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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47화 (47/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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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47화

16. 피에릭 영지(2)

“그렇습니까?”

“큰 뱀의 협곡 말고는 제국으로 넘어올 길이 없거든요. 그 외에는 결국 산맥을 넘어오는 길밖에 없는데, 떼로 몰려오긴 어려운 길이죠.”

1년 차의 파견마법사 맥기디는 어느새 가장 충실한 ‘안내자’가 되었다. 대부분은 이안도 아는 내용이었지만, 처음 듣는 바도 있었기에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어제 그 트롤들은 산을 넘어왔겠군요.”

산맥을 타고 넘어오는 소수의 몬스터까지 완벽하게 봉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보급을 노릴 거라고 예상이나 했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기이한 일이었다.

‘그 홉고블린도 대초원에 있어야 할 놈인데.’

문득 모그리안 영지에서의 일을 떠올린 이안. 그때의 그 홉고블린도 지금과 비슷하게 넘어온 놈일까?

‘아니지.’

잠시 고민했던 이안이 고개를 저었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단지 낮을 뿐이다. 여기서부터 북부 영지까지는 엄청나게 먼 거리다. 도착하기도 전에 토벌될 터.

“피에릭 영주님께서도 협곡에 계십니다. 매번 최전방에 나서시는데, 보는 제가 다 심장이 조마조마하더라고요.”

맥기디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젊은 대영주 ‘칼리안 피에릭’.

동부 최고의 전사로 유명한 남자.

전생에는 이안과 안면이 있는 자였다.

‘최고의 전사가 지도자라는 점이 문제지만.’

항상 목숨을 내놓고 다니는 인물이다. 그 흔한 후계자도 하나 없는 주제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멋지긴 한데, 영지의 미래를 생각하노라면 그리 좋은 지도자는 아니다.

“아무튼, 이안 님이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래. 정말로 큰일 날 뻔했다.

맥기디는 파견 1년 차 수습마법사다. 한데 전생의 이안은 이곳으로 파견을 나왔다. 날짜로 따지자면 올해 말쯤. 이것이 무엇을 뜻하겠는가? 맥기디가 계속 살아 있었다면 공석도 나오지 않았을 거라는 얘기다.

‘아마 죽었겠지. 트롤들한테.’

어제 그 기습으로 맥기디는 죽었고, 파견마법사의 자리가 공석이 되어 이안에게 돌아왔다. 전생의 상황은 분명 그렇게 돌아갔을 터.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정말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트롤들은 인육을 먹는다던데, 너무 끔찍해서…….”

으스스 떨어 보이는 맥기디.

이안이 그를 잠시간 바라봤다.

하얗고 유한 얼굴, 조막만 한 덩치.

그럼에도 크게 입은 로브까지.

‘남장을 한 건가.’

사실 이안은 어제부터 알고 있었다. 아니, 오기 전부터 알았다. 파견을 나오기 전 피에릭 영지의 정보를 간략하게 살폈으니까. 전생에는 죽었을 파견마법사의 정보도 마찬가지였다.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나본데.’

마법사는 분명 엄청난 권한을 갖는다. 심지어 강하기까지 하다. 호전적인 병사들? 마음만 먹는다면 순식간에 고깃덩이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의지, 그리고 경험.’

거의 모든 마법사들은 12살에 아카데미로 불려와 5년간 폐쇄적인 생활을 거친다. 세상경험이 아주 일천하다는 얘기다. 5년의 의무적인 파견은 그러한 부분을 메꿔주는 제도였다.

‘이런 영지일수록 위축이 될 수밖에.’

제국에서 전투가 가장 잦은 영지.

그 호전적인 분위기에 겁을 먹었을 터.

선천적으로 심약한 성정이라면 더더욱.

더군다나 파견 1년 차 아니겠는가.

‘인상이나 목소리는 마법으로 손봤을 테고.’

아마 그래서일 거다.

이름까지 바꿔가며 남장을 선택한 까닭.

없는 경험으로 쥐어짜낸 ‘최후의 보루’쯤 되겠다.

‘역효과 같긴 하다만.’

하나 이안이 보기에는 실수로 보였다. 일부 병사들이 만만하게 본다고는 하나, 어찌 되었든 보장된 ‘지위’와 ‘마법’을 갖고 있다. 결코 선을 넘을 수 없다는 얘기다.

‘차라리 남자보다는.’

왜소하고 유약한데 겁까지 많은 남자보다는, 처음부터 여인으로 나서는 쪽이 괜찮은 대우를 받았을 거다. 적어도 그쪽은 ‘보호본능’이란 게 자극될 테니까.

“저기 보이는 저기가 큰 뱀의 협곡입니다.”

맥기디가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멀찍이 보이는 동부 최대의 격전지.

이안 혼자였다면 금세 도착할 거리였다.

“잠시.”

보급부대의 행렬을 멈춰 세운 이안이 하늘 높이 떠올랐다. 그러고는 마나를 끌어 모아 사방으로 방출시켰다.

