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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45화 (4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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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45화

    15. 5년 후(2)

    “이안 님!”

    상아탑의 1층 입문의 전당.

    17살의 이안이 그곳에 도착했다.

    언제나 젊은 마법사들의 혈기로 가득한 그곳.

    지난 5년간 새로운 얼굴도 많이 생겼다.

    “이제 오셨어요? 마지막 교습이시죠?”

    “좋은 시절 다 끝나셨네요. 이안 님도.”

    “어리다고 일 막 다 시키는 거 아닙니까?”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분위기였다.

    특히 이안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달라졌다.

    더 이상 부러워하거나, 질투의 눈빛을 보내지 않았다.

    대부분이 이안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그저 경외의 대상이었던 기존 고위마법사들과는 달리, 이안은 전혀 권위적이지 않았으니까.

    “하라면 해야죠. 제가 막낸데.”

    “에이, 상아탑에 막내가 어디 있습니까? 마법 잘 부리는 쪽이 웃전이지. 안 그래요? 나이로 따지면 당장 저도 이안 님보다 많은데.”

    이제 막 정식마법사로 인정받은 라일라가 겁도 없이 떠들어댔다. 다른 고위마법사들이 듣기라도 하는 날엔 눈치깨나 보일 텐데 말이다.

    “하하. 명심하도록 할게요.”

    젊은 마법사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한다.

    이안의 그 계획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이안을 우러러봤다. 젊은 마법사들뿐만이 아니다. 나이가 꽤 있는 마법사들 중에도 이안을 지지하는 부류가 우후죽순 늘어났다.

    상아탑의 새로운 핵, 이안은 그런 존재로 거듭났다.

    “올라가보겠습니다.”

    황금빛 원판에 올라탄 이안.

    이제는 그 모습이 꽤나 어울렸다.

    아니, 상아탑의 그 누구보다도 어울렸다.

    “여러분도 그만 놀고 열심히 하세요. 이거 타고 싶으면.”

    황금빛 원판을 가리키는 이안.

    그의 장난 어린 한마디에.

    “우우우!”

    1층의 젊은 마법사 모두가 야유를 보냈다.

    장난을 거는 이안이나, 반응하는 마법사들이나.

    기존의 상아탑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리라.

    “오, 왔는가?”

    이안을 태운 승강기가 탑주의 방에 도착했다.

    마지막 개인교습, 그 책임자는 탑주 허버트였다.

    5년이 지났음에도 크게 변하지 않은 얼굴.

    “감회가 새로워. 처음 북부에 대단한 소년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때가 고작 엊그제 같거늘, 벌써 청년이 다 되어버렸구먼 그래. 허허.”

    겉과 속이 다른 탑주지만 이번만큼은 진심이었다.

    그 또한 세월의 무심함 속에 늙어가는 처지.

    훌쩍 자라 버린 이안을 볼 때마다 실감이 났다.

    그렇기에 더더욱 조급해졌다.

    “그만큼 나도 늙었다는 뜻이겠지.”

    “아직 수십 년은 거뜬하실 겁니다.”

    간단한 인사를 끝낸 탑주가 서류부터 살폈다.

    지금껏 이안이 받아온 개인교습에 관한 자료들.

    그 진도와 성취도, 고위마법사들의 평가서였다.

    “훌륭해. 어딜 봐도 칭찬뿐이야.”

    상아탑은 이안을 편협한 방식으로 가르쳤다.

    특히 상아탑의 역사나 의무, 소양 등은 세뇌나 다를 바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상아탑에 대한 충성, 상아탑을 떠받들어야 하는 이유로 점철되어 있었는데, 이안은 별 다른 의심 없이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냈다.

    황태자와 어울린다는 점만 뺀다면, 나무랄 데 없는 상아탑의 일원으로 거듭난 거다.

    “제국과 상아탑의 홍복이 아닐 수 없네. 젊은 친구들이 자네를 그토록 따를 만도 해. 마법사가 걸어야 할 모범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럼에도 탑주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상아탑 내 새로운 구심점이 생겨났다.

