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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59화 (59/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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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59화

    21. 뜻밖의 수확(2)

    쾅! 파스스스스……!

    용아병의 창날 아래 보석이 담겨 있던 단상마저 박살나고 말았다. 이쯤 되면 저게 창인지 망치인지 분간조차 안갈 지경이다.

    “죽여도 됩니까?”

    (놈은 어차피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니라. 지금은 영혼도 빠져나간 껍데기로 보이는군. 마음껏 공격해도 좋다.)

    본디 용아병의 본체는 영혼이다.

    그 혼백 자체가 없다는 얘기였다.

    “그렇군요. 하면 부탁드리겠습니다.”

    (뭐?)

    “마나가 거의 바닥인지라.”

    (…….)

    용언의 마나 소모량은 아직 이안이 감당키 어려운 수준이었다. 페어리 퀸 앞에서야 용과 용언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하기에 무방비 상태를 감안하고 펼쳐 보였다지만, 그 용언이 용아병까지 불러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조금만 버텨주세요. 어떻게든 회복해볼 테니.”

    (흥! 나는 그분들의 권속 중에도 가장 존귀한 존재이니라. 저 따위 텅 빈 문지기 뼈다귀쯤이야!)

    자신만만하게 날아오른 페어리 퀸.

    그녀 역시 이안과 비슷한 수준이다.

    충분히 자신감을 내비출 만했다.

    “후우.”

    이안이 마지막 남은 하프 엘릭서를 마셨다. 그러고는 최대한 멀찌감치 떨어져 마나 호흡에 집중했다. 남들보다 회복력이 빠른 그다. 금방 합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파지지직!

    페어리 퀸의 번개가 옛 상아탑 지하를 쩌렁쩌렁 울렸다. 대부분의 페어리들은 태어날 때부터 ‘빛 계열 마법’에 특화되어 있다. 번개 또한 빛 계열 마법의 한 갈래였다.

    (문지기나 하던 뼈다귀 종놈이 어딜!)

    페어리 퀸이 누군가와 싸우는 모습.

    이안 역시 처음 목격하는 광경이었다.

    (하극상도 유분수지. 뵈는 게 없으니 아주 막나가는구나?)

    그 첫 감상은 비교적 간단했다.

    천사처럼 기품이 넘치는 외형과 다르게.

    ‘말이 많군.’

    쥐똥만한 몸뚱이로 재잘재잘 떠들며 우르릉 쾅쾅 번개까지 부린다. 상대가 영혼이 빠져나간 껍데기라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화를 돋우기 딱 좋은 전투방식이었다.

    “그어어어……!”

    (아하? 껍데기라서 말도 못 하나 봐? 다행이야. 그렇지 않아도 느릿느릿한 말투 답답했는데, 평생 껍데기로 살았으면 좋으련만!)

    시끄러운 모습과는 별개로, 그녀의 전투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방어막 대신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며 적의 공격을 회피하는데, 그 방식이 헬레느와 비슷하다.

    ‘아니, 그 여자보다 훨씬 능숙하다.’

    타고난 민첩성과 반응속도, 작은 몸뚱이의 활용능력, 6클래스 수준의 강력한 번개 마법까지. 헬레느가 꿈꿨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뼈다귀만 쓸데없이 튼튼해 가지고!)

    문제는 그런 페어리 퀸에게도 한계가 있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상성이 좋지 않았다. 용아병은 드래곤의 권속답게 비정상적으로 튼튼했고, 그만큼 지칠 줄을 몰랐다.

    “그어어……!”

    (적당히 좀 해라 문지기 놈아!)

    반면 페어리 퀸의 번개는 물리적으로 크게 한방 먹여줄 방법이 없었다. 깊은 지하의 특성상 발휘할 수 있는 번개 마법이 제한적이었으니까. 결국 믿을 건 이안뿐인데.

    (인간! 뭐라도 좀 해봐!)

    “자신만만하시더니.”

    (지상이었다면 시작하자마자 끝났을 거다!)

    누가 여왕 아니랄까봐, 자존심을 놓치지 않는 그녀였다. 한숨 푹 쉰 이안이 마나를 가늠했다. 가득 차려면 시간이 걸리겠으나, 충분히 가용할 만큼은 모여 있었다.

    ‘한방으로 끝내야겠는데.’

