니까.”
3클래스부터는 마나도 마나지만, 확연하게 어려워지는 술식의 연산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타고난 한계를 돌파하거나, 혹은 발전시켜야만 4클래스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거다.
“마법 말고, 그냥 공주로서의 삶을 살고 싶다? 그럼 사십시오. 좋아하는 소일거리 하시면서, 지체 높은 귀부인들 만나시면서. 혼담도 많이 오고 가실 텐데요.”
이안이 혼담을 언급하자 얼굴을 붉히는 공주 하이리였다. 그렇지 않아도 혼담이 어마어마하게 오고 가기는 했다. 몇 년 전부터 그랬고, 스무 살이 된 지금은 더더욱 그랬다.
“만약 세상 밖으로 나가보고 싶다면, 마찬가지입니다. 나가세요. 공주께서 황위를 물려받으실 것도 아니고, 황비조차 아니십니다. 말 그대로 공주일 뿐이죠. 안식처의 관리도 다른 공주분들께서 하시면 그만입니다. 아무런 문제도 없어요.”
“그, 그런…….”
“제 말이 틀렸습니까?”
황실에서 공주의 입지가 크지 않음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하이리였다. 단지 민폐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이토록 노골적인 얘기를 듣는 건 처음이었다.
“여인의 몸이라 홀로 여행은 부담스럽다? 실전경험이 없으셔서 잘 모르시겠지만, 3클래스 마법사 그거 인간병기나 마찬가집니다. 대규모 도적연합이 마마를 노린다 해도 몰살시킬 수 있죠. 필요하다면 생포도 가능합니다.”
마법적 요령과 실전경험이 필요하겠지만, 결코 과장은 아니었다. 오히려 비유의 정도가 모자랄 지경에 속했다.
“요지는, 말씀드렸듯 본인의 삶을 사시라는 겁니다. 공주께서는 충분히 그럴 여유가, 충분히 그럴 배경이, 충분히 그럴 힘도 가지고 계시니까.”
세상엔 본인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이들이 태반이다. 그런 면에서 공주는 축복을 받고 태어났다 볼 수 있다. 그러니 무엇을 할까 고민할 시간에 그 타고난 축복이나 마음껏 누려라, 이안의 말은 그러한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
공주는 한동안 말문을 열지 않았다.
깊숙이 생각에 잠긴 모양새였다.
이안도 딱히 방해하지 않았다.
겸사겸사 휴식시간으로 쳤다.
“무슨 말씀이신지.”
얼마나 기다렸을까?
공주의 생각이 끝났다.
“잘 알겠습니다.”
만족스러운 결론이라도 얻은 걸까. 그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고민으로 가득할 때도 아름다웠는데, 지금은 그야말로 꽃 한 송이가 잎을 펼치듯 화사하게 느껴졌다.
“감사드립니다. 정말 큰 은혜를 입었어요.”
“은혜랄 것까지야,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법도는 예외가 없어야 하지요.”
부탁을 거절당했던 기억은 깨끗이 지워 버렸는지, 아니면 애당초 기대하지 않았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이안을 향해 진심 어린 감사를 전했다.
“이제 검사를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할 일은 해야 하는지라.”
“아! 물론이지요. 제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그냥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그레이트 캔슬레이션을 통한 검사가 순식간에 끝났다. 공주에게는 그 어떤 흑마법적 영향도 없었고, 부작용인 구역질조차 크게 내뱉지 않았다. 보는 이가 있어서 그럴까? 꾹 참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런 이상도 없으십니다. 수고하셨어요.”
그 확언에 공주 하이리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역시나 어지러움과 매스꺼움을 참았던 모양인지 휘청거렸다. 그 흔들리는 몸을 이안이 부축해 줬다. 순간 새빨개지는 공주의 얼굴이었다.
“괜찮으십니까? 하인을 불러드릴까요?”
“아,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그, 그럼!”
무엇이 그리도 급한지, 아니 부끄러운지 후다닥 나가 버리는 공주 하이리. 문이 닫히고 나서야 이안도 한숨을 푹 내쉬었다.
‘머리가 육신을 따라가는 건가.’
이안도 태연하지만은 못했다. 청순가련한 절세미녀, 그것도 전성기라 볼 수 있는 스무 살의 공주 하이리와 가까이 마주하는 일이다. 전생에 겪은 사십여 년의 세월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아니 시작부터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전생보다 더…….’
똑똑!
더 길게 생각할 틈은 없었다. 계속해서 황족들의 방문이 이어졌으니까. 당분간 검사에만 몰두하다보니 잡념은 사라졌다. 시간도 꽤나 흘렀다. 모든 일정이 마무리된 거다.
‘라그나르가 없으니 더 가뿐하네.’
5황자 라그나르는 탑주의 흑마법 정황이 드러났던 당일, 가장 먼저 검사를 받았다. 탑주와 가까이 지낸 측근 중 하나라는 이유였다. 비록 아무런 흑마법적 영향도 검출되지 않았으나, 그때부터 쭉 처소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슬슬 돌아가야…….”
“이, 이안 님!”
검사를 마무리하고 나서려는 그때였다. 객실의 앞에서 대상자들을 안내하던 근위병 하나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어찌나 급했는지 노크조차 없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폐, 폐하께서 오셨습니다!”
“폐하께서?”