    이안을 중심으로 젊은 마법사들이 뭉쳤다.

    자의든 타의든, 그 흐름이 편할 리가 없으리라.

    상아탑의 가장 높은 자, 가장 오래된 구심점으로서.

    “과찬이십니다.”

    “과찬이라, 글쎄. 곧 알게 되겠지.”

    의미심장한 중얼거림과 함께 본론으로 넘어가는 탑주였다.

    “알다시피 오늘이 마지막일세. 아카데미의 학도였다면 졸업식을 치르고, 조만간 타 영지로 파견을 나갔을 터이나, 자네는 경우가 좀 달라. 마지막이라 해봤자 이 노인네와 담소 몇 마디 나누는 게 전부겠지. 혹 아쉬운가?”

    “그럴 리가요. 오히려 영광입니다.”

    “빈말이라도 고맙구먼.”

    말을 멈춘 탑주가 웬 ‘보패’를 건넸다.

    백색의 상아에 고대 제국어가 새겨진 보패였다.

    “의무를 짊어지고 진정한 마법사가 된 것을 축하하네.”

    이는 상아탑의 고위마법사임을 증명하는 보패인데, 교육생이었던 지금까지는 받을 수도, 받을 필요도 없었다. ‘고위마법사의 의무’를 시행할 때나 필요한 물건이니까.

    “어느 영지든, 병사와 영지민을 자네 뜻대로 동원할 수 있는 보패일세. 아마 앞으로 사용할 일이 많을 게야.”

    고위마법사에게는 가장 특별한 의무가 있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최고급 해결사’.

    평범한 인력이나 하급 마법사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자연재해, 혹은 몬스터의 횡포를 해결 및 수습하는 것이 주된 의무였다. 그런 까닭으로 단기적인 파견을 나갈 때가 잦으며, 보패의 권한은 여러모로 유용했다.

    “고위마법사를 요청하는 곳이 있습니까?”

    “있다 뿐이겠는가?”

    기다렸다는 듯 이어지는 탑주의 대답.

    이안 역시 피해갈 생각은 없었다.

    애당초 피할 수 없는 의무이기도 하다.

    고위마법사로서의 혜택을 누리는 한, 영원히.

    “일손이 많이 줄었어. 헬레느마저 잠적해 버렸으니 오죽하겠는가? 부담을 주고자 하는 말은 아니네만, 자네의 힘이 절실하긴 해.”

    어느 정도 책임이 있으니 감당하라는 언질이다.

    헬레느의 잠적, 그 주된 원인은 이안이었으니까.

    “제가 할 만한 게 있을까요?”

    “허허. 자네는 상아탑 최고의 전력이나 다를 바 없는 마법사일세. 하고자 한다면 무언들 못하겠나? 스스로 너무 과소평가하는군.”

    그리 말하며 마나를 방출시키는 탑주였다. 5년 전 이안의 신상정보가 허공에 새겨졌던 것처럼, 각 영지로부터 올라온 요청의 간략한 내용들이 사방을 수놓았다.

    “처음이니 선택권을 주도록 하지.”

    총 3곳의 영지로부터 고위마법사 파견이 요청되었다.

    제국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를 보유한 ‘로드미어 영지’.

    철 생산량이 대륙 최고에 해당하는 ‘벤슨 영지.’

    그중 특히나 눈길이 가는 곳은 ‘피에릭 영지’였다.

    ‘저번 생에는 내가 파견되었던 곳.’

    마법사라면 누구나 짊어지는 5년의 장기 파견.

    당시 이안은 ‘피에릭 영지’로 파견을 나갔었다.

    ‘파견되기 직전에 큰일이 있었다고 하더니만.’

    기억을 꼽씹어 보니 확실한 것 같았다.

    그때 들었던 ‘큰일’이 바로 저 요청인 듯하다.

