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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60화 (6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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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60화

    22. 최강자 등극(1)

    “다른 권속들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내가 그걸 어찌 알겠느냐? 얼굴 안보고 산지가 얼만데, 한 오백 년쯤 지났나? 오백 년보다 더 지났을 수도 있고.)

    “오백…….”

    이안과 페어리 퀸은 보석들을 보금자리에 옮겨둔 뒤, 황성으로 돌아오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얘기하면 얘기할수록 살아온 격차만 체감될 뿐이었다만.

    “그 라덴쥬란 분은 누구시죠?”

    (그건 말해줄 수 없느니라.)

    “거부도 되네요. 드래곤 얘기라 그런가?”

    (……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

    또한 일정 이상의 질문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안에게 주어진 권속의 힘보다 더욱 ‘상위의 힘’이 가로막는 모양이었다.

    ‘완전하지는 않다.’

    물론 상관은 없었다. 거부권은 단 하나, 드래곤과 관련된 심도 있는 이야기에 한해서만 거부할 수 있었으니까.

    나머지는 말 그대로 ‘절대복종’이다. 죽으라면 즉시 자결해버릴 정도로 강력하게.

    “그런데 여왕께서도 이름이 있으십니까?”

    (물론이다. 갑자기 이름은 어찌 묻는 게냐?)

    “계속 여왕님이라 부르기는 문제가 좀 많습니다. 아, 그리고 저기 황성에서는 되도록 사람의 모습으로 다녀주시길.”

    멀찍이 황성의 성벽이 보였다. 사절단보다 먼저 도착하고자 했던 이안의 바람은 성공적이었다. 확인 결과 열흘 정도 격차가 있었다. 아마 올리버와 황태자 덕이리라.

    (그런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전에는 잘만 변하시더만.”

    (그땐 아공간 주머니 탓에 도리가 없었느니라.)

    “이번에도 없다 생각하세요. 도리.”

    그렇다. 이번에도 도리가 없다.

    권속의 힘에 무슨 도리가 있겠는가? 잔뜩 싫은 티를 내면서도 인간의 모습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던 페어리 퀸이었다.

    “흠…….”

    (또 뭐가 불만인 게냐?)

    “아뇨. 그게 아니라.”

    페어리 퀸의 모습을 살펴본 이안.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좀 더 평범하게는 안 됩니까?”

    (뭐?)

    “오히려 더 눈에 띌 판입니다만.”

    그 말이 실로 정확했다. 페어리 퀸 본연의 모습은 말할 것도 없다. 어디 자루에 넣어서 다니지 않는 이상 시선을 피하기가 어려울 터. 한데 인간으로 변한 저 모습도 썩 평범하지는 않았다. 아니, 심각하게 특별했다.

    (별수 없다. 인간의 모습은 이게 전부니라.)

    “인간 말고 다른 건 없습니까?”

    (까다로운 놈.)

    툴툴거리며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린 페어리 퀸. 이번에는 조류였는데, 아주 화려한 연분홍색 꼬리털을 가진 ‘공작새’였다.

    (이 정도면 되겠느냐?)

    “그것도 좀…….”

    (그럼 이건?)

    공작새 다음은 연분홍색 늑대였다.

    어지간한 황소조차 뛰어넘는 크기.

    변하는 것마다 도대체 왜 저럴까?

    “좀 작고 평범한 생물은 없습니까?”

    (작고 평범한 생물이라…….)

    잠시 고민했던 페어리 퀸이 다시금 허공을 빙글 돌았다. 그리고 곧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연분홍색의 털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다만 나머지는 이안의 조건에 부합했다.

    (이제 좀 마음에 드느냐?)

    그것은 바로 자그마한 ‘고양이’였다.

    털색만 제외하자면 가장 양호한 모습.

    저 모습이 평범함의 최선인 것 같았다.

    “괜찮네요.”

    (흥! 까다롭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인간 같으니.)

    누가 누구보고 무례하다는 건지 모르겠다만, 어찌되었건 만족스러운 이안이었다. 고양이의 모습이라면 확실히 안전하다. 그저 ‘털색깔이 신기한 고양일세’하고 넘어갈 테니 말이다.

    ‘진짜 자루나 유리병에 숨겨 다닐 생각이었는데.’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못할 짓이긴 하다.

    저런 변신이 가능하여 참 다행이었다.

    “이제 이름도 알려주시겠습니까?”

    (영광으로 알아라. 내 이름은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그분들께서만 부르실 수 있는 이름이지. 한 번만 말해줄 테니 잘 새기도록.)

    무슨 이름 하나 불러주는데 요란을 떠는 걸까? 이안은 곧 그 해답을 알 수 있었다. 충분히 요란 떨 만 했다.

