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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65화 (6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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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65화

    23. 본격적인 싸움(4)

    “어, 어, 어떻게……?”

    탑주는 아직 싸울 여력이 충분했다.

    한데 아무런 마법도 준비하지 않았다.

    벌써부터 전의를 상실한 것 같았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당혹감도 당혹감이지만, 의미가 없음을 아는 탓이었다.

    가능한 최대의 수를 썼다. 수백 명 인간의 영혼까지 태워 버린 흑마법이다. 제아무리 6클래스 마법사라도 저항하지 못할 거라 여겼다. 당장 5클래스 마스터인 본인일지언정 속절없이 당했을 정도니까. 한데 통하지 않았다. 저 이안 페이지에게는.

    “휴우.”

    이안이 그런 탑주 허버트에게 저벅저벅 다가갔다. 결과와 별개로 아까의 고통과 신음은 진심이었던 듯 이마를 꾹꾹 누르면서.

    “탑주님.”

    흑마법이 이안에게 통하지 않은 이유.

    그 까닭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먼저 기본적인 역량의 차이가 컸다. 탑주가 가늠했던 6클래스와 진정한 6클래스의 괴리는 생각보다 훨씬 멀었다. 더욱 방대하면서도 고품질의 마나가 육신과 정신을 지켜주고 있다는 뜻이다.

    “흑마법은 아니라고 잡아떼시더니만.”

    두 번째 요소는 바로 올리버가 5년의 대련을 부탁하며 대가로 지불했던 아티펙트 ‘여왕의 아뮬렛’. 단순히 머리를 맑게 해준다는 능력만 알고 있었는데, 표현 그대로였다. 머릿속으로 침투하는 마의 기운을 속속들이 정화시켜 줬으니까.

    “이게 뭔 줄 아십니까?”

    “……?”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이안이 탑주의 저택으로 향하기 직전, 막간을 이용해 준비해 온 대흑마법 병기, 그것은 연분홍빛 가루였다. 한 움큼 정도의 가루 뭉치가 자루 안에 담겨 있었다.

    “페어리 더스트라고 합니다.”

    “페, 페어리 더스트……?”

    “그중에서도 여왕의 더스트죠.”

    페어리 퀸의 더스트.

    오늘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페어리들은 사악함을 간파하는 눈이 있다고 합니다. 정화할 수 있다고도 하더군요. 혹은 아예 박멸시키거나.”

    페어리 퀸은 이안을 처음 봤을 때 ‘마기’를 언급했다. 그 마기가 보이지 않으니 큰 문제는 없을 거라며 동족들을 안심시켰다. 사악함 혹은 마기를 간파해 내는 눈과 정화의 능력, 그것이야말로 페어리 일족이 용의 권속으로서 부여받은 ‘권능’이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즉 혈혈단신으로 쳐들어올 만한 근거와 자신감이 있었던 거다. 본연의 강력한 힘과 아티펙트의 도움, 신수라고도 불리는 페어리들의 여왕 페어리 퀸의 권능까지. 지금 이안의 상태는 ‘흑마법사들의 악몽’이나 다를 바 없었다.

    “너무 성급하셨습니다.”

    탑주는 이안의 어리숙한 사리분별력을 이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상대의 흐트러진 사리분별력을 이용한 쪽은 오히려 이안이었다. 삼국 협정부터 6클래스 등극까지. 수십 일간 몰아쳤던 이안의 발자취 하나하나가 탑주를 조급하게 만들었으니까.

    “평소의 탑주셨다면 이런 악수까지 두지는 않으셨을 텐데요. 어지간히 급하셨나봅니다.”

    그 말이 조롱처럼 느껴지는 탑주였다.

    실제로 조롱이 맞기도 했지만.

    “놈!”

    조롱 덕분일까, 상실감에서 빠져나온 탑주가 최후의 발악을 시작했다. 탑주의 지팡이로 하여금 철창 속 사람들의 생명력과 마나를 끌어 모았다.

    “부패하라!”

    그러자 독극물처럼 탁한 질병의 기운이 이안에게 날아들었다. 물론 이안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어떠한 마법적 대응도 없었다. 그저 페어리 퀸의 연분홍빛 가루를 극소량 집어 허공에 뿌리는 것이 전부였다.

