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35화
11. 지켜야 하는 사람들(2)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바로 그때 이안을 부르는 목소리.
이번에는 소년이 아닌 중년의 남자였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관리자쯤 되어 보인다.
‘마법부터 보여주고 공방주만 만날까?’
잠시 고민했던 이안이 생각을 바꿨다.
큰 거래다.
공방 내부적으로는 이야기가 돌 수밖에 없다.
한두 푼짜리 물건이 팔려나간 게 아니니까.
이럴 땐 오히려 강렬한 인상을 심어두는 편이 좋다.
마법사란 지위는 좀 더 결정적인 순간에 터뜨리는 거다.
그래야 차후 입막음에도 무게감이 더해지리라.
“물건을 좀 사려고 왔습니다만.”
“어떤 물건을 찾으시는지요?”
“통신구부터 볼까합니다.”
“아, 이쪽으로 오시죠.”
관리자는 이안을 형형색색의 하급 통신구가 진열된 곳으로 안내해 줬다. 가장 흔히 사용되는 통신구였는데, 주로 방과 방 사이나 층과 층 사이의 소통을 돕는 물건이었다.
“다른 물건은 없습니까?”
“이 이상 등급은 가격대가 조금…….”
“통신역참에 설치되는 물건이 있을 텐데요.”
“……?”
순간 잘못 들은 건가 싶었던 관리자.
주변의 마도공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쏘아대는 눈총은 정말이지 한결같았다.
‘저 꼬마 놈이 뭔 미친 소리를 하는 거야?’
딱 그러한 눈빛들.
비단 눈빛에서 끝나지 않았다.
“푸흡! 별게 다 와서 웃겨주는구먼.”
“나리께서 지금 뭘 사시겠다고?”
“반스, 뭐하고 섰냐? 가서 대부호님 모셔야지.”
비웃음이 섞인 목소리들. 조금 과한 감이 있긴 하나 반응 자체가 틀린 것도 아니었다. 다른 이유는 없다. 저 반응이 당연할 만큼, 딱 그 정도로 비싸다.
“그만하시게들! 무례하지 않나?”
그나마 예의를 지키는 관리자였다. 물론 눈앞에 소년이 고성능 통신구를 구매할 거라고 믿지는 않았다. 단지 차림새로 봤을 때, 나름 가진 자의 자식일 거라 판단했을 뿐.
“죄송하지만, 손님께서 원하시는 통신구는 판매가 어려운 물건입니다.”
“판매 자체가 금지된 건가요?”
“그런 건 아닙니다만. 일단 가격부터 지불하실 만한 수준이 아니고요. 이 정도 물건은 상아탑의 허가도 받아야…….”
“그럼 사겠습니다.”
자신 있게 말하며 자루를 내려놓는 이안.
아무래도 저 자루에 돈이 든 모양인데.
‘거 참.’
제법 묵직한 자루였지만 그게 전부다. 저 자루가 금화로 가득하다 해도 고성능 통신구는 구입이 불가능하다. 산산조각난 통신구의 조각을 사는 게 아닌 이상.
‘말이 안 통하네.’
관리자도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못 산다면 못 사는 거지 말귀를 못 알아듣나?
말투로 보아하니 귀족도 아니다.
적당히 하고 쫓아내야겠다 싶었다.
“휴우, 손님? 제 말은 그게 아니라…….”
한숨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는 관리자.
그러든 말든 이안은 내려놓은 자루의 주둥이를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그 자루에 금화가 얼마나 들었든 간에.”
“금화 아닙니다.”
“고성능 통신구는…… 예?”
그러고는 자루 속의 내용물을 공방 바닥에 펼쳐보였다. 결코 금화 따위가 아니었다. 아마 같은 무게로 치자면 금화보다 족히 수만 배는 더 비쌀 보석들.
“어…… 어?”
마도공학자들은 물론 관리자조차 할 말을 잃었다.
아까는 잘못 들었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헛것을 보는 건가 싶었다. 대체 발아래 보이는 저것들이 다 무엇이란 말인가?
“보석이죠.”
“무슨…….”
“최고급입니다.”
“초, 최고…….”
그래, 딱 봐도 알겠다. 최고급 보석인거.
