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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40화 (4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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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40화

13. 사교계(2)

“부인께서는 어떻게 날이 갈수록 피부가…….”

“이번에 저희 차남이 상아탑에…….”

“어머, 그런 축하할 일이. 저희 장남은…….”

황태자가 입장해 정식으로 사교계의 개회사를 읊기 전까지는 비교적 자유로운 인사로 시간이 보내졌다. 모두가 서로간의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오직 베네사만이 누구와도 섞이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굴렸다.

“으음…….”

긴장 한 듯 두리번거리는 베네사.

술잔의 술로 목을 한번 축인다.

물론 그 조차도 익숙하지 못하다.

그녀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써…….’

술잔은 그저 장식품일 뿐.

이런 자리는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북부에서도 사교계를 몇 번 본 적이 있다.

하나 북부는 아주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지금처럼 작게 말하지도, 끼리끼리 모이지도 않았다.

“저쪽 저 부인께서는?”

베네사를 향한 누군가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시작으로 주변의 많은 귀족 여인들의 시선이 베네사에게 쏠렸다.

“누구시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

조심스럽게 시작된 수군거림은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녀들 또한 정치의 한복판에 서 있다. 반드시 익혀둬야 할 얼굴들, 예컨대 위세가 비슷하거나, 혹은 더 높은 가문의 인물들은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는 소리다. 특히나 귀족가의 여인들은 그런 성향이 짙다. 때에 따라 강요되기도 하니까.

“…….”

일순간 잦아지는 수군거림.

드디어 끝이 난 걸까?

공교롭게도 아니었다.

‘계산’이 끝났을 뿐.

“저 정도 얼굴이라면…….”

“첩실인가?”

귀족가문의 여인들이 전혀 모르는 얼굴.

한데도 제법 아름다운 외모, 적지 않은 나이.

무엇보다 저 자신감 없는, 잔뜩 위축된 표정.

여인들의 상식으로 둘 중 하나였다.

별 볼일 없는 가문의 여인이거나.

혹은 그런 가문의 첩실이거나.

“첩실이 맞는 것 같네요. 엉덩이도 크고.”

“엉덩이가 크니 애는…….”

“아직 후계자가 없는 가문인가 보지?”

“풉, 부인께서도 참.”

작지만 또박또박 들리는 목소리.

한마디 한마디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다른 누구도 아닌, 베네사의 귀에.

‘내가 왜 여기 있는 걸까……?’

잔을 쥔 베네사의 손이 덜덜 떨렸다.

당장에라도 사교장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나 참아야 한다. 조금만 더 꾹 참자.

이안에게 누를 끼칠 수도 있으니까.

‘귀족이란 것들이.’

그 수군거림은 이안에게도 전해졌다.

토씨 하나 빠지지 않고 정확하게.

마나로 강화된 청각의 힘이었다.

모두 귀족가의 안주인, 혹은 안주인이 될 계집이다.

설마 저토록 천박하게 수군거릴 줄이야.

‘수준을 믿은 내 잘못이지.’

아무래도 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

큰 보폭으로 접근하기 시작한 이안.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정말 실망스럽네요.”

이안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목소리.

황실의 공주, ‘하이리 그린리버’였다.

“고, 공주마마?”

갑작스런 공주의 등장에 당황한 여인들.

황태자와 함께 입장해야 할 공주가 어째서?

“세르시오 부인.”

“하, 하명하시옵소서. 공주마마.”

“정말 엉덩이가 크면 아이를 잘 낳습니까?”

엉덩이를 운운했던 세르시오 가문의 부인.

그 수군거림을 모두 들은 모양이다.

“그, 그것이…….”

“제게도 똑같이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어, 어찌 그런 말씀을…….”

“첩실로 들어가 후계를 보기에 충분한 조건이 아닌지요? 여러분들께서 하신 말씀대로라면, 저보다 적당할 수가 없겠군요.”

공주는커녕 여인의 그것을 넘어선 언행.

더군다나 그녀는 아직 소녀의 경계에 선 나이다.

아무리 성숙하더라도 쉽지 않은 발언이다.

“사교계입니다. 황태자 전하께서 손수 초대한 손님이라는 말이지요. 한데, 제국 가장 고귀한 핏줄의 안주인 되는 분들이 어찌 시정잡배만도 못한 언사로 황태자 전하의 손님에게 무례를 저지른단 말입니까?”

그럼에도 일말의 거침이 없었다. 여인들은 물론 멀찍이 떨어진 남정네들의 이목까지 집중될 정도였으니까.

“혹시 그런 건가요? 폐하께서 주최하신 사교계가 아니니까, 황태자 전하의 손님쯤이야 막 대해도 된다?”

“마, 마마! 그런 것이 아니옵고……!”

거침없는 발언에 사색이 되어버린 여인들.

