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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57화 (57/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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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57화

20. 페어리 퀸(2)

거대한 나무와 꽃봉오리로 가득한 그곳.

보석으로 장식된 둥지만 수천 개였다.

결계와 환술 안쪽의 세상은 그러했다.

아름다운 자연 속 낙원의 느낌이었다.

(인간,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지?)

사라진 결계 앞으로 수많은 성년 페어리들이 도열했다. 성인이라 해봤자 한손으로 틀어쥘 정도였지만, 저래 보여도 하나하나가 인간 기준으로 3클래스 이상의 괴물들이다.

(대답해.)

페어리는 정신력으로 대화하기에 특별한 언어가 없다. 이안의 말이 저들에게는 자신들의 말로 들리며, 저들의 말이 이안에게는 익숙한 제국어로 들린다. 대신 고유의 글자는 존재한다.

“그보다, 페어리 퀸을 만나러 왔다.”

(여왕님을?)

전생의 연구 결과, 페어리와의 대화는 간단한 편이 좋다. 상대가 수백 년을 산 존재랍시고 예법을 따박따박 지키며 말했다간 오히려 혼선이 일어날 수 있다.

“이 보석으로 거래를 하러 왔는데.”

(……!)

일순간 페어리들의 눈이 황홀한 듯 몽롱해졌다. 예상된 반응이었다. 아름다운 보석을 바라보고 만지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만족감을 느끼는 종족이니까.

‘유일한 쾌락의 배출구.’

어여쁜 여체의 모습에 깨끗하고 새하얀 날개를 가진, 가히 요정과 천사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페어리지만, 그들이 보석을 신봉하는 이유는 외모만큼 존귀하지 않았다.

‘인간으로 치자면 성욕과 비슷하지.’

페어리들은 모두 여체를 가졌으며, 태생적으로 짝짓기와 같은 행위의 개념 자체가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보고 만지는 것만으로도 쾌락을 주는 존재, 유일한 스트레스의 배출구는 오직 보석뿐이다. 더욱 아름답고 영롱한 보석일수록 그 쾌락은 배가 된다.

(보석으로 무슨 거래를……?)

“나는 이 정도 수준의 보석들을 지금보다 수십 배 이상 가지고 있다. 거래결과에 따라 그 대부분을 너희들에게 내어줄 수도 있지.”

이안이 옛 상아탑에서 가져온 보석들. 물론 인간 세상에서도 엄청난 가치를 지녔다. 손꼽히는 장인이 세공해낸 보석 그 이상이었으니까. 하나 페어리들의 기준으로는 그 정도의 가치를 훨씬 뛰어넘었다. 오직 ‘페어리 퀸’만이 소유할 수 있는 ‘여왕의 보석’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일 지언데, 심지어 수십 배나 더 가지고 있다고?

(원하는 게 무엇이냐?)

“페어리 퀸과 직접 얘기하겠다.”

이안은 페어리 퀸과의 면담을 고집했다.

(그래서 묻고 있지 않느냐? 지금 네 앞에 있는 내가 페어리의 여왕이니라.)

아까부터 이안과의 대화를 주도했던 페어리. 그녀가 자신을 ‘페어리 퀸’이라 소개하며 나섰다. 어마어마한 비밀이라도 공개하는 양 콧대를 높이는 그녀였지만, 사실 이안은 아까부터 알고 있었다. 단지 장단에 놀아나줬을 뿐.

‘혼자 튀는데 모를 리가.’

전생의 기억도 있고, 무엇보다 페어리 퀸 혼자만 하얀색이 아닌 연분홍색 날개를 뽐냈다. 몰라보고 싶어도 몰라볼 수가 없으리라.

“페어리의 여왕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래. 먼저 묻겠다. 네놈은 정말 인간이 맞느냐?)

“그렇습니다. 저는 분명한 인간입니다.”

(흐응, 인간의 몸으로 그 정도 마나라니.)

페어리 퀸이 저리 놀랄 만도 했다.

자신과 호각을 다투는 경지였으니까.

‘전생에는 아주 기겁을 했었지.’

7클래스 마스터의 경지를 이룬 채 페어리 퀸을 처음 만났던 전생, 그때는 지금보다 더욱 격한 반응을 보였다. 페어리 퀸이 알고 있는 누군가와 착각할 정도로.

