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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64화 (6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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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64화

    23. 본격적인 싸움(3)

    탑주는 이안의 방문을 짐작하고 있었다. 마르코와 미미하게 연결해 뒀던 지배의 고리가 끊어진 탓이 컸다. 흑마법을 간파하고 풀어낼 수 있는 경지의 대마법사, 제국에는 오직 이안뿐일 테니까.

    “어찌 할까요. 탑주님?”

    “혼자 왔던가?”

    “예. 적어도 근방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면 잠시만 기다리라고 전해주게.”

    이미 디텍트 마법으로 혼자임을 확인해둔 탑주가 구태여 병사에게 물었다. 그러고는 침실 옆 서재에 포탈을 생성시켰다.

    ‘드디어 왔구나. 이안 페이지.’

    마르코를 계속해서 이안의 근처에 활동시킨 것은 실수가 아니었다. 오히려 노림수였다. 표현하자면 ‘절반의 유인책’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이안이 마르코의 변화를 알아채길 노렸고, 지금처럼 제 발로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여럿이 왔다면 포탈의 매개체를 감췄겠으나, 홀로 왔으니 그럴 필요는 없으리라.

    ‘자신감으로 가득할 테지.’

    이안은 무려 6클래스의 대마법사다.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한다 해도 역전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얘기다. 인즉, 승산을 조금이나마 높이기 위해선 17살 이안의 어리숙한 사리분별력부터 흔들어놔야 했다.

    ‘나를 끌어내릴 생각에.’

    독보적인 능력과 눈썰미로 탑주의 계략을 간파했다. 이후 흑마법으로 타락해 버린 탑주를 혈혈단신으로 무찔러 피해자들을 구출한다. 이 얼마나 멋진 이야기인가? 마법사들은 물론이거니와 백성들로 하여금 대대손손 전해질 영웅담이리라.

    ‘당장 시작될 영웅담은 아니네만.’

    포탈 너머 지하실은 단지 흑마법 연구와 사용, 인간 원료의 감금만을 목적으로 둔 장소가 아니었다. 철창 너머로 또 다른 공간이 보였는데, 생각보다 매우 널따란 공간이었다. 오히려 철창이 세워진 일대보다도 면적이 수십 배는 컸다.

    “라이트.”

    수많은 금고와 보관함.

    끝없이 펼쳐진 아티펙트 진열대.

    차고 넘쳐 굴러다니는 사치품들.

    그렇다. 이 지하실의 정체는 ‘창고’였다. 그간 탑주가 남몰래 모아온 아티펙트, 마법용품, 재물 등을 숨길 ‘비밀창고’ 말이다.

    “몇 가지는 오늘부로 못 쓰게 되겠구먼.”

    전쟁터로 출전하는 장군이 갑옷과 망토를 두르듯, 탑주가 진열대로부터 몇몇 아티펙트와 마법장비들을 챙기며 중얼거렸다. 결코 녹록치 않은 상대이니만큼 준비가 필요했다.

    ‘6클래스의 개를 길들이는데 이 정도 투자쯤이야.’

    뿐만 아니라 보관함 하나를 통째로 들어 철창과 가까운 쪽으로 옮겨뒀다. 안에는 정체 모를 보랏빛의 보석이 가득했다.

    ‘소울 스톤.’

    보랏빛 보석의 명칭은 소울 스톤, 인간의 영혼을 가둔 보석으로 ‘고위 흑마법’에 필수적인 ‘재료’였다. 탑주는 그 소울 스톤이 수북하게 쌓인 보관함에 탑주의 지팡이를 꽂았다. 사방으로 설치된 철장 앞으로 지팡이가 곧추 세워진 꼴이 되었다.

    “거두어라.”

    탑주의 한마디에 지팡이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철창 속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력과 마나를 빨아들임은 물론, 아래로 쌓인 소울 스톤으로부터 회백색 아지랑이까지 거두었다. 미미한 비명소리마저 들려오는 것이, 소울 스톤에 갇힌 영혼이 분명했다.

