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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46화 (46/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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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46화

16. 피에릭 영지(1)

그린리버 제국 동쪽의 지배자. 동부 대초원과 경계를 이루는 피에릭 영지. 그곳의 상황은 황실과 상아탑에 올린 보고보다도 훨씬 심각한 상황이었다. 표현 그대로 ‘준 전쟁’이나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대초원으로부터 밀고 들어오는 몬스터들과의 전쟁 말이다.

“괴물들이랑 싸우는데 보급이라니.”

“이게 도대체가 전쟁이야 토벌이야?”

“전쟁이지. 그놈들 치고 빠지는 거 못 봤어?”

“듣자 하니 제국군 쪽은 매복에 당했다더만.”

“세상이 망할 징존가? 괴물이 머리를 다 쓰고.”

대초원과 피에릭 영지의 경계선.

그곳에 속속들이 생겨난 ‘전선’. 이들은 바로 그 전선으로 향하는 보급부대였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결코 몬스터 토벌이 아니다. 명백한 전쟁 그 자체의 흐름이었다. 그 어떤 토벌이 보급을 논하겠는가?

“그 괴물새끼들은 갑자기 왜 기어오는 거지?”

“낸들 아나! 원래는 지들끼리 싸우거나, 야먄족 놈들하고 박터지게 싸우거나, 둘 중 하나 아니었냐고! 왜 갑자기 지랄이야?”

점점 격해지는 병사들의 욕지거리.

상대는 무려 몬스터 연합이었다. 각종 몬스터들이 부족을 이뤄 영지를 침범했다. 덕분에 경계선과 가까운 마을들은 이미 초토화 상태였다. 대규모 병력이 파견되어 다시 밀어내기는 했으나, 완전히 밀어낼 수는 없었다.

결국 경계선의 몇몇 협곡을 전선 삼아 크고 작은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근데 그 고위마법사란 분은 언제 오신답니까?”

“그러게. 요청한 지가 언젠데.”

“지금쯤 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병사들의 물음은 한 사람을 향했다. 보급부대에 배정된 유약한 인상의 마법사. 아카데미를 졸업한 지 고작 1년 차 되는 1클래스의 파견마법사, ‘맥기디’가 그 대상이었다.

“나, 나도 잘은 모르오.”

맥기디가 고위마법사의 행방을 어찌 알겠나?

같은 마법사라 해봤자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데.

아, 스쳐가며 본 경험은 있는 것 같다. 평범한 마법사였다면 동기가 되었을 친구들을 만난다나 뭐라나, 하여튼 그러한 명목으로 아카데미에 몇 번 왔었으니까.

“진짜 고위마법사란 분들은 뭐가 달라도 다른 겁니까? 전선에 계신 그 3클래스인지 하시는 분들. 물론 대단하시긴 한데, 고작 한 명 더 온다고 차이가 클 것 같지도 않아서 말입니다. 아시겠지만, 상대가 워낙 많다 보니까.”

병사와 마법사의 신분 차이는 크다.

설령 1클래스의 마법사라도 그렇다.

한데도 병사들의 언행에 조심성이 없었다.

병사들의 호전적인 분위기에 위축된 탓이 컸다.

“거 듣고 보니 일리가 있구먼. 고위마법사 분들도 숫자로 따지면 4클래슨가, 그거 아니야? 3클래스나 4클래스나. 차라리 제국군이나 더 보내줬으면 좋겠는데.”

그 단순한 비교에 동감하는 병사들.

결국 소심하게 입을 여는 맥기디였다.

“크, 큰 차이가 있소.”

“정말입니까? 정말 차이가 있긴 있어요?”

“고위마법사께서 오신다면 부, 분명 큰 힘이 될 거요.”

“에잉! 믿을 수가 있어야지.”

병사들이 맥기디를 무시하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처음 몬스터와의 실전에 투입되었을 때, 18살의 맥기디는 그만 겁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오줌까지 지렸다. 그 모습을 몇몇 병사들이 봤고, 끝내 놀림감으로 전락해 버린 거다. 지위가 있어 대놓고 무시하진 못했으나,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최전방에 있어야 할 마법사가 보급부대에 배정된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그래도 뭐, 맥기디 님이 계셔서 든든합니다. 마법사가 지켜주는 보급부대라니. 세상에 이런 보급부대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영지 내 높은 이들마저 묵인한 놀림거리.

병사들의 사기가 꺾인다는 명목이었다.

결국 맥기디도 크게 대응할 수 없었다.

“이런 부대에 배정받은 저희들은 정말 행운…….”

아까부터 주도적으로 떠들었던 병사.

그의 목소리는 딱 거기에서 끝이 났다.

“커, 커컥……!”

날아든 화살이 목구멍을 꿰뚫었으니까.

“화살……?”

병사들은 아직 상황파악을 할 수 없었다.

대체 누가, 어디서 쏜 화살이란 말인가?

그것도 저렇게 커다란 화살을?

“크헉!”

가장 신나게 맞장구를 쳤던 병사 또한 먼저 간 병사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인간이 쓰는 화살보다 훨씬 커다란 화살 한발에 옆통수를 내어주고 말았다.

