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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52화 (5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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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52화

18. 한계 돌파(3)

6클래스의 경지부터는 기록이 매우 적다. ‘공식적’으로 도달해 본 이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알려진 마법도 극소수였다. 전생의 이안은 아예 사용할 수 있는 술식들을 직접 만들거나 혹은 저자불명의 희귀한 고서로부터 조금씩 찾아냈다.

“지금부터 피에릭 영지의 최고 전사들은 나 칼리언과 함께 이안 공을 보호한다. 전사의 명예를 걸고 쥐새끼 한 마리 허용치 않겠다. 알겠는가?”

피에릭 영주성의 지하.

대영주 칼리언 피에릭의 폐관수련장.

그 앞을 두 자루 도끼의 대영주와 영지 내 최고 전사들이 꽁꽁 틀어막았다. 이안의 부탁에 따라, 그를 최대한으로 안전하게 지켜내기 위함이었다.

“예! 대영주!”

그 철통같은 보호의 안쪽으로는 가수면 상태에 빠진 이안의 ‘본체’가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남장을 포기한 파견마법사 ‘매리’도 함께였다.

‘만약 문제가 발생한다면 제 머리에 마나를 주입하세요. 그럼 깨어날 겁니다.’

매리를 향한 이안의 당부.

덕분에 그녀는 이안과 가장 가까이 배치되었다.

‘그런 마법은 처음 봤어.’

문득 이안이 펼친 마법을 떠올리는 매리였다.

미러 이미지와 비슷했지만, 그 성질은 전혀 다른 마법.

‘이름이 뭐라고 하셨더라? 퍼핏 플레이?’

퍼핏 플레이.

이름 그대로 ‘꼭두각시놀음’이다.

형상만 만들어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미러 이미지’와 차원이 다른 6클래스 주문으로, 자유로운 행동은 물론이거니와 5클래스 상당의 마법까지 가능한 ‘분신’을 두 명 소환해 낸다. 본체는 가수면 상태에 빠져 ‘조종자’가 되는데, 그것이 해당 주문의 최대 약점이라면 약점이었다.

‘집중하자. 집중.’

어렵사리 잡념을 떨쳐낸 매리.

이안의 당부에 따라 경계심을 곤두세웠다.

‘지켜달라 하셨으니까.‘

퍼핏 플레이로 무엇을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으나, 이안은 목숨의 은인이 아니겠는가? 매리뿐만 아니라 저 바깥에 진을 치고 있는 대영주와 최고 전사들 역시 목숨, 그리고 영지의 안위를 빚졌다. 그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고자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 * *

“와줬구나! 와줬어!”

신이 난 듯 호들갑을 떠는 황태자 하이든.

이안의 등장이 그만큼이나 반가웠다.

실로 적절한 순간에 등장해 줬다.

한줄기 빛이나 다를 바 없었다.

황태자에게는 말이다.

“아무래도 마음이 통한 모양이군! 내 그렇지 않아도 너를 부를까 말까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었느니라. 단장한테 물어보기까지 했는데. 하하!”

황태자는 불과 몇 초 만에 완전히 제 모습을 되찾았다. 황태자 좋은 일 시켜주자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 않은 이안이었다. 가족을 제외하자면 가장 긴 시간을 어울린 상대이기 때문일까?

‘정이라도 들었나.’

두 번째 삶.

여러 가지로 전생과는 달랐다.

피식거린 이안이 라그나르와 탑주를 바라봤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몰골들이 꽤나 볼만했다.

‘마나저장기 박살 냈을 때랑 비슷한데.’

특히 탑주의 표정이 그럴싸하다.

노림수가 어지간히도 빗나갔나 보다.

곧 표정을 거두었으나, 이미 질리도록 감상한 뒤였다.

“누군가 했더니만, 이안 자네로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가온 탑주.

그가 평소와 같은 어조로 말했다.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는 보고, 피에릭 대영주께 받았네. 혼절할 정도로 고생이 많았다지. 제국을 위하여 아주 큰일을 해냈구먼.”

“고위마법사의 의무가 아니겠습니까.”

이안 역시 평소와 같은 대답을 늘어놨다.

지극히 통상적인 탑주와 고위마법사의 대화였다.

여기까지는 그랬다.

“한데 자네가 어찌 이곳까지 왔는가? 요양을 취했다면 상아탑으로 돌아가 맡은 바 소임을 계속해야 하거늘. 혹, 가족에게 일어난 소란을 듣지 못…….”

“상아탑의 서신은 받았습니다. 다만 대초원의 임무를 완수하는 즉시 사절단에 합류해 황태자 전하를 보필하라는 황명을 받고 왔습니다.”

그리 말하며 황제의 서신을 꺼내 든 이안.

