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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50화
18. 한계 돌파(1)
‘절대로 만지지 마십시오. 이 지팡이.’
만신창이가 되어 나타난 이안.
그가 혼절하기 직전 남긴 말이었다.
“으윽…….”
이안은 그로부터 사흘 만에 깨어났다.
약간의 신음과 함께 눈부터 번쩍 떠졌다.
참기 힘든 두통이 골바가지를 흔들었다.
‘여긴……?’
정신을 차린 이안이 주변부터 살폈다.
딱히 꾸밈은 없었으나 깨끗한 환경의 방.
‘영주성인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른 이안의 재빠른 판단이었다. 피에릭 영지에 이만큼 깨끗하고 넓은 방은 아마 영주성밖에 없을 거다.
‘도착하긴 제대로 도착했나 보네.‘
협곡에 도착했을 당시.
이안은 마나와 체력을 모두 소진해 버린 상태였다. ‘비몽사몽’이란 말이 실로 어울렸다. 주술사 왕의 저항이 거셌기에?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자는 쉬운 상대였다. 단지 지팡이, 주술식이 새겨졌다는 그 ‘대초원의 지팡이’가 문제였을 뿐.
‘환술이었을 줄은.’
지팡이에 걸린 술식은 몬스터의 정신을 지배하는 주술이 아니었다. 단지 특정한 ‘환각’을 일으키는 ‘환술’이었는데, 이안 역시 환각의 내용을 목격할 수 있었다.
‘대초원이 불바다가 되어버리는 환각.’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운석이 떨어져 대초원을 멸망시키는 환각이었다. 주술사의 왕은 계속해서 환술을 유지시켰고, 그 환각에 사로잡힌 몬스터들이 대초원을 필사적으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다.
‘몬스터들은 환술에 빙의하기 쉽다.’
생존본능의 힘은 위대했다. 단 한순간도 뭉쳐본 적 없는 몬스터들이 연합체를 이루어냄은 물론, 상위개체의 명령 하에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여줄 정도로.
‘일단 지팡이부터 처리해야…….’
지팡이에 걸린 술식 역시 제거해낸 상태가 아니었다. 억제시킨 채로 들고 왔을 뿐, 환술의 영향에서 벗어난 대량의 몬스터로부터 벗어나기 바빴으니까.
“이안 님?”
그때 방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파견마법사 맥기디였다.
“깨어나셨군요!”
후다닥 달려오는 그, 아니 그녀.
손에는 물통과 수건이 들려 있었다.
“제가 얼마나 누워 있었죠?”
“사흘을 꼬박 주무셨습니다.”
“사흘이라.”
대답을 들은 이안이 맥기디의 위아래를 슥 훑어봤다. 도대체 왜 파견마법사가 병간호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제가 들고 왔던 지팡이는?”
“아, 마법사 분들께서 따로 보관해 주셨습니다. 마나 감옥이랑 비슷한 원리로 만든 보관함이라고 하셨는데, 저기 있는 저…….”
넓은 방 한구석에 놓인 보관함.
맥기디가 그 보관함을 가리켰다.
“대처 잘했네요.”
저 정도면 아주 훌륭한 대처였다.
3클래스 마법사들의 작품이겠지.
이안이 만족스러운 듯 몸을 일으켰다.
“아, 아직 움직이시면……!”
“괜찮습니다.”
그러고는 보관함으로 다가가 뚜껑부터 열었다.
끼이이……!
기다란 보관함을 열자 박달나무 지팡이 한 자루가 이안을 반겼다. 번개라도 맞은 듯 새까맣게 탄 표면에는 깨알처럼 자그마한 술식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환술부터 손봐야겠군.’
새겨진 술식을 지울 수는 없다. 다만 바꾸는 방법이 존재한다. 새로운 식을 덧붙이거나 이어서 아예 새로운 술식으로 탈바꿈시키는 방법인데…….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존의 술식은 물론 매개체인 아티펙트와 호환되는 식을 찾는 게 문제였다. 잘못된 술식을 새길 경우, 아티펙트는 본연의 힘을 잃어버린 채 고물이 되어버리고 만다. 아무런 특별함도 없는 고물 말이다.