“뭐, 뭐야. 지금 뭐야?”

“저, 저기…… 저기……!”

사방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적의 정체. 그 정체는 바로 트롤, 보급대보다 족히 곱절은 더 많은 수의 트롤부대가 퇴로를 차단하며 나타난 거다.

“트, 트롤?”

“트롤이 어떻게……?”

청녹색 피부에 괴상한 문양을 새긴 트롤.

고블린 같은 하급 몬스터와 격이 달랐다.

인간보다 훨씬 큰 덩치, 값을 하는 근력.

뾰족한 턱과 코, 뒤로 솟아오른 뒷통수.

기이하게 튀어나온 한 쌍 뻐드렁니까지.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트, 트롤이 보급을 노렸다고?”

올해 영지를 공격해온 몬스터가 지능적이란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단순함의 극치였다. 도망칠 때 도망치고 공격할 때 공격하는, 적을 유인하고 그 길에 매복하는, 딱 그 정도 수준의 판단력에 머물렀다는 얘기다. 한데 저 트롤들을 보라. 전선에 있어야 할 놈들이 어째서 영지 한복판에, 그것도 보급부대를 노린단 말인가?

“모, 모여! 방패 앞으로!”

고참 병사가 외치자 다른 병사들이 보급수레로부터 허겁지겁 방패를 꺼냈다. 문제는 병사의 수가 방패 진을 펼칠 정도로 넉넉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크륵! 크르륵!”

트롤 특유의 침 끓는 소리.

놈들은 압도적인 숫자로 보급부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수도 수지만, 트롤의 전투능력은 보급부대의 병사들을 아득히 초월한다. 머릿수도 실력도 부족한 상황, 결코 이길 수 없으리라.

“매, 맥기디 님! 뭐라도 좀 해보십쇼!”

다급해진 병사들이 마법사부터 찾았다.

그나마 뭐라도 기대해볼 수 있는 자.

결국에는 마법사였다.

“저, 저는…….”

“이러다 전부 죽는다고요!”

“마법사라면서! 맥기디 님!”

1클래스 마스터조차 되지 못한 그다.

이런 상황에서 무얼 한단 말인가?

상대는 엄청난 수의 트롤부대다.

한두 마리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 일단 접근부터 늦춰야 해.’

맥기디 또한 살고 싶었다.

나름의 판단을 내렸고, 행동은 빨랐다.

다행이 주변에 풀과 나무가 많이 보였다.

불을 지르기 용이한 지형이다.

“지,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접근부터 막는 거요!”

“차라리 트롤을 맞추시지!”

“그, 그럼 흥분해서 달려들 게 아니오?”

이런 와중에 병사들과 마법사는 의견이 갈렸다. 보급부대가 오합지졸이 되기까지는 그야말로 찰나였다.

‘어, 어떻게, 이제 어떻게 해야……?’

답을 찾고자 하는 마법사 맥기디.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단지 살고자 하는 욕망만 꿈틀거릴 뿐.

‘주, 죽기 싫어. 아직은.’

맥기디 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랬다.

죽기 싫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특히 트롤에게 죽어서는 안 된다.

가장 대표적인 ‘식인’ 몬스터.

인간의 가죽은 물론 뼈조차 발라내 도구로 삼는 놈들이다.

‘그런 놈들한테 죽는다고?’

인간으로서 최악의 치욕.

눈앞이 깜깜해짐을 느꼈다.

도망칠 길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 안 돼. 안 돼!”

어떤 이름 모를 병사의 울부짖음. 그 울부짖음이 모두의 절망을 대변하는 그때였다. 맥기디와 병사들은 물론 트롤부대까지. 공통된 현상을 하나 목격할 수 있었다.

“……뭐지?”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물체.

잡티 하나 없이 하얗고, 차가웠다.

손 위로 떨어지자 금세 녹아버린다.

“눈?”

병사들은 눈의 존재를 몰랐다.

동부에는 눈이 내리지 않으니까.

하나 맥기디는 알고 있었다.

그는 북부 출신이다.

“어떻게?”

그렇기에 더더욱 의아했다.

이곳은 동부 피에릭 영지다.

한데 비가 아니라 눈이 내린다고?

다른 곳도 아닌, 동부의 하늘에서?

“허, 허어……?”

본능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본 맥기디.

그리고 보급대의 동부 토박이 병사들.

모두가 일제히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휘오오오오……

눈보라.

하늘에 눈보라가 치고 있었으니까.

더욱 놀라운 것은 사람이 있다는 거다.

눈보라 사이로 인간의 형체가 나타났다.

푸른색 로브 차림를 입은 남자였다.

“블리자드.”

그 들리지 않는 읖조림과 함께, 중구난방으로 휘몰아치던 눈보라가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마치 커다란 먹이를 쫓는 물고기 떼처럼. 물론 그 먹이는 남자의 손짓이었다. 그 손짓 한번에 눈보라가 조종되고 있었으니까.

“크륵! 크르륵!”

“크아아아악!”