‘디텍트.’

주변일대의 생명체를 감지하는 마법.

무색 파장이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다른 마법사도 아닌 이안의 디텍트다.

그 범위 역시 엄청났다.

‘없군.’

또 다른 몬스터의 움직임은 없다.

확인해둔 이안이 지상으로 내려왔다.

“먼저 갑니다. 몬스터는 없으니 안심하세요.”

먼저 가겠다는 말에 당황을, 주변에 몬스터가 없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보급부대 병사들이었다. 맥기디의 안색만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어두울 뿐.

‘좋았는데…….’

아쉬움을 느끼는 맥기디였다.

이안 옆에 있을 때는 병사들도 자신한테까지 예의를 갖췄다. 그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는데, 아니 좋았는데. 꿈만 같았던 하루도 여기서 끝이구나 싶다.

“그럼.”

이안이 큰 뱀의 협곡으로 날아갔다.

그에게 부여된 임무는 ‘동부사태종결.’

모든 역량을 동원해 수습하라는 거다.

몬스터를 쓸어버리든, 원인을 차단하든.

협곡은 그 시작의 서막을 알릴 자리였다.

* * *

“저 추잡한 머리통 열 개만 뽑아서 가져와라!”

실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협곡.

대초원과 그린리버 제국 유일의 통로.

큰 뱀의 협곡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그 전까지는 죽을 생각 꿈도 꾸지 말고!”

대영주 ‘칼리안 피에릭’을 선봉으로 한 피에릭의 전사들은 물론 제국군에 3클래스 마법사 둘까지. 동원 가능한 모든 병력을 집결시켜 꽁꽁 틀어막은 협곡 너머로 다양한 몬스터들이 물밀듯 밀려들어왔다.

“내 말 알아먹겠는가!”

“여부가 있겠습니까! 대영주!”

30세의 젊은 대영주 칼리안.

그가 두 자루 도끼를 휘두르며 호방하게 외쳤다. 함께 선봉에 선 피에릭의 전사들 또한 목숨을 내놓고 달려들었다. 하나 그 용맹함과는 무관하게 전투의 향방은 그리 밝지가 않았다.

‘머릿수부터 차원이 다르다.’

하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이안이다.

양쪽의 전력 차이가 객관적으로 보였다.

협곡 너머 펼쳐진 몬스터의 군세를 보라.

그 차이를 메꿔줄 마법사조차 후방에 있었다.

‘마나호흡 중인가.’

아무래도 마나가 바닥나 버린 모양이다.

그만큼 전투가 길어지고 있단 뜻이겠지.

‘일단 막아놓고 봐야겠군.’

저대로 둔다면 끝은 파멸이다.

몬스터들도 그 사실을 알기에 물량공세를 펼치는 거다.

‘하프 엘릭서부터.’

더글라스의 특제 하프 엘릭서.

이안이 그 마개를 뽑아버렸다.

쓴 냄새가 확하고 올라온다.

꿀꺽!

온몸으로 퍼지는 하프 엘릭서의 효과.

과연 더글라스의 자신감은 근거가 있었다.

효능부터 효능이 만개하는 시간까지.

제 아비가 만든 것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했다.

‘나를 죽인 원흉답군.’

말은 좀 이상해도 명백한 칭찬이었다.

8클래스 마법사조차 독살시킨 독약.

무려 그 독을 만든 장본인 아니던가?

전생의 더글라스가 말이다.

“흐음.”

피식 웃은 이안의 커다란 협곡을 내려다봤다. 대평원과 제국의 유일한 통로, 그 협곡에서 펼쳐지는 전투를 멈춰낼 방법, 그는 알고 있었다. 비록 협곡 너머까지 펼쳐진 적을 전멸시킬 힘은 없었으나, 잠시 막아낼 재량만큼은 충분했다.

“시작해 볼까.”

격렬한 전투가 치러지는 협곡의 경계선.

그보다 살짝 몬스터 쪽으로 치우친 위치.

이안이 선택한 낙하지점은 그곳이었다.

자칫 아군까지 휘말릴 수도 있으니까.

탁!

이안의 등장에 잠시나마 시선이 쏠렸다.

목숨이 오고가는 전장이다. 길게 보긴 힘들다.

단지 의문 한자락 품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누구지?’

협곡 내 모든 생명체를 훑고 지나간 의문점. 그 해답을 얻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안의 양 손에 집중된 강대한 마나가 방금 지면으로 스며들었으니까.

“아이스 월.”

이안이 만들어내기 시작한 ‘아이스 월’.

그건 결코 평범한 얼음장벽이 아니었다.

쿠구구구구구-!

협곡의 좌우 폭은 엄청나게 넓었다.

양쪽 곡벽이 가진 높이 역시 대단했다.

산맥 중턱에 파인 협곡이 아니겠는가?

하나 얼음장벽의 규모는 그보다 더 위용이 넘쳤다. 협곡을 순식간에 틀어막아 버릴 정도로 웅장한, 그야말로 ‘장벽’ 그 자체였다.

