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63화 (63/342)
  • 63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63화

    23. 본격적인 싸움(2)

    탑주 허버트가 돌연 휴가를 냈다.

    공식적인 사유는 ‘건강 악화’.

    무기한 휴가였기에 탑주로서의 업무는 최고령 고위마법사 ‘데커드’가 임시로 도맡았으며, 아주 중요한 결정사항이나 업무보고 등은 탑주의 보조마법사인 ‘마르코’가 저택을 수시로 오고가며 전달했다.

    “요즘 신경 쓸 일이 많으셨으니까.”

    “연세도 있으시고.”

    사유를 들은 상아탑의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당초 노인에게 사절단 행렬은 감당키 힘든 일정이었다. 마법의 힘으로 동년배들보다 건강하다고는 하나, 수십 년 세월까지 속일 수는 없었으니까.

    “더군다나 이안 님 일도 있잖아?”

    또한 이안의 6클래스 등극에 압박감을 느꼈을 거라는 소문도 거론되었다.

    탑주와 이안, 상아탑 두 기둥의 주군이 다름은 제국 내에서도 꽤 유명한 이야깃거리였으니 말이다.

    “근데 있잖아.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갑자기 뭐가?”

    “우린 황태자 전하야, 5황자전하야?”

    “낸들 아나. 어차피 위에서 다 정해줄 텐데.”

    “하긴, 우리도 밖에서나 귀족 대우지. 여기선…….”

    이처럼 이안과 탑주, 두 사람을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가는 가운데, 이안은 자신의 개인 연구실에 앉아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마르코도 함께였다.

    “탑주께서는 많이 편찮으신 겁니까?”

    평소 이안은 상아탑으로 복귀한 마르코와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 고향 모그리안 영지의 2년 전까지 근황을 전해들을 수 있었으니까.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이안에게나 마르코에게나 제법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려하실 정도는 아닙니다.”

    “다행이군요.”

    한데 그 즐거웠던 대화가 어느 순간 끊어져 버렸다. 탑주가 돌아온 직후부터였다. 처음에는 상아탑의 분위기 탓이겠거니 했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사람 자체가 달라졌다.’

    이안은 그런 마르코로부터 묘한 ‘괴리감’을 느꼈다. 지금 이 순간 역시 마찬가지였다. 똑같은 얼굴과 똑같은 목소리, 똑같은 말투로 말하고 있었으나 그 괴리감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처음부터 의심했고, 오늘로서 확실해졌다.

    “더 하실 말씀이 없으시다면…….”

    “잠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이안이 마르코를 멈춰 세웠다.

    아직 확인해 볼 것이 남았다. 다만 그 전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슬슬 끝장을 보려는 건가?’

    탑주가 별안간 휴가를 낸 이유.

    이안은 어렵지 않게 직감할 수 있었다.

    건강 악화는 핑계일 뿐이리라.

    ‘준비하고 있겠지.’

    ‘정적’을 치워 버릴 수단.

    그 수단을 찾아내기 위한 준비.

    혹은 수단을 다듬기 위한 준비를.

    물론 대상은 이안 페이지 자신일 터.

    ‘무슨 꿍꿍이인지 대충은 알겠는데.’

    이안은 탑주에게 원한이 없다. 아니, 없었다. 전생에는 같은 주군을 모셨으니 부딪칠 만한 명분도 존재하지 않았다. 본성을 알고 있기에 인간적으로 꺼려졌을 뿐.

    ‘지금은 상황이 좀 달라졌다만.’

    사실 라그나르를 지지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선택이다. 속내야 어찌 되었든 이상적인 성군감 아니겠는가? 해서 적당히 하고자 했다. 탑주를 상대로 ‘승리’만 거머쥐되 결코 ‘파멸’시키지 않는 선으로, 그게 이안의 첫 계획이었다.

    ‘괜히 가족들까지 건드려서.’

    하지만 탑주는 도를 넘어섰다.

    이안의 가족까지 건드리고 말았다.

    회귀 끝에 얻어낸 소중한 존재를.

    어찌 가만 둘 수가 있겠는가?

    화를 자초한 거나 마찬가지다.

    ‘흑마법이라…….’

    이안은 흑마법을 안다. 오히려 잘 아는 편에 속한다. 클래스 상승과 용언 해석에 도움이 될까 싶어 연구해본 적이 있으니까. 물론 효과는 없었고, 흥미가 식는 건 당연지사였다.

    ‘심지어 비인간적이었지.’

    툭하면 마나 이외의 ‘비인간적인 자원’을 요구하는 마법이었다. 생명력이니 영혼이니, 어째서 금지가 되었는지 알만하다는 얘기다. 한데 탑주는 그러한 마법에 발을 담갔다. 뿐이랴?

    ‘마법사를 부릴 정도의 흑마법이라면.’

    이안이 마르코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짐작대로라면, 마르코에게서 느껴지는 괴리감의 근거가 흑마법이라면, 탑주는 아마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으리라.

    “마르코 님.”

    생각을 갈무리한 이안.

    그가 넌지시 마르코를 불렀다.

    “제가 잘못 짚었다면 정중히 사과드리겠습니다.”

    “예?”

    “아프거나 그런 건 아닌데, 기분이 좀 이상할 수 있거든요.”

    “무슨 말씀을…….”