-리시스 라덴쥬 님? 아, 아니 그럴 리가…….

당시에는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그 리시스 라덴쥬란 자가 혹 드래곤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이것저것 캐물어봤지만, 한마디의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네 녀석의 경지를 보아하니 평범한 인간은 아니로구나. 악의나 마기 또한 느껴지지 않아. 좋다. 우리들의 존재를 어찌 알고 있는지, 어떻게 찾아왔는지는 묻지 않겠느니라. 대신 말해라. 그 보석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얘기지?)

날카로운 어조의 페어리 퀸.

그녀가 연분홍 날개를 펄럭거렸다.

한 마리 아름다운 나비와 같았다.

(똑바로 말하지 않는다면 목숨을 거두겠다.)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페어리들의 집중 공격을 받는다면 이안도 무사치는 못할 거다. 물론 도망칠 자신은 있었으나, 페어리 퀸은 그럴 기회조차 없을 거라 여길 터.

“말씀 드렸듯, 페어리의 여왕께 거래를 제안하러 왔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은 최고급 보석들, 이 자루에 담긴 보석보다 훨씬 많은 양의 보석이죠.”

이안의 말에 다시 한 번 침을 꿀꺽 삼키는 페어리 퀸, 그 주변으로 몰려든 평범한 페어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이안이 가져온 보석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거래라면 원하는 것이 있을 터.)

“물론입니다.”

이안은 두 가지를 원했다.

“먼저 여쭈겠는데, 여왕께서는 많은 양의 보석을 한꺼번에 옮길 수 있는 방책이 있으십니까? 저로선 도무지 그 모든 보석을 가져 올 수가 없어 겨우 이만큼을 챙겨왔습니다만, 거래가 성사된다면 다른 수단이 필요할 것 같군요.”

그 수단은 ‘아공간 주머니’였다. 페어리들에게 ‘아공간 주머니’가 몇 자루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직접적으로 요구한다면 의심을 사지 않겠는가?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보석으로 산을 쌓는다 해도 방법이 있으니, 계속 떠들어보아라.)

“제가 원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방금 말씀해 주신 수단, 양도가 가능한 수단이라면 그 수단을 원합니다.”

(어렵지 않은 요청이다. 다음은?)

“페어리의 알입니다.”

(뭐라? 내가 지금 잘못 들은……)

“정확히 들으셨습니다. 페어리의 알.”

첫 번째 요구를 흔쾌히 받아들인 페어리 퀸. 하나 두 번째는 아니었다. 다른 페어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안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저 작은 체구로부터 은은한 살기까지 풍겨왔다.

(고약한 소리를 지껄이는구나. 인간.)

당연한 반응이다. 페어리들은 그 어떠한 종족보다도 고통스러운 산란기를 겪는다. 평범한 짐승조차 제 새끼와 알을 필사적으로 지키거늘, 페어리야 말할 것도 없으리라.

“이 보석이 당신과 일족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알고 있습니다. 어찌 아느냐 물으신다면, 아주 오래된 기록에서 보았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렇기에 제안합니다. 이 자루에 든 보석보다 수십 배는 많은 보석입니다. 이곳 모든 페어리가 하나씩 품고도 남을 수량이죠.”

모든 페어리가 하나씩 품는다.

여왕의 보석과 동급의 보석들을.

의미하는 바가 실로 컸다.

“여왕께서도 한번 생각해 보길. 모든 페어리가 심리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게 될 겁니다. 산란의 고통은 크게 줄어들겠죠. 자연스레 수명도, 일신의 능력도, 일족의 수도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이안의 말이 옳았다.

페어리 퀸 역시 같은 생각을 떠올리긴 했다.

일족의 유례없는 부흥기마저 노려봄직하다.

(우리 일족에 대해서 위험할 정도로 많이 알고 있군. 대체 그 기록이라 함은 어떤 기록을 말하는 거지?)

“저는 그린리버 제국 상아탑의 고위마법사입니다. 상아탑에는 족히 수백 년을 훌쩍 넘은 기록 또한 여럿 존재하죠. 저는 그 기록을 열람할 권한이 있습니다.”

(흐음.)