“무, 무슨…….”

이안의 요란한 등장은 이번에도 모두의 넋을 빼놓기 충분했다. 하나 보급부대와는 상황이 달랐다. 아직 장벽 안쪽으로 몬스터가 상당수 남아 있다. 그것들부터 정리해야 계속하지 않곘는가? 놀라 자빠지든, 넋을 빼고 바라보든.

“상아탑의 고위마법사께서 오셨다!”

눈치 빠른 대영주 칼리안이 목청 터져라 외쳤다.

지금 병사들에게 그 한마디만큼 힘이 되는 말이 없을 거다. 모두가 고위마법사의 등장을, 그 마법사가 불러낸 상식 이상의 얼음장벽을 목격했으니까.

“고위마법사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 한 놈도!”

장벽 안쪽으로 고립된 몬스터들.

놈들이 순식간에 도륙되기 시작했다.

한껏 사기가 오른 병사들의 창칼.

그리고 대영주 칼리안의 도끼 아래.

* * *

끝날 줄 몰랐던 협곡의 전투는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이안이 펼친 얼음장벽을 넘어올 수도 없거니와, 그 많은 몬스터들이 당장 산을 타고 넘어오기에는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았다.

“놈들이 머릿수로 밀고 들어올 줄은 몰랐소.”

대영주 칼리안 피에릭의 널따란 막사.

그곳에 두 사람이 독대를 나누고 있었다.

압도적인 덩치의 대영주 칼리안.

그리고 고위마법사 이안이었다.

“아니, 예상은 했지만 그 정도로 많을 줄은 몰랐지. 오늘은 아주 작정을 한 것 같더군. 대초원에 무슨 변고가 있긴 있는 모양이오. 그렇지가 않고서야…….”

칼리안의 말이 옳았다. 이안 역시 아이스 월을 펼치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몇몇 몬스터와 눈이 마주쳤으니까. 그 눈빛으로부터 전해진 감정, 그것은 적개심 따위가 아니었다.

‘두려움.’

마치 무언가로부터 쫓기는 듯한 두려움.

사지에 내몰린 병졸의 그것과 비슷했다.

‘분명 무슨 일이 있다.’

놈들이 두려움에 떨면서도 돌격해 온 까닭.

아마 그것이 사태를 종결시킬 단초가 될 터.

“이안 공도 아시겠지만, 우리는 두 가지 요청을 황실과 상아탑에 전달했소. 첫 번째는 계속 맞서 싸울 수 있도록 군대와 군수물자를 지원해 달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고위마법사를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지. 개인의 힘만으로 이 사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고위마법사 말이오.”

칼리안이 막사 밖 얼음장벽을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저 얼음장벽은 감탄스럽소. 협곡을 틀어막았으니 당분간은 여유가 생기겠지. 하나 임시방편에 불과하지 않겠소? 군대를 대신하여 고위마법사께서 오셨으니,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보는데.”

대영주 칼리안으로서는 당연한 요구였다. 군대가 왔다면 계속해서 몬스터와의 전쟁을 치르겠으나, 제국은 그 요청을 보류했다. 대신 한명의 고위마법사 이안 페이지를 보내왔다. 이는 전면전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모색하란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처음부터 묵묵히 듣기만 했던 이안의 대답.

그가 계속해서 말문을 이어갔다.

“장벽은 아마 열흘 정도 유지될 겁니다.”

장벽은 마나와 함께 서서히 증발한다.

즉 열흘 정도는 안전할 거란 얘기였다.

산맥을 통해 들어오는 움직임만 경계한다면 말이다.

칼리안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그 열흘 내로 다녀오도록 하죠. 대초원에.”

“이안 공께서 직접 말이오?”

“원인부터 찾아보겠습니다. 가능하다면 해결법도.”

그것이 바로 고위마법사의 의무였다.

평범한 인력으로는 감당이 불가능한 재난.

그 재난을 개인의 능력으로 해결하는 해결사.

‘대초원에는 챙겨갈 것도 좀 있으니까.’

비단 고위마법사의 의무뿐만이 아니다. 애당초 피에릭 영지를 선택한 이유에는 많은 요소들이 있었다. 전생에 겪어본 익숙한 영지, 이안도 잘 알지 못하는 흥미로운 상황. 그러한 이유와 마찬가지로 제3의 목적 역시 존재했다.

‘특히 그 스태프.’

대초원에 들른다면 반드시 살펴야 할 요소들.

그중 으뜸으로 꼽아둔 가치는 어떤 ‘스태프’였다.

‘아마 원주민들이 보관하고 있겠지.’

대초원의 원주민들도 이번 몬스터 사태와 무관하지는 않을 터. 상황을 잘만 이용한다면 ‘모그리안 링’, ‘황비의 아뮬렛’, ‘미첼 그린리버의 로브’를 취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주 그럴듯하게 얻을 수 있으리라. 이안 자신의 ‘네 번째 아티펙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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