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49화 (49/342)
  • 49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49화

    17. 대초원의 계획(2)

    겁을 주기에는 여러 수단이 있다.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려오는 대규모 마법들.

    하나 이안의 선택은 ‘정령 소환‘이었다.

    “저, 정령…….”

    이유는 간단했다.

    상대가 정령의 모조품을 불러냈다.

    그에 대한 호승심이 첫 번째요.

    두 번째 까닭은.

    “불의 정령이시여!”

    대초원 원주민들이 특성을 알기 때문이다.

    저들에게 정령은 신앙이나 마찬가지인 존재. 주술사의 왕이 선출되는 과정부터가 그렇다. ‘진짜’ 정령을 소환할 수 있는 주술사가 곧 주술사의 왕으로 군림한다. 마법사로 따지자면 고작 3클래스 수준의 ‘정령다운 정령’을 불러내는 주술사가.

    ‘살라만다 정도는 처음 보겠지.’

    원주민들에게 주술사란 왕이요, 신의 대리자나 마찬가지다. 그래서였다. 일부러 저 거대한 불꽃 도마뱀 ‘살라만다’를 소환시킨 까닭, 그 어떤 마법보다 겁을 주기에 효과적일 테니까. 정신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이렇게까지 기겁할 줄은 몰랐다만.’

    이안은 그저 적당히 겁만 줄 생각이었다.

    한데 저들은 넙죽 엎드려 절까지 올린다.

    마치 ‘진짜 신’이라도 영접한 것처럼.

    “불의 정령이시…….”

    “그만.”

    이안의 말에 살라만다가 콧김을 위협적으로 뿜어냈다. 그것만으로도 바닥의 잡풀들은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이제 좀 얘기할 생각이 드나?”

    엎드린 원주민들이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오랜 세월 고립된 채로 살아온 비문명인들이다. 주술사의 왕이 모시는 정령보다 훨씬 무지막지한 정령을 목격했으니, 당분간은 제대로 된 사고가 불가능할 터.

    “정령께서 묻는 말이다.”

    “히익!”

    졸지에 정령의 대리인이 되어버린 이안.

    그 효과가 탁월한 관계로 어쩔 수 없었다.

    “주술사의 왕은 어디, 아니 왜 숨기는 거지? 똑바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결국 왕 행세를 했던 노년의 주술사가 엎드린 채 나섰다. 그래도 대리인 행세를 했다는 것은 주술사 중 가장 지위가 높은 자, 즉 고위마법사에 해당하는 지위겠지.

    “주, 주술사의 왕께서는 부락에 계시지 않습니다.”

    충분히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지금껏 보여준 이들의 반응이 그렇다.

    모종의 계획을 꾸미고 있는 것은 자명한 일.

    주술사의 왕이 주도적으로 펼치는 계략이리라.

    “자세히 얘기해 봐.”

    “자, 자세한 건 저희들도…….”

    “정령께서 노하셨다.”

    “저, 정령께서……?”

    이안의 턱짓에 머리만 갸웃거리는 살라만다.

    결국 목을 들고 입을 뻐끔거리는 시늉까지 보여주고 나서야 비로소 허공에 불을 뿜어댔다. 그야말로 적절한 ‘노하심’의 표현이었다.

    “마,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 모습에 부들부들 떠는 원주민들.

    아마 평범한 사람들이어도 저럴 거다. 거대한 불꽃 도마뱀이 눈앞에서 불을 뿜어대는 꼴이니까. 하물며 신이라 여기는 원주민들은 어떻겠는가.

    “주술사의 왕께서는 기, 길을 여신다 하셨습니다.”

    “길을 연다?”

    “북쪽 몬스터들을 토벌하여 강대국들과의 활로를 여실 방법을 찾아내셨다며…….”

    “방법?”

    “바, 방법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단지 방법을 알아냈다는 말씀과 함께 북쪽으로 향하셨고, 제가 대리인의 자격을 물려받았을 뿐입니다. 정말입니다.”

    거짓이 아님을 강조하는 노인의 목소리. 하나 이안이 발동시킨 신문마법은 주술사 노인의 말을 거짓이라 알려주고 있었다. 노인은 그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터.아마 제국인에게 얘기하기 껄끄러운 방법이리라.

    ‘몬스터를 전부 토벌해낼 방법이라.’

    대충은 감이 왔다. 몬스터들은 분명 누군가의 명령을 수행하듯 지능적으로 움직였다. 만약 주술사의 왕이 몬스터들의 행동을 일부 조종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제법 그럴 듯한 그림이 그려진다.

    ‘국경을 이용해 개체수를 줄일 계획인가.’

    세 나라의 국경으로 몬스터를 보낸다.

    끊임없이, 약간의 기민함까지 섞어서.

    하면 국가들은 예민하게 대응하지 않겠는가?

    침범해온 몬스터를 처리하고자 혈안이 될 터.

