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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67화 (67/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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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67화

24. 검은 장막(1)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일사천리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그만큼 국가적 비상사태였으니까.

“탑주 허버트 레온의 극악무도한 죄상이 만천하에 드러났도다. 마법사는 물론이거니와 힘없는 백성들의 목숨까지 흑마법 재료로 희생시켰지. 그 죄질이 무겁다 못해 치가 떨리는바, 짐은 조금의 자비도 베풀 생각이 없다.”

노여움으로 가득한 황제의 목소리가 대전에 퍼져나갔다.

“하여, 이 순간부터 허버트 레온의 모든 권한과 작위를 박탈, 사형에 처할 것을 명하며, 그 방식 역시 공개처형으로 진행할 것을 명하노라.”

먼저 탑주 허버트는 공개처형이 확정되어 감금당했다. ‘흑마법의 후유증’으로 정신이 온전치 못한 탓에 자기 반론조차 펼치지 못했다. 이안이 의도했던 그대로 흘러갔다.

“또한, 이번 사태와 연관된 자가 더 존재하는지, 탑주 말고도 흑마법을 연구하는 마법사가 또 있는지, 그 모든 수사와 관련된 업무를 짐이 직접 진두지휘토록 하겠다. 일련의 수사 과정에 지위고하는 존재하지 않을 터.”

‘지위고하’는 존재하지 않는다.

참으로 많은 뜻이 내포된 말이었다.

평소 상아탑주와 가까웠던 자들.

일부 귀족들, 하인들, 마법사들.

심지어 5황자 라그나르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표현이었으니까.

“뜻하지 않게 사로잡혀 간접적이나마 탑주의 계략에 일조했던 이들은 그 상황을 충분히 참작, 치료된 후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것을 허락한다. 만약 이번 사태로 생업을 잃었다면 제국은 합당한 보상을 지급할 것이며, 이미 희생당한 이들은 유족의 품으로 돌아가 무사히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을 명하는바.”

물론 그 흑마법 치료는 이안의 몫이었다. 제국에서 ‘그레이트 캔슬레이션’ 마법이 가능한 인간은 오직 이안뿐이었으니까.

“단, 황태자의 목숨을 노렸던 고위마법사 헬레느에 관한 처분은 여타 피해자들과 달리하도록 하겠다. 자의가 아니었음을 충분히 이해하는 바이나, 그럼에도 황태자의 시해를 노렸음은 죄질의 경중이 씻을 수 없을 정도로 무겁다. 이에 짐은 고위마법사 헬레느에게 무기한의 감금령을 선고한다.”

이성적인 판단을 내린 황제였다. 가뜩이나 탑주의 처형이 확정된 상황 아니겠는가? 이럴 때 고위마법사까지 처형된다면 국력 자체에 큰 손실을 가져온다. 주변국 역시 이 틈을 주시할 터.

“물론 작금의 처분은 완화, 혹은 악화될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한 사실을 인지할 수 있도록 죄인에게 전달해주기를 명한다.”

마법사란 존재는 가장 유용한 무기이자 도구다. 4클래스 상당의 마법사라면 말할 것도 없다. 단지 살려두는 것만으로도 여러 안정과 이익을 불러온다. 황제의 판단이 옳았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태를 막아낸 두 영웅. 그들의 논공행상이 빠질 수는 없겠지.”

논공행상을 논하는 황제의 얼굴에 일말 흐뭇함이 서렸다. 두 ‘영웅’ 모두가 황태자의 사람이자, 자신이 직접 고른 원석이었기 때문이었다.

“전 상아탑주 허버트 레온의 계략을 완벽하게 막아낸 이안 페이지, 또한 고위마법사 헬레느의 황태자 암살시도를 훌륭히 저지해 낸 기사 올리버 레이우드는 앞으로 나오라.”

황제의 말에 갑옷과 투구, 망토까지 정식으로 두른 제2 황실기사단장 올리버 레이우드가 붉은 카펫 위를 밟았다. 그런데 정작 이안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오라.”

이안의 부재에 대소신료들이 의구심을 느꼈지만, 황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올리버만 가까이 불렀다. 오히려 대전의 모두에게 안심하라는 듯 읊조렸다.

“이안 페이지는 현재 흑마법과 관련된 문제로 조사 중에 있소. 그에 대한 논공행상은 모든 사태가 완전히 마무리된 후 따로 이루어질 터. 지금은 여기, 무려 4클래스의 마법사로부터 황태자를 지켜낸 기사, 올리버 경에게 집중해주시오.”

이제야 모두의 시선이 올리버에게 쏠렸다.

물론 올리버는 일말의 흔들림조차 없었다.

“이는 실로 제국의 축복이자 경사가 아닐 수 없소이다. 황태자가 무사함은 물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제국의 기사가 탄생한순간이 아니겠소? 제국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기사들, 아니, 칼을 든 무사들에게 크나큰 귀감이 될 터.”

신료들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이안의 부재가 궁금했을 뿐, 그들 역시 올리버를 향한 관심도가 높았다. 기사가 마법사를 이겼다. 그것도 4클래스의 고위마법사를.