한숨을 폭 쉰 공주가 베네사에게 다가갔다.

베네사의 안색은 여전히 어두웠다.

“부인. 괜찮으세요?”

“저, 저는…….”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저는 첩실이…….”

“네?”

“첩실 같은 게 아니에요.”

베네사가 떨리는 손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얼굴을 들어 이안부터 찾았다.

두 모자의 눈이 허공에 마주쳤다.

무언가 동의를 구하는 베네사의 눈.

이안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저는 단지 아들…… 아들 덕분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이런 과분한 자리, 저로서는 많이 부담스럽지만…….”

그 말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공주.

다른 부인들은 아직 긴가민가한 얼굴이었다.

가문이면 가문이지, 아들은 또 무슨 소리일까?

“원래는 아들만 초대받아야 하는 자리인데, 저까지 초대를 받게 되어서…… 아, 제 아들의 이름은 이안, 이안 페이지라고 합니다. 어, 얼마 전부터 상아탑의 마법사가 되었답니다.”

상아탑의 마법사, 이안 페이지.

그 설명과 이름에 자연히 따라오는 네 가지 단어들.

‘상아탑’, ‘최연소’, ‘고위’, ‘4클래스’.

모를 리가 있겠는가. 아니, 모를 수가 없다.

여인들의 안색이 점차 딱딱하게 굳어갔다.

‘마, 마법사가 왜?’

‘사교계에 마법사를 초대했다고?’

고위마법사와 그 어미가 사교계에 초대되었다.

제국의 역사를 통틀어 찾아보기 힘든 사태.

하나 지금 당장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무려 고위마법사의 어미에게 무례를 저질렀다.

그 돌이킬 수 없는 사실부터가 중요했다.

“황태자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묵직한 정적이 내리깔린 그때였다.

사람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드는 외침.

장내 모두가 황급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몇몇 부인들에게는 오히려 반가운 등장이었다.

“아아, 안녕들 하시오. 안녕들.”

경박하게 손을 흔들며 입장하는 황태자.

그가 상석으로 보이는 단상 위에 올라갔다.

평소보다도 한껏 정성들여 꾸민 자태.

입만 열지 않는다면 조각이 따로 없었다.

“크흠흠! 다들 아시겠지만, 내 이번에는 아바마마를 대신하여 황실의 사교계를 주최하게 되었소. 보자, 개회사라고 준비해 오기는 했는데, 이 개회사를 읊기 전에 먼저 하고 싶은 말이…….”

그리 말꼬리를 흘리며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아! 마침 저기 있군!”

황태자가 찾아낸 것은 소년, 이안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심드렁했던 황태자의 표정이 크게 밝아지는 순간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여러분께 소개를 해드리겠소. 특별히 초대한 손님, 최연소에 빛나는 4클래스 고위마법사, 모그리안 영지에서 처음 만난 그날부터, 나의 단 하나뿐인 의형제.”

황태자는 지금껏 거절을 해왔었다.

사교계를 주최하라는 황제의 권유를.

한데 올해만큼은 태도가 달랐다.

자신이 먼저 주최하겠노라 청을 올렸다.

그 까닭은 간단했다. 바로 이거다.

“이안 페이지!”

* * *

“부인, 내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몇 번을 얘기했소? 가문의 앞날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지! 정신이 나간 게요? 정신이?”

세르지오 부인을 포함한 몇몇 귀족가의 여인들.

모두 각각의 가주에게 불려가 혼쭐이 나고 말았다.

“최, 최선을 다해 수습…….”

“최선? 아니, 어떻게든! 반드시!”

꼬이다 못해 불이 떨어진 상황.

여인들은 너도 나도 몸을 낮췄다.

이안의 어머니, 베네사 페이지를 향하여.

귀족인지 하녀인지 분간마저 안 될 정도로.

옆에 있는 공주보다 더 황족 같을 지경이다.

‘나보다 낫군.’

고위마법사라는 신분도 한몫했지만, 황태자의 적절한 등장과 발언이 그야말로 결정적이었다. 지금까지 그저 시큰둥하기만 했던 이안인데, 오늘따라 꽤 마음에 들었다.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쪽보다 오히려.’

시간을 되돌린 이후 줄곧 그래왔다.

이미 한번 어머니를 잃어봤기 때문일까?

자꾸만 감정부터 앞섰다. 어머니께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닐 텐데,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생각이 많은 것도 흠인가.’

반면 황태자는 말 한마디로 상황을 끝내 버렸다.

저것도 능력이라면 능력 아니겠는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다만.

“하하! 내 너의 충심어린 편지는 잘 받았느니라.”

뭐가 저리도 좋은지 웃음을 터뜨리는 황태자.

이안 역시 오늘만큼을 귀를 기울여주기로 했다.