괜히 최고급이라 분류되는 것이 아니니까.
무려 마나세공법을 거쳐 탄생한 보석.
평범한 보석과는 그 궤를 달리 한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단박에 느낄 수 있다.
특유의 자태, 빠져드는 영롱함, 완벽한 강도.
“부족한가요?”
바쁘게 돌아가는 관리자의 눈과 머리.
부족하냐고? 고성능 통신구의 값으로?
관리자로서는 감히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저 보석들의 값어치를 정확히 측정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고성능 통신구 한 쌍의 정확한 가격조차 모른다. 애당초 자신은 판매할 수 있는 권한자가 아니니까.
“그, 그것이…….”
다만 이로서 두 가지는 확실해졌다.
눈앞에 소년은 말귀가 어둡지도, 고작 시답잖은 장난이나 치려고 공방을 찾아오지도 않았다는 점. 또한 진심으로 고성능 통신구를 구매하고자 이 자리에 있다는 점까지.
“자,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제가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지라…….”
그렇겠지.
이게 얼마짜리 거래인데.
조용히 고개만 끄덕거리는 이안이었다.
“고, 공방주님!”
얼마나 기다렸을까.
누군가의 등장에 잔뜩 긴장한 공학자들.
이제 막 청년을 넘어서 중년에 들어설 나이.
공방주 ‘스람’이 분명했다.
‘흑발?’
스람은 대륙에서 보기 드문 흑발의 소유자였다.
머리칼이 하얗게 세어버린 노년의 모습만 기억했던 이안으로서는 감회가 새로웠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이안의 제법 쏠쏠한 여흥이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흑발의 스람이 보석을 살폈다.
보석 보는 안목도 뛰어난 듯 보인다.
“음.”
보석이 진품임을 확인한 스람.
그가 이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먼저, 고성능 통신구는 상아탑의 허가 없이 판매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웬만해서는 허가를 내려주지도 않죠. 가격을 떠나서 사실상 판매가 불가능합니다.”
구구절절 옳은 얘기였다.
통신역참처럼 황실과 상아탑, 영지의 합의로 세워지는 국가적 기관이 아닌 이상에야 구입은 고사하고 존재조차 모르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더군다나 민간용 통신구와는 달리 엄청난 양의 마나를 필요로 하는데, 이런 물건을 어찌 민간인에게 판매할 수 있을까?
“또 이 정도의 재력을 동원할 수 있는 인물이나 상단. 제가 알기로는 흔치 않은 걸로 압니다. 그러니 신분부터 밝혀주셔야겠습니다. 누군가의 심부름을 오신 것 같은데, 납득할 만한 신분이 아니라면 이 보석들, 장물로 간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석의 출처까지 의심하는 스람이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장물이 맞기는 하다만.
그렇다고 인정할 수도 없는 노릇.
마침 이안에게는 적절한 신분이 있다.
“우선 그 허가부터 내려드리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대답 대신 가볍게 손짓하는 이안.
그러자 바닥의 보석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누가 봐도 명백한 마법의 힘이었다.
“마법……?”
겉보기에는 간단한 마법처럼 보인다. 하나 물체를 띄우는 마법은 절대로 쉬운 마법이 아니다. 오히려 고위마법에 속하는 주문. 스람은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마도공학을 연구하는 장인으로서 어지간한 마법적 이론은 익혀뒀으니까.
‘혹시.’
눈앞에 꼬마의 나이라면 아직 아카데미 입학 전이거나, 입학 하고도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나이. 한데 저 정도 고위마법을 완숙하게 부린다? 짚이는 부분이 딱 하나 있었다. 며칠 전 발표된 상아탑의 최연소 고위마법사, 그 이안 페이지라는 소년이 분명 12살이라고 했다.
“호, 혹시 그……?”
“그 혹시가 맞을 겁니다.”
“허억!”
어디 귀신이라도 본 마냥 기겁을 하는 스람이었다.
“제, 제가 몰라 뵙고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보통 납품과 관련된 거래는 신출내기 마법사들이 진행한다.
제아무리 공방주라 할지라도 고위마법사란 쉬이 접할 수 없는 존재. 그들은 그저 높은 곳에서 허가와 불허를 결정하는 미지의 권력자일 뿐이다.
