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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71화 (7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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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71화

    26. 입장정리(1)

    탑주 허버트의 공개 처형식 직후, 라그나르에게 내려졌던 침소 감금령 또한 자연스레 해제되었다. 황제로부터 감금령의 감시와 책임을 부여받은 노기사 ‘덤필 모릿’이 그 사실을 알리고자 침소 안으로 들어왔다.

    “황자 전하.”

    라그나르의 침소 안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커튼을 몽땅 쳐 버렸음은 물론, 수면을 돕고자 제작된 ‘빛 차단용 마도공학품’이 모든 빛을 의도적으로 차단했기 때문이었다.

    “처형되었습니까? 탑주.”

    “예. 그리되었습니다.”

    “그렇군요.”

    라그나르의 목소리가 무거웠던 탓일까? 노기사 덤필은 순간 대답할 말을 잃어버렸다. 많은 감정들이 목소리로부터 전해졌다. 분노, 상실감, 혼란과 체념까지. 단지 탑주 허버트를 향한 애도나 슬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알겠으니 물러가세요.”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하하…… 상심하지 말라?”

    지극히 의례적인 표현이었다. 라그나르도 그리 생각했기에 헛웃음만 쳤다. 한데 덤필의 행동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는 탁자 위에 종이 한 장을 올렸다. 곱게 접힌 쪽지였다. 읽을 수 있도록 촛불도 켰다.

    “그건 또 뭡니까?”

    경계심으로 가득한 라그나르의 물음.

    노기사 덤필이 작은 목소리로 화답했다.

    “하면 소장은 물러가 보겠습니다.”

    끝내 쪽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인사를 올린 채 침소를 나설 뿐.

    “…….”

    덤필이 나간 뒤, 라그나르가 쪽지를 펼쳐봤다. 내용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한데도 라그나르는 계속해서 읽어 내렸다. 읽고, 읽고, 또 읽었다. 덤필이 남긴 편지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으니까.

    “아직.”

    내용을 오랫동안 곱씹었던 라그나르.

    그가 촛불로 하여금 쪽지를 태웠다.

    “기회가 있었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라그나르의 미소를 비췄다.

    그 어느 때보다 욕망으로 꿈틀거리는 미소였다.

    * * *

    그린리버 제국은 흑마법에 대한 조사 및 경계를 보다 집중적으로 실시하였다. 특히 황궁 내 모든 인물들이야말로 집중적인 조사의 대상이었다. 제국의 심장부가 아니겠는가? 수많은 하인들은 물론이거니와 황실 기사단과 황실 소속 마법사들, 고귀한 혈통의 황족들까지 공평하게 ‘검사’를 받아야만 했다.

    “후우……!”

    물론 그 책임자는 이안이었다. 가장 철저한 검사이니만큼, 가장 완벽한 마법사가 진행하는 것이 당연지사였다. 단지 이안의 체력만 죽어나갈 뿐.

    “수제자라도 하나 키우든가 해야지 원.”

    황실 내 수백 명의 검사를 홀로 진행 중인 이안, 그가 푸념하듯 중얼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그레이트 캔슬레이션’ 주문이 가능한 마법사는 이안밖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불가항력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페어리 퀸도 그다지 쓸모가 없고.’

    분명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었다. 이 대대적인 검사에 페어리 퀸의 마기를 보는 눈, 그 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대실패였다.

    ‘마기라는 게 생각보다 애매하단 말이야.’

    이안이 원했던 것은 오직 ‘흑마법의 기운’ 하나였다. 한데 페어리 퀸이 볼 수 있는 ‘마기’란 생각보다 다양했다. 흑마법뿐만 아니라 선천적인 악의, 당장의 살심, 질병 등 다수의 부정적인 요소까지 몽땅 다 ‘마기’로 퉁 친다는 얘기다. 간단한 예로 페어리 퀸이 흑심 가득한 라그나르와 마주한다 치자. 분명 마기가 넘친다며 난리를 칠 거다.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겠지.’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이안이 직접 고생할 수밖에.

    ‘그래도 이제 금방이니까.’

    길고도 피곤했던 흑마법 검사의 끝이 보였다. 이제 황족들만 남았다. 황태자부터 황자들, 후궁에 공주들까지. 그들만 검사하면 모든 업무가 끝난다는 소리다. 이안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황족들의 차례가 온 거다.

    이안이 머리를 쓸며 대답했다.

    “들어오세요.”

    그러자 며칠 전부터 쭉 검사장으로 쓰인 황궁 객실의 문이 활짝 열었다. 첫 번째로 검사를 받고자 찾아온 황족, 그는 바로 황태자 하이든 그린리버였다.