저 입이 쏟아낼 시답잖은 이야기들, 언제 충신이 되었고, 또 언제 의형제가 된 건지는 모르겠다만, 못 들어줄 것도 없으니까.

“요즘 내가 책을 좀 읽어. 거기 보니 그런 말이 있더구나. 무릇 군왕 된 자라면 신하의 말에 항상 귀를 열어라!”

일국의 태자라면 8살 정도에 완독했어야 하는 책.

아무래도 지금에 와서야 읽어본 모양이다.

“네가 보낸 편지를 가슴 깊이 새기며 읽었지. 한데 책에 보니 또 이런 말도 있더군? 신하의 말을 가슴 깊이 새기나, 들을 것은 듣고 흘릴 것은 흘려라. 그런 안목을 길러라.”

잔뜩 의기양양해진 황태자가 말문을 이어갔다.

“해서 그랬다. 네 말대로 가벼운 장난은 참았다만, 도저히 너를 초대하지 않을 수가 없더구나. 사교계를 주최한 이유를 어찌 저버리겠느냐? 그런고로 딱 공평하게 반반! 반은 듣고 반은 흘린 게지. 군왕의 덕목에 따라서 말이야.”

들을 것은 듣고 흘릴 것을 흘리라는 말.

그 말이 반반씩 나누라는 뜻은 아닐 텐데.

오늘만큼은 그렇다고 쳐주자.

“훌륭하십니다.”

“뭐 훌륭할 정도까지야. 앞으로 종종 그…… 뭐더라? 그래! 충언! 충언을 올리도록 해라. 어린아이인 줄로만 알았더니,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그토록 깊었을 줄이야.”

황태자의 말에 이안은 고개만 끄덕였다.

미소 띤 얼굴도 잊지 않았다.

“아 참, 그런데 말이다. 아까 처음 들어왔을 때, 분위기가 좀 미묘하던데. 혹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원래는 하이리…… 아니, 공주도 나와 함께 입장하기로 되어 있었거든. 한데 그 녀석도 먼저 와 있고.”

그리 말하며 공주와 베네사를 바라보는 황태자였다.

평생 눈치만 보며 살아왔기 때문일까.

분위기를 감지하는 눈만큼은 탁월했다.

“별 일 아니옵니다.”

“뭔가 있긴 있었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오해가 있었습니다. 귀족 분들께 저와 어머니는 낯선 얼굴이 아니겠습니까.”

“하! 대충 알겠다. 귀족 놈들 하는 짓거리가 그렇지.”

묘하게 일그러지는 황태자의 눈매.

역시 이상한 부분에서 눈치가 빠르다.

“내 가만히 있을 수가 없군.”

“전하.”

“걱정마라. 귀족의 충성을 자아내라는 네 간곡한 충언, 잊지 않았으니까. 나도 한다면 하는 사람이니라.”

호언장담을 하며 여인들이 모인 구역.

정확히는 베네사에게 다가가는 황태자였다.

“페이지 부인, 내 초대를 해놓고 인사가 늦었소.”

사뭇 진지한 태도로 인사를 건네는 황태자.

베네사 역시 당황한 듯 예를 갖췄다.

“화, 황태자 전하.”

“하나뿐인 의형제의 모친 되시는 분을 너무 홀대한 것 같군. 가만, 따지고 보면 이 족보가…… 의어머니로 모셔야 하는 건가?”

아주 장난스럽게 건넨 황태자의 한마디.

존재하지도 않는 호칭이다.

하나 맥락만큼은 확실하게 전해졌다.

“무엇이든 말씀만 하시오. 내 뭔들 못 들어드릴까?”

“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옆에서 알랑방귀를 뀌어대던 귀족가의 여인들.

특히 세르시오 부인을 포함한 몇몇 요주의 여인들.

그녀들의 표정이 실로 가관이었다

공주에 이어 고위마법사, 이제는 황태자다.

그것도 저리 살갑게 부르며 다가온다.

‘의어머니’라는 호칭까지 운운하며 말이다.

잘못 건드렸다. 건드려도 한참 잘못 건드렸다.

‘확실히 나보다 한 수 위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안.

끝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귀족의 정신머리를 쏙 빼놓는 능력.

그것 하나만큼은 가히 천하제일이리라.

“흐음.”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주변을 둘러보는 이안이었다.

수많은 가주와 후계자들이 이안을 힐끔거린다.

황태자가 없는 이참에 접근해보려는 심산일 터.

‘슬슬 귀찮아지기 전에…….’

이안이 슬쩍 자리를 피했다.

사교장과 연결된 테라스 쪽으로 나가 버렸다.

이곳만큼은 아무도 없을 줄 알았건만.

웬 커다란 신장의 남자가 보였다.

평범한 귀족이라기엔 믿기 힘든 건장함.

“올리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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