“부디 선처를……!”
분명 그랬거늘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그냥 마법사도 아닌 고위마법사라니.
이런 인물이 어째서 공방까지 찾아왔을까?
“아닙니다. 몰라보는 게 당연하죠.”
빙그레 웃어준 이안이 보석을 정리했다.
물론 마법의 힘으로 간단하게.
그러고는 스람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이안 페이지입니다.”
“고, 공방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스람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이안의 손을 두 손으로 잡는 스람.
무려 4클래스의 고위마법사다.
나이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분명 마도공학자들이 요란을 떨었을 터.
공방의 존폐가 달린 중차대한 상황이다.
“그럼 이제 통신구를 좀 구경할 수 있을까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쪽으로.”
스람의 극진한 안내를 받으며 지하로 내려간 이안.
그 모습에 사색이 되어가는 공학자들이었다.
“뭐, 뭐야 지금?”
처음에는 상황파악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아까 그거 마법 맞지?”
“가만…… 이안 페이지라고?”
“그 새로운 고위마법사라는…….”
한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완료되었다.
그 상황파악이라는 놈이.
“마, 망했다.”
마도공학자들의 반응이야 말할 것도 없고.
“……내가 한숨을 쉬었던가?”
이안을 접대했던 관리자는 자신의 행동을 천천히 되짚어봤다.
“나, 나는…….”
반면 공방의 막내 반스는 울상이 되어버렸다.
이안을 향해 비키라고 소리쳤던 순간이 떠올랐으니까.
도대체 왜 그랬을까? 이제 죽는 걸까?
저마다 오만가지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 * *
‘입막음도 대충은 된 것 같고.’
입막음의 핵심은 협박이다.
간단하고 효율적인 협박을 해뒀다.
상아탑에서도 고위마법사만 통신구의 구매 사실을 안다. 만약 이 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경우, 이안 자신은 공방을 의심하지 않겠으나 다른 고위마법사들의 생각까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대응이 과격할 수도 있다. 조금 많이.
‘이럴 때는 확실히 상아탑이야.’
사람들에게 상아탑이란 존경과 더불어 공포의 존재.
입막음의 효과는 생각 이상으로 대단할 터.
‘일단 한시름 덜었네.’
이안의 손에는 보석자루 대신 철제상자가 들려 있었다. 고성능 통신구 한 쌍이 담긴 보관함이었는데, 이래보여도 보호마법만 몇 겹으로 걸어둔 무적의 상자였다.
‘어머니만 안전할 수 있다면.’
실로 엄청난 금액을 한순간에 불태웠다. 이로 인해 몇 가지 자잘한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하나 그것들은 모두 이안이 감당할 문제. 그보다는 어머니께 발생할지 모르는 이변의 대응책부터 마련해 두고 싶었다. 덕분에 마음만큼은 든든했다.
‘근데 이걸 어떻게 드린다?’
생각보다 큰 덩치를 자랑하는 고성능 통신구.
두 주먹을 맞댄 것과 호각을 이루는 크기.
장신구의 형태로 만들기는 어렵겠고, 아예 지팡이처럼 만들어드릴까?
‘아직 지팡이 짚으실 나이는 아니지.’
어머니가 마법사였다면 또 모를까.
지팡이 쥘 나이는 한참 이르다.
30세, 아직 생일 전이니 29세.
한창때가 아니겠는가?
“흐음.”
그렇다고 그냥 드릴 수도 없다.
항상 품에 지니고 다녀야 하는 물건이다. 큼직한 구슬의 형태만으로는 잊어버리기도 쉽고, 잃어버리기도 쉽다. 무언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
‘가격을 말씀드리면 잃어버리진 않으시겠다만.’
대신 어머니가 영혼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통신구를 본인보다 높은 존재로 취급하시겠지.
가격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감춰야 한다.
‘천천히 생각해자. 천천히.’
문득 하늘을 올라다본 이안.
맑았던 하늘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어머니께 분명 저녁식사 전까지 돌아오겠다고 약속했거늘, 이러다간 늦어버리게 생겼다.
‘분명 팥 파이를 만들어주신다고 했는데.’
어머니의 ‘특제 팥 파이’.
