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61화 (61/342)
  • 61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61화

    22. 최강자 등극(2)

    이안은 탑주와 라그나르의 움직임을 오랫동안 예측해 왔다.

    이쯤 되면 꽤나 조급할 거다.

    황태자 자체는 별거 아니다. 결국 그 ‘지지대’를 노리겠지.

    ‘바로 나를.’

    거기서부터 고민이 되었다. 도대체 무슨 수로 자신을 노릴까? 5클래스에 불과한 탑주와, 탑주의 세력을 제외하자면 아직 제대로 된 기반조차 없는 라그나르가.

    ‘전생의 탑주는 원했던 바를 모두 이루고 죽었다.’

    탑주는 그야말로 하고자 했던 모든 것을 이뤘고, 천수마저 누렸다. 옹립하고자 했던 황제를 옹립했으며 상아탑의 권위를 사상 최고의 반열에 올렸다. 덕분에 마법사들도 탑주를 곧잘 따랐다. 개개인마다 충성도의 차이는 있었으나, 최소한 ‘적’은 없었다. 이안조차도 공통된 주군 라그나르를 모시는 아군이었으니까.

    ‘그때와 지금의 공통점은 대초원 사태, 그리고 빨라진 삼국협정이다. 즉 시간만 어긋날 뿐 커다란 틀은 비슷하게 흘러간다는 얘긴데.’

    그 커다란 틀 두 가지 모두 탑주가 꾸민 짓이라면, 대초원 사태를 일으킨 환술부터 라그나르의 데뷔무대였을 삼국협정까지 탑주의 계략이라면? 쭉 의심해 온 정황이다.

    ‘만약 탑주가 흑마법까지 파고든 거라면.’

    아마 그 흑마법을 앞세워 공격해 올 터.

    환술 말고도 수많은 흑마법과 함께.

    ‘두렵지는 않다만.’

    물론 두려울 것은 없었다. 5클래스 마법사인 탑주가 무슨 짓을 꾸민다 한들 이겨낼 자신이 있었으니까. 이제는 강력한 권속 ‘페어리 퀸’까지 존재한다. 더 이상 이안에게 약점 따위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변수를 생각해야 해.’

    그럴수록 마음을 다잡는 이안이었다. 마법은커녕 검술조차 젬병인 라그나르에게 독살을 당하지 않았던가? 안일하게 대처했다간 큰코다치는 수가 있다.

    ‘경계와 준비를 미루지 않는다.’

    지금 이안이 할 수 있는 경계, 지금 이안에게 당장 필요한 준비.

    그것은 바로 상아탑의 지지였다.

    5년간 수많은 부분에 손을 써놨다.

    많은 이들을 아군으로 만들었다.

    중립에 선 이들은 재촉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을 돌릴 수단이 필요했다.

    최연소 고위마법사로는 한계가 있다.

    ‘탑주보다 강한, 상아탑의 절대자.’

    마침내 새로운 선택지가 생겼다.

    더 이상 맞수가 없을 상아탑의 ‘최강자’.

    바로 ‘6클래스 대마법사’로 우뚝 서는 것.

    ‘상아탑 자체를 집어삼킨다.’

    하나하나 아군으로 만들 수 없다면.

    그들의 울타리 자체를 집어삼키리라.

    ‘이번에도 깨트린다.’

    이안의 두 손이 마나저장기에 닿았다. 5년 전과 비슷한 시작이었다. 마나는 계속해서 흘러들어갔고, 저장기의 색이 점차 변해갔다. 마나의 상징인 푸른색을 넘어서 남색으로, 저장량의 한계나 마찬가지인 검은색까지.

    ‘다만.’

    이번 클래스 등록은 일종의 ‘쇼’다.

    그때와 다른 특별함이 필요했다.

    단순한 마나자랑에 그치지는 않으리라.

    ‘1막이 최연소 고위마법사 이안이라는 쇼였다면.’

    오늘부터 펼쳐질 제 2막은 ‘상아탑의 최강자 이안’이란 이름의 쇼라는 얘기다. 응당 걸맞은 ‘퍼포먼스’가 필요할 터. 5년 전과 차별화된 퍼포먼스를 보여주리라.

    쩍, 쩌저적, 쩌적!

    검은색을 띈 저장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새롭게 만든 제품이라 그런지 내구성도 탄탄한 모양이다. 하나 그마저도 오래 버티기는 힘들었다. 금이 간 틈 사이로 요동치는 마나가 흘러나왔으니까.

    후우우우우웅-!