    “환기하라.”

    두 번째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검은색으로 물들어갔다. 붉은빛의 생명력도, 푸른빛의 마나도, 회백색의 영혼까지도, 모두 흑마법의 일용할 원천으로서 새롭게 거듭난 거다.

    “갈무리하라.”

    그러자 지팡이의 주둥이 쪽 검푸른 보석을 기점으로 검은 기운이 빽빽하게 응집되었다. 언제든 흑마법 주문을 부릴 수 있는 일발장전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음.”

    엄청난 양의 소울 스톤을 허비했다. 아티펙트의 힘까지 빌렸다. 이 정도라면 제아무리 6클래스 마법사라도 쉽게 저항하지 못할 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인 탑주가 포탈을 유지한 채 서재로, 연이어 침실 쪽으로 돌아오고는 대기 중인 하인에게 말했다.

    “손님을 모셔오도록 하게.”

    얼마나 지났을까. 저택 바깥에서 한참을 기다렸던 이안이 안으로 들어왔다. 탑주는 딱히 반기지 않았다. 그저 의자에 앉아 하인이 가져다준 차를 음미하며 넌지시 읊조릴 뿐이었다.

    “오늘은 자네가 직접 왔구먼.”

    “상아탑의 가장 큰 어르신께서 와병 중이신데, 한번쯤 찾아뵈는 것이 도리이지요. 하루 빨리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말이라도 고맙네. 자, 앉게나. 차 맛이 좋아.”

    그 말에 이안 역시 탑주와 마주앉았다. 더불어 적막한 침묵이 깔렸다. 이안도 탑주도 눈앞에 놓인 차만 홀짝거릴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마르코 님께서는 몸 상태가 좋지 않으시더군요.”

    고요함을 깨는 쪽은 이안이었다.

    지극히 정중한 태도가 돋보였다.

    “저런, 내 병이라도 옮은 게 아닐까 염려스럽군.”

    “살펴봤는데, 그런 건 아닐 겁니다.”

    “하면 다행일세. 아주 성실한 친구지.”

    “네. 그래서 마르코 님 대신 제가 업무보고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겸사겸사 병문안도 드릴 겸 했죠. 혹 불편하신지요?”

    “허허, 그럴 리가 있겠는가? 6클래스의 대마법사께서 병문안을 다 와주다니. 오히려 내가 영광일 지경이구먼.”

    시시콜콜한 대화가 오고가는 가운데, 이안이 주변을 슬쩍 훑었다. 특히 책장 위주로 구석구석 살펴봤다. 마르코가 말했던 서책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마 다른 곳에 숨겨져 있으리라.

    “찾는 물건이라도 있나?”

    “아, 실은 재미난 얘기를 하나 들어서 말이죠.”

    “재미난 얘기?”

    “마르코 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만.”

    “하면 이 늙은이에게도 들려주게나. 한 달 가까이 집에만 갇혀 있으려니 영 심심해서 말일세.”

    “그러지요. 다름이 아니라, 탑주님의 저택 어딘가에 은밀한 곳으로 통하는 문이 존재한다 하시더군요.”

    이안이 차를 한번 홀짝이며 말했다.

    그 모습에 탑주는 확신할 수 있었다.

    ‘분신이 아니다.’

    분신은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허구다.

    어찌 음식물을 섭취할 수 있겠는가?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되묻는 탑주였다.

    “은밀한 곳? 어디를 말하는 겐가?”

    “글쎄요. 뭐 서재가 될 수도 있고, 식재료 저장고가 될 수도 있겠죠. 아니면 은밀한 연구실이라든지.”

    “은밀한 연구실이라, 마법사라면 응당 한번쯤 원하는 순간이 오지. 모든 연구는 가급적 상아탑에서, 그 수칙만 아니었다면 나도 저택 어딘가에 꾸며보고 싶을 정도야.”

    “이미 갖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 연구실.”

    돌림이 전혀 없는 이안의 한마디에.