    이안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대초원의 지팡이를 곧추세웠다.

    그러고는 마나부터 빠르게 주입시켰다.

    지팡이에 새겨진 ‘캔슬레이션’의 술식.

    그 주문을 거쳐 상승된 마법을 시전하고자.

    “그레이트 캔슬레이션.”

    강렬한 회색빛이 마르코를 휘감았다. 그 강렬함이 기존의 캔슬레이션과는 비교조차 힘들 정도였다. ‘캔슬레이션’이 보조 마법만 골라서 해제하는 주문이라면, ‘그레이트 캔슬레이션’은 상대의 마법 자체를 모조리 해제시켜 버리는 ‘안티매직’ 주문이었다.

    “커, 커허억……!”

    효과는 즉시 찾아왔다. 이안의 예상처럼 두통과 구역질을 호소하는 마르코였다. 연구실 바닥에 뒹굴며 토사물 대신 검은 기운을 토해내는 모습이 확신마저 더해줬다.

    “허, 허억! 허어억! 허억! 헉……!”

    한참동안 검은 기운을 게워낸 마르코.

    그가 정신이 든 듯 숨부터 몰아쉬었다.

    물에서 건져 올린마냥 호흡이 거칠다.

    “정신이 좀 드십니까?”

    “허억! 내, 내가 헉! 지금…… 왜……?”

    방금까지의 마르코가 아니었다. 혼란스러워 보였다. 땀으로 범벅된 얼굴과 붉게 충혈된 눈이 심정을 대변해줬다. 벌써 며칠째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였을 테니까.

    “마르코 님. 저를 보세요. 괜찮으십니까?”

    “이, 이안 님……?”

    마르코는 이제야 이안을 알아봤다. 동시에 조금이나마 상황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흑마법에 잠식당하기 직전까지의 기억이 돌아왔고,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던 두통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제, 제가 꿈을 꾼 것 같은데…….”

    “꿈은 아닐 겁니다.”

    “꿈이 아니라면…….”

    “탑주의 짓이겠죠.”

    그 말에 표정이 굳어지는 마르코였다. 기이한 통로, 어두운 방, 검은 눈자위의 사람들, 사람들을 가둔 철창, 그들로부터 마나와 생명력을 뽑아내는 탑주의 모습까지 전부 꿈이기를 바랐으니까. 하나 이안의 말을 듣는 순간 그 바람은 송두리째 찢어져 버렸다.

    “마, 막아야…….”

    혼란을 참아낸 마르코의 첫마디.

    “막아야 합니다. 이안 님. 탑주님을 막아야 합니다!”

    그가 절규하듯 소리쳤다.

    평생을 따랐던 탑주의 이면.

    그 이면이 확실하게 떠올랐다.

    많은 말들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하나 할 수 있는 얘기는 단 하나였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탑주의 흑마법을.

    “그럴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설명부터 해주시죠.”

    오만가지 감정으로 요동치는 마르코의 목소리와 달리, 이안의 어조는 이미 많은 부분을 예상하고, 또 준비한 듯 평온하기만 했다.

    “본 거, 들은 거, 당한 거. 하나도 빠짐없이 다.”

    * * *

    해가 질 무렵, 상아탑의 공적인 근무시간이 종료되었다. 지금부터 아침까지는 오롯이 마법적 연구와 수양의 시간이다. 원래대로였다면 마르코 역시 탑주의 저택으로 향했을 시간이기도 하다. 상아탑의 주요업무 보고서를 들고 찾아갔을 터.

    “제가 대신 가도록 하죠.”

    하나 오늘만큼은 달랐다. 이안이 직접 보고서를 들고 탑주의 저택으로 향했으니까. 이미 마르코에게 모든 정황을 전해 들었다. 9할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는데, 나머지 1할이 조금 의외였다.

    ‘탑주가 포탈을 열었다고?’

    설마 그럴 리는 없다. 멀찍이 떨어진 공간과 공간의 통로를 이어주는 ‘포탈 마법’. 그것은 이안조차도 전생 말미에나 가능했던 8클래스 주문이 아니던가. 한데 그 포탈을 고작 탑주가 사용한다?

    ‘아티펙트의 힘이겠지.’

    분명 푸르스름한 책으로 포탈을 열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탑주의 능력이 아닌 그 책의 힘이라는 것. 설마하니 그러한 물건까지 보유했을 줄이야.

    ‘상아탑 아티펙트 목록에도 없을 텐데.’

    아무래도 꽁꽁 숨겨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 듯하다. 현 상아탑주 허버트 레온 말이다. 애당초 흑마법을 연구했다는 사실조차 이번 생에 처음 눈치챘으니까.

    “누구십니까?”

    이윽고 이안의 발걸음이 황성에서 가장 구석진 저택 앞에 도착했다. 시끌벅적한 황성 번화가로부터 유유히 떨어져 있는 이곳, 조용함을 원했던 탑주가 선택한 터전이었다.

    “상아탑의 고위마법사 이안 페이지라고 합니다. 탑주님께 업무보고 차, 그리고 병문안 차 방문했습니다만.”

    “허억!”

    이안의 대꾸에 화들짝 놀라는 경비병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현 상아탑주의 경비병으로서 이안 페이지란 이름을 모를 리 만무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얼마든지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