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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66화
23. 본격적인 싸움(5)
“누구의 사주를 받고 오셨소?”
올리버가 헬레느를 향하여 천천히 다가갔다. 평온한 듯 보였지만, 장갑 안으로는 벌써부터 땀이 흥건했다.
“독단적으로 움직일 분은 아닌 것으로 아는데.”
이윽고 지척에 닿은 두 사람.
덩치의 차이부터 압도적이었다.
하나 그 힘의 차이는 어떨까?
“기사 따위가 뭘 어쩌겠다고?”
예전과 똑같은 헬레느의 목소리. 더 이상 눈자위가 검지 않았다. 성격 또한 제자리를 찾았다. 달라진 점이라면 오직 탑주를 향한 맹목적 충성 뿐, 소울 스톤이 가미되어 한층 발전된 흑마법의 효과였다.
“혹시 머리통에 활 맞았니?”
“대화가 통하지 않는 여자로군.”
“하?!”
올리버의 물음은 거기서 끝났다. 지금부터 그가 나아갈 길은 하나같이 ‘역사상 최초’로 기록될 터. 그 첫 번째 소절은 ‘감히 고위마법사에게 선공을 가한 기사 올리버’였다.
스캉!
물론 만만히 나아갈 길이 아니었다. 그녀의 지팡이는 강철보다 단단하며, 기습적인 검을 막아내는 근력과 반응속도 역시 숙련된 기사보다 앞서 나갔다. 보조마법과 마나, 천부적인 재능의 힘이리라.
카앙! 캉! 카앙!
변칙적으로 펼쳐지는 올리버의 공격에 헬레느가 뒤로 물러났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더니 곧장 마법부터 일으켰다.
“파이로 블레스트.”
총 여섯 발의 거대한 불덩이가 올리버를 향해 날아들었다. 평범한 기사였다면 결코 피할 수 없는 다연발 고위 마법, 헬레느의 얼굴에 확신이 깃들었다.
“잘 죽으렴.”
하지만 그녀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올리버가 누구던가? 이안도 이야기책에 나올 정도라며 혀를 내둘렀던 특기, ‘불을 베는 경지’의 칼잡이가 아니었던가.
스확!
거대한 불덩이 한 구가 올리버의 쾌검 앞에 반으로 나뉘어 각각 사선으로 갈라졌다. 사방을 에워쌌던 불꽃 중 그쪽으로 길이 나버린 형국이었다. 재빨리 그 틈새로 빠져나온 올리버가 다시금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부, 불을 벤다고?”
이안조차 놀랐던 검의 경지다. 헬레느 또한 상황을 망각한 채 중얼거렸다. 하나 언제까지 놀라고 있을 수는 없었다. 마나로 하여금 근육 하나하나, 힘줄 하나하나, 관절 하나하나까지 강화된 올리버의 움직임은 어지간한 맹수보다 빨랐으니까.
“으읏!”
마법사는 항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이다. 주문 몇 가지만 응용한다면 기사의 전력을 다한 접근보다 훨씬 빠르게 물러날 수 있다. 마법사와 기사의 가장 큰 차이였다. 한데, 올리버에게는 그러한 이점이 전혀 통하지를 않았다.
스캉! 캉! 카앙! 캉!
빨랐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이안과의 마지막 대련 당시보다 더욱 민첩해졌다. 마법사가 어떠한 방식으로 거리를 벌리는지 백이면 백 예측하고 있었다. 무얼 하든 손바닥 안이라는 거다.
“하아아아압!”
올리버는 단 한순간도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천부적인 재능과 천부적인 노력이 만났을 때 비로소 태어나는 결과물을 감히 ‘올리버 레이우드’라 칭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익……!”
밀려나는 스스로의 모습에 약이 바짝 오른 헬레느. 한순간이나마 기사에게 밀린다? 마법사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흑마법의 지배를 받는 것과 별개로, 그녀 본연의 자존심은 그대로 남아 있었으니까.
“감히 반쪽짜리가!”
‘반쪽짜리’란 마나하트와 마나브레인 중 하나만 타고난 이들을 낮잡아 부르는 표현이다. 제법 모욕적인 발언이었으나 올리버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오히려 냉소와 함께 화답했다.
“입만 살았군.”
“뭐……?”