    “생각보다 짓궂은 친구구먼.”

    탑주도 애써 거짓을 늘어놓지 않았다.

    “말 나온 김에 구경이나 해볼 텐가?”

    “그래도 되겠습니까?”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던가?”

    “없지요. 하지만 흑마법은.”

    잠시 말문을 멈췄던 이안.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 엉켰다.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갑자기 흑마법 얘기가 왜 나오는 게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만. 설마하니 내가 연구실에 틀어박혀 흑마법이라도 들쑤시고 있다는 얘긴가?”

    “그럴 수도 있겠죠.”

    “불쾌하군. 연구실은 인정하네. 특별한 문이 존재하는 것도 맞아. 우연한 기회로 얻게 된 아티펙트의 힘이지. 하나 흑마법이라니! 언급할 가치도 없는 소리일세. 도대체 마르코 그 친구가 무슨 헛소리를 한 건지 모르겠구먼.”

    흑마법 만큼은 극구 부인하는 탑주였다.

    그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이안을 포탈 너머로 유인하는 것, 이후 준비된 흑마법으로 이안의 영혼에 ‘지배의 령’을 새기는 것이었으니까.

    “그렇습니까.”

    “그렇다마다. 확인이라도 해보겠는가?”

    “허락만 해주신다면 그러고 싶군요.”

    “일어나세. 바로 보여주도록 하지. 나도 탑주로서 흑마법이니 뭐니 오해를 사는 것은 질색이니까.”

    탑주가 단호한 기세로 일어났다. 이안 또한 그 뒤를 따라 서재로 향했다. 침실과 연결된 서재의 문이 열렸고, 이미 생성되어 있던 푸르스름한 포탈이 한눈에 들어왔다.

    “저것이 그 문일세.”

    “색감이 영 기분 나쁘네요.”

    “나도 처음에는 그랬지.”

    안전함을 보여주듯 포탈 너머로 발을 쑥 넣어 보이는 탑주였다. 마르코의 언급처럼 특이한 서책으로부터 포탈 전체가 뿜어져 나오는 형국이었다. 이안도 저런 아티펙트는 처음 봤다.

    “들어오시게.”

    포탈의 너머에는 어둠만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이안은 섣불리 라이트 주문을 쓰지 않았다. 대신 그보다 몇 단계 높은, 탑주조차 상상 못 할 마법으로 시야를 확보하고 있을 뿐.

    ‘나이트 비전.’

    이안의 두 눈이 녹색으로 번뜩이며 어둠과 친숙해졌다. 아니, 친숙함을 넘어서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어둠은 이안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았으니까.

    ‘생각보다 더 심각하군.’

    포탈 너머 지하실로 추정되는 이곳. 먼저 마르코에게 전해 듣기는 했으나, 막상 목격하니 당혹스러울 지경이었다. 정말 마법사와 민간인을 가둬 흑마법의 원료로 사용할 줄이야.

    ‘이런 자가 전생에는 위대한 탑주로 남았지.’

    이런 허버트 레온의 이름은 상아탑에서 가장 위대한 탑주 중 하나로 기록되어 영원히 남았다. 새삼 역사의 이면이 얼마나 지저분한 것인지 체감될 정도였다.

    “이안, 혹시 아는가?”

    어둠 속으로부터 들려온 탑주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 미세한 떨림의 원인은 분명 ‘흥분’과 ‘기대’였다.

    “나도 한때는 영웅이 되고 싶었네. 혈혈단신으로 제국을 수호하고, 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원하는 마법사 말일세.”

    탑주가 미리 세워뒀던 지팡이 쪽으로 천천히 다가가며 말했다. 지척까지 이르렀음에도 딱히 지팡이를 뽑아 들지는 않았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봤다.

    “하나 세월을 거듭하며 깨달았지. 천방지축 날뛰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음을. 날 영웅으로 만들어줄 힘은 따로 존재했음을.”