    저 무한 체력의 용아병한테는 그게 최선인 것 같았다. 갑옷과 뼈의 단단함이 엄청나긴 하나, 페어리 퀸이 축적해둔 데미지가 어느 정도 틈을 만들어놨을 터.

    ‘지금 이 마나로 쓸 수 있는 최선의 마법.’

    미쳐 날뛰는 용아병을 단숨에 무력화시킬 주문. 바로 그 방법을 떠올리고자 생각에 빠져든 이안이었다. 물론 그래봐야 몇 초 남짓, 곧 결정이 내려졌다.

    “여왕님.”

    (왜 부르느냐? 바빠 죽겠는데!)

    “뭐라도 해볼 테니 피할 준비 하세요.”

    (무슨……!)

    대화는 거기까지.

    행동에 나서는 이안이었다.

    먼저 강렬한 냉기가 용아병의 다리를 붙잡았다. 놈의 완력이라면 금방 깨부숴버릴 테지만, 이안에게는 그 찰나가 중요했다.

    “콘.”

    즉시 발동시킨 이안의 얼음계열 주문.

    허공으로 거대한 원뿔모양 얼음덩이가 빚어졌다. 그 압도적인 크기에 널따란 지하실이 비좁게 느껴질 정도였다.

    “오브 아이스.”

    콘 오브 아이스.

    이안이 선택한 마법의 이름.

    그 커다란 원뿔얼음이 용아병에게 날아들었다. 아니, 우직하게 밀고 들어간다는 표현이 훨씬 더 어울렸다.

    쿠구구구구……!

    이윽고 거대한 얼음덩이가 용아병을 덮쳤다. 뿐이랴? 그대로 지하 돌벽까지 밀고 들어가 우그러뜨리기 시작했다. 얼음과 돌벽 사이에 낀 용아병이 힘으로서 얼음덩이를 막아보고자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후우! 후우!”

    한바탕 마법을 쏟아낸 이안.

    그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급히 회복시킨 마나를 소모시켰다.

    숨이 차오를 만도 하다.

    (무, 무식한 인간.)

    “잠시.”

    하나 이안의 마법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조잘대는 페어리 퀸에게 물러나란 손짓을 보이더니.

    “아이스 붐.”

    손가락을 튕기며 술식을 발동시키자.

    쾅! 콰과광! 콰광! 콰과과광!

    거대한 원뿔얼음이 폭발하기에 이르렀다.

    그와 동시에 실드 마법을 펼치는 이안.

    폭발의 파편을 막아내기 위함이었다.

    (아주 작살을 내버렸군. 작살을.)

    “지상이었으면 여왕께서 하셨을 일이죠.”

    (그렇긴 하다만은.)

    이안이 말이 허언은 아니었다. 지상이었다면 페어리 퀸 자신이 하늘로부터 번개를 내리꽂아 박살 내버렸겠지만, 어찌되었든 이안의 마법은 감탄스러웠다. 제한적인 공간에서 얼마 되지 않는 마나로 이 정도 파괴력을 선보이다니.

    (가보자꾸나. 용아병까지 나온 걸로 봐서, 어쩌면 저 건너편에…….)

    그리운 얼굴들이 있지 않을까?

    수백 년을 기다린 페어리 퀸의 상전들.

    그중에서도 간절하게 기다렸던 존재.

    용언서로부터 전해져 온 향취의 주인.

    (라덴쥬 님.)

    페어리 퀸이 앞장서 통로 끝을 향했다.

    이안보다 곱절은 더 흥분한 듯 보였다.

    (라덴쥬 님!)

    기대감으로 가득한 페어리 퀸의 외침.

    그 외침과 함께 도달한 통로의 끝.

    (…….)

    그곳은 허름한 방의 형태였다.

    누가 생활했던 흔적이 남아 있는 방.

    침구나 탁자, 책꽂이와 필기구들.

    연금술 도구와 다 써버린 랜턴까지.

    ‘먼지가 뽀얗게 쌓였군.’

    냉정한 눈으로 주변부터 살펴본 이안.

    먼지와 물건들의 변색이 눈부터 띄었다.

    오래 전에나 사용되었던 방이 분명했다.

    최소한으로 잡는다 해도 수십 년 전.

    ‘어쩌면 백년 단위일 수도.’

    그러한 사실은 페어리 퀸 역시 알아챌 수 있었다. 기대했던 존재가 없는 탓인지, 급속도로 시무룩해지는 그녀였다.

