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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62화 (6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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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62화

    23. 본격적인 싸움(1)

    상아탑에 돌아온 순간부터 탑주의 방으로 올라올 때까지, 탑주 허버트는 마법사들의 미묘해진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까닭은 안다. 입성하기 직전 몇몇 이들에게 보고를 받았으니까. 설마 입구부터 그따위 행각까지 벌일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만.

    “6클래스, 벌써부터 6클래스라. 허허.”

    허탈하게 웃은 탑주가 마나를 크게 방출시켰다. 수많은 서류와 책, 의자 등이 사방으로 널브러졌다. 꾸역꾸역 참았던 분노가 터질 듯 몰려왔다.

    ‘이런 흉계를 꾸미고 있었나.’

    단지 애송이들 사이의 왕으로만 군림했다고 여겼다. 놈의 경지 또한 높아봤자 5클래스 초입 정도로 파악했다. ‘충분히 입맛대로 조종할 수 있는 범위.’ 5년간의 철저한 뒷조사와 개인교습은 탑주에게 분명 그리 속삭였거늘.

    ‘애송이놈이……!’

    한데 아니었다.

    놈은 6클래스의 대마법사였다.

    고위마법사 다섯조차 놈을 따른다.

    놈에게 상아탑의 절반을 빼앗겼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수십 년간 일궈놓은 모든 것을.

    증오와 상실감이 엄습해 왔다.

    ‘침착해라. 생각을 해라 허버트.’

    놈이 아무리 잘나봐야 애송이에 불과하다. 올해로 17살 먹은 애송이 말이다. 그런 놈에게 모든 것을 빼앗길 수는 없지 않겠는가? 다른 누구도 아닌, 수십 년간 상아탑의 주인으로서 군림해온 허버트 자신이!

    ‘되돌려야 한다. 모든 것을 제자리로.’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커다란 조급함이 엄습해 왔다.

    더 강해지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

    놈이 더 강한 힘을 얻기 전에.

    “…….”

    잠시간 고민에 빠졌던 탑주.

    그가 대뜸 통신구를 발동시켰다.

    보조 마법사와의 직통 통신구였다.

    “마르코, 잠시 올라오게나.”

    곧이어 승강기를 통해 젊은 마법사가 올라왔다. 그는 모그리안 영지의 파견 마법사였던 남자, 어느덧 파견임기를 끝낸 지 3년 차에 접어든 ‘마르코’였다.

    “탑주님. 부르셨습니까.”

    “오, 왔는가.”

    마르코의 경지는 5년 전부터 쭉 2클래스에 정체되어 있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능 있는 마법사다. 1클래스조차 넘지 못하는 마법사들이 대다수 아니겠는가?

    “문득 옛 생각이 나는구먼. 자네를 처음 봤을 때, 벌써 이십년도 더 지난 일이지. 마르코, 자네야 갓난쟁이였으니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이안을 향한 증오와 경계로 가득했던 탑주의 얼굴. 그 추잡한 얼굴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평소 보여줬던 인자함보다 애정이 넘치는 얼굴이었다.

    “아직까지도 생생하다네. 헝겊에 싸여 버려진 아기가 나를 보며 웃더군. 자식도 없어서 그랬던 걸까. 도저히 다른 이에게 떠넘길 수가 없더란 말이지. 자네를.”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탑주는 갓난쟁이로 버려졌던 마르코를 직접 거두어 키웠다. 마르코 또한 탑주를 아버지처럼 따랐다. 평생토록 그래왔으며, 지금도 마찬가지다.

    “몸을 뒤집고, 두 발로 일어서고…… 자네의 모습을 지켜보는 즐거움에 업무조차 잊어버릴 정도였어. 한데 그때 그 아이가 마법사로서의 재능을 가진 걸로 모자라 이토록 장성하여 정식마법사까지 될 줄이야. 어디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탑주가 흐뭇한 얼굴로 마르코를 바라봤다.

    “이 늙은이는 자네가 참으로 대견스럽네.”

    “모두 탑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 덕분이십니다.”

    그렇게 대화가 잠시간 끊어졌다.

    침묵을 깨는 쪽은 탐주의 몫이었다.

    “……그래. 이만 돌아가 할 일을 하도록 하시게. 얼굴이나 한 번 보고 싶었을 뿐이니까. 요즘 부쩍 소원하지 않았나.”

    탑주의 미소에는 슬픔이 서려 있었다.

    마르코는 그 슬픔을 어렵지 않게 읽어냈다.

    “탑주님.”

    “음? 어찌 그러는가?”

    마르코 또한 최근 상아탑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있었다. 더 강력한 마법사가 나타났고, 그를 따르기 시작한 마법사만 상아탑의 절반에 가까웠다. 물론 더 높은 클래스의 마법사가 나타나 세대교체를 이루는 것은 순리다. 하지만.

    ‘탑주님은 내게 아버지 그 이상이다.’

    결심을 굳힌 마르코가 입을 열었다.

    결연한 의지로 가득한 목소리였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미약한 힘이나마 최선을 다해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말씀만 해주십시오.”