“짐은 그런 올리버 레이우드의 노력과 결실을 헛되이 지나치지 않을 것이오. 많은 고민을 했지. 어찌 치하를 해야 할까. 결론은 하나였소. 기사는 기사답게.”

잠시 하던 말을 멈췄던 황제 테리.

그가 천천히 말문을 이어갔다.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제2 황실기사단장 올리버 레이우드에게 제국 내 모든 기사를 통솔할 수 있는 권한이자, 제국의 기사된 자로서 영원히 기록될 최고의 명예, ‘검공’의 칭호를 부여함으로 공을 치하할 생각이오.”

그 말에 신료들이 술렁거렸다. 이미 의견을 나눈 고위관료들만 조용할 뿐이었다. 분명 제국 역사에 존재하긴 했던 명예직이다. 하나 실제로 누군가에게 하사된 일은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찾아볼 수 있었다.

“짐도 알고 있소. 검공이란 칭호가 무얼 뜻하는지. 하지만 충분하지 않소? 애당초 검공의 명맥이 끊어져 버린 이유가 무엇이오? 마법이라는 그늘 아래 가려져 검의 명예가 추락했기 때문이지.”

고위관료 이외 수많은 신료들의 반응을 예상한 듯, 황제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사된 입장에서 듣기는 다소 거북할지도 모르겠으나, 명백한 현실이었다.

“한데 올리버 레이우드는 바로 그 거대한 그늘을 뚫고 나왔소. 오랜 세월 황태자의 곁을 충실히 지켰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오. 게다가 4클래스 마법사를 압도적으로 제압해 냈소. 이 정도면 능력과 충성심은 가히 완벽에 가깝다고 사료되는데, 혹 이견이 있다면 말씀들을 해보시구려.”

황제의 말은 합당했다. 올리버에게는 충분한 자격이 있었으니까. 지금은 마법의 시대다. 아주 오래 전처럼 기사들의 힘으로 반란을 꾀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란 거다. 표현 그대로 명예직이나 다를 바 없으리라.

“아무래도 없는 것 같군.”

신료들의 반응에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황제는 아주 흥분된 상태였다. 곧 상아탑주를 노릴 이안과 검공으로 우뚝 설 올리버. 두 거목이 황태자의 곁을 지키게 되는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든든해졌다.

“황실의 기사, 올리버 레이우드는 무릎을 꿇으라.”

황제가 직접 옥좌 위에서 내려왔다. 검을 뽑아 한쪽 무릎을 꿇은 올리버의 어깨 위에 얹었다. 군주가 기사의 작위를 하사할 때와 비슷한 모양새였다.

“에메랄드 강물의 가장 첫 번째 줄기로서 명하노니, 기사 올리버 레이우드의 이름 앞에 ‘검공’의 칭호와 그에 따른 명예를 허락하노라. 그대는 제국의 검으로서 수백 년간 공석이었던 검공의 책임을 짊어질 준비가 되었는가?”

황제 테리 그린리버의 진중한 물음.

올리버가 은은한 중저음을 토했다.

“소장, 막중한 책임에 목숨을 걸겠나이다.”

간단하지만 강직한 맹세.

작위적인 겸손함마저 없었다.

오히려 자신감으로 넘쳐흘렀다.

그것이 바로 ‘그린리버의 검공’. 올리버 레이우드였다.

* * *

전 상아탑주 허버트 레온의 공개 처형일이 삼일 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이안은 탑주의 흑마법 연구실이었던, 또는 비밀창고였던 공간. 서책으로 생성된 포탈 건너 지하실에 있었다.

‘전리품이라.’

그곳에는 아직 탑주의 사유재산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일부러 감춘 게 아니다. 오히려 이안은 탑주의 사유재산을 황제에게 고했다. 한데도 온전한 이유는 단 하나.

‘이것들은 모두 이안, 그대의 전리품이다. 갖든, 제국의 재산으로 환원하든, 상아탑에 귀속하든, 알아서 선택하라.’

이는 황제의 개인적인 논공행상이었다. 동시에 시험이기도 했다. 과연 이 막대한 재산을 어찌 사용하느냐, 그 선택이 보고 싶었겠지. 확실한 건 몽땅 가져도, 몽땅 제국의 재산으로 환원해도, 몽땅 상아탑에 귀속해도 썩 좋은 점수는 받지 못할 터.

‘은근히 귀찮네.’

애당초 이안은 포탈의 서책과 몇몇 아티펙트만 탐났을 뿐이다. 재물은 이미 차고 넘친다. 아티펙트 이하의 마법용품은 오히려 방해만 된다. 해서 필요한 것만 쏙 챙기고 떠넘길 생각이었다. 상아탑이든, 황실이든.

‘뭐, 챙겨두면 언젠가는 쓸 일이 있겠지.’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돈이야 많을수록 좋고, 아티펙트나 마법용품 역시 챙겨두면 쓰일 데가 있을 거다. 처분과 숨김의 문제마저 사라졌으니 부담감도 덜었다.

