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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70화 (7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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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70화

25. 처형식(2)

서릿발처럼 차가운 황명이 떨어졌다. 탑주의 목에 휘감긴 끈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두 발로 딛을 수 있었던 처형대의 바닥까지 열려 새끼발조차 닿지 않았다.

“커, 컥! 커헉!”

목이 졸려오자 컥컥거리기 시작한 탑주. 백치가 되었음에도 생존본능은 여전히 존재했다. 미친 듯이 허우적거리며 벗어나고자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고자 했다. 비록 마법까지 부릴 수는 없었으나, 그 몸부림이 참으로 처절하게 느껴졌다.

“커…… 커허…… 커허어……!”

붉은색으로 충혈된 눈.

줄줄 새어나오는 침과 콧물.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한 몸부림.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고 있었다.

“커으으…….”

발버둥이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기괴한 현상은 그때부터 일어났다.

구경꾼들의 눈이 한곳을 바라봤다.

또한 모두가 경악하기에 이르렀다.

“어……?”

“저, 저게 뭐지……?”

“입가에…… 피, 핀가? 피야?”

“아닌 것 같은데…….”

탑주의 입에서 검은색 기운이 울컥울컥 뿜어져 나왔다. ‘그레이트 캔슬레이션’ 주문으로 흑마법의 영향을 게워냈던 마르코 및 여러 피해자들과 똑같은 현상이었다.

‘흑마법인가?’

놀란 눈으로 탑주를 바라보는 이안. 어째서 흑마법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였던 탑주가 검은색 기운을 게워내고 있단 말인가?

‘경우는 두 가지.’

하나 그 놀라움도 찰나였을 뿐.

이안이 냉철한 눈으로 상황을 살폈다.

‘탑주도 흑마법에 당했거나.’

탑주 또한 흑마법의 피해자일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예상해봤던 경우이기도 했다. 이미 며칠 전 ‘그레이트 캔슬레이션’ 주문을 탑주에게 펼쳐봤으나,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스스로 흑마법을 걸어뒀거나.’

그럴 가능성이 어떠한 경우보다도 높았다. 죽음에 이르렀을 때 발동하는 조건이었다면 어귀가 딱 들어맞는다. 오래 전부터 준비해둔 최후의 수단일 터. 무언가 커다란 이변을 일으킬 것이 자명했다.

“이, 이안 님!”

그 예상치 못한 상황에 주변 마법사들이 이안을 바라봤다. 탑주의 자리가 공석으로 남아버린 지금, 상아탑 최고 결정권자는 6클래스의 대마법사 이안이었으니까.

“합동 배리어, 준비하세요.”

이안의 명령에 처형대와 가까운 6인의 고위마법사가 모였다. 그러더니 발버둥치는 탑주의 몸 주변으로 강력한 마나 배리어를 씌우기 시작했다. 배리어의 바깥이 단단하듯, 내부도 마찬가지다. 만약 공격을 통한 이변을 보인다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으리라.

‘예컨대 자폭을 한다든지.’

이변의 예시로 떠올릴 만한 경우가 제법 많았다. 자폭, 전염병, 환술, 세뇌까지. 이안도 움직여야만 했다. 즉각 자리에서 일어나 합동 배리어의 유지 및 강화를 도왔다.

“쿠어억! 컥!”

검은 기운이 역류하며 울대만 움직일 뿐, 탑주는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일까? 더더욱 기괴하게 느껴졌다. 이안의 눈에도 그럴 지언데, 지켜보는 평범한 구경꾼들은 어찌 보이겠는가? 사람들의 표정을 대략적으로 살펴본 이안이었다.

“흐음.”

구경꾼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가득했다. 부질없는 발버둥과 함께 빠른 속도로 죽어가던 탑주다. 그런 자가 보는 것만으로도 불쾌한 검은색 기운을 토해내고 있는 상황이다.

“무슨 저런…….”

“도, 도망쳐야 되는 거 아니야?”