반면 간단한 도발에도 화를 내뿜는 헬레느였다, 그녀의 두 주먹이 불길로 휩싸였다. 그러자 양쪽 어깨 위로 거대한 ‘불꽃 주먹’ 두 개가 나타났다. 올리버로서는 익숙한 마법이었다.
‘버닝 펀치, 이안 공의 마법과 똑같다.’
5년 간의 대련에서 자주 접했던 마법 ‘버닝 펀치.’ 비록 이안의 불꽃 주먹보다 크기부터 개수까지 부족했으나, 형식만큼은 똑같았다. 아마 활용방식도 비슷하겠지.
‘물론 짤막한 지속시간까지도.’
평범한 기사였다면 당황했을 거다. 아니, 5년 전의 올리버 자신이었어도 마찬가지다. 압도적인 크기로 불타오르는 주먹 한 쌍과 마주했다. 심지어 빠르고 정확하기까지 하다.
‘피하면 그만이다.’
하나 올리버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피하면 그뿐이다. 지속력이 짧은 마법이니만큼 금세 사라져 버릴 터. 무지막지한 외형에 압도당하지 않는다면 의외로 쉬운 상대다.
“너, 곱게 죽이진 않을 거야.”
“그렇소? 나는 당신을 반드시 살릴 것인데.”
“……?”
“충분히 고문하여 배후를 밝혀야 하니.”
이를 뿌득 문 헬레느가 불꽃 주먹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한번 휘두를 때마다 일대의 바닥이 박살나고 기온을 상승시켰다. 완벽하게 피했음에도 의복 끝자락이 검게 그을릴 정도였다.
“쥐새끼 같은 놈!”
변칙적인 원형을 그리며 한참동안 불꽃 주먹을 피했던 올리버.
‘지금!‘
그가 마음이라도 바뀐 듯 헬레느에게 정면으로 돌격했다. 그야말로 불꽃의 카운터펀치를 얻어 맞기 딱 좋은 상황, 판단의 실수였을까?
“죽어버려!”
비릿한 조소가 잔뜩 섞인 헬레느의 외침이었다. 하나 그녀는 알지 못했다. 적어도 ‘버닝 펀치’에 한해서는 자신보다 올리버가 전문가란 사실을.
화악 - !
올리버의 면전까지 닿았던 두 불꽃 주먹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흐트러져 버렸다. 지속시간이 끝나버린 탓이었다.
“무슨……?”
하나 그 절묘한 타이밍을 눈치채지 못한 헬레느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올리버가 혈혈단신으로 마나의 불꽃을 꿰뚫어버린 것처럼 비춰졌으니까.
“마나 배리어!”
급하게 펼쳐낸 헬레느의 마나 배리어.
카아아앙!
그 표면에 올리버의 애검이 닿았다. 실로 간발의 차였다. 보호막을 펼치지 못했다면 한쪽 어깨가 날아갔을 터. 설마하니 불꽃을 베다 못해 꿰뚫고 나올 줄은 예상조차 못했다.
“하, 하하…….”
한줄기 식은땀이 헬레느의 뺨을 타고 내려왔다. 하지만 괜찮다. 마법사에게는 ‘마나 배리어’가 있다. 결코 검과 근력 따위로 꿰뚫을 수 없는 배리어 말이다. 방어막 계열 주문을 극도로 꺼려하는 헬레느였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 그렇지. 네깟 반쪽짜리 놈이 날뛰어봤자…….”
단순한 기사가 아니다.
상상 이상으로 강한 놈이다.
헬레느도 올리버를 인정했다.
하나 이 배리어만 있다면 안전하다.
기회를 노려 다시금 시작하면 된다.
올리버도 그 사실을 알 텐데.
분명 그러한데.
“고맙소. 이제야 해볼 수 있겠군.”
오히려 차분해지는 단장 올리버였다.
그가 우두커니 검을 고쳐 쥐며 말했다.
“이안 공과 겨루는 날이 오거든, 그때 선보이고 싶었는데.”
“뭐……?”
헬레느는 올리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마나 배리어’다. 검은커녕 투석기를 동원한다 한들 실금 하나 일으킬 수 없다. 그런데 뭘 어쩌겠다고? 마법사도 아닌 칼잡이 따위가?