    ‘동부 대초원과 붙어 있는 영지니까.’

    원주민이 반, 몬스터가 반이라는 ‘동부 대초원’.

    바로 그런 곳과의 경계를 이루는 험한 영지다.

    언제나 실전이기에 보병 전투력 제국 내 1위.

    비옥한 토지 덕에 곡식 수확량도 1위에 빛나는 곳.

    “피에릭 영지, 관심이 가는군요.”

    “가장 강력하게 요청을 보내온 영질세. 3클래스의 마법사 둘과 제국군까지 파견시켰는데도 역부족이라는군.”

    뜻밖의 얘기였다. 제국 내 전투력 평가 1위에 빛나는 병사들과 기존의 파견마법사, 거기다 제국군에 3클래스 마법사 둘을 동원하고도 처리하지 못할 문제라니?

    “대초원에서 흘러들어온 몬스터 떼가 기승을 부리는 모양이야.”

    동부 대초원에서 흘러들어오는 몬스터.

    피에릭 영지로서는 아주 흔한 일이다.

    한데 이토록 강력한 요청을 보내왔다?

    그 정도까진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생각할수록 흥미가 당기는 이안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 적혀 있으니, 읽어보고 오늘 중으로 대답을 줄 수 있겠는가? 거절한다면 따로 적임자를 찾아야…….”

    “아뇨. 제가 가겠습니다.”

    이안은 벌써 마음을 굳혀 버렸다.

    어차피 할 일이라면, 익숙한 곳이 좋겠지.

    “피에릭 영지로.”

    고위마법사로서의 첫 의무.

    이안의 선택은 피에릭 영지였다.

    * * *

    첫 의무를 선택한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수행기사나 보조마법사는 이안이 거부했다.

    오히려 걸리적거리지 않겠는가?

    가벼운 봇짐 하나면 충분하다.

    “대장.”

    15살이 된 더글라스가 저택 앞으로 나왔다.

    녀석은 아직까지 이안을 대장이라 불렀다.

    한번 생겨버린 입버릇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나중에 할아버지 되고도 대장이라 부를 생각이냐?”

    “그럴 리가요. 아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

    “아무튼 이거, 가져가세요.”

    녀석이 건넨 것은 여러 약병이 담긴 자루였다.

    마법으로 마감되어 깨지지 않는 특제 약병들이었다.

    “아버지가 만드시는 하프 엘릭서 있잖아요? 제 방식대로 만들어봤어요. 아마도…….”

    말꼬리를 흐린 더글라스가 제 아비의 눈치를 본다.

    그러고는 이안의 귓가에 재빨리 속삭였다.

    “그거보다 훨씬 좋을 거예요.”

    작은 목소리였으나 자신감만큼은 흘러넘쳤다.

    그 정도로 재능이 일취월장했으니까.

    황립 연금술 아카데미의 재학기간은 8년이다.

    졸업까지는 아직 3년이 남은 상황, 한데도 벌써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황실 연금술사의 자리를 보장받은 상태였다. 고작 15살의 더글라스가 말이다.

    ‘재능이 어디가지는 않겠지.’

    이안의 판단 그대로였다.

    재능은 도망치지 않는다.

    ‘절박함이 없는 게 문제일 거라 생각했는데.’

    저번 생과 다른 점이라면 절박함이 없다는 것.

    한데도 가진 바 재능을 마음껏 만개시킨 더글라스였다.

    “확실해? 효과 더 좋은 거?”

    “그럼요. 제가 누굽니까? 대장의 1호 부하! 장차 제국 최고의 연금술사! 더글라스 아니겠습니까! 마법하면 이안 페이지! 연금술하면 더글라스!”

    “얼씨구.”

    “헤헤.”

    오늘은 이안이 피에릭 영지로 떠나는 날이다.

    시간을 되돌린 이래 처음이라는 얘기다.

    어머니와 멀리 떨어지는 경우가.

    ‘통신구가 닿지 않을 거리는 처음인가.’