분노가 그랬던 것처럼, 공포와 혼란 역시 마찬가지로 퍼져나갔다. 이번에는 그들을 통제해야 할 기사와 병사들까지 미묘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뭔가 터질 것만 같은 불안이 원인이었다.

“쿠으…… 푸크으…….”

하나 그 불안감도 잠시.

상황은 빠르게 나아지기 시작했다.

탑주의 울컥거림이 점차 잦아들었다.

더 이상 검은 기운도 토해내지 않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졌다.

‘끝인가?’

이안은 쉽사리 배리어의 해제를 명하지 않았다. 아직 모르는 일이다. 조금 더 시간을 갖고 경계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안 님. 어, 어찌 할까요?”

“…….”

경계로 보낸 시간이 제법 흘렀다. 조용했던 광장 또한 다시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합동 배리어 안으로는 축 늘어진 탑주의 몸뚱이만 보일 뿐, 그 어떠한 이변도 발생한 바가 없었다.

“……일단 거두죠.”

이안의 나직한 명령에 합동 배리어가 거둬졌다. 탑주로부터 호흡이나 심장 박동은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죽은 거다. 정말로. 상아탑의 지배자이자 제국의 2인자였던 인물이 사라졌다는 얘기다. 전생과는 비교조차 불허할 정도의, 아주 비참한 말로였다.

‘아까 그건 뭐였지?’

많은 이들이 환호했다. 하나 이안만큼은 여전히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탑주는 분명 흑마법을 발동시켰다. 도대체 무슨 흑마법일까?

‘아무것도 아닐 리가 없는데.’

이안의 고민이 계속되는 가운데, 전 상아탑주 허버트 레온의 공개 처형식은 점차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고, 사람들 대다수는 검은색 기운을 그저 흑마법의 ‘불순물‘쯤으로 여겼다. 예컨대 목이 졸리는 순간 흘렸던 침이나 눈물, 콧물처럼, 흑마법의 기운도 함께 흘러나왔을 뿐이라며.

* * *

“저,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요?

“나 참, 그렇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높으신 분인데…….”

그날 밤.

황성 인근의 야산 근처.

총 네 명으로 이루어진 제국군이 보였다.

“높으신 분인데 뭐 어쩌라고? 뒈졌잖아?”

“하지만…….”

“다 알고 지원한 거 아니야?”

“저는 하루 임시로 배정을…….”

“하! 그래서 헛소리를 하는구먼?”

그들은 제국군 중에서도 ‘사형수의 뒤처리’를 도맡는, 일종의 전담팀이었다. 사형당한 시체를 모아서 태우거나 인근 야산에 매장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는데, 항상 꼭 그렇게 정석적으로 처리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다, 다 그런 거 아닌가요?”

“다 그렇긴, 우린 다 지원해서 왔는데.”

“예……?”

“재밌잖아? 처음부터 별 볼일 없었던 놈들이 대부분이긴 한데, 가끔가다 이렇게 대박도 들어온다고. 목에 힘주고 다니다 뒈진 놈들, 그쪽 말처럼 높으신 뒈진 분들 말이지.”

언뜻 보기에 아무도 지원하지 않을 것 같은, 해서 무조건 강제로 시켜야만 할 것 같은 사형수 뒤처리 전담팀이었지만, 실상 지원율이 낮지만도 않았다. 오히려 정원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그분들 몸뚱이가지고 장난치는 맛이 있거든. 낚시 밥으로 쓰든가, 산짐승들 먹이러 준다든가. 아주 그냥 무궁무진해. 흐흐.”

이 팀의 우두머리나 마찬가지인 중년 병사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다른 병사들도 음흉하게 웃어보였다. 임시로 배정받았다는 신참만 어깨를 잔뜩 움츠릴 뿐이었다.

“뭐 그래도 오늘은 특별하긴 해. 그냥 귀족도 아니고 탑주잖아? 내가 또 언제 상아탑주 쌍판을 보겠어? 엉?”