개인적으로 보내온 부탁편지가 아니었다.

함께 동봉된 정식적인 명령서였다.

“잠시 읽어볼 수 있겠나?”

“그리 하시지요.”

황제 테리 그린리버의 인장이 찍힌 명령서.

그 인장을 확인한 탑주가 쓴 침을 꿀꺽 삼켰다.

‘뭐라도 시도할 거라 예상은 했으나…….’

낭떠러지 앞 지푸라기나 마찬가지인 서신이 운 좋게 전달될 줄은, 하물며 이안 페이지가 가족들의 안위를 포기한 채 이곳으로 달려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

‘아직 천운이 남아계신가 봅니다. 폐하.’

하나 탑주는 이안이 사절단에 합류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물론 거부할 만한 명분도 충분했다. 그 정도 대비 없이 일을 꾸미지는 않았으니까.

“황제폐하의 명령서임은 알겠네만, 불가할 것 같군.”

탑주의 짐짓 침착한 대응에.

“불가라니! 아바마마의 명이 우습단 말인가!”

황태자가 정반대로 흥분하며 나섰다.

물론 눈 하나 깜빡거리지 않는 탑주였다.

“황태자 전하. 이는 삼국간의 신뢰가 걸린 사안이옵니다. 사절단의 인원과 호위 병력의 숫자에 제한을 걸어둔 상태로, 단 한 명의 오차도 없이 제한을 준수할 거란 협의가 사전에 맺어진 상태이지요. 흠흠!”

잠시 말문을 멈췄던 탑주.

목청을 가다듬은 그가 계속해서 이어갔다.

“무릇 외교의 밑바탕은 상호간의 신뢰일 지언데, 일개 병졸도 아닌 고위마법사를 어찌 사절단에 한 명 더 합류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결코 불가한 사안임을 황제폐하께서도 이해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탑주의 말이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당장 전쟁 중인 것은 아니나, 대립했던 역사가 잦으며 오래토록 서로를 견제해 온 삼국의 협정이다. 그런 자리에 각국 지도자의 후계자를 포함한 사절단과 호위 병력이 만난다. 삼국 모두 민감하게 반응했고,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약속이 맺어진 거다. 조금이라도 어길 시 협정은 시작부터 틀어져 버릴 터.

“외교의 밑바탕은 신뢰, 지당하신 말씀이죠.”

이안 역시 탑주의 명분을 인정했다.

고위마법사란 살상무기와 같다. 이미 사절단에 포함된 고위마법사만 2명, 탑주까지 포함하면 3명이다. 한데 그런 존재를 협정 막바지에 한 명 더 추가한다?

‘협상 테이블 엎어버리겠다는 소리지.’

아마 황제도 사절단에 포함되어달라는 부탁은 아니었을 거다. 그저 가까운 곳에 머물며 망나니짓을 하지 못하도록 제어하라, 혹은 조언이라도 해달라는 부탁이었을 터. 황태자가 이안의 말이라면 껌뻑 죽는다는 사실을 황제 또한 알고 있었으니까.

“탑주께서 무엇을 걱정하시는지 알겠습니다.”

그러나 이안에게는 방법이 있었다. 아무런 외교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사절단의 일원으로 편입될 방법이.

“하면 이만 돌아가시게나. 자네가 이 도시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외교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 고생한 자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도리가 없음을 이해해 줬으면 하는군.”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듯 말하는 탑주.

승리를 장담한 특유의 어투였다.

그는 언제나 인자함을 잃지 않는다.

자신이 우위에 있으면 있을수록 그 인자함이 배로 발휘되는 성정이었다.

“황제폐하께는 내 따로 소상히 말씀을 올릴…….”

“근데, 만약에 말입니다.”

이안이 그런 탑주의 말을 싹둑 잘라 버렸다.

한데도 불쾌한 기색 하나 내비추지 않았다.

곧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만.

“사절단의 고위마법사 한 분이 빠져 준다면, 제가 그 자리를 대신 채워도 되겠습니까? 황제폐하께서 내리신 명령도 있으니 그 정도 융통성은 발휘해도 될 법합니다만.”

그 말에 탑주가 사절단 고위마법사들을 힐끔 바라봤다. 자신의 명이라면 황명처럼 따르는 자들, 적어도 상아탑의 고위마법사 중 배신자가 있을 리는 없다.

‘암. 그럴 리가 없지.’

장장 30년 이상을 걸어온 상아탑주의 길이다. 고위마법사 하나하나를 오랫동안 봐왔고, 알게 모르게 자신의 권속으로 만들고자 노력해 왔다. 그 결과 고위마법사 전원이 탑주에게 충성을 바쳤다. 짧게는 몇 년부터, 길게는 십 년 이상을.