    화아아아아-!

    하나 그 효과만큼은 탁월했다. 흩뿌려진 페어리 퀸의 더스트가 질병의 기운과 함께 황금빛으로 불타올랐다. 흑마법의 사악한 기운을 불태우는 것이었다.

    “학습 능력이 떨어지시네.”

    “크으……!”

    “명색이 탑주란 분께서.”

    탑주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상대는 6클래스 마법사다. 기존의 원소 마법으로는 승산이 단 1퍼센트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나마 차별화된 흑마법으로 승부를 보는 수밖에는 없으리라. 적어도 탑주의 판단으로는 그랬다.

    “고통의 저주를 내리……!”

    탑주가 또다시 흑마법 주문을 읊조리는 찰나.

    “블링크.”

    짧은 거리를 순식간에 이동시켜주는 블링크.

    그로 하여금 탑주의 배후까지 접근하 이안이었다.

    “디스펠.”

    이어진 주문은 디스펠.

    상대의 술식계산능력을 몇 초간 먹통으로 만들어버리는 마법이었다.

    “마나 드레인.”

    이안의 마법은 멈추지 않았다. 급기야 탑주의 마나를 몽땅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아예 전투불능으로 만들어둘 요량이었다. 그래야 이후 하고자 했던 바를 이룰 수 있을 테니까.

    “크허어어억……!”

    여분의 마나가 빠른 속도로 사라져갔다. 마법사라면 응당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을 터. 탑주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5클래스 마법사이기에 더더욱 극심하리라.

    “쉬고 계세요. 볼일 좀 보게.”

    스르르 무너지는 탑주의 몸뚱이.

    정신은 붙어 있으나, 몸이 문제였다.

    마나가 순식간에 바닥나 버린 후유증. 노쇠한 몸일수록 그 후유증도 컸다.

    “라이트.”

    이안이 나이트 비전 대신 라이트 주문을 발동시켰다. 나이트 비전은 마나 소모량이 크다. 또한 세상만사가 온통 녹색으로 보이기에 사용처부터 달랐다.

    “역시.”

    이안은 철창 안 사람들을 먼저 살피지 않았다. 대신 아티펙트 진열대와 여러 보관함부터 살폈다. 물론 사람들을 구해주긴 할 거다. 이안은 극도로 선한 사람이 아닐 뿐, 탑주처럼 인륜마저 져 버린 악인도 아니니까. 단지 이유가 있었다. 혼자의 몸으로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 말이다.

    “이럴 줄 알았어.”

    옅은 미소를 지어보이는 이안.

    그는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전생에서부터 품었던 의심.

    그 의심이 사실이었음을.

    “숨겨놨으니 찾을 수가 없었던 거지.”

    전생의 탑주는 여러모로 칭송받았다.

    대륙일통의 기반을 다진 상아탑주.

    언제나 인자하고 친절했던 상아탑주.

    검소하고 청렴하기로 유명한 상아탑주까지.

    이안은 항상 그 마지막이 마음에 걸렸다.

    “청렴은 무슨, 해먹은 게 얼만데.”

    전생의 탑주가 사망한 이후, 가족이 없는 그가 제국에 반환한 재산은 그야말로 보잘 것 없었다. 다른 이들은 그 사실을 곧이곧대로 믿었으나 이안은 끝까지 추적했다. 세상 어딘가 숨겨놨을 탑주의 방대한 사유재산을.

    ‘그때는 실패했는데.’

    당시에는 결국 찾아낼 수 없었다.

    지금 확인해보니 그럴 만도 했다.

    포탈 너머 비밀 장소에 숨겨놨으니까.

    ‘어마어마하군.’

    보유한 아티펙트의 개수는 이미 압도적이었다. 상아탑에 등록된 아티펙트보다 여기 숨겨진 아티펙트가 더 많을 거라는 얘기다. 금은보화 역시 마찬가지다. 어찌 이렇게나 많은 재산을 다 쓰지도 않고 꽁꽁 숨겨놨을까? 죽어 사라질 때까지.

    “저승까지 가져갈 생각이셨습니까?”

    이안이 축 늘어진 채 숨을 고르는 탑주에게 물었다. 후유증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난 모양새였다. 단지 늙어버린 몸뚱이가 제대로 따라주질 못할 뿐.