분노가 조금은 누그러든 페어리 퀸이 이안의 주변을 빙글 날아다니며 이곳저곳 뚫어져라 쳐다봤다. 봄처럼 싱그러운 향이 맴돌았다.

(어디 들어나 보자. 일족의 알을 필요로 하는 까닭이 무엇이더냐? 설마 인간들의 그 추악한 실험이라든가…….)

“부화를 시켜, 키울 생각입니다.”

(키워?)

인간 따위가 페어리를 키운다? 페어리의 입장에서는 상하관계가 매우 어긋난 발언, 하나 페어리 퀸은 딱히 문제 삼지 않았다. 이안이 계속 얘기할 수 있도록 되물을 뿐.

“제 가족을 지켜줄 강력한 아군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쉽게 믿기 어려운 족속이죠. 믿을 만한 아군 하나 만들려면 어릴 때부터 키우는 편이 좋은데, 인간의 성장은 느립니다. 강한 힘을 품을 수 있을 거란 보장조차 없지요.”

(누가 보면 네놈은 인간이 아닌 줄 알겠구나.)

“이미 아시겠지만, 저는 좀 특별한 편인지라.”

(인간 주제에 재수도 없고.)

피식 웃어 보이는 페어리 퀸.

향기만큼 화사한 미소였다.

“하나 페어리는 다릅니다. 뛰어난 존재이니만큼 영리하죠. 기본적으로 우수한 마법적 역량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해서, 알을 가져다 부모 노릇이라도 해보겠다?)

“직접 마법을 가르칠 생각입니다. 물론 그 존재에 걸맞은 대우도 해드리지요. 제가 인간세상에서는 그래도 잘 먹고 잘사는 편입니다.”

페어리 퀸이 보기에도 이안의 마법적 능력은 대단했다. 솔직히 처음 봤을 때는 혼란스러웠다.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로 착각했을 정도였다.

“백 년도 채 살지 못하는 족속이 인간입니다. 제가 죽은 뒤에는 페어리 역시 자유가 될 텐데, 그때 일족의 보금자리로 돌아가 여왕을 보필하며 살라는 유언도 남겨드리겠습니다. 아주 강력한 일족 하나 키워드리죠.”

협상의 쐐기를 박는 이안이었다.

페어리는 실로 엄청난 세월을 산다.

이 정도면 거의 ‘유학’이나 다름없다.

(네놈이 하고자 하는 말은 잘 알겠느니라.)

고민했던 페어리 퀸이 다시금 날개를 저었다. 그럴 때마다 흩날리는 ‘페어리 더스트’가 다이아몬드마냥 반짝거렸다.

(당장에 답을 줄 수는 없다만, 그 답을 생각하는 동안 확인해 볼 수는 있겠지. 정말 그 정도의 보석이 존재한단 사실을.)

길게 말했으나, 간단한 얘기였다.

보석을 직접 확인하고 싶다는 뜻이다.

“조금은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얼마나 멀리 떨어졌기에?)

“저라면 며칠 걸리지 않습니다만.”

(나 또한 그렇겠지.)

페어리들의 비행능력은 뛰어나다. 하물며 페어리 퀸의 비행능력이라면 이안이 낼 수 있는 전속력과 비슷하리라.

(직접 가서 확인을 해야겠다.)

다소 뜻밖의 제안.

그만큼 신중하다는 증거였다.

저래 보여도 일족의 수장이 아니던가?

(가능하겠느냐?)

“원하신다면.”

(좋다.)

아주 즉흥적인 페어리 퀸의 결정.

페어리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페어리가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것은 실로 까마득히 오래간만의 일. 얼마나 지났는지 가늠조차 힘들었다.

(여왕이시여. 아무리 그래도 바깥세상은…….)

(괜찮다. 그때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지어니.)

(저 인간의 말을 어찌 믿으시옵니까?)

(인간 이상으로 강한 존재이긴 하나, 내 눈에 보일 마기까지 감출 경지는 아니다. 그때와는 경우가 다르니 걱정 말거라.)

한참을 의논했던,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페어리들의 넘치는 걱정을 일일이 진정시킨 페어리 퀸이 다시금 이안에게 날아들었다.

(앞장서라. 바로 출발하겠느니라.)