    “아쉽게 되었습니다.”

    (흥! 아쉽긴, 혹시나 했을 뿐이니라.)

    콧대 높일 기운은 남아 있다.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으리라.

    (잘 살펴보아라. 뭔가 있을지도 모르니.)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인 이안이었다. 정황상 드래곤, 혹은 비슷한 존재가 이곳에 머물었을 가능성이 크다. 용언서의 해석을 도와줄 결정적인 단초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

    그리고 그 무언가는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책상 바로 위에 수첩 하나가 놓여 있었으니까, 용언서를 처음 찾았던 그때처럼 간단한 메모와 함께였다.

    -설마 여기까지 찾아냈다고? 누군지는 몰라도 대단하구먼.

    -기특하니 선물을 하나 주마.

    역시나 장난스럽게 적힌 메모.

    화륵!

    그리고 즉시 불살라지는 메모지까지.

    용언서를 발견했을 때와 똑같았다.

    ‘선물이라.’

    시커멓게 불탄 메모지를 휘적휘적 날려버린 이안. 그가 선물로 추정되는 수첩을 집었다. 아주 자그마한 크기였다.

    (그게 무엇이냐?)

    “선물이랍니다.”

    (선물?)

    메모를 읽지 못한 페어리 퀸의 물음.

    이안은 대답하지 않고 수첩부터 펼쳤다.

    ‘또 용언일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수첩에 적힌 내용은 용언이 아니다.

    이안도 읽을 수 있는 문자였으니.

    ‘술식?’

    수첩에 적힌 문자의 정체.

    그것은 바로 주문에 쓰이는 술식.

    수첩 전체를 빼곡하게 채운 술식이었다.

    심지어 모두 하나의 술식인 것 같았다.

    (호오, 인간들의 술식이구나.)

    수첩은 작고 얇았다. 하나 그 안에 적힌 술식이 단 하나의 마법을 위한 술식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 어떤 주문도 이토록 복잡하고 길지 않다. 설령 8클래스의 초월적인 주문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척 보기에도 어려워 뵈는데, 가능하겠느냐?)

    “흐음.”

    페어리 퀸의 물음에 쉬이 대답할 수 없는 이안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술식은 그 또한 처음이었으니까. 단지.

    ‘시도해 볼 가치는 있다.’

    그뿐이었다. 인류를 대표하는 마법사로서의 호기심, 그리고 호승심이 느껴졌다. 이안은 본디 그런 인간이다. 마법만큼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성질머리 아니겠는가?

    “마나만 회복되면 바로 시도해 보죠.”

    (바로?)

    “못할 것도 없습니다.”

    용언서와 수첩. 장난스러운 메모. 마치 누군가의 장난질에 놀아나는 느낌이 강했지만, 이안은 기꺼이 놀아나줄 생각이었다.

    ‘놀아날만한 장단이니까.’

    페어리 퀸의 반응대로라면 이 장난질의 원흉은 누구도 아닌 드래곤, 최초의 마법사와 함께 마법의 시초로 불리는 전설적인 존재가 계획해 둔 장난질이다. 충분히 놀아봄직 하다.

    ‘그나저나 감도 안 잡히는 술식이군.’

    보통 술식의 식들은 저마다 독특한 특징을 띤다. 이안쯤 되는 마법사라면 식의 조합만 보고도 어떤 종류의 마법일지 예상할 수 있다. 한데 이 술식은 짐작이 불가능했다.

    ‘중구난방이야.’

    혀를 끌끌 차며 수첩의 끝까지 읽어버린 이안.

    한참을 더 반복하고 나니 술식도 머리에 새겨졌다.

    (하아암……! 언제 끝나느냐? 오늘 내로 가능한 게야?)

    이안의 암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하품까지 하는 페어리 퀸의 물음에.

    “지금.”

    수첩을 탁 하고 덮는 이안이었다.

    이 정도면 마나도 충분하게 모였다.

    술식 또한 빠르게 암기해 버렸다.

    괜히 인류 중 최고가 아니리라.

    ‘실수 없이.’

    마나부터 한껏 끌어 모은 이안의 두뇌가 암기된 술식을 계산해 냈다. 한 치의 오차도, 조금의 막힘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마법의 기본이다.

    ‘단숨에.’

    자극된 마나브레인이 술식을 읽어냈다.

    동시에 그 결과를 발현시키기 시작했다.