    “여어, 이안!”

    “황태자 전하.”

    이안이 예를 갖추자 황태자 또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원래도 이안만 봤다하면 웃어보이던 양반이긴 한데, 얼마 전부터 더더욱 심해진 것 같다.

    “요즘 많이 바쁘다지? 얼굴 한번 보기가 힘들군.”

    “송구하옵니다.”

    “송구할 건 아니고. 왜 바쁜지는 나도 잘 아니까. 그래서 이렇게 직접 왔잖아? 흑마법 검사인지 그것도 받을 겸, 이안 네 녀석도 만날 겸. 이런 걸 두고 일석, 일석, 일석…….”

    “이조입니다.”

    “아, 그래! 일석이조. 막 생각나던 참이었다. 크흠!”

    헛기침을 내뱉은 황태자가 의자에 앉았다.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인물이다.

    그때보다야 나아지긴 많이 나아졌다만…….

    ‘잠깐.’

    황태자의 한결같은 모습을 감상하던 이안.

    불현듯 그의 뇌리에 추측 하나가 스쳐갔다.

    ‘……설마?’

    황태자는 분명 대단한 핏줄을 타고났다.

    단순한 암기였지만, 일말 재능도 보였다.

    한데 저토록 백치미를 뽐낼 수가 있을까?

    평범한 것도 아니고, 그 이하씩이나?

    ‘흑마법의 영향일지도.’

    지금껏 황태자가 보여준 아둔함조차 흑마법의 영향이었다면? 가능성이 낮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높다. 탑주는 라그나르를 옹립시키고자 수많은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에 황태자란 존재는 명백한 걸림돌, 적당히 바보로 만드는 것만큼 안전하고 편한 길이 어디 있겠는가?

    “전하,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더 고민할 것도 없었다.

    황급히 본론으로 들어갔다.

    빠른 검사가 필요한 사안이었다.

    “벌써? 뭐, 좋다. 내가 뭘 어찌 하면 되지?”

    “전하께서는 가만히 계시기만 하면 됩니다. 다만, 어지럽거나 매스꺼움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증거이니 참아주시길.”

    “별거 아니군. 시작해 보아라.”

    짐짓 근엄하게 읊조리는 황태자.

    이안이 지팡이를 겨누었다.

    약간의 설렘마저 느껴졌다.

    전생에는 알지 못했던 진실.

    그 진실을 밝혀낼 기회!

    ‘그레이트 캔슬레이션.’

    이윽고 투명한 회색빛이 황태자의 전신을 휘감았다. 황태자가 정말 흑마법의 영향을 받고 있는 상태라면, 필시 다른 피해자들처럼 검은색 기운을 토해낼 터.

    “우욱……!”

    황태자가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검은 기운을 토해내려는 전조 현상일까? 아니면 캔슬레이션 주문의 부작용인 어지러움과 매스꺼움에 불과할까? 이안의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토해라.’

    토해내라!

    그 검은 기운!

    흑마법의 기운을 토해내라!

    이안이 속으로나마 중얼거렸다.

    마치 주문이라도 외우는 것처럼.

    “으으, 정말 그렇구나. 어지럽고, 울렁거리고.”

    하나 이안의 부풀었던 기대는 망상에서 그쳤다. 검은색 기운은커녕, 아침식사조차 걸렀는지 신물만 꾸역꾸역 되삼켰으니까. 황태자가 말이다.

    “푸후! 퉤! 어후, 이걸로 된 게냐? 다른 건 없고?”

    비치된 물과 통으로 입을 헹궈낸 황태자가 이안을 바라봤다. 매스꺼움에 일그러졌는데도 참 천진난만한 얼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용모만 완숙해지는 모양이었다.

    ‘……타고난 바보였나.’

    그렇다. ‘그레이트 캔슬레이션’조차 통하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흑마법이 아닌 이상, 황태자는 ‘타고난 바보’임이 확실해졌다. 황제와 황비의 머리가 아닌, 겉모습만 집중적으로 물려받았으리라. 다소 인간적인 모습까지도.

    ‘내가 뭘 기대한 건지…….’

    잠시나마 기대감으로 가득했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이안이었다. 계속된 검사로 피곤하긴 피곤한가보다 싶기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따위 망상을 떠올렸을 리가.

    “예. 아무런 문제도 없으십니다.”

    이안이 마음을 다잡고 대답했다.

    하던 일은 끝내야 하지 않겠는가?

    “다행이군. 아니, 당연하지. 내가 흑마법 따위에 조종당할 틈이 있었겠느냐? 양쪽으로 제국의 검공 올리버가, 곧 상아탑주가 될 너까지 있는데. 하하!”