    (이 몸은 모든 페어리들의 일곱 번째 여왕, 리시스 키렐 바스포 레이 라베라오르 에스펠리아 세이르만 7세니라.)

    “…….”

    순간 할 말을 잃어버린 이안.

    이름 한 번 거창하기 짝이 없다.

    온 대륙을 찾아도 저리 긴 이름은 존재하지 않으리라.

    (나를 유독 아껴주셨던 분이 계시다. 그분께서 인간 세상을 유람하고 오실 때마다 내게 인간들의 이름을 하나씩 붙여주셨지. 마음에 들었던 인간의 이름이었거나, 혹은 어감이 좋다하여 붙여주시기도 하였단다. 네놈이 어찌 생각할지는 안다만, 내게는 하나뿐인 소중한 이름이니라.)

    어느새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페어리 퀸. 옛 추억이 생각이 난 듯 은은한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만연했다. 잠시였으나 평소의 도도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닙니다. 멋진 이름입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물론이죠. 다만…… 고양이 이름으로는 너무 거창하네요. 간단히 줄여서 에스펠리아, 에스펠이 좋겠군요.”

    긴 이름 중 가장 어감이 좋았던 부분을 선택하는 이안이었다. 페어리 퀸도 반발하지 않았다. ‘그분’께서 지어주신 이름은 모두 소중했으니까.

    “슬슬 에스펠로 변해주셔야겠습니다.”

    (내가 인간들 애완고양이 노릇까지 하게 될 줄이야. 이 치욕을 어떻게 씻어야 할지 모르겠구나. 너무 오래 살았어.)

    한탄을 하면서도 고양이가 될 수밖에 없는 페어리 퀸, 혹은 분홍색 고양이 ’에스펠’. 자기 자신의 꼬락서니가 진심으로 한스러웠다.

    * * *

    “자신이 사라진다면 사절단의 복귀를 최대한으로 늦춰 달라, 제게 그런 부탁을 남기셨습니다.”

    “늦춰? 왜지?”

    “이유까지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예측해 보건대, 이안 공이 보여줬던 그 분신은 처음 보는 마법이었습니다. 탑주조차 일순간 경악할 정도였지요.”

    사절단의 복귀가 생각보다 늦어진 이유.

    그 일등공신은 단장 올리버 레이우드였다.

    “필시 고차원적인 마법을 써야만 했던 까닭이 있을 것이옵니다. 그 문제를 수습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줄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황태자는 그러한 올리버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성공적인 협상의 기념이라는 명목 하에 연회도 베풀고, 병사들의 건강을 해친다는 이유로 행군의 속도까지 줄였다. 물론 쉴 수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쉬기도 했다.

    “하하하! 내 말 한마디에 콜드우드고 공국이고 아주 그냥 꿀 먹은 벙어리가 되더라 이 말이지! 딱 그 기세를 몰아가지고! 이 마법은 오직 우리 제국만이 가능하니 땅도 몇 조각 더 내놓아라! 딱 이렇게 엄포를 놔버리니깐!”

    황성까지 열흘 거리를 앞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제법 커다란 마을에 주둔한 채 조촐한 술자리를 갖고 있었다. 누가? 황태자와 기사들, 그리고 병사들이 말이다.

    “음…… 너무 내가 했던 얘기만 또 하는 건가?”

    “예? 아, 아니옵니다. 절대 그렇지 않사옵니다. 언제 들어도 통쾌함이 절절 넘치는 영웅담 아니옵니까? 전하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계속 듣고 싶사옵니다.”

    중년의 병사가 마치 아부하듯 나섰다. 하나 그 말은 병사들의 진심이기도 했다. 그들은 진심으로 황태자의 활약에 통쾌함을 느꼈다. 만약 라그나르가 그랬다면 대단한 양반이 대단한 일을 했거니 싶었겠지만, 황태자의 경우는 달랐다.

    “그러한가? 하하! 하면 내 계속 하도록 하지.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아! 광물탐지 마법은 전적으로 우리의 도움 없이는 불가한 일이니 땅 몇 조각 더 먹겠다! 그리 엄포를 놔버렸지. 그러니까 이것들이 처음에는 헛소리를 하더군. 그래서…….”

    그것은 일종의 ‘대리만족’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습게만 알았던 황태자다. 달라진 면을 느낀 이들도 있었으나, 그들 역시 본질적으로는 황태자를 낮잡아 봤다. 별다른 능력도 없는 주제에 핏줄만 타고난 인간으로. 한데 그런 자가 협정에서 대단한 성과를 거뒀다. 해봤자 자신들 수준의 존재라고 여겼던 황태자 하이든이.

    “…….”