    여기까진 5년 전과 매우 흡사했다. 깨져 버린 저장기로부터 터져 나온 마나가 강렬한 바람을 일으켰다. 6클래스의 마나이니만큼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할 쯤이면 소규모 태풍과도 맞먹으리라.

    ‘지금!’

    재빨리 저장기에서 손을 뗀 이안. 그가 양쪽 손바닥을 뻗어 어깨넓이로 벌렸다. 그러고는 아주 특별한 주문을 시전하기에 이르렀다.

    “마나.”

    5클래스 이후의 마법은 기록이 적다. 하지만 아예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실존여부를 알 수 없는 ‘최고위 마법’에 관한 묘사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그 최고위 마법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마법이 존재하는데.

    “드레인.”

    그 이름은 바로 마나 드레인. 제3의 마나를 흡수할 수 있다고 알려진 최고위급 주문이, 지금 이안의 손으로부터 펼쳐지기 시작한 거다.

    우우우웅 - !

    동시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저장기로부터 방출되기 시작한 마나, 그 방대한 마나가 동반된 바람과 함께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바로 이안의 손바닥과 손바닥 사이, 그 사이에 모여 커다란 원형을 만들기 시작한 거다. 새파란 ‘마나의 구체’였다.

    “흐읍!”

    이안은 그 구체를 마치 압축시키려는 듯 양손으로 강하게 짓눌렀다. 그러자 바람이 잦아들었고, 마나의 구체 또한 조금씩 작아졌다. 아니, 스며들고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이안의 양쪽 손바닥 속으로.

    짝!

    드디어 이안의 손뼉이 부딪쳤다.

    막아섰던 마나 구체가 사라진 탓이다.

    “…….”

    5년 전과 전혀 달랐다.

    이안의 호흡은 가벼웠다.

    푸른빛의 기운이 전신을 감쌌다.

    눈에서 푸른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마나 드레인의 일시적인 효과였다.

    저장기에 주입시켰던 대량의 마나.

    그 마나를 다시금 흡수해 버렸으니까.

    “마나 드레인이라니……?”

    “5클래스를 넘어섰다고?”

    “그, 그럼 설마 탑주님보다…….”

    대단한 마법사임은 알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재능의 소유자라고.

    조만간 탑주조차 넘어설 거라고.

    고위마법사 이안 페이지 말이다.

    상아탑의 대부분이 그리 여겼다.

    하나 지금은 아니었다. 너무 이르지 않은가?

    “이, 이럴 때가 아닐세. 확인을, 확인을 해봐야…….”

    몇몇 마법사들의 발걸음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마도공학업계와의 거래를 담당했던 마법사들은 정말로 저장기가 6클래스 상당의 마나를 저장할 수 있는지 확인에 나섰고, 상아탑 명부를 담당하는 기록관들은 오늘의 사건과 클래스 등록을 정리하고자 기록의 전당으로 돌아갔다.

    “이, 이안 님. 도대체가…….”

    “6클래스라니요. 마나 드레인은 또 뭐고요?”

    평소 이안을 따르는 마법사들이 한마음으로 몰려들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참으로 많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4클래스 마스터쯤으로 여겼던 이안 아니던가? 한데 대초원을 다녀오더니 대뜸 6클래스가 되었단다.

    “대초원에서 뭘 보고 오신 겁니까? 무슨 용이라도 만났답니까?”

    “5클래스가 되셨다 해도 기절초풍할 판인데, 한술 더 떠서 6클래스? 이거 혹시 저 빼고 다 짠 거 아니에요? 나 놀리려고?”

    6클래스는 그야말로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경지다. 평범한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같은 마법사들조차도, 오히려 마법사들이기에 더더욱 그 까마득함을 체감할 수 있었다. 한데 그러한 존재가 눈앞에 나타난 거다. 궁금증이 폭발할 만도 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갑시다. 바깥은 너무 춥네요.”

    마법사들의 의구심을 살살 달래준 이안. 그가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상아탑 안으로 들어가자 수많은 마법사들이 뒤를 따랐다. 호기심과 존경스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 * *

    그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후.

    사절단 행렬이 황성에 막 도착했다. 백성들의 환영인파가 빗발쳤다. 주인공은 응당 황태자 하이든이었다. 삼국협정을 성공적으로 이끈 장본인이란 소문이 대륙 전체에 파다하게 퍼졌으니까.

    “황태자 전하! 납시오!”

    백성들이 좌우로 나뉘어 머리를 조아렸다. 이번만큼은 황족에 대한 두려움으로 조아리는 것이 아니었다. 약간의 진심마저 녹아났다. 그만큼 얼간이 황태자의 활약은 많은 이들에게 큰 귀감이 되어 다가왔다.