거센 눈보라가 지면을 휩쓸었다. 맥기디나 병사들이 아닌, 오로지 트롤만 골라서 집어삼켰다. 그때부터는 맥기디도, 병사들도 넋을 빼버리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휘오오오오오 - !

급히 퇴각을 시도하는 트롤부대.

그러나 눈보라 앞에 놈들의 뜀박질은 발버둥조차 되지 못했다. 눈보라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이미 빳빳하게 굳어 동사해버린 트롤의 시체만 널브러져 있었으니까.

“뭐, 뭐, 뭐가 어떻게…….”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트롤들은 전멸했고, 자신들은 살았다.

한데도 도통 실감이 나지를 않았다.

“마, 마법?”

고민 끝에 한 가지를 간신히 떠올린 병사들.

그래. 이건 마법이 분명하다. 마법이 아니고서야 이런 초월적인 힘이 가능할 리 없다. 하면 누가? 옆에 저 맥기디란 마법사가?

‘그럴 리가.’

그건 말도 안 된다. 지금 이 기상천외한 마법은 파견 나온 3클래스 마법사들조차 보여주지 못했던 규모다.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가히 자연재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 저 허공에 뜬 남자. 푸른 로브의 남자야말로 마법사란 건데.

‘3클래스 마법사보다 강한 마법사?’

모두의 생각이 거기까지 닿았을 때,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법사 역시 지면으로 내려왔다.

“누, 누구십니까?”

긴장으로 범벅된 병사들의 물음.

그 물음에 후드를 걷는 마법사였다.

“창 내리세요. 아군입니다.”

생김새도, 목소리도 소년과 청년의 경계에 끼인 남자. 덕분에 맥기디는 눈치챌 수 있었다. 자기 또래의 마법사 중 이 정도로 강력한 마법사, 누가 있겠는가?

“이, 이안…… 페이지 님?”

병사들도 이안의 이름을 알았다.

소문만큼은 익히 들었으니까.

이야기책에서나 나올 법한 천재.

역대 최연소의 고위마법사.

“이안 님이…… 맞으신가요?”

아주 조심스러운 맥기디의 물음에.

“저를 아시네요.”

가볍게 대답하는 이안이었다.

물론 그 한마디로 충분했지만.

“뵈,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크게 놀란 맥기디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여준 이안. 그가 품으로부터 보패를 꺼내들었다. 어느 영지든 병사와 영지민의 한시적 통솔권이 주어지는 ‘고위마법사의 보패’였다.

“파견을 명받은 상아탑의 고위마법사 이안 페이지입니다. 피에릭 대영주님께서 전선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곳까지 안내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뭇 정중하게 느껴지는 이안의 요청.

보패를 보였으니 명령이나 다름없다.

오히려 보급부대가 보호를 받는 쪽에 가깝다.

“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병사들이 너도 나도 눈치만 살피는 그때였다. 꽤나 고참으로 보이는 중년의 병사가 마음을 먹고 나섰다. 그는 고위마법사의 보패가 가진 힘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비록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나, 듣기로는 똑똑히 들어봤으니까.

“그, 그리고 모두를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또한 고위마법사가 가진 힘을 알고 있었다.

전시라고, 웃전이 묵인했다고 1클래스 마법사를 조롱할 때와는 경우가 다르다. 지금 병사들이 웃전이라 믿는 자들 꼭대기에 고위마법사가 군림한다. 괜히 헛소리를 지껄였다간 목이 날아갈 터. 지금까진 관망했으나, 슬슬 나서야 할 차례였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넙죽 엎드려 감사부터 표하는 고참 병사. 그 모습에 다른 병사들도 덩달아 엎드렸다. 본능적으로 직감한 거다. 고위마법사의 정중한 말투와 얼굴,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마법사님!”

“이놈들을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예!”

“덕분에 가족들 얼굴을 다시 볼 수 있겠습니다요!”

그렇게 한참동안 이어진 감사의 세례.

온갖 표현을 다 끌어다쓰는 병사들이었다.

‘대, 대단하다.’

한편 얼이 빠진 채로 바라보는 맥기디.

자신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대접이다.

‘저게 진짜…… 마법사구나.’

생전처음 봤다. 고위마법사의 위용을.

그리고 통감했다. 진정한 마법사의 힘을.

놀라움을 넘어서 몽롱해지는 기분이었다.

“마법사님.”

“…….”

“마법사님?”

“아! 예!”

이안의 부름에 정신이 쏙 돌아온 맥기디.

“파견마법사 되시죠?”

“맞습니다! 뵙게 되서 영광…….”

“그 인사는 아까도 하셨습니다.”

“아…….”

피식 웃은 이안이 말문을 이어갔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맥기디라고 합니다! 파견 나온 지는 이제 1년…….”

“저보다 선배시네요.”

“서, 선배라니…….”

“가시죠. 언제까지 서 있으시려고.”

이미 병사들은 떠날 채비를 끝냈다.

심지어 멀찍이 걸어가고 있었다.

맥기디가 생각에 잠긴 사이에 말이다.

“죄, 죄송합니다!”

후다닥 달려가 대열에 합류하는 맥기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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