그리 말하며 수레에 실린 상아탑주의 얼굴을 바라보는 중년 병사, 다짜고짜 침까지 퉤 뱉으며 낄낄거렸다.

“침은 또 언제 뱉어보고!”

“하하! 암, 그렇지. 흔치 않은 기회지.”

“황족도 하나 처형당했으면 좋겠는데.”

“황족? 좋지. 황족! 난 이왕이면 공주로!”

“그 왜, 절세미녀라고 소문난 공주 하나 있잖아? 이름이 뭐더라?”

광기어린 병사들과 그 사이에 낀 신참 병사. 그들 모두가 인근 야산으로 들어왔다. 횃불 아래 밝혀진 숲속은 그야말로 어둠천지. 한데도 길을 찾는데 막힘이 없었다. 결코 정상이 아닌 자들이기는 했으나, 베테랑들이기도 했다.

“자, 이쯤에서 하자고.”

“무, 무엇을 말이십니까?”

“그쪽은 됐으니까 구경이나 하쇼.”

신참 병사의 의문을 무시해버린 병사들이 움직였다. 먼저 거적으로 둘둘 말린 시체부터 꺼내 흙바닥에 눕혔다. 아직 핏기조차 가시지 않은 탑주의 시신이었다.

스릉!

그러더니 철검 끝으로 시신을 훼손시키기 시작했다. 뿐이랴? 횃불로 하여금 살을 지져 살타는 냄새까지 풍기도록 만들었다. 졸지에 피 냄새, 그리고 살타는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분명 굶주린 산짐승들의 코와 식욕을 자극할 터.

“우리 짐승들도 고급 요리 한 번 자셔봐야지. 언제까지 뒷골목 쓰레기들만 먹일 수는 없잖아? 늙어서 질길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지금껏 먹고 싼 때깔이 다를 테니까.”

그들은 규칙대로 탑주의 시체를 태우거나, 혹은 매장할 생각이 없었다. 그밖에도 ‘재미나게’ 처리할 방법이 무궁무진하게 많았고, 오늘은 그 방법 중 하나인 ‘굶주린 산짐승’을 택한 것이었다.

“부럽네. 부러워! 탑주를 다 뜯어먹어보고.”

“부러우면 너도 가서 같이 뜯어보든가.”

“크크! 염병할 소리 하고 있네. 미친놈!”

한바탕 질 나쁜 농담과 웃음소리를 늘어놓았던 그들이 슬슬 일대에서 빠져나가고자 했다. 곧 산짐승들이 몰려올 테니까. 아니, 이미 몰려와 병사들의 눈치를 보고 있을 테니까.

“구경까지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다 같이 잡아먹히게?”

“별수 없잖아? 그래도 상아탑주 시체야. 괜히 더 갖고 놀다 걸리면 끝장이라고. 끝장! 이 정도로 만족해야지.”

아쉬움을 달래는 병사들.

시체로부터 몇 걸음이나 떨어졌을까?

스스스스스…….

탑주의 시체에서 뱀처럼 기다란 기운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그 검은 기운은 마치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병사들을 발견하더니, 곧장 그들의 배후로 접근했다.

“엉? 뭐야?”

무언가 느껴진 병사 하나가 뒤를 돌아봤다.

바닥으로 꿈틀거리는 검은색 기운이 보였다.

어두운 밤이라 그럴까? 정말 뱀처럼 느껴졌다.

“……뱀인가?”

“뭐? 뱀?”

“바닥에, 뱀 아니야?”

“술이나 담가먹을까?”

“뱀술 좋지.”

“이 아저씨는 맨날 술타령…….”

바로 그때였다. 뱀처럼 기다란 검은색 기운이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그 목적지는 중년 병사의 입구멍, 그야말로 순식간에 입술을 비집고 들어갔다.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커, 커헉……!”