    탑주의 조용한 손짓 한 번에 지팡이가 머금고 있었던 검은 기운이 수백 마리 뱀처럼 나뉘어 스멀스멀 움직였다.

    “내 판단 하나에 수많은 인재를 움직일 수 있는 힘. 그로 하여금 진정으로 제국과 백성의 안녕을 지켜낼 수 있는 힘.”

    이윽고 탑주의 손짓이 이안에게 향했다.

    검은 기운 또한 이안의 몸뚱이를 노렸다.

    “사람들은 그 힘을 권력이라 부르더군.”

    검은 기운은 감히 인세의 존재가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뻗어와 이안의 몸 구석구석을 휘감았다. 팔 다리는 물론이거니와 얼굴과 목, 몸통과 발끝까지. 마치 먹물이라도 한바탕 뒤집어 쓴 모양새였다.

    “끄으으으으……!”

    제아무리 이안이라도 신음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충만한 마나와 생명력, 거기에 소울 스톤과 여러 아티펙트의 힘까지 가미된 흑마법이 이안의 모든 것을 마구잡이로 헤집었으니까.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고작 신음에서 끝나지 않았으리라.

    “라이트.”

    이제야 라이트 주문으로 사방을 밝힌 탑주. 그가 이안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만족스러움이 절로 묻어나는 표정이었다.

    “그 힘의 일부가 되어주게. 하면 더욱 완벽하게 제국을 지킬 수 있어. 완벽하게 백성들을 구원할 수도 있겠지. 젊고 유능한 자네도, 이 늙은이도, 결국 바라는 건 영웅이 아니었던가?”

    흑마법의 기운이 점차 이안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눈자위가 검게 물들더니 다시금 하얀색을 되찾았다. 마르코가 그랬던 것처럼 이안도 바닥에 널브러진 채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갔다.

    “자, 일어나 보게나.”

    탑주의 명령에 즉각 반응하는 이안.

    벌떡 일어나 탑주를 바라봤다.

    “큭, 크흐흐……!”

    탑주가 광소를 터뜨렸다.

    비틀어진 희열로 가득했다.

    무려 6클래스의 대마법사다.

    인류 최초의 6클래스 마법사 말이다.

    그런 존재가 꼭두각시로 전락해 버렸다.

    누구도 아닌, 허버트 자신의 꼭두각시가.

    “이렇게 쉬운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보기 좋게 늙었던 얼굴이 한순간 마귀처럼 씰룩거렸다. 어쩌면 그게 상아탑주 ‘허버트 레온’의 본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어디 한번 대답해 보게. 내가 누구지?”

    마르코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

    “제국의 상아탑주 허버트 레온 공이십니다.”

    하물며 대답조차 똑같았다.

    분명 여기까지는 그랬다.

    “그리고.”

    하나 ‘이안 페이지’라는 이름의 꼭두각시는 그 뒤에 한 줄을 더 추가했다. 기본적인 사고의 범위가 넓기 때문일까?

    “미친놈이죠.”

    “뭐? 지금 뭐라고…….”

    “미친놈이라고.”

    탑주의 되물음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뿐이랴? 얼굴을 다 일그러뜨리지도 못했다. 아직 상황파악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거늘.

    빠악!

    둔탁한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이안의 선택은 마법이 아니었다. 오직 마나로 강화된 주먹 한방이 탑주의 늙고 흉측해진 얼굴을 있는 힘껏 강타했을 뿐.

    “크허억!”

    뒤로 나자빠진 탑주가 무너진 코뼈를 부여잡았다. 마나의 도움을 거친 주먹질은 어지간한 망치질보다 강력했다. 정신이 아찔해지다 못해 기절하기 일보직전이었다.

    “후! 후우……! 후……! 후우……!”

    재빨리 마나의 기운으로 부상과 정신부터 다스린 탑주. 그가 믿기 힘들다는 눈으로 이안을 올려다봤다. 얼굴에 만연했던 희열은 종적을 감춘 지 오래였다.

    “어, 어,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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