    “탐이라도 나느냐?”

    “몇 가지는.”

    속내를 전혀 숨기지 않는 이안.

    그 또한 몇 가지 챙겨둘 생각이었다.

    특히 이 포탈을 열어주는 책만큼은 꼭.

    “솔직해서 좋군.”

    “탑주님이 너무 숨기고 사셨던 거겠죠.”

    아티펙트 진열대를 한참 살펴본 이안이 다시금 탑주에게 다가왔다. 슬슬 상황부터 정리시킬 차례였다. 철저히 이안의 방식대로 말이다.

    “그럼 이제 마무리 합시다.”

    “자, 잠깐!”

    정작 이안이 다가오자 겁이라도 난 걸까, 아니면 이안이 정상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처리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 걸까. 두 손을 저으며 이안에게 제안하는 탑주였다.

    “네놈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내게 손을 대서 좋을 건 하나도 없을 게야! 땅을 치고 후회하는 수가 있어!”

    “후회?”

    “고작 마르코 하나뿐일 거라고 생각하느냐? 아니, 그럴 리가! 바깥에는 아직 내 하수인들이 많아. 마르코보다 쓸모 있는 녀석들이지.”

    “그런데?”

    “크흐! 모르는 척하지 말거라 애송아. 이미 움직이고 있겠지. 내 신호가 없다면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게야. 처음부터 그렇게 각인을 시켜놨거든. 두 가지만 노리라고.”

    탑주의 하수인들이 노릴 ‘두 가지’.

    척 들어도 뻔한 소리였다.

    “가족, 그리고 황태자인가.”

    “어떤가. 거래를 한번 해보겠느냐?”

    탑주의 눈이 크게 번뜩거렸다.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낸 눈이었다.

    “내 제안은 간단하네. 서로 오늘의 일을 잊어버리는 게야. 나는 이 포탈만 발각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증거도 없어. 말 몇 마디로 탑주인 나를 끌어내릴 수는 없겠지.”

    탑주의 누릿한 눈빛이 이안을 끈덕지게 쳐다봤다. 아직 모든 것을 영위해나갈 수 있다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거절합니다.”

    하나 이안의 대답은 탑주가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흔들렸다면 저리 단호할 수 없으리라.

    “정녕 네 어미와 황태자가 죽어 나가야……!”

    “할 수 있으면 해보시죠.”

    “뭐……?”

    “해보라고.”

    가소롭다는 듯 웃어 보이는 이안.

    그의 얼굴에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 * *

    (감히 이 몸의 가루를……!)

    대저택의 와인색 지붕.

    연분홍 털을 가진 고양이 한 마리가 그 지붕 한가운데에 유유히 앉아 있었다. 물론 그 자태처럼 정말 유유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귀여운 고양이에게 과한 애정을 쏟는 베네사, 그리고 귀여운 고양이를 못살게 구는 더글라스를 피해 여기까지 왔을 뿐.

    (하아, 내 팔자야. 너무 오래 살았구나.)

    게다가 혹시 모르니 주변을 경계하라는 명령까지 있었다. 무려 인간 꼬맹이 이안 페이지의 명령 말이다.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분들께서는 어찌 인간에게 권속의 힘을 주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인간들의 저급한 표현을 빌리자면.

    (엿이라도 먹으라는 건가?)

    잠시 그렇게 생각했던 고양이, 아니 페어리 퀸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내,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불순하다. 너무나도 불순하고 불경하다. 그분들의 가장 위대한 권속인 자신이 어찌 그따위 망발을 함부로 입에 담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이게 모두 인간들 탓이다. 저급한 존재들과 함께 있다 보니 저급한 영향을 받은 게 틀림없으렷다.

    “누구세요?”

    바로 그때였다.

    지붕 아래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이안의 어미, 베네사의 목소리다.

    순간 자신을 찾아낸 건가 흠칫했던 페어리 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인간 손님이라도 찾아온 모양인데.

    (……어라?)

    대문 너머 찾아온 이들을 힐끔 바라봤던 페어리 퀸. 그녀의 투명한 눈에 이채가 서렸다. 마기를 보는 눈, 그 진실을 꿰뚫어보는 권능이 발동된 탓이었다.