“미리 점검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올리버가 제 손에 검상을 냈다.
생각보다 훨씬 깊숙한 상처였다.
당연하게도 붉은 피가 묻어나왔다.
묻어나올 뿐일까? 줄줄 새어나온다.
검의 날붙이가 흥건하게 적셔질 정도로.
“우린 마나를 외부로 방출시킬 능력이 없소. 당신 말처럼 반쪽짜리에 불과하니까.”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올리버의 음성.
상처 난 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붉은 피가 계속해서 검신 위로 흘렀다.
“다만.”
올리버의 붉은 선혈을 머금은 아티펙트 소드 ‘문드아일’이 미미하게 진동했다. 이는 분명 마나가 주입되었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잠깐은 가능하더군.”
마나는 피를 타고 도는 기운이다. 바깥으로 배출된 피에도 그 기운이 남아 있다. 곧 증발해버릴 테지만, 올리버의 표현처럼 아주 잠시간 그곳에 머문다.
우우우우우웅 - !
아티펙트 소드 ‘문드아일’의 진동이 점차 강렬해졌다. 뿐만 아니라 마나 본연의 푸른빛으로 칼날 전체가 넘실거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흐르는 피로부터 마나를 공급받은 덕이었다.
“보여드리겠소.”
백색의 검신은 완연한 푸른빛을 머금었다.
아니, 푸른빛 마나로 활활 불타올랐다.
“반쪽짜리 최선을.”
사선으로 치켜진 올리버의 검.
그 검이 단호하게 내리 꽂혔다.
헬레느가 펼친 마나 배리어.
그 단단한 방어막을 향하여.
서 - 걱!
소리부터가 달랐다.
실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상황을 지켜보던 기사들의 눈.
그 눈이 터질 듯 휘둥그레질 정도로.
“끄흐……!”
헬레느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마찬가지를 넘어섰다. ‘검’이 ‘마나 배리어’를 베었다. 감히 쇠붙이 따위가 방어막을 종잇장처럼 갈라 버렸다는 얘기다. 뿐이랴? 헬레느의 팔뚝마저 깊숙이 훑고 지나갔다. 진한 핏물이 튀었다. 기사들이 경이로움을 느꼈다면, 헬레느는 통증과 함께 판단력 자체가 뒤틀림을 느꼈다.
“마, 말도 안…….”
기겁하며 물러나기 시작한 헬레느. 모든 역량을 총동원시켜 빠져나왔다. 하나 올리버의 추격과 검은 그보다 훨씬 빨랐다.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을 틈조차 내어주지 않았다.
서걱!
헬레느의 로브자락이 크게 베였다.
조금 더 깊었다면 허벅지가 날아갔다.
서걱!
또 로브자락이었다.
조금만 더 깊었다면 손목이다.
서걱!
그녀의 핏방울이 허공에 흩날렸다.
손등 끝을 살짝 베인 탓이었다.
서걱!
이번에는 컸다.
손가락이 통째로 날아갔다.
그녀의 백옥처럼 새하얀 손가락이.
“꺄악!”
헬레느가 비명을 토했다.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 끝이 잘려나갔다. 그럼에도 움직임을 멈출 수는 없었다. 푸른빛으로 타오르는 검, 그 피 묻은 검을 앞세워 달려드는 올리버의 모습이 ‘검을 든 귀신’처럼 느껴졌으니까.
“오, 오지 마!”
헬레느는 지금 흑마법의 지배를 받고 있다. 한층 완화된 주문으로 성격과 말투가 그대로 묻어나오긴 하나, 그녀의 행동과 사고는 여전히 통제되고 있다는 얘기다. 한데도 느껴졌다. 올리버를 향한 두려움이, 공포라는 이름의 절규가.
서걱!
이윽고 올리버의 움직임이 헬레느를 앞섰다.
순식간에 옆구리마저 내어주고 말았다.
“아아악!”
절절한 통증!
헬레느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팔뚝과 손가락에 이어서 옆구리까지.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엄습해 왔다.
“허어억……! 허억!”
숨결마저 긴박해진 헬레느.
틈새가 벌어진 그 순간.
“……!”
한줄기 검광이 헬레느를 훑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목덜미를 스쳤다.
헬레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자신의 목이 잘려나가는 광경.