‘아깝잖아. 그건.’
여러모로 이안의 마음에 쏙 드는 지팡이였다. 특히 수정구나 보석으로 지팡이 주둥이를 장식할 수 있도록 가지가 돋아나 있었는데, 바로 그 부분이 중요했다.
‘통신구 끼워 넣을 지팡이는 이거밖에 없으니까.’
전생에 소유했던 여러 아티펙트 스태프.
그중 ‘대초원의 지팡이’를 선택한 까닭이었다.
‘시작해 볼까.’
이안이 왼손 검지를 들자 아주 자그마한 얼음덩이가 삐죽 솟아났다. 술식을 새기기에 알맞은 얼음송곳이다.
사각, 사각…….
박달나무에 문자가 새겨지는 소리.
오로지 그 사각대는 소리만 들려왔다.
금방 끝낼 생각조차 없는 것 같다.
사각사각, 또 사각사각.
‘쥐 죽은 듯이 있어야겠다.’
이안의 집중력은 정말이지 무서울 지경이었다. 덕분에 밖으로 나갈 타이밍을 잡지 못한 맥기디만 덩그러니 남았다. 움직이기는커녕 숨소리 하나 크게 내쉴 수 없었으니까.
‘근데 뭘 하시는 거지?’
문득 호기심이 동하는 맥기디였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지 고작 1년 차다.
이안이 무얼 하는 건지 예상조차 힘들었다.
‘으음.’
그녀가 마나로 하여금 시력을 강화시켰다.
그러고는 지팡이를 구석구석 살펴봤다.
지팡이의 생김새부터 새겨진 술식까지.
‘진짜 아무것도 모르겠네.’
그래봐야 결론은 하나였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아니겠는가.
애꿎은 이안의 얼굴만 자세히 보일 뿐.
작업에 몰두한 표정이 꽤나 인상적이다.
“…….”
아카데미 시절 스치듯 봤을 때는 소년이었다. 널리 퍼진 소문 또한 ‘최연소’나 ‘소년’등으로 지칭되었기에, 어린 느낌이 강했다.
‘소년은 무슨.’
한데 지금은 다 자란 청년 티를 물씬 뿜어낸다.
무엇보다도, 처음 눈보라와 함께 나타났던 그 순간부터 느끼는 거지만.
‘나름 잘생…….’
“맥기디 님.”
“우와핫!”
‘으악’도 아니고 ‘꺄악’도 아닌.
참으로 요상한 비명을 내지른 맥기디.
부끄러운 모양인지 얼굴부터 휙 돌린다.
“저쪽에 서 있어 보세요.”
“예, 예?”
“저 뒤쪽, 창가 쪽으로.”
정작 이안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손만 대충 뻗어 무언가를 지시할 뿐.
“아, 알겠습니다!”
그걸 또 맥기디는 군말 없이 따른다.
무려 고위마법사의 명령 아니겠는가?
후다닥 창가 앞으로 향하는 그녀였다.
“이제 뭘 하면 되는지…….”
“잠시.”
이윽고 새로운 술식이 완성된 대초원의 지팡이. 술식 수정에 성공했다면 마나와 공명할 것이고, 실패했다면 평범한 나무막대기로 전락해 버렸을 터. 그 성공여부를 확인해 볼 차례였다.
‘조금만.’
지팡이에 마나를 조금 주입시키자 지팡이 역시 미약한 빛을 뿜어댔다. 환술의 검붉은 기운이 아닌, 아주 맑고 깨끗한 회색빛이었다.
‘좋아.’
일단 술식 수정은 성공적이었다.
의도했던 회색빛이 일어났으니까.
지팡이 또한 힘을 잃지 않았다.
반응을 한다는 것 자체가 증거다.
이제 남은 것은 실사용 점검.