그 대화가 끝나기도 전이었다. 제국의 황제, 테리 그린리버가 근위병의 뒤로 나타났다. 머리가 군데군데 하얘졌음에도, 특유의 장난스러운 표정만큼은 잃지 않았다.
“뭘 그렇게 놀라나?”
“폐하.”
이안이 급하게 예를 갖추든 말든, 그저 껄껄 웃으며 들어오는 황제였다. 뿐이랴? 몸소 문을 닫더니 의자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나이가 꽤 들었음에도 풍채부터 남달랐다.
“나도 엄연한 황족이네. 따지고 보면 탑주와 가장 오랫동안 독대해 온 사람 아니겠는가? 탑주의 권한 중 하나가 필요할 때 황제를 독대할 수 있는 것이지.”
해서 직접 흑마법 검사를 받고자 왔다는 소리였다. 비록 틀린 말이 아니긴 했으나, 갑작스러움을 어찌 감춰낼 도리도 없었다.
“따로 호출하지 않으시고…….”
“가뜩이나 수백 명의 사람을 검사했을 텐데, 이 정도 수고는 덜어줘야지. 황궁이 좀 넓던가?”
객실부터 황제의 본궁까지, 확실히 먼 거리는 먼 거리였다. 하나 이안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눈과 행동, 그리고 말투에서 다 보인다.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음을.
‘딸이랑 똑같군.’
공주 하이리도 딱 저러한 눈빛과 행동을 보이더니만, 아비인 황제도 똑같았다. 그야말로 그 아비에 그 딸인 모양이다.
“혹 소인에게 하명하실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이안이 먼저 말을 꺼내자.
“짐이 그렇게 티를 냈는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하는 황제.
공주와는 달리 아주 당당했다.
“으음, 티가 났으면 어쩔 수 없지. 잠시 앉게.”
심지어 의자를 권하는 것도 황제의 몫이었다. 확실히 남다른 존재다. 분위기에 올라타 상황을 조율하는데 도가 튼 것 같았다.
“내 마음 같아서는 좀 더 시간을 주고 싶네만, 상황이 이토록 급박하게 돌아갈 줄은 몰랐군. 설마하니 탑주 그자가 그 정도로 미쳤을 줄이야. 해서, 상황 정리를 좀 일찌감치 해둘까 하네만, 괜찮겠는가?”
“하명하시옵소서. 폐하.”
“5년 전에는 덜덜 떠는 척이라도 했지, 이제는 아주 당당하구먼? 6클래스 마법사도 되었겠다, 공도 어마어마하게 쌓았겠다, 이제 눈치 볼 필요가 없다 이건가?”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허허! 내 보기엔 그런 것 같다만.”
황제의 말은 농담이기도 했고, 진심이기도 했다. 이안의 입장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눈치 볼 게 무엇이 있겠는가? 5년 전의 그 아무것도 몰라야 할 꼬마가 아니다. 이안은.
“좋아. 괜히 또 어리숙한 척이라도 했다면 어찌 말을 꺼낼까 걱정했었는데, 적어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구먼. 그럼 내 시간도 시간이니만큼 단도직입적으로 묻도록 하지.”
황제의 태도가 일순간 돌변했다. 방금까지의 그 가벼운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우묵해진 눈으로 이안을 바라봤다. 그린리버 황족 특유의 금안이 번뜩거렸다.
“내 장남, 황태자. 어찌하고 싶은가?”
심각할 정도로 간단명료한 질문.
그럼에도 수많은 의미가 담긴 질문.
이안이 모르는 척 대답했다.
“하명하신 바를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아니, 자네는 알아들었어.”
그래, 이안은 알아들었다.
알아듣지 못할 리가 있겠는가.
문제는 내뱉을 대답이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까.
아니, 대답해도 괜찮을까?
‘또 주군을 모신다?’
전혀 내키지 않았다.
그럴 마음이 없었다.
전생과 똑같지 않던가?
그때와는 달라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 되돌렸으니까.
무려 30년이라는 시간을.
‘하지만 황태자는…….’
이안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이란 것이 들고 말았다.
미운 정이고 고운 정이고.
전부 다 들어버렸다.
황태자라는 녀석에게.
‘애매하군.’
온 힘을 다해 모시기도.
단칼에 버리기도 모호한 녀석.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
한참을 생각 속에 잠겼던 이안.
그의 마음이 하나로 모였다.
조금은 도박을 던져보기로 했다.
“소인은.”
객실에 숨 막히는 긴장감이 돌았다.
황제의 금안과 이안의 청안이 뒤엉켰다.
“황태자 전하께 충성을 바칠 생각이 없습니다.”
“충성을 바치지…… 않겠다?”
“예. 그렇습니다.”
실로 의외의 대답이었다.
충성을 바칠 생각이 없다니?
너무 노골적인 대답 아닌가?
솔직함이 도를 넘어선 격이다.
“단.”
황제의 입가가 씰룩거리는 그때.
이안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반드시 황제로 만들어드리고자 합니다.”
“뭐라?”
“성군으로도 남겨드릴 생각입니다.”
이번에는 황제가 생각에 빠졌다.
충성은 없으나, 성군으로 만든다?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다만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때문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이안이 말하는 것을.
다소 발칙한 생각을.
“여봐라.”
고개를 끄덕인 황제가 바깥으로 소리쳤다.
그러자 대기 중이었던 내관들이 들어왔다.
여럿이서 들고 들어온 커다란 지팡이.
그것은 상아탑 최정상의 상징.
바로 ‘탑주의 지팡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