    (저것들은…….)

    이안이 주변을 경계하라 명령 했던 까닭.

    아무래도 그 까닭들이 찾아온 모양새였다.

    저토록 진하며 역겨운 마기를 품은 채로.

    (겁도 없군.)

    감히 마기를 보고 그 마기를 내쫓는 페어리 일족의 여왕, 페어리 퀸이 거처하신 저택에 찾아와? 마기의 졸개 따위가?

    (그래. 오늘 잘 걸렸느니라!)

    그렇지 않아도 몸뚱이가 근질거리던 참이었다. 이 짜증나는 고양이 행세로부터 오는 스트레스와 굴욕감, 그 모든 감정을 한번쯤 해소해줄 때도 되지 않았겠는가?

    쿠구구구구구구……!

    저택의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번개의 기운도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향후 수백 년간 제국 역사에 미스테리로 남을 ‘하늘의 분노’가 오늘, 페어리 퀸의 감정해소로부터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콰과광! 쾅! 쾅! 콰과과광!

    “으악!”

    그 거대한 번개와 굉음이 수도 전체를 쩌렁쩌렁 울렸다. 덕분에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암행을 나와 봤던 황태자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가, 갑자기 무슨 천둥번개야?”

    단장 올리버에게 부축 받은 황태자가 하늘부터 올려다봤다. 아무리 봐도 어둡기만 할뿐, 번개가 떨어질 하늘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의 날벼락 아니겠는가?

    “간 떨어질 뻔했네.”

    “천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만 환궁하심이.”

    “뭐? 벌써? 에이, 뭐나 했다고,”

    “하오나.”

    큰맘 먹고 민생을 살펴보겠노라 나온 황태자였다. 얼마 전까지야 어딜 가든 라그나르 칭찬뿐이니 나설 마음도 없었으나, 지금은 황태자의 인기가 하늘로 치솟아버린 상황이었다. 한번쯤 나와볼 만도 했다.

    “그보다 단장.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하명하십시오.”

    “음, 그러니까…… 그게 말이지.”

    잠시 망설였던 황태자가 말문을 이어갔다.

    “나도 검을 좀 배워볼 수 있을까?”

    “검이라 하시면.”

    “뭐 대단한 거 말고, 그냥 호신용…… 그것도 너무 늦었나? 하면 그냥 폼이나 잡게. 칼집에서 멋지게 뽑는 법이라든지…….”

    스르릉!

    멋지게 뽑는 법이라도 시연해 준 걸까.

    아니면 기사로서 자존심이 상한 걸까.

    다짜고짜 검을 뽑아 드는 올리버였다.

    그 기세만으로 베일 듯 날카로웠다.

    “아니, 당장 가르쳐달란 건 아니고…….”

    “전하.”

    “나도 진지하게 한번 배워볼 테니까.”

    “제 뒤에 서십시오.”

    “응?”

    올리버가 자신의 애검,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아티펙트 소드 ‘문드아일’을 고쳐 쥐었다. 그 모습에 황태자조차 놀랄 정도였다. 올리버는 결코 첫 번째 선택으로 문드아일을 뽑지 않는다. 한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제2 황실기사단, 전하를 수호하라.”

    명령과 동시에 사복차림의 기사들이 사방으로부터 몰려와 황태자를 둘러쌌다.

    “모습을 드러내시오.”

    조용하게 으르렁거리는 올리버의 중저음. 그러자 건너편으로부터 검은 로브차림의 여인이 스르르 나타났다. 올리버를 제외한 기사들은 아무런 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마법이 분명하다.

    “당신이었군.”

    올리버가 검은 로브의 여인을 알아봤다.

    아주 유명하고 익숙한 얼굴이었으니까.

    후드를 걷어 내리자 더더욱 확실해졌다.

    “상아탑의 고위마법사, 헬레느 공.”

    올리버의 눈매가 우묵하게 가라앉았다.

    한때 상아탑 2인자였던 고위마법사다.

    그런 자가 살기를 내뿜으며 다가왔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상관없다.

    헬레느는 암살자다.

    “어째서 전하의 앞길을 가로막으셨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직감할 수 있었다.

    목숨을 걸 순간이 찾아온 거다.

    마법사를 상대하는 칼잡이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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