    “허허, 내 그 말이라도 고맙게 받겠네.”

    “진심입니다. 탑주께서는 저의 은인이시자 아버지, 그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도 높으신 분이십니다. 은혜를 갚아낼 기회가 있다면 이 마르코,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마르코의 절절한 충성심.

    탑주는 그저 허허 웃어 보였다.

    “하면…….”

    웃음으로 넘긴지 얼마나 지났을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탑주.

    마르코가 반색하며 대답했다.

    “하명만 해주십시오.”

    “잠시만…… 나를 따라와 주겠나?”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마르코의 손을 꼭 잡아준 탑주가 책상 한구석 수정구를 발동시켰다. 그러자 탑주의 방으로 통하는 승강기는 물론, 층간 통신구까지 몽땅 차단되기 시작했다. 때때로 조용함을 원하거나, 은밀한 회동이 있을 때 발동시킬 수 있는 봉쇄령이었다.

    “탑주님. 봉쇄를 하시면…….”

    “아, 괜찮아. 길은 따로 있으니까.”

    책장에서 책 한권을 꺼내는 탑주가 말했다. 곰팡이처럼 푸르스름한 색감의 서책이었는데,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이상해졌다.

    “이 책이 우리를 안내해 줄 것이니.”

    “……예?”

    놀라운 일은 책이 펼쳐진 다음에 일어났다. 정확히는 마나를 주입시킨 직후였다. 책표지와 똑같은 푸르스름한 기운이 책으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뿐이랴? 탑주의 방 한가운데로 타원형의 ‘문’이 형성시키기 시작했다.

    “이, 이건……?”

    마르코가 놀란 듯 중얼거렸다.

    그로서는 처음 보는 마법.

    마법이 맞기는 한 걸까?

    “자, 이쪽으로 들어오게.”

    “그 안으로 말입니까?”

    “겁먹을 것 없어. 내 먼저 들어갈 터이니 안심하고 따라오게나.”

    그리 말하며 푸르스름한 타원형의 문으로 들어서는 탑주였다. 이미 익숙한 듯 조금의 거리낌조차 없었다.

    “……?”

    망설임 끝에 탑주의 뒤를 따라간 마르코.

    그가 처음으로 목격한 것은 어둠이었다.

    문의 건너편에는 온통 어둠뿐이었으니까.

    “라이트.”

    어둠 속으로부터 탑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밝은 빛, 라이트 주문이 펼쳐졌다. 탑주가 펼친 라이트니만큼 그 빛의 범위 또한 넓었다. 어둠이 금세 걷어져 버릴 정도로.

    “탑주님……?”

    동시에 마르코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방의 모습은 마치 ‘감옥’과도 같았다.

    지하 깊숙한 곳에 지어진 감옥 말이다.

    “여긴 대체…….”

    사방이 온통 철창뿐이었는데, 심지어 그 안으로 수많은 사람의 모습까지 보였다. 미동조차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분명 숨을 쉬고 있었다. 미세한 숨이 붙어 있다는 얘기다.

    “너무 놀라지 말게. 그들은 원료일 뿐이야.”

    “워, 원료라니요? 갑자기 무슨 말씀을…….”

    별 일 아니라는 듯 대답하는 탑주.

    그가 책을 덮자 이곳으로 통했던 타원형의 문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전부 사람들이 아닙니까?”

    마르코가 철창 쪽으로 다가가 그 안에 갇힌 이들을 살폈다. 그리고 곧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두 가지 이유였다. 첫 번째 이유는 금방 알아챘다. 흰자위 없이 새카만 그들의 눈, 바로 그 눈들과 마주쳤으니까. 결코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잠깐…….”

    하나 더더욱 기겁할 만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검은 눈의 무리 중 마르코도 아는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크리스……?”

    그는 마르코의 아카데미 동기 ‘크리스’였다. 비록 많이 야위고 오른쪽 팔과 어깨가 없었지만, 심지어 머리털마저 하얗게 세어버렸으나 확실했다.

    “자네는 분명…….”

    “죽을 뻔했지. 마법실습 중 사고로.”

    탑주가 대신 뒷말을 이어졌다. 크리스는 분명 아카데미의 마법실습 중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친구다. 한데 ‘죽을 뻔’했다고?

    “여기 있는 마법사들 대부분이 그렇다네. 임무 중에 죽을 뻔했거나, 사고로 죽을 뻔했거나, 병을 얻어서 죽을 뻔했거나. 타국에서 공수해 온 마법사들도 더러 있지. 마법사가 아닌 이들이야 뒷골목에서 주워오면 그만이고.”

    덤덤한 어조로 말하는 탑주.

    더 이상의 인자함은 없었다.

    그야말로 ‘감정이 없는 인간’.

    그런 자들 특유의 건조한 목소리였다.

    “어차피 밑바닥이나 전전했을 친구들일세. 평생을 쓰레기처럼 살아갔을 터. 마법사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아. 1클래스의 범주조차 넘어서지 못했을 테니까. 많은 이들의 무시, 그에 따른 자괴감. 그 구렁텅이로부터 저들을 구원해 줬을 뿐이네.”