마침 적절한 대상이 보인다.
“맥기디 님.”
“네?”
자리에서 일어난 이안. 그가 맥기디의 면전으로 지팡이를 겨누었다. 새로운 술식이 발동되기에 충분한 마나를 주입시키며.
우우우웅-!
지팡이로부터 뿜어진 회색빛의 빛줄기가 맥기디를 휘감았다. 그리고 곧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맥기디에게 걸려 있었던 몇 가지 마법, 예컨대 그녀를 남성스럽게 바꿔줬던 ‘페이스 오프’ 부터 ‘보이스 체인지’ 주문까지 몽땅 해제되기 시작했다.
“어…… 응?”
점차 여성스럽게.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인상과 목소리.
“이게 왜…… 헙!”
제 목소리에 헛바람을 삼키는 맥기디. 황급히 얼굴부터 더듬거린다. 한층 작아진 코와 갸름한 턱이 모든 것을 대답해 줬다. 남자로 보이기 위한 모든 마법들이 해제되어 버린 거다.
“켄슬레이션?”
그녀 또한 마법을 배웠다. 사용하진 못해도 유명한 고위마법 몇 가지는 안다. 지금 이 마법의 정체, 대상의 ‘보조 마법’을 높은 확률로 ‘해제’시켜 버리는 마법, 지팡이에 새겨진 술식은 ‘켄슬레이션’이 분명했다.
“이, 이안 님……?”
그녀가 토끼마냥 똥그래진 눈으로 이안을 바라봤다. 누가 봐도 일련의 사태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이었다.
‘제대로 바꿨군.’
하나 이안은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 없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엔 오로지 지팡이가 ‘전부’였으니까. 맥기디의 물음과 눈빛 따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으리라.
‘이제 통신구만 끼우면 완벽하다.’
이안의 손짓 한 번에 봇짐 속 통신구가 쏘옥 빠져나와 손아귀로 날아들었다. 지팡이 주둥이로 장식하기 딱 좋은 모양새, 그리고 크기였다.
“물어.”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걸까? 지팡이의 주둥이 쪽 삐죽삐죽한 가지들이 쭈욱 늘어나 통신구를 감싸 안았다. 단단하게 품어버린 모양새가 쉽게 빠지지는 않을 것 같다.
“옳지. 잘했다.”
마치 애완동물 다루듯 대초원의 지팡이를 쓰다듬어준 이안. 이내 한곳으로 쏠렸던 정신력이 거둬진 듯 주변을 둘러봤다. 자연히 맥기디와 눈이 마주쳤다.
“대영주님은 어디 계시죠?”
“……예?”
당혹스러움에 어쩔 줄을 모르는 맥기디.
하나 이안은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슬슬 만나 뵙고 돌아가야…….”
“자, 잠깐만요. 이안 님!”
방에서 나가고자 했던 이안을 맥기디가 가로막았다. 정작 자신이 하극상을 저질러 버린 것은 아닐까 싶었지만, 그래도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마디 해명이나마.
“어, 어떻게 아셨죠?”
“뭘 말입니까?”
“제, 제가 남장을…….”
“아아.”
이안은 정말 아무런 감흥이 없었던 듯 고개부터 끄덕거렸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처, 처음부터요?”
“상아탑에 파견마법사들 인적사항 다 있는데, 제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다 보고 왔죠. 맥기디…… 아니, 매리 님.”
그렇다.
듣고 보니 당연한 이야기다.
이안은 상아탑의 수뇌부 그 자체.
모를래야 모를 리가 없으리라.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한 맥기디, 본명 ‘매리’였다.
“그, 근데 왜 모른 척을…….”
“그냥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아마 영주님도 아실 텐데, 파견마법사 인적사항은 영주한테도 들어가니까.”
역시나 당연한 이야기. 한데도 매리의 얼굴은 빨개지다 못해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어째서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을까?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 수가 없는 상식인데.
“그런…….”