“일단 두고.”

탑주의 사유재산은 당분간 이곳에 보관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포탈만 있다면 제집 드나들 듯 오고갈 수 있는 곳, 구태여 저택까지 옮겨둘 필요는 없으리라.

‘확인부터 좀 해봐야겠는데.’

그가 포탈 너머로 들어온 이유는 전리품 탓이 아니었다. 보다 근본적인 의문점을 해결하고자 왔다. 의문점의 근원은 바로 ‘포탈의 서책’. 이 아티펙트 서책이 문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포탈은 말이 안 돼.’

이안은 전생과 이번 생을 통틀어 신비로운, 또한 엄청난 능력을 가진 아티펙트를 수도 없이 사용해봤고, 들어보기도 했다. 하나 그중에서조차 포탈의 서책은 금시초문이었다. 그러한 아티펙트가 존재할거라 생각지도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포탈은 8클래스 마법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안이 8클래스로 등극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용할 수 있었던 마법이다. 술식 자체는 개인적인 연구와 고서들을 참고해 가며 새로이 창조해 냈다지만, 그 술식을 발현시키기 위해선 8클래스 수준의 마나와 연산능력이 필요했으니까.

‘8클래스 마법을.’

이안도 아티펙트의 출처나 제작법까진 모른다. 다만 아티펙트가 지닌 힘은 알고 있다. 그것들은 ‘마나 브레인’과 비슷한 능력을 지녔다.

‘아티펙트에 새기고, 심지어 발동된다고?’

새겨진 술식과 호환될 경우, 마나만 주입시킨다면 술식이 계산되어 마법까지 발현시켜준다. 심지어 그 효과를 효율적으로 변화시켜주기도 한다. ‘미첼 그린리버의 로브’가 플라이 주문을 변화시켰던 것처럼.

‘대체 누가 만든 거지?’

그 어떤 아티펙트가 그렇지 않겠냐만, 이 서책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결코 인간의 손에서 창조된 물건이 아니다. 물론 페어리 퀸과 같은 신수도 아닐 거다. 그보다 훨씬 초월적인 존재들.

‘드래곤, 혹은 그 이상의 무언가.’

그러한바, 이안은 의구심이 생겼다.

초월적인 존재가 연결시켰을 장소.

언뜻 보기로 지하실 같은 이곳.

대체 정확한 위치는 어디일까?

대륙 어딘가 붙어 있는 곳일까?

‘탑주가 연결시킨 곳은 아니다.’

포탈의 건너편은 항상 이 지하실로 고정되어 있었다. 위치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긴 하겠으나, 적어도 지금 이안이 가진 지식으로는 불가능했다. 탑주 또한 마찬가지였을 터. 인즉, 처음부터 정해진 장소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제 3의 차원 같지는 않은데.’

예컨대 아공간 주머니의 내부와 같은 ‘제 3의 차원.’ 그러한 공간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보기에는 너무 현실적이다. 마치 은신처처럼 꾸며진 지하실이 아니던가?

‘일단 나가는 길은 없고.’

넓은 사각의 공간이었으나, 어디에도 출입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며칠간 살펴본 결과 구 상아탑의 지하처럼 숨겨진 통로 역시 없는 듯 보였다.

“흐음…….”

주변을 한참 동안 살펴봤던 이안.

그가 제 따귀를 가볍게 긁적거렸다.

‘어쩔 수 없나?’

아무래도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무식한 방법’만 제외하자면 말이다.

‘부수고 나가보는 수밖에.’

마법으로 벽을 부수며 나아간다.

언제까지? 바깥이 보일 때까지.

참으로 간단한 방법이었다.

물론 이안에게만 그랬다.

6클래스 마법사나 가능한 방법이니까.

쾅!

이안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마음 먹은 즉시 행동으로 보여줬다.

쾅! 쾅! 콰앙!

실로 파괴적인 마법의 향연이 포탈 너머 지하실을 뒤흔들었다. 갈라지고 부서져 나아갈 통로가 뚫렸다. 그럼에도 끝은 보이지 않았다. 한두 번의 마법 정도로 해결될 깊이가 아닌 모양이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겠어.’

이안이 작정이라도 한 듯 더글라스제 하프 엘릭서를 복용했다. 뿐만 아니라 탑주의 사유재산으로부터 효율을 높여줄 아티펙트까지 가져왔다. 그야말로 만반의 준비였다.

콰앙! 쾅! 콰광!

파스스스…….

쾅! 쾅쾅! 콰아앙!

파스스스스…….

얼마나 더 벽을 뚫고 나갔을까?

사방에 만연하는 흙먼지와 돌멩이 너머.

그 너머로 빛 한줌이 보이기 시작했다.

‘밖인가?’

어찌 되었든 이안도 마법사다.

쉬이 말로 표현하기 힘든 호기심.

마법사 특유의 탐구심이 동했다.

과연 저 너머에 무엇이 존재할까.

콰앙!

이윽고 완연한 빛줄기가 이안의 눈을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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