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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33화
10. 상아탑의 초대(3)
“상아탑의 초대에 응해줘서 고맙네.”
가장 먼저 탑주가 이안을 맞이했다.
상대는 12살짜리 어린아이.
그럼에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켰다.
“자, 불편하게 서 있지 말고 거기 앉게나.”
이안을 중심으로 반원의 진을 그린 마법사들.
그들의 시선을 고루 받을 수 있도록 위치된 의자.
바로 그 의자에 이안이 앉았다.
“조금은 당황스럽겠지.”
상아탑의 지팡이를 가볍게 휘두르는 탑주.
곧 푸른 빛의 마나가 허공에 글자를 수놓았다.
“그렇다고 겁먹거나 움츠릴 필요는 없네. 상아탑의 일원으로 거듭날 마법사라면 누구나 한 번씩 겪는 일종에 통과의례니까.”
그 글자들은 모두 이안을 다룬 정보였다.
간략한 신상부터 지금까지의 일거수일투족까지.
뒷조사를 참 꼼꼼하게도 해놨다.
“자네의 재능은 익히 알고 있네만, 그 재능을 감안하더라도 파격적인 행보더군. 솔직한 감상으로 의심스러울 지경이야.”
탑주가 이안의 기록을 천천히 훑으며 말했다.
이미 수백 번도 더 읽었을 기록이건만.
여전히 흥미로운 듯 눈을 떼지 못한다.
“하나 우리는 피보다도 진한 마나의 형제들이 아니던가? 지울 수 있는 의심이라면 이 자리를 비롯해 깔끔히 지워내야겠지.”
상아탑의 의심과 철저한 뒷조사.
강력한 신문마법을 동반한 자리까지.
모두 이안의 예상 내 흐름이었다.
때문에 돌 심장 버섯을 생각했던 거다.
‘자신들의 마법을 과신하고 있어.’
상아탑 최고의 전력이 펼칠 신문마법이다.
그 자체로 신뢰성과 자부심이 남다를 터.
이 상황만 무사히 넘긴다면.
‘자연히 의심도 거둬지겠지.’
그때부터는 오직 ‘재능’만 남게 된다.
눈앞에 떨어진 억만금처럼 탐나는 재능.
“혹시 저를 고문한다거나, 그런 건가요?”
시치미를 뚝 뗀 이안의 질문.
그 말에 탑주가 인자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보기 좋게 주름진 얼굴과 조화를 이루는 미소였다.
“허허! 저런, 그럴 리가 있겠나? 야만적인 행위는 상아탑의 방식이 아닐세. 우리는 그저 질문을 건넬 뿐이야. 자네는 대답하면 되는 것이고.”
그리 말하며 고위마법사들을 훑어보는 탑주.
신문마법을 시작하라는 무언의 표시였다.
레디오의 비약이 활약할 무대가 펼쳐졌다.
“이안 페이지. 제국력 488년생. 붉은 염소자리. 부친은 떠돌이 모험가였던 프란 페이지, 모친은 영주성 부엌데기 출신 베네사 페이지. 이 중 실제와 다른 점이 있나?”
“모두 사실입니다.”
그 어디에 거짓이 있으랴?
이어지는 신상정보에 관한 질문들.
하나씩 차분히 대답하는 이안이었다.
본격적인 질문은 이후부터 펼쳐졌다.
“고블린 사체가 돈이 된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지?”
“얼핏 들었습니다. 혹시나 했죠.”
“레디오라는 연금술사와의 관계가 궁금하군.”
“어머니께서 몸이 약하십니다. 지속적으로 좋은 약을 지어줄 연금술사가 필요했고, 상단의 추천으로 만났습니다. 마법사는 돈을 많이 번다죠? 그래서 계약을 맺었습니다.”
“구 상아탑에 방문한 진짜 목적이 뭐지?”
“책에서 자주 본 곳입니다. 한번쯤 가보고 싶었죠.”
제법 날카로운 질문이 많았다.
물론 예상 가능한 질문이기도 했다.
하나하나 그럴듯하게 대답하면 그만이다.
무엇을 말하든 진실이 될 테니까.
“마법사 세실리아를 기억하는가?”
“물론입니다.”
“그녀와 복면을 쓴 괴한이 내통하는 모습을 목격했고, 그 현장을 들킨 세실리아가 자네를 죽이려고 했다……. 이러한 주장에 한 치의 거짓도 없음을 확신하나? 그녀는 아직까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네만.”
“확신합니다. 죽는 줄 알았으니까요.”
고위마법사들의 쉴 새 없는 질문 세례.
하나를 대답하면 또 다른 질문이 날아왔다.
“정말 누구한테도 마법지도를 받은 적이 없다는 게냐?”
“네. 없습니다.”
“하면 파이어볼부터 정령 소환, 프로스트 노바까지. 대체 그 많은 술식들을 무슨 수로 알고 있다는 말이냐? 충분히 납득할 만한 대답을 듣고 싶구나.”
마법이란 술식의 순간적인 암산으로 마나브레인이 자극되는 순간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데 그 술식조차 모르면서 마법을 부린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
“또 ‘그냥 되었다’고 말할 생각은 아니겠지?”