그 소리가 곧 병사의 유언이 되었다. 실로 경악스러운 사태가 벌어졌으니까. 중년 병사의 눈과 코, 귀와 입으로부터 선홍빛 생명력이 송두리째 뽑혀져 나왔다. 그 생명력은 숲속 바닥에 뉘어져 있던 탑주의 몸뚱이로 향했다.

“으…… 으, 으아아아악!”

실로 믿기 힘든 광경에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이해할 수도, 이해하기도 힘든 상황, 그저 지금은 도망쳐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오직 그 생각만이 병사들의 오감을 사로잡았다.

“살려……!”

하나 병사들의 도망침보다 검은 기운의 움직임이 훨씬 빨랐다. 한 명의 생명력을 거두고 두 명, 세 명의 생명력까지 모두 거두어 옮기자 이윽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엇이 움직였느냐고?

“크흐, 크흐흐…….”

바로 탑주의 시체가.

살아난 것은 아니었다.

살아났다 말하기엔 너무 창백했으니까.

두 눈마저 생기를 잃은 것 같았으니까.

“히, 히익!”

네 명의 병사 중 유일한 생존자. 오늘 하루 임시로 나왔던 신참이 뒤를 돌았다가 그만 빳빳하게 굳어버렸다. 죽었던 탑주가 움직였다. 심지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으…… 어……?”

오감과 이성의 격렬한 동요.

병사가 도망칠 수 없는 이유였다.

그 어떤 흑마법도, 마법도 아니었다.

“감히, 감히 나를 처형시켜?”

탑주가 제 부들부들 떨리는 양쪽 손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목덜미도 매만져봤다. 그는 더 이상 백치가 아니었다. ‘언데드’로 다시 태어나며 모든 기억이 돌아온 상태였다.

“반드시 후회할 게다!”

언데드가 되어버린 탑주.

그가 겁에 질린 병사에게 다가갔다.

생명력을 마저 거두기 위함이었다.

“반드시…… 반드시……! 크흐, 크흐흐!”

“턴.”

“크하……!”

“언데드.”

“하……?”

탑주의 한층 더 기괴해진 광소.

그 틈으로 파고드는 익숙한 목소리.

제대로 반응해볼 기회조차 없었다.

웃음마저 다 끝내지 못했으니까.

우우우우우웅-!

태양을 연상케 만드는 황금빛 마나가 탑주의 몸뚱이로 몰려들었다. 이 땅에 언데드란 족속들이 제대로 활개 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바로 ‘턴 언데드’ 주문의 효과였다.

“네놈……?”

언데드가 된 탑주가 ‘턴 언데드’의 ‘술자’를 발견했다. 밝은 갈색의 머리칼, 검은색 지팡이, 진한 파란색 로브. 처형의 원흉이자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마법사, 이안이었다.

“이, 이노……!”

탑주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언데드에게 턴 언데드의 주문은 그야말로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온몸을 수만 조각으로 터뜨려 버리니까.

퍼걱!

바로 지금처럼.

“놀고 있네.”

그 수많은 파편 일부가 이안에게도 튀었다. 물론 미첼 그린리버의 로브에 새겨진 ‘청결 주문’ 덕에 조금도 묻어나진 않았지만.

“설마 언데드라니.”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이안.

한데도 로브를 툭툭 털며 중얼거렸다.

몹시 불쾌하다는 표정과 함께.

“갈 데까지 갔었군.”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표현 그대로 갈 데까지 간 거다.

전 상아탑주, 허버트 레온은.

“괜찮으십니까?”

“예? 아, 예!”

이안이 살아남은 병사에게 물었다.

상황파악이 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규칙대로 태우든가 하셨어야지.”

“그, 그것이…….”

“가서 보고하세요. 처리하고 갈 테니까.”

“아…… 아! 그, 그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야산 밖으로 후다닥 달려 나가는 병사. 그런 병사의 뒷모습을 잠시간 바라봤던 이안이 잔해부터 불태웠다. 탑주가 마지막으로 남긴, 그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파편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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