    매혹적인 황금빛이 사방으로 뿜어졌다.

    우우우우웅-!

    약간의 진동을 동반한 황금빛.

    그 빛이 머무는 시간은 극히 짧았다.

    시간으로 세어봐야 십 초 남짓이었을까?

    “…….”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더 이상 아무런 현상도 없었다.

    어떠한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분명 주문이 발동되기는 했다.

    확실히 느껴졌고, 마나도 소모되었다.

    한데 아무런 효과나 변화가 없다니?

    그때였다.

    (이, 인간?)

    이안을 부르는 페어리 퀸의 목소리가 낭패스러운 듯 떨리고 있었다. 까닭이 뭘까? 의아함에 그녀를 바라보는 이안이었다.

    “……지금 뭐하십니까?”

    이안의 시야에 들어온 페어리 퀸의 행동은 그야말로 부조화스러웠다. 평소 인간~ 인간~ 거리며 한껏 무시했던 이안에게 공손한 자세로 엎드려 벌벌 떨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 나도 모르겠다. 대, 대체 왜…….)

    당혹스러운 것은 페어리 퀸도 마찬가지였다.

    (네놈한테서 권속의 힘이……?)

    “권속의 힘? 그게 뭡니까?”

    생소한 단어.

    정확히는 생소한 ‘힘’이다.

    (그분들께서만 발동시킬 수 있는 족쇄를 어째서…… 어째서 인간인 네놈이……?)

    당혹감으로 물든 페어리 퀸의 중얼거림. 딱 거기까지 들었을 때 이안은 짐작할 수 있었다. ‘권속의 힘’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리고 지금 사용했던 ‘황금빛 마법’의 정체를.

    “여왕님.”

    (어, 어떻게 네가…….)

    “일어나세요.”

    그 한마디에 벌떡 일어나는 페어리 퀸.

    “다시 엎드려 보시고.”

    (이, 이놈이!)

    이안의 명령에 화를 낸다.

    말 그대로 화만 내는 그녀였다.

    다시금 바닥에 엎드려야 했으니까.

    ‘대충 알겠군.’

    이안의 입 꼬리가 크게 올라갔다.

    이제 확실하게 알았다.

    “노여움 푸세요. 실험해 본 거니까.”

    (시, 실험……?)

    이안은 아까부터 느껴졌다.

    페어리 퀸으로부터 느껴지는 기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운이었다.

    ‘만만한 느낌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유독 비속어에 약한 이안이다.

    만만하다 정도가 그의 최대치였다.

    아마 그럴듯한 표현이 존재할 거다.

    이안이 알지 못하는 그럴듯한 표현이.

    “볼일은 다본 것 같네요. 나갑시다. 여왕님.”

    (자, 잠깐만! 제대로 설명을 해보아라!)

    버럭 소리치면서도 이안의 뒤를 따른다.

    더 이상 그녀에게 거부할 권리.

    ‘거부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약속대로 보석은 보금자리에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7할, 아니지. 그냥 다 드리죠. 든든한 창고 개념으로.”

    이안의 어조에 여유가 넘쳤다.

    이제 보석은 주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맡겨두는 수준일 뿐.

    “대신, 제 요구는 페어리의 알이 아닙니다.”

    (……!)

    페어리 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다음 말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여왕께서 직접, 제 가족들을 지켜주셔야겠습니다.”

    (그럴 순 없느니라! 나는 일족의 보금자리를 지켜야…….)

    “페어리끼리는 멀어도 대화가 가능한 거, 알고 있습니다. 보금자리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달려갈 테니 걱정 마시길.”

    페어리 퀸의 항변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이,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 한 번 약속을 했으면……!)

    “여왕께서도 용언서를 요구하시지 않았습니까?”

    (해서 취소하지 않았더냐?)

    “수가 틀렸으니 취소도 하셨죠. 저도 수틀리기 전까지는 요구해 볼 생각입니다. 제 가족들의 안위를.”

    역시나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이익! 감히 인간……!)

    “조용히 갑시다. 조용히.”

    (…….)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려 ‘권속의 주인’이 조용함을 원했으니까.

    “조용하니 좋네요.”

    조용함을 음미하며 바깥으로 빠져나온 이안.

    그 뒤를 잔뜩 뾰로통해진 페어리 퀸이 따랐다.

    예감처럼, 아주 뜻밖의 수확을 얻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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