지나간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이안 앞에서 짐짓 남자 행세를 했던 순간들. 뿐이랴? 영주 앞에서도 그랬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기억나 버렸다.
‘나, 나는 바보야…….’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자신은 바보가 분명하다. 바보가.
“그, 그럼 혹시 병사 분들도……?”
“아뇨. 그 분들은 모릅니다. 저와 영주님. 아, 파견 나오신 마법사 분들도 아시겠네요. 대충 그 정도 알 겁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병사들이 모른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매리였다. 그들마저 매리가 여자임을 알았다면, 알면서도 그리 대한 거라면 정말 부끄러울 것 같았다.
“아는 척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아, 아뇨. 사과하실 일은 아닙니다. 단지…….”
쭈뼛거리며 옆으로 물러나는 매리. 단지 혼란스러웠고, 그 혼란스러움을 정리하고 싶었을 뿐, 사과나 받자고 막아선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 그럼 볼일 계속 보셔요!”
결국 참지 못하고 방을 나가 버리는 그녀였다.
“흐음.”
뭔가 실수를 한 것 같긴 한데.
저 정도로 부끄러워할 실수인가?
이안의 고민이 조금은 깊어졌다.
‘남장이야 다시 하면 되는 건데.’
모르겠다.
머리를 긁적거린 이안이 발걸음을 옮겼다. 깨어났으니 대영주에게 알리고 돌아가야겠지. 이안의 임무는 동부사태 종결, 할 일은 모두 끝낸 거다.
‘돌아가자. 내 집으로.’
돌아갈 집이 생겼다는 것.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었다.
쿵! 쿵!
그 생각만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심장부터 쿵쾅쿵쾅 뛰는 것이…….
“……어?”
한데 아무래도 그 정도가 아닌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갈 생각에 가슴이 뛸 수는 있겠으나, 이리 쿵쾅쿵쾅 뛰지는 않을 테니까.
쿵! 쿵! 쿵! 쿵!
표현 그대로 터질 듯 뛰는 심장.
단 한 번도 이렇게 뛴 적은 없었다.
전생과 이번 생을 통틀어서 말이다. 마나하트의 활동을 촉진시켜 주는 하프 엘릭서, 그 비약을 여러 병 마신다 한들 이 정도는 아니었다.
“큭……!”
이젠 통증마저 느껴진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어딘가 이상이라도 생긴 걸까?
‘갑자기 왜?’
점점 더 빠르고 격해지는 심장 박동.
마나를 뿜어대기 시작한 마나하트.
현기증마저 일어날 정도였다.
‘설마.’
순간 이안의 뇌리를 스치는 한줄기 생각.
아직 덜 자란 마나하트, 그 마나하트의 상태가 떠올랐다.
‘어쩌면…….’
성장통이 아닐까?
아직 확신하기는 힘들다.
확인해볼 가치만 충분할 뿐.
재빨리 자리에 주저앉은 이안.
마나호흡을 시작하기 위함이었다.
“후우우……!”
심장으로부터 전해지는 고통. 그 강렬한 고통을 참아내며 마나호흡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호흡 한가락을 내쉴 때마다 통증이 한 아름씩 몰려왔으나, 견디고 또 견뎌냈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지난 5년간 부딪쳐온 마나의 한계치.
아직 다 자라지 못한 마나하트의 한계.
그 한계를 비로소 뚫어낼 수 있으리라.
그렇게만 된다면 넘어서는 거다.
5클래스 마스터를 넘어서.
‘6클래스 초입에 돌입한다.’
역류하는 핏물이 입술은 물론 코와 귀로 줄줄 흘러나왔다. 이미 죽어버린 검붉은 피였다. 누구든 목격하는 순간 기겁을 해버릴 몰골, 차라리 다행이었다. 집이 아니어서.
‘어머니가 봤다면 기겁이 아니라…….’
아마 기절을 해버리셨겠지.
고통 속에서도 피식 웃어버린 이안.
그의 마나호흡이 점점 더 막바지로 치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