    “그, 그게 무슨…….”

    “상아탑의 제국에 일조하는 원료로서.”

    말문을 멈춘 탑주가 ‘상아탑주의 지팡이’를 허공으로 뻗었다. 그러자 철창에 갇힌 이들로부터 선홍빛깔 ‘생명력’과 푸른 ‘마나’가 조금씩 뽑혀져 지팡이 끝으로 모여들었다.

    “걱정하지 말게. 자네까지 저렇게 만들지는 않을 게야. 내 약속할 수 있어.”

    탑주의 주문과 함께 지팡이 끝 선홍빛 생명력과 푸른빛 마나가 검은색으로 물들어갔다. 과연 모든 기운을 타락시키는 ‘흑마법’ 그 자체였다.

    “자네는 내 아들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이윽고 탑주의 흑마법이 마르코를 휘감았다. 피할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실드마법조차 통하지 않았다. 조금이나마 막히기는커녕 그대로 스며들어 갔으니까.

    “끄으으으윽……!”

    검은 기운에 휘감긴 마르코의 눈자위가 조금씩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본연의 빛을 잃고 타락했던 생명력과 마나가 그랬던 것처럼, 핏줄 한 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진하게.

    “…….”

    한참을 저항했던 마르코.

    부질없는 몸부림이 멈춰졌다.

    여전히 숨통만큼은 붙어 있었다.

    “마르코, 일어나게나.”

    한데 그랬던 마르코가 탑주의 말 한마디에 벌떡 일어났다. 헬레느와 마찬가지였다. 눈에는 더 이상 흰자위가 없었으며, 탑주의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했다. 탁하고 거친 숨소리도 느껴졌다. 완벽한 ‘하수인’으로 거듭난 거다.

    “아직 할 일이 많아. 자네라면 더 버텨줘야지.”

    탑주의 욕심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보다 정상적인 모습을 가진 하수인.

    완벽에 가까운 하수인이 필요했으니까.

    ‘남들이 보기에 위화감이 없을 하수인.’

    그것이야말로 탑주의 궁극적 목표였다. 맹목적 충성심만 제외하고는 모든 부분에서 완벽한 하수인, 음지가 아닌 양지에서 활용할 수 있는 하수인 말이다.

    “부디 성공해 주길 바라네. 시간이 별로 없거든. 해서 자네를 쓰는 게야.”

    다시금 사방 철창에 갇힌 이들로부터 생명력과 마나를 거둬들인 탑주. 누구도 비명 한 마디조차 지르지 않는 고요함 속으로부터, 두 번째 흑마법이 시작되었다.

    “자네는 행운의 부적과도 같은 존재니까. 마나 폭탄이 떨어졌던 그 마을에서 살아남아 준 유일한 부적 말일세.”

    방금과는 달랐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검은색으로 물들었던 마르코의 눈자위가 다시금 하얀색을 되찾아갔으니까. 마치 ‘정화’라도 되는 것처럼.

    “오오.”

    그 모습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 탑주.

    여기까진 그도 바랐던 상황인 것 같았다.

    “나를 보게.”

    탑주의 명에 따라 고개를 든 마르코. 두 눈은 얼추 정상인의 그것으로 돌아왔으나, 감정이 한 조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누구로 보이지?”

    이어진 탑주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그린리버 제국의 상아탑주, 허버트 레온 공이십니다.”

    마르코가 또박또박한 어조로 대답했다.

    목소리도 마르코 본연의 목소리였다.

    어눌하면서 탁하게 변했던 헬레느.

    그녀의 목소리와는 전혀 달랐다.

    “그럼 자네는 누군가?”

    “제 이름은 마르코. 상아탑의 2클래스 마법사이며, 지금은 탑주님의 보조 마법사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마르코의 대답에 탑주가 단검 한 자루를 꺼내 던졌다.

    탱그랑!

    그러고는 명령을 하나 내렸다.

    “그 단검으로 자네 새끼손가락 하나 잘라보겠나?”

    자해나 마찬가지인 탑주의 명령.

    그럼에도 마르코는 거침이 없었다.

    정말 제 손가락을 잘라 버렸으니까.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제야 아들이라고 부를 수 있겠어.”

    완벽했다.

    흑마법은 성공적이었다.

    탑주가 원했던 하수인이 만들어졌다.

    “원료가 더 필요하겠구먼.”

    물론 마르코 자체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이안에게 씌울 강력한 흑마법, 그 한층 더 강화된 흑마법 술식의 빠른 완성을 원했고, 방금 성공적인 결과물이 나왔다.

    “훨씬 더 큰 짐승을 부리기 위해서라도.”

    훨씬 더 큰 짐승, ‘이안 페이지’란 짐승을 자유롭게 부리기 위해서는 원료가 턱없이 부족했다. 보다 더 많은 인간의 생명력이, 더 많은 마법사의 마나가 필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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