    한편, 황태자가 왁자지껄 떠드는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보던 5황자 라그나르, 그가 어금니를 우득 깨물며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탑주 허버트의 천막이었다.

    “전하.”

    탑주는 누군가로부터 보내진 서신을 읽고 있었다. 종이 서신인 것으로 보아 은밀하게 전달된 보고였다.

    “이제 어찌할 생각입니까?”

    냉랭함이 묻어나는 라그나르의 목소리였다. 이 상황과 협정은 모두 탑주의 계략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고 있었다. 오직 라그나르 자신을 위한 계획이었다는 얘기다. 한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오직 저 멍청한 황태자가 재평가되는 계기만 줬을 뿐.

    “제가 뭐라고 했나요? 이안 페이지, 더 방해되기 전에 제거해야 한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벌써 몇 년째 드리는 말씀 아닙니까?”

    “분명 그리 말씀하셨지요.”

    “그럴 때마다 탑주께선 무어라 대답하셨습니까? 조금만 기다려주면 쓸모 있는 무기로 만들어 바칠 터이니 기다려 달라, 분명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며 넘어가셨죠?”

    “그 또한 사실이옵니다.”

    “한데, 지금 이안이란 놈은 어떻습니까? 쓸모 있는 무기입니까? 우리의 앞길을 막아서 발등이나 찍어대는 그 칼이?”

    라그나르의 가시 돋친 말투에도 탑주는 온화한 얼굴을 잃지 않았다. 대신 서신을 한 번 더 훑으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예. 이 늙은이의 생각이 틀렸습니다. 빠르게 일을 처리했어야 하는데, 그만 늦장을 부리고 말았지요. 설마하니 그 친구가 존재하지도 않는 마법까지 창조해 낼 줄 누가 알았겠사옵니까?”

    그 서신에는 이안의 분신이 황성에도 나타났다는 보고가 적혀 있었다. 인즉 고차원적인 분신을 두 명이나 만들었단 소리다. 이쯤 되니 분노를 넘어서 감탄마저 나올 지경이었다. 마법사로서의 순수한 감탄사가.

    “전하. 더 이상 변명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도 드리지 않도록 하지요. 다만, 기다림은 이번이 마지막이옵니다.”

    “마지막?”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던 소인의 부탁, 그 부탁이 오늘로 마지막이라는 말씀이옵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사오니.”

    그 말과 함께 탑주가 손짓하자, 놀랍게도 천막 한구석으로부터 누군가의 모습이 드러났다. 검은 로브와 후드로 얼굴까지 가렸지만, 그 선은 명백한 여인이었다.

    “존재하지 않았던 마법들, 그것은 이안 페이지만의 영역이 아니옵니다. 자, 헬레느. 무엇하는가? 어서 전하께 인사 올리지 않고.”

    그 말에 검은 로브의 여인, 탑주의 명으로 동부 대초원의 왕에게 환술을 전달한 장본인 ‘헬레느’가 후드를 걷었다. 그러고는 넙죽 엎드려 예를 갖추기 시작했다.

    “전하…… 뵙게 되어…… 영광…….”

    한데 그녀의 말투로부터 기괴함이 느껴졌다. 느릿하고 어눌하다. 뿐이랴? 목소리 자체가 매우 탁하기까지 하다. 헬레느라면 라그나르도 익히 알고 있었다. 아주 오만한 마법사가 아니었던가? 결코 저런 목소리의 소유자가 아닐 지언데.

    “아, 만나서 반갑습니다. 헬레…… 허어……!”

    헬레느와 눈을 마주친 라그나르.

    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자칫 기절까지 해버릴 뻔했다.

    마주친 헬레느의 눈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누, 눈이……?”

    그녀의 눈에 흰 자위가 보이지 않았다.

    온통 검은색으로 범벅이 되었을 뿐.

    마치 이야기책 속 악귀와도 같았다.

    “너무 놀라지 마시옵소서. 그녀는 사람이며 소인의 충성스러운 부하이오니, 이는 곧 전하께도 목숨을 바칠 아이라는 뜻이지요.”

    탑주가 다시금 손짓하자 후드를 뒤집어쓰는 헬레느였다. 그녀에게는 더 이상의 오만함도,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눈엣가시 같았던 그 친구도 조만간 전하께 목숨을 바칠 아이가 될 터. 부디 자비로운 마음으로 소인의 오판과 불충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지난 5년, 혹은 그 이상의 세월을 홀로 은밀하게 연구해 왔던 ‘흑마법’. 전생에는 딱히 사용할 필요가 없었던 탑주의 흑마법이 본격적인 시동을 알리고 있었다.

    * * *

    사절단 귀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그날. 상아탑의 앞뜰에 수많은 마법사들이, 출타 중인 탑주와 사절단 고위마법사를 제외한 상아탑 내 모든 마법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물론 이안도 함께였다.