    너스레를 떠는 황태자 하이든.

    그가 이안의 어깨를 다독이며 일어나더니.

    “그럼 수고해라. 나중에 시간되면 보자고.”

    곧장 객실 밖으로 나갔다. 평소였다면 계속해서 떠들었겠지만, 그도 눈치라는 게 조금은 생겨버렸다. 이안의 얼굴에서 피곤함이 보였고,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음도 알았다.

    ‘하기야, 저게 더 어울리긴 하지.’

    그 모습을 지켜본 이안이 생각했다. 확실히 달라지긴 달라졌다. 그 속도가 거북이마냥 느릴 뿐, 황태자는 꾸준히 나아졌고, 나아지고자 노력도 하는 것 같았다.

    ‘너무 돌변하는 것도 이상하니까.’

    예컨대 황태자가 라그나르처럼 변한다고 생각해 보라. 오히려 더 큰 문제 아니겠는가? 그럴 바에야 지금이 훨씬 낫다. 진심으로.

    똑똑!

    이안이 황태자에 대한 생각을 갈무리하는 그때, 다시금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검사를 받아야 할 황족들이 상당수 남았다. 갈 길이 멀었다.

    “들어오십시오.”

    황태자 다음으로 들어온 황족, 그녀는 이안에게도 익숙한 인물이었다. 황태자의 친동생이자 아름답기로 소문난 공주, ‘하이리 그린리버’였으니까.

    “오랜만에 뵈어요. 이안 님.”

    이미 전생에도 절세의 미녀로 유명했던 공주 하이리. 그녀와 가까이 대면하는 것은 꽤나 오래간만의 일이었다. 황태자의 외모가 날이 갈수록 완숙해지는 것처럼, 올해 스무 살이 된 하이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남매는 도대체가…….’

    황태자도, 공주도. 우월한 외모를 물려받다 못해 발전까지 시켜버린 모양이었다. 인간으로 변신한 페어리 퀸의 미모와 쌍벽을 이뤘으니까. 단지 분위기만큼은 정반대였다. 페어리 퀸이 고혹적이고 육감적인 미녀라면, 공주 하이리는 그 자체로 청순함의 대명사라 칭할 수 있으리라.

    “공주 마마.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이안 님 덕분에 잘 지낼 수 있었답니다.”

    공주의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마법사임을 모르는 척해 준 것부터 오라비인 황태자를 올바르게 이끌어준 것, 탑주의 끔찍한 흑마법에서 많은 이들을 구해낸 것까지.

    개인으로서, 일국의 공주로서 충분히 덕을 운운할 만했다.

    “다행이군요. 일단 앉으시죠.”

    피식 웃은 이안이 의자를 권했다.

    그녀의 눈빛만 봐도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단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검사는 단지 대화의 수단일 뿐.

    이안에게 속내를 간파당한 탓일까?

    두 뺨이 붉어지는 공주 하이리였다.

    “사일런스.”

    주변의 모든 소리를 차단하는, 동시에 주변으로 펴져나갈 소리 역시 막아주는 마법 ‘사일런스.’ 그 2클래스의 주문을 공주 하이리가 직접 펼쳤다.

    “2클래스에 도달하신 겁니까?”

    “그게, 실은…….”

    수줍게 펼쳐진 공주의 손가락.

    그 손가락의 수는 총 세 개였다.

    두 개가 아닌, 세 개 말이다.

    “3클래스?”

    “스, 스승님께서 그렇다고…….”

    스승이라면 1클래스의 황궁 마법사 ‘케빈’을 뜻하는 호칭일 터. 1클래스라고는 하나 그 또한 배운 것이 있고, 정식마법사로서 상아탑의 정보도 열람할 수 있다. 인즉, 클래스를 나누는 안목만큼은 확실하단 얘기다.

    “축하드립니다. 거기까진 생각도 못했네요.”

    이안의 말은 진심이었다. 3클래스라면 마법사 중에서도 꽤 상류에 속하는 부류다. 심지어 공주는 배움조차 몰래, 그리고 늦게 시작하지 않았던가? 한데 다짜고짜 3클래스라니?

    ‘나름 재능이 있었던 건가?’

    애당초 1클래스조차 넘지 못할 거라 여겼던 이안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 셈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봐야 한계는 있겠다만.

    “그래서, 설마 저한테 3클래스 등극을 자랑하러 오신 건 아닐 테고.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이안이 두 손을 깍지 끼며 묻자.

    “……이제부터.”

    망설였던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저는, 무엇을 어찌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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