이안이 가장 그리웠던 음식 중 하나.
전생에는 그 어떤 요라사가 만들어 대령해도 느낄 수 없었던 그 맛, 상상만으로 군침이 도는 그 맛! 오늘 드디어 한을 풀게 생겼다.
‘두 발로 뛸 때가 아니군.’
무릇 팥 파이는 뜨거울 때 먹어야 제 맛이다.
이대로는 식어빠진 파이만이 기다릴 터.
“플라이.”
이안이 작은 목소리와 함께 술식을 펼쳤다.
인간에게 비행을 허락해 주는 플라이 주문.
물론 그 지속시간은 길어봐야 30초. 부담스러운 마나소비와 느려터진 속도로 거의 사용되지 않는 마법이지만, 활용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위로.”
이윽고 이안의 몸뚱이가 일직선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속시간이 끝나기 직전까지 오르다보니 어느덧 성벽과 눈높이가 맞았다. 저 멀리 목적지인 대저택도 보인다.
‘윈드.’
이어지는 기초적인 바람마법. 기초 중에 기초라고는 하나 마법사의 실력에 따라서 그 풍력을 어마어마하게 늘릴 수 있는데, 이안의 경우가 딱 그랬다. 아주 매서운 바람이 불어와 이안의 몸을 저택 방향으로 떠밀어주기 시작했으니까.
후우우웅!
뛰는 것보다 족히 수십 배는 빠르게 대저택을 향하는,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리꽂히기 시작한 이안의 몸뚱이. 그 와중에도 통신구가 든 보관함을 꼭 끌어안은 모습이 일품이라면 일품이었다.
“패더 폴.”
마무리는 역시나 패더 폴.
저속낙하 주문이 내리꽂히던 이안의 몸을 보좌해 줬다.
낙하지점은 정확하게 저택의 대문 앞.
“음?”
한데 저택 앞으로 웬 사람들이 보였다.
지금까지 선물을 가져오지는 않을 텐데.
이안이 두 눈에 마나를 집중시켰다.
‘기사들?’
은빛의 망토로 보아 제2 황실기사단.
인즉 황태자를 호위하는 직속 기사단이 분명했다.
탁!
바랐던 그대로 대문 앞에 착지한 이안.
당연하게도 기사들의 이목이 쏠렸다.
몇몇은 크게 놀라며 칼까지 뽑아든다.
“이안 님……?”
가까스로 이안을 알아보는 젊은 기사.
이안이 그를 향해 물었다.
“황태자 전하께서 오셨습니까?”
“아, 예! 그렇습니다. 얼른 저택 안으로 들어가 보시지요. 아까부터 기다리고 계십니다.”
기사의 말에 불안함을 느끼는 이안이었다.
최근 들어 부쩍 호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는 하나, 근본적으로 틀려먹은 놈이 아니던가? 감히 황태자를 기다리게 했다며 난리를 피웠을 가능성도 배제 할 순 없으리라.
‘설마.’
어머니께 해코지를 하지는 않았겠지?
그런 사태가 벌어졌다면 곤란하다.
오늘부로 최악의 반역자가 될지도 모르는 일.
마음을 굳힌 이안이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음?’
저택의 내부로 들어서는 복도.
단장 올리버가 그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혼자임에도 일절 흐트러짐 없는 모습.
누군가의 기척을 느끼며 고개를 든다.
작은 소년, 이안 페이지였다.
‘뭐지?’
한데 그 소년으로부터 느껴지는 기운.
미미하지만 살기가 분명하다.
저대로 들여보낼 수는 없는 일.
“멈추십시오.”
이제는 올리버 자신보다도 상위의 존재.
적절한 예우를 지키며 앞길을 막아섰다.
족히 두 배 이상 차이나는 덩치.
그럼에도 팽팽함만큼은 호각을 다퉜다.
“왜 막는 겁니까?”
이안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이렇듯 막아서니 더더욱 불안해졌다.
정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고 있는 걸까?
‘무슨 어린 놈 살기가…….’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
은은한 살기, 요동치는 마나.
그것이 점점 더 불어났다.
척
검의 손잡이로 손을 가져간 올리버.
이안 역시 마나를 끌어 모았다.
일촉즉발의 대치상황.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