    “황태자 전하! 한번만 이 소녀를 봐주시어요!”

    철없는 귀족가의 말괄량이 소녀가 손을 흔들며 외쳤다. 멍청하고 얼간이라는 기존의 소문과 별개로, 황태자의 용모가 절세미남임은 아주 유명한 사실이었다.

    “멈춰라.”

    소녀의 외침이라도 들은 걸까. 황태자의 마차로부터 행렬을 멈추라는 명령이 흘러나왔다. 그러더니 곧장 마차에서 나와 소녀에게 다가가는 백금발의 미남자.

    “화, 황태자 전하!”

    정말 황태자가 나설 줄은 몰랐는지 머리를 조아리는 소녀, 그런 그녀에게 꽃 한 송이 선사하며 두려움을 녹여주는 황태자였다. 도대체 어디서 준비해 온 꽃인지는 모르겠다만, 아주 수수한 노란색 꽃잎의 꽃이었다.

    “전하……?”

    “받아라. 도시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꽃이니.”

    소녀의 손에 꽃을 쥐어준 황태자가 유유히 마차로 돌아왔다. 백성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황태자라기보다는 어디 유명한 유랑극단의 미남배우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단장, 나 좀 어땠나? 괜찮았어?”

    다시금 시작된 사절단의 행렬. 마차와 바짝 붙어 따라오는 올리버에게 황태자가 물었다. 방금 보여준 자신의 행동에 대한 평가라도 듣고 싶은 모양새다.

    “그것이…….”

    “그것이?”

    “적어도 소녀에게는 좋은 추억이…….”

    올리버가 난감해하는 그때.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가 나타났다.

    황급히 화제를 돌리는 올리버였다.

    “전하, 그보다 이안 공께서 오셨습니다.”

    “뭐? 이안이라고?”

    그 말에 마차 밖으로 고개를 쑥 빼 두리번거리는 황태자. 어렵지 않게 이안의 행방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이안과 상아탑의 마법사들이 정면으로부터 몰려왔는데, 고위마법사 다섯을 포함한 수십 명의 백색 로브 무리였다.

    “……?”

    그 광경에 황태자의 얼굴이 잠시간 굳어졌다. 5년 전의 불쾌한 기억이 떠올라버린 탓이었다. 모그리안 영지에서 이안과 함께 왔을 때, 별안간 앞길부터 틀어막고 죄수 세실리아를 강탈해갔던 탑주와 상아탑 마법사들우 무례 말이다.

    “왜 하필 저놈들이랑…….”

    황태자보다 위에 있음을 만백성에게 과시했던 상아탑의 건방진 행보. 설마 그때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걸까?

    “황태자 전하.”

    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당시와 전혀 달라진 상아탑의 행보.

    바로 그러한 광경이 펼쳐졌으니까.

    “상아탑의 고위마법사 이안 페이지 외 전원, 삼국협정을 성공적으로 이끄신 황태자 전하와 사절단의 무사귀환을 진심으로 감축드리옵니다.”

    마나로 증폭된 이안의 축하인사가 사절단은 물론, 백성들의 귀에도 정확하게 들렸다. 뿐이랴? 인사를 올리기가 무섭게 좌우로 흩어져 남들처럼 머리까지 조아린다. 황태자의 행렬에 예를 갖춘 거다.

    “……하, 하하하!”

    그 모습에 황태자가 웃었다.

    올리버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5년 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5년 전 상아탑의 가로막음이 ‘탑주와 상아탑을 위한 과시’였다면, 오늘 이안이 주도한 가로막음은 ‘이안과 황태자를 위한 과시’였다. 콧대 높은 마법사들조차 치켜세워 줄 정도로 대단한 업적을 황태자가 해냈다는 공표, 또한 이안 페이지가 상아탑의 새로운 대세가 되었음을 만천하에 과시하는 행보였다.

    ‘저놈들이……?’

    또 다른 마차에서 그 모습을 목격한 탑주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참으로 많은 요소가 그의 분노를 돋우었다. 이안에게 들러붙은 마법사 놈들부터, 기껏 세워둔 상아탑의 절대적인 권위마저 추락시키는 저 태도까지.

    ‘감히, 감히 나의 상아탑을……!’

    다시금 나아가기 시작한 사절단 행렬.

    마차 안 탑주의 눈이 이안과 마주쳤다.

    격분으로 가득한 탑주의 얼굴.

    하나 이안의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탑주를 향해 웃어 보였다.

    탑주가 즐겨 쓰는 인자함이란 가면.

    그 특유의 미소를 따라 그리면서.

    실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