    “주문하신 최신형 마나저장기입니다. 저장량이 마법사 분들 클래스로 따져보면 아마…… 엄청날 겁니다. 6클래스 정도?”

    5년 전까지만 해도 잔심부름을 도맡았던 ‘스람 공방’의 수습생, 하나 이제는 어엿한 공학자이자 공방에서 가장 촉망받는 재능으로 거듭난 ‘반스’가 제품을 설명했다.

    “사실 저희도 5클래스 이상의 경지는 알 도리가 없으니 확실한 건 아닙니다만, 일전에 테스트를 요청 드린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때 탑주님의 마나를 9할까지 담았었죠. 아주 여유로웠습니다.”

    반스의 말이 이안은 물론 모든 마법사들에게 전달되었다. 그가 수레에 실어 상아탑 앞까지 배달해온 물건의 정체는 바로 마나저장기, 기존의 저장량을 훨씬 뛰어넘은 대형 저장기였다.

    “그, 그런데 이안 님. 실례지만 이 저장기가 필요한 마도공학품은 아직 없는 걸로 아는데, 무엇에 쓰시는 건지…… 마, 말씀해 주실 수 없는 사안이라면 괜찮습니다!”

    그리 말하면서도 궁금해 죽겠다는 반스의 표정이었다. 많은 마나가 필요하다? 하면 기존의 마나저장기를 여러 개 쓰는 편이 더 저렴하며, 차지하는 공간조차 작을 텐데.

    “간만에 클래스 등록이나 좀 해볼까 합니다.”

    “클래스 등록 말씀이십니까?”

    클래스 등록.

    상아탑 명부에 기록된 마법사들의 클래스를 경신시키는 행위다. 이안은 고위마법사로 등극한 그 순간부터 클래스 등록을 전력으로 하지 않았다. 인즉 기록상 이안 페이지는 여전히 4클래스 마법사란 얘기다.

    ‘덕분에 소문도 좀 돌았지.’

    엄청난 성장을 숨기는 거다, 혹은 정체된 거다. 한동안 소문이 돌았었고, 대부분은 정체된 쪽에 무게를 뒀다. 덕분에 대다수 마법사들의 인식 속 이안 페이지는 높아봤자 4클래스 마스터 정도, 물론 그 수준으로도 상아탑의 이인자인 만큼 대단한 경지였다.

    “보통 고위마법사 분들 클래스 등록이라면 저장기를 여러 개로 하시지 않습니까? 탑주께서도 그리 하신다 들었는데…….”

    “저는 좀 많이 필요할 것 같아서.”

    “예?”

    이안은 반스의 되물음에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대형 저장기를 허공에 띄워 모여든 마법사들 한가운데로 옮겼다. 모두의 눈이 일순간 휘둥그레졌다.

    “저, 저게 가능한가……?”

    “가능할 리가 있겠어?”

    무지막지한 마법의 경지에 수군거리는 마법사들. 그들이 모인 이유는 딱 하나였다. 별안간 클래스 등록을 하겠다고 나섰으니까. 5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최연소’ 고위마법사이자 상아탑의 2인자, 젊은 마법사들의 우상 이안 페이지가.

    쿵!

    대형 저장기가 모두의 눈앞에 세워졌다.

    그 앞으로 다가가 손을 얹는 이안이었다.

    “이미 말씀드려 아시겠지만, 여러분께 모여 달라 청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는 이번 고위마법사의 파견 임무 도중 마법적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그 깨달음의 결과를, 상아탑의 동문이신 여러분께 처음으로 선보이고자 합니다.”

    이안이 모두를 향해 힘 있는 어조로 말했다. 대체 4클래스 고위마법사가 느꼈을 엄청난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아니, 얼마나 더 강해졌다는 뜻일까? 마법사들의 눈에 호기심이 스쳤다.

    “본래 탑주께서 귀환하신 후, 완전해진 상아탑 앞에서 선보이는 것이 마땅하나, 더 오래 기다렸다가는 이 흥분을 감당할 수가 없겠더군요. 해서, 무례임을 알면서도 자리부터 마련했습니다.”

    이안의 말에 많은 마법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마법사다. 본능적으로 강한 탐구심을 가진 존재, 더 높은 곳을 향한 깨달음의 흥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족속들이다.

    “모쪼록 제가 느낀 흥분과 설렘, 깨달음을 동문 여러분께서도 이해해 주시길. 아니, 분명 이해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분명 이해해 주실 거라 믿는다. 지금껏 이안의 발언 중 유일한 진실이었다. 탑주가 도착하기 전까지, 이안은 단숨에 등극해 버릴 생각이었으니까.

    ‘상아탑 최강자의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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