확인을 요구할 거라 생각하긴 했다.

페어리 퀸이 직접 동행할 줄은 몰랐다만.

어찌 되었든 흐름이 나쁘지 않았다.

‘아직 여유는 있으니까.’

탑주와 라그나르가 황성에 도착하기 전까지 알을 얻어야 한다. 대략적인 날짜를 가늠해 보니 여유가 있었다.

“가시죠.”

이안의 자유로운 비행능력에 페어리들은 다소 놀란 눈을 떴다. 오직 페어리 퀸 혼자만 아무런 감흥도 없는 듯 빠른 속도로 뒤쫓아 갈 뿐이었다. 빙글빙글 도는 여유까지 뽐내면서.

* * *

이안의 전생까지 합하자면 네 번째 들어오는 옛 상아탑 지하, 이번에는 동행인까지 있었다. 무려 페어리들의 여왕, 인간으로 치자면 6클래스 상당의 마법사와 함께였다.

(참으로 기분 나쁜 곳이구나.)

언뜻 듣기에는 이 지하를 두고 하는 말 같지만, 저 ‘기분 나쁜 곳’이란 표현만 벌써 수십 번째 반복되었다. 페어리의 보금자리를 나온 그 순간부터 계속해서 기분이 나쁘단다. 어지간히도 인간 세상이 싫은 모양이다.

“곧 좋아지실 겁니다. 그 기분.”

(흥, 정말 이런 곳에 보석이 있단 말이냐?)

“보통 인간 세상에서 값나가는 물건은 이보다 더 기분 나쁜 곳에 있습니다.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죠.”

나름 철학적인 이안의 대답이었으나, 페어리 퀸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관심조차 별로 없는 듯하다.

“이 아래로.”

5년 전, 용언서가 있었던 최하층.

그곳에 이안과 페어리 퀸이 도착했다.

“여깁니다. 이 단상 아래를 보시면.”

커다란 서랍을 활짝 열어젖힌 이안.

꽤 무거운지라 마나의 힘까지 빌렸다.

드르르륵!

요란한 소리와 함께 1층 서랍이 열렸다.

보석으로 가득한 서랍은 총 3층.

드르륵! 드르르륵!

다른 서랍들까지 몽땅 열어 보였다.

그야말로 최고급 보석들의 향연.

페어리라면 정신조차 차리기 힘들 터.

“어떻습니까? 나쁘셨던 기분, 이제 좀.”

(이, 인간.)

“괜찮아지셨는지…….”

(그, 그게 문제가 아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녀는 보석 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대신 단상의 위쪽, 본디 용언서가 놓여 있어야 할 자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주 다급한 어조였다.

(여, 여기에 무엇이 있었느냐?)

“네?”

(여기 뭐가 있었느냐는 얘기다!)

순간 이안의 눈매가 좁혀졌다.

용언서의 기운이라도 느낀 걸까?

“어떤 책이 놓여 있었습니다.”

(책?)

“처음 보는 글자로 가득한 책이었죠. 지금은 제가 보관하고 있습니다. 당장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아무런 거리낌도 없는 이안의 어조. 약간의 진실을 말하면서도, 그 책이 용언서임을 알고 있다는 사실까지 말하지는 않았다. 살짝 떠보기 위함이었다.

“혹시 그 책에 대해 아시는 바가 있으신지요? 아무리 연구를 해봐도 한 글자조차 읽을 수 없더군요.”

(당연하지! 인간이 어찌 그분들의 고언……!)

계속 얘기하려고 했던 페어리 퀸.

그녀가 제 입을 황급히 틀어막았다.

확실히 관계가 있는 모양이다.

전설과 같은 존재, 하나 이안이 시간을 되돌림으로서 실존했음이 확인된 존재.

‘드래곤과 페어리 퀸이라.’

페어리 일족은 분명 드래곤과 관계를 맺고 있다. 혹은 맺은 적이 있을 거다. 어쩌면 이안의 용언 연구에 가장 핵심적인 자료가 될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책은 포기하렴. 한 글자도 읽을 수 없을 테니까.)

“그래도 한 글자 정도는 읽지 않겠습니까?”

(멍청한 소리를 하는구나. 그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존재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단다. 네놈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수천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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