붉은 피분수가 솟구치는 광경.
그 참변을 똑똑히 느꼈으니까.
“……?”
하나 그것은 착각일 뿐이었다.
그녀의 목은 잘려 나가지 않았다.
단지 옅은 선만 그어져 있었을 뿐.
“어…… 어?”
더듬거리는 손으로 제 목을 확인한 헬레느. 분명 멀쩡한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떨리는 눈으로 올리버를 올려다볼 뿐.
“말하지 않았소?”
헬레느는 완벽하게 전투불능이 되었다.
이를 확인한 올리버가 검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반드시 살릴 거라고.”
충분히 고문하여 배후를 밝히겠다.
구태여 그 뒷말까지 내뱉지는 않았다.
“죽음은 마지막에나 드릴 자비요.”
* * *
“해, 해보라니! 그게 무슨……?”
“왜 그리 바보인 척을 하십니까. 하면 제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을 거라 보셨습니까? 이미 전적이 있으신데.”
이안은 믿었다.
페어리 퀸이야 말할 것도 없다.
황태자 쪽의 올리버 역시 믿을 수 있었다. 설령 4클래스 수준의 고위마법사가 찾아갔어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둘이라 해도 이겨낼 수 있을 거다. 이안이 그렇게 만들어놨으니까. ‘올리버 레이우드’라는 희대의 천재, 뿐만 아니라 희대의 ‘노력가’를.
‘그야말로 대륙의 첫 번째 검이지.’
제국이 아니다. 이제는 대륙이다.
이안이 설계한 올리버는 그랬다.
앞으로 더더욱 강해질 터.
“준비라 해봤자 마법사를 이길 순 없…….”
“페어리 퀸의 더스트.”
탑주의 중얼거림을 단박에 끊어버린 이안. 그가 페어리 퀸의 가루가 담긴 주머니를 살살 흔들며 말했다.
“이걸 어떻게 얻었다고 보십니까?”
“…….”
페어리는 아주 강력한 ‘신수’다. 분명 그런 기록이 상아탑에도 존재한다. 탑주라면 더더욱 빠지지 않고 읽어봤으리라.
“협상은 결렬입니다. 얻을 게 없네요.”
이안의 단호한 목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마 탑주께서는 재판을 받으실 겁니다. 이 정도면 사형은 당연지사겠죠. 그렇게 만들 거니까요. 수십 년간 피땀 흘려 일구신 상아탑, 제가 잘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 이놈……!”
이안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탑주.
할 수 있는 건 단지 그뿐이었다.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는가?
흑마법도, 마나도 없는데.
“아, 그리고…… 이왕 바보처럼 구신 김에 진짜 바보가 되어주셔야겠습니다. 그래야 앞으로 일이 좀 편해질 것 같아서.”
“뭐라……?”
말뜻을 알아챈 탑주가 주춤주춤 물러났다.
아니, ‘기어갔다’ 표현하는 쪽이 옳으리라.
“잠깐! 머, 멈추시게! 더 나은 방법이…….”
“과도한 흑마법의 부작용 정도로 해두죠.”
더 이상의 대화는 없다. 그 사실을 깨달은 탑주 허버트가 회복된 마나로 최후의 발버둥을 쳤다. 매직 미사일 몇 발이 이안의 면전에 날아들었다. 부질없는 짓이었지만.
“사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이윽고 이안의 손이 탑주에게 닿았다.
정확히는 두 손으로 머리를 낚아챘다.
두뇌에 직접 타격을 주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 도구는 ‘마나’였다.
“으, 으으헉……!”
대량으로 주입되기 시작한 마나. 그 거칠게 요동치는 마나가 탑주의 뇌를 마구 헤집어놓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맛보는 고통이니만큼 엄청난 비명이 탑주로부터 터져 나왔다.
“상아탑의 권위를 높이 세우는 것, 탑주된 자로 당연합니다. 황태자가 아닌 5황자 라그나르를 지지하는 것,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남몰래 재산을 축적한 것?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요. 단지, 제 가족들을 끌어들인 것. 그게 탑주께서 저지른 최악의 실수십니다.”
“으흐! 으아아아악!”
잔혹한 비명에도 이안의 표정은 싸늘할 뿐이었다.
“누구에게나 역린은 존재하는 법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