    ‘손쓰지 않고 코 푸는 격.’

    희생과 물자소비는 모두 삼국의 몫.

    결코 나쁘지 않은 계책이었다.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말이다.

    ‘실제로 일어날 일이기도 하지.’

    이안은 앞으로의 대략적인 흐름을 알고 있다. 삼국은 조만간 대초원의 몬스터를 토벌하고자 대대적인 연합 토벌대를 결성한다. 주술사의 왕이 바랐던 것처럼 몬스터 대부분이 대초원에서 박멸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원주민들은 노예가 된다.’

    그토록 원했던 강대국과의 ‘활로’는 열리지 않는다. 활로는커녕 자원이 풍부한 대초원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사이좋게 차지했고, 기존의 원주민들까지 노예로 전락시켜 버렸으니까.

    ‘좀 더 미래의 일이지만.’

    그렇다고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거다.

    생각을 정리한 이안이 노인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몬스터를 조종하는 주술이라도 찾았나 보군.”

    크게 움찔거리는 노인의 몸뚱이.

    아무래도 정곡을 찔린 모양이다.

    “어떤 주술이지?”

    “…….”

    노인 주술사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상대는 무려 ‘진정한 정령’을 부리는 존재, 뿐만 아니라 진실을 판가름하는 능력까지 가진 것으로 보였다. 계속 거짓을 고했다간 장담하기 힘들다. 자기 자신의, 그리고 부족 전체의 안위가.

    “……그 주술은 어떤 여자가, 당신과 똑같은 하얀 피부를 가진 여자가 주술사의 왕께 알려준 주술식이었습니다.”

    “여자?”

    “주술사의 왕께서는 손님이라고만 말씀하셨고, 며칠을 묵다 떠났습니다. 이후 주술사의 왕께서도 지팡이에 주술식을 새기시고는 북쪽으로 향하셨습니다. 미, 믿어주십시오.”

    즉 이 사태가 주술사 왕의 독단적인 계획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하얀 피부를 가졌다면 필시 제국이나 공국의 인물일 터.

    “흐음.”

    몇몇 추측과 생각을 떠올렸던 이안.

    그러나 일단은 접어두기로 했다.

    사태의 해결부터 집중하는 쪽이 옳다.

    ‘거짓말은 아니군.’

    결국 당장의 방법은 하나다.

    먼저 주술사의 왕을 찾아내는 것.

    저 몬스터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찾아낸 다음은.’

    놈을 죽이든, 주술을 멈추게 만들든 몬스터들의 조종부터 끊어내야겠지.

    방법만 놓고 보자면 아주 간단했다.

    ‘찾고 접근하는 게 문제겠다만.’

    이안이 길게 늘어진 머리를 쓸어 올렸다.

    사태해결의 실마리는 확실히 잡았다.

    이제부터 행동에 나설 때다.

    “협조 고맙습니다.”

    이안이 다시금 정중함을 되찾았다.

    더 이상 원주민들에게 볼 일은 없었다. 딱히 분풀이를 하고 싶다는 욕구도 들지 않았다. 알아낼 것도 알아냈고, 원했던 지팡이 역시 주술사의 왕과 함께 있을 테니까.

    “저분은 치료를 하셔야 할 겁니다.”

    살라만다의 소환을 해제시킨 이안.

    그가 칼잡이 흉내로 쓰러뜨렸던 원주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이안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진짜배기 정령으로 모자라서 날아다니는 인간이라니, 오늘따라 기겁할 일이 참으로 많은 원주민들이었다.

    * * *

    “일이 잘못된 것인가?”

    피에릭 영지의 대영주 칼리안이 이마를 감싸 쥐었다. 고위마법사 이안 페이지가 대초원으로 넘어간 그날로부터 어느덧 열흘이 지나 버렸다. 한데 아직까지도 깜깜무소식이다.

    ‘이대로는…….’

    협곡을 틀어막은 얼음장벽 또한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열흘을 버틸 거라 했으니 곧 주어진 수명이 다해 버릴 터.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안 페이지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만큼 대단한 마법사가 왔으니 무언가 해결해줄 거란 믿음도 컸지만, 아무래도 헛된 믿음이었던 것 같다.

    “아돌.”

    “예. 대영주님.”

    대영주 칼리안이 막사 바깥에서 대기 중이었던 최고 전사 ‘아돌’을 불렀다. 협곡의 전투를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예정대로 협곡에 진영을 갖춰라. 영지 내 모든 병력과 투석기를 집중시켜. 산맥을 경계하는 토벌대까지 모두.”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한껏 경건해진 아돌의 목소리.

    죽음을 각오한 전사의 기풍일까.

    그가 빠른 동작으로 막사를 나섰다.

    ‘이안 공. 당신을 탓할 생각은 없소.’