‘애송이들이라면 모를까.’

젊은 마법사들의 신임 좀 얻었다고 그새 기고만장해진 모양이다. 저 애송이들의 우상, 이안 페이지라는 애송이가.

“물론 그럴 수도 있겠다만, 과연 누가…….”

탑주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는 그때.

“제가.”

사절단의 행렬에 섞여 있던 고위마법사 ‘로난’이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과거 이안의 목에 목줄을 채워야 한다며 노발대발했던 바로 그자였다.

“제가 사절단의 공석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게요. 로난?”

다시 한 번 인자함이 사라져 버린 탑주의 얼굴.

고위마법사 중에도 강경파에 속하는 로난이 아니던가?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제국의 백성이 아닙니까? 어떤 경우라도 황명을 따르지 않는 백성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외교가 걸린 문제라 해도 마찬가지죠.”

단호한 어조로 읊조리는 고위마법사 로난.

그의 논리가 계속해서 펼쳐졌다.

“사절단의 임무는 아주 신성한 임무라 배웠습니다. 하나 그 임무에서 빠짐으로 황명과 외교, 두 중대사를 만족시킬 수만 있다면, 기꺼운 마음으로 빠지겠습니다.”

할 말을 끝낸 로난이 황태자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췄다.

“소신 황명에 입각하여 사절단으로서의 신성한 임무를 이안 페이지에게 위임하고자 하는 바, 황태자 전하께서 허락해 주시길 청하옵니다.”

어찌되었든 사절단의 가장 큰 권력자는 황태자다.

표면적일 뿐일지라도, 지금은 그 표면이 중요했다.

“이를 말인가? 물론이지! 황성으로 돌아가도 좋아.”

황태자의 대답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일말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이안과 바꿔준다는데 무슨 고민을 하겠는가?

“아, 잠깐만.”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마차를 뒤적거린 황태자.

곧 보석으로 치장된 장신구 몇 개를 가져와 로난에게 쥐어준다.

“여비로 써. 여비로. 가서 마차도 사고, 마부도 고용하고. 응?”

“……서,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전하.”

태어나 처음 받아보는 황태자의 호의에 조금은 당황했던 로난. 용무를 끝낸 그가 이안에게 다가갔다. 등을 지고 있어 다른 이들한테는 보이지 않았으나, 로난의 입가에는 명백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오직 이안에게만 보이는 미소가.

“이안. 내 자네한테 사절단으로서의 임무를 위임하지. 모쪼록 황제폐하께서 내리신 명을 실수 없이 수행토록 하게.”

중년의 고위마법사 ‘로난’.

그는 이안이 전생의 기억으로 솎아낸 ‘이용할 만한 고위마법사’ 중 하나였다. 매사에 과격할 정도로 강경적인 마법사였으나, 그의 가치관은 탑주를 향한 ‘충성’이나 상아탑의 ‘위신’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오직 개인의 마법적 역량.’

어느 마법사가 그것을 원하지 않겠느냐만, 로난의 경우는 집착에 가까웠다. 보통 고위마법사가 되어 수많은 혜택들을 누리며 살다보면 자연스레 안주해버리는 것이 순리인데, 그의 마법적 갈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질 뿐이었다.

‘마나호흡법만 던져줘도 꼬리를 흔들 줄 알았어.’

이안을 견제했던 것은 열등감의 결과였다. 하나 개인교습이라는 명목 하에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서 열등감이 싹 지워졌다. 오히려 배우고자 했다. 특히 이안의 호흡법을 일부분 익힌 뒤부터는 ‘친 이안파’로 돌아서 버렸다. 탑주 밑에서 15년을 구른 것보다 역량의 증진이 빨랐으니까.

“고맙습니다. 선배님.”

“고맙기는, 백성 된 자의 도리 아니겠는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와 함께 속삭이기 시작한 로난.

“나중에 돌아오면 그거, 마저 알려주시게.”

‘그거’라면 필시 마나 호흡을 칭하는 것일 터. 이안이 가볍게 끄덕이자 로난 역시 빠른 속도로 멀어져갔다. 떠나기 직전 탑주가 했던 말을 그대로 읊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럼 소인은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사절단에 포함되지 않은 고위마법사가 도시에 있는 것만으로도 외교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탑주께서 하신 말씀이셨죠.”

이는 결코 약속된 행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약속된 것처럼 매끄러운 전개였다. 이안의 갑작스런 등장, 로난의 변심, 그리고 이안의 사절단 합류라는 마무리까지.

“허, 허허…….”

복잡해진 표정으로 웃음만 흘리는 탑주.

깊은 허탈함과 분노가 동시에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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