    지난 5년, 이안은 어머니를 향한 과잉보호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예전에 비해 그리 걱정되지는 않았다. 첩자파동 이후 도시의 치안은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다. 더군다나 황실의 총애까지 받는 몸 아니겠는가? 당장 저택 앞에 깔린 저 근위병의 숫자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안.”

    마침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한 얼굴, 여전한 미소.

    그녀가 요깃거리를 이안에게 안겨줬다.

    “가면서 먹으렴. 많이 챙겼으니까.”

    “어머니, 마법사들 어디 가서 안 굶어요. 발길 닿는 곳마다 귀빈대접 받을 텐데. 도적들도 저한테는 인사할 겁니다.”

    “그, 그래도…….”

    피식 웃은 이안이 음식 통을 받았다.

    묵직한 게 하루 이틀 먹을 양이 아닌 모양이다.

    “일단 첫 칸이 하루 내로 먹어야 할 음식이고, 그다음부터는 오래 둬도 되는 음식이란다. 육포나 말린 과일…….”

    이안이 마법사가 된 지도 5년이 흘렀다.

    겉모습조차 청년의 모습을 띄기 시작했거늘.

    그래봐야 베네사에게는 아들일 뿐이었다.

    “잘 먹을 게요.”

    생각했던 것보다 짐이 많아졌다.

    하프 엘릭서에 어머니의 도시락까지.

    아무래도 짐꾼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흐음.”

    잠시 고민했던 이안이 허공에 마법진을 그렸다.

    이럴 때는 다 해결할 방법이 있다.

    오직 최상위 마법사만의 해결법이.

    “소환술.”

    5클래스 마스터의 소환술은 차원이 다르다.

    5년 전처럼 새끼정령 따위가 나올 리 만무하다.

    “말의 정령, 유니콘.”

    주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환된 말 한 마리.

    은빛 눈, 순백의 가죽, 순백의 갈기, 순백의 뿔.

    보통의 말보다 훨씬 큰 덩치와 강인한 근육.

    “유니콘……?”

    “우, 우와……!”

    “진짜 존재하는 거였어?”

    저택 일대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베네사도, 레디오도, 더글라스도.

    모든 하녀와 근위병들의 이목까지.

    그럴 수밖에 없다. 당연한 반응이다.

    다른 것도 아닌 무려 ‘유니콘’이 나타났으니까.

    ‘짐꾼으로는 유니콘이 제격이지.’

    사람들이 놀라든 말든, 이안의 생각은 간단했다.

    그에게 유니콘이란 짐꾼이나 마찬가지일 뿐.

    가끔 탈것의 용도로도 요긴하게 쓰이리라.

    “다녀올게요.”

    유니콘의 등에 모든 짐을 채운 이안.

    그가 모두를 향해 인사했다. 빠르면 몇 달 내로 다녀올 길이었으나, 5년 만에 떨어지는 거라 그런지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금방 오니까 너무 걱정들 말고요.”

    모두의 배웅을 뒤로한 채.

    이안이 점점 더 멀어져갔다.

    자꾸만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걱정은 오히려 이안의 몫이었다.

    어쩔 수 없는 불안감 때문일까?

    ‘믿자.’

    그래. 믿어야 한다.

    저택을 지켜주는 근위병들도.

    수준이 높아진 도시의 치안도.

    자주 들락거릴 황태자와 올리버도.

    이안을 따르기 시작한 젊은 마법사들도.

    또한.

    ‘방비를 해뒀으니까.’

    저택 전반적으로 설치해 둔 장치. 오직 베네사와 레디오, 더글라스만 발동시킬 수 있는 ‘마나 트랩’이 존재한다. 어지간한 문제는 능히 처리할 수 있으리라.

    “가볼까.”

    아주 호전적인 동부 영지 피에릭.

    이안의 발걸음이 그곳으로 향했다.

    5년 만에 맛보는 황성 밖 세상의 공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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