    그것은 칼리안의 진심이었다. 애당초 혼자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문제였을 거다. 탓할 대상이 있다면 군대와 군수물자 대신 고위마법사의 파견만을 선택한 황실과 상아탑뿐.

    ‘차라리 전선에서 함께 하는 쪽이 좋았을지도.’

    아마 그랬다면 장벽이라도 계속 칠 수 있었을 테지. 재요청을 올려 제국군이 당도할 시간이나마 벌었을 테고.

    ‘후회해서 무엇 하리.’

    그리 결론을 내린 칼리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막사 한쪽 가지런히 놓인 두 자루 도끼를 집어 들었다. 가문 대대로 물려받은 배틀 엑스, ‘피에릭가의 참수’였다.

    “막아내면 된다. 내가, 나의 부하들이.”

    칼리안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이었다.

    막아내면 그만이다.

    영지와 영지민을 지킨다.

    제국의 가장 단단한 방패가 된다.

    수십 번을, 아니 수백 번을 되새기고 나서야 막사 밖 햇빛을 맞이할 수 있었다. 높이가 제법 낮아진 얼음장벽도 담담하게 바라봤다.

    “올 테면 와보라지.”

    얼음장벽으로 틀어막힌 큰 뱀의 협곡. 그곳에 모든 병력이 집중되었다. 피에릭 영지 내 모든 병력들은 물론 일차적으로 지원받았던 제국군, 두 명의 3클래스 마법사와 파견마법사 맥기디, 선제공격을 취할 투석기까지.

    “대영주님.”

    “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일대의 전투 준비는 모두 끝났다.

    얼음장벽도 본래의 크기에 절반 이하로 녹아내렸다.

    “투석기 준비.”

    경계탑에 오른 대영주의 작은 읊조림만으로 명령이 연달아 전해졌다. 그만큼 조용했고, 모두가 긴장된 상태였다. 어떤 연설도, 다짐의 말도 없었다. 폭풍전야. 그 표현이 어느 때보다 어울렸다.

    “으으…….”

    파견마법사 맥기디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차라리 보급부대에서 병사들의 무시를 받던 순간이 나을 지경이다. 그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병사들 역시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다. 아주 행복했던 기억보다는 조금이나마 나았던 그때 그 순간들. 그때만이라도 돌아갔으면 싶었으니까.

    “대기하라.”

    하나 그러한 분위기도 잠시.

    대영주의 건조한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이제 정말 금방이다.

    “아직.”

    장벽이 녹아내림에 가속도가 붙었다.

    저대로라면 몇분 내로 허물어질 터.

    마음껏 넘나들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장벽 너머의 몬스터도, 안쪽의 병사들도.

    “조금 더.”

    배틀 엑스를 쥔 대영주의 오른손이 머리 위로 올라갔다. 도끼의 날붙이가 햇빛을 가득 머금어 사방으로 분출시켰다. 저 손이 내려감과 동시에 투석이 시작되리라.

    “조금만 더.”

    대영주의 눈에 장벽 건너편이 비춰지는 그때.

    명령과 얼음장벽으로 집중되었던 모두의 긴장감이 일순간 흐트러졌다. 이유가 있었다. 순차적으로 녹아내리던 얼음장벽에 커다란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으니까.

    “뭐지?”

    “부, 부서지는 건가?”

    “갑자기 왜?”

    장장 2만을 육박하는 병사들의 수군거림.

    이런 분위기, 결코 이롭지 않다.

    긴장의 끈을 유지시켜야 한다.

    “발……!”

    투석기의 발포 명령이 떨어지기 직전.

    바로 그 순간이었다.

    쩌적……! 쩌저적……!

    얼음장벽의 균열은 생각보다 빠르게 벌어졌고.

    쿠구구구궁-!

    곧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장벽 너머의 모습이 드러났다.

    모든 병사들의 눈에 똑똑히.

    “……?”

    아무것도 없었다.

    장벽 앞에도, 멀찍이 협곡 건너편에도.

    단 한 마리의 몬스터조차 몰려오지 않았다.

    그저 한 명의 사람만이 협곡 너머에 서 있을 뿐.

    “저분은……?”

    그를 가장 먼저 알아보는 자는 맥기디였다.

    연이어 모두가 장벽 너머 남자의 정체를 눈치챘다.

    “하, 하아! 후우우…….”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로브 차림의 청년.

    폐가 터지기라도 한 듯 숨을 몰아쉬는 남자.

    “이, 이안 님?”

    대초원 영지로 넘어간 지 열흘 째 되는 날.

    언제나처럼 자유로운 플라이 마법이 아닌, 두 발로 직접 걸어서 돌아온 이안 페이지.

    “이 지팡이…….”

    만신창이가 된 손에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일전에는 없었던, 아주 생소한 지팡이였다.

    “절대로…… 절대로 만지지 마십…….”

    힘겹게 토해낸 경고의 한마디와 함께.

    그 자리에서 혼절해 버리는 이안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