마나반응검사장에서 이안이 내뱉었던 발언.
데커드는 그 발언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안이 준비한 대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떠올렸을 뿐입니다.”
“떠올렸다?”
“예를 들자면, 손 위에 불꽃이 타오르는 상상.”
그리 말하며 작은 불꽃을 일으키는 이안.
미약한 수준의 파이어볼이었다.
“상상만 했을 뿐인데, 어느 날부터 현실이 되더군요.”
상상만으로도 마법을 부린다?
작은 불덩이를 만들고자 하면 파이어볼이.
정령을 소환하고자 하면 소환술이.
주변을 얼리고자 하면 프로스트 노바가.
“그 무슨 허무맹랑한…….”
실로 믿을 수 없는 헛소리.
고위마법사들의 상식이 아우성쳤다.
신문마법의 효과가 거짓을 잡아낼 거라고.
그런데, 아무런 반응도 전해지지 않았다.
거짓말임을 알리는 증상이 단 하나도.
시간을 두고 기다린다 한들 마찬가지였다.
‘거짓이 아니다?’
급히 주문을 점검하기 시작한 고위마법사들.
그래봐야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상아탑이 펼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신문마법은 여전히 이안의 말을 사실이라 여겼으니까.
‘이럴 수가 있나?’
전설처럼 전해지는 최초의 마법사.
정말 그 환생이라도 된다는 걸까?
‘만약 거짓이라면.’
하면 그조차도 문제가 된다.
신문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인데.
그 말이 무엇을 뜻하겠는가?
‘우리보다 높은 경지의 마법사라고?’
탑주와 고위마법사가 합동으로 펼친 신문마법.
그조차 파훼시킬 정도로 높은 경지의 마법사.
‘그건 말도 안 돼.’
차라리 허무맹랑한 말을 믿는 편이 낫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크흠…….”
끝을 몰랐던 질문의 세례가 잠시간 멈췄다.
모두가 탑주의 결정만을 기다리는 그때.
“아! 됐고!”
지금껏 단 한 번도 질문을 던지지 않았던 여인.
이안의 등장 이전까지 최연소 4클래스 마법사.
‘불의 여인’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헬레느’가 탁자를 쾅 치며 일어났다. 별명의 이유에는 화염계열 마법을 즐겨 사용하는 탓도 있지만, 워낙 성정이 불같기도 했다.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헬레느! 자중하시게. 지금은 탑주께서도 계신…….”
“아니, 다들 그거 알아내려고 모인 거잖아? 근데 자꾸 뭘 시답잖은 거나 캐묻고 앉았어? 진짜로 궁금한 걸 물어보자고. 진짜로 궁금한 거!”
똑같은 4클래스 마법사라도 급이 다르다.
헬레느는 그중에 강한 역량을 갖고 있었다.
탑주를 제외한다면, 그녀보다 위에 선 자는 없다.
적어도 현재의 상아탑은 그랬다.
“그 뚫린 입으로 직접 얘기해 봐. 정체가 뭐니? 어떻게 되먹은 놈인데 자꾸 말도 안 되는 소리만 찍찍 해대는 거야? 응? 대답 좀 해줄래?”
헬레느의 매우 공격적인 어조.
모두가 당황하면서도 눈만큼은 빛을 냈다.
차마 체면이 있어 물어볼 수 없었던 말이니까.
‘그래. 저런 여자였지.’
이안이 기억하는 전생의 헬레느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신경을 살살 긁는 목소리와 말투.
똑같은 인물이니 당연한 얘기겠다만.
“이미 다 아시는 거 아닌가요?”
“뭐?”
“저기에도 적혀 있는데요.”
이안이 어깨를 으쓱하며 허공에 적힌 문자.
그 마나로 적힌 첫 문단을 가리켰다.
자신의 간략한 정보가 나열된 부분을.
“이안 페이지, 제국력 488년생, 붉은 염소자리, 출신 미상의 떠돌이 모험가 프란 페이지와 모그리안 영주성 부엌데기 출신 베네사 페이지 사이에서 출생. 외아들. 기타 혈연관계 밝혀진 바 없음.”
하물며 친절히 읽어주기까지 한다.
한 글자 한 글자 빠짐없이 또박또박.
“또 뭘 얘기하라는 건지.”
은근히 무시가 담긴 이안의 말투.
말 속 가시를 인지하지 못할 헬레느가 아니었다.
“이게 지금 누구 앞에서……!”
“그만!”
헬레느의 높아지는 목청.
그 언성을 잠재우는 탑주의 한마디였다.
아무리 헬레느라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내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묻도록 하겠네.”
이번에는 탑주가 직접 질문을 골랐다. 지금껏 지켜본 바, 그 또한 고위마법사들과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다. 사실이라면 최초의 마법사와 같은 재능임을 인정해야 함이요, 거짓이라 해도 엄청난 마법사임은 기정사실이리라.
‘하지만 너무 일정하지 않은가?’
거기에 탑주는 한 가지 의문점을 더했다.
그 어떤 질문을 받아도 평온한 생체반응.
물론 타고난 평정심을 가졌다면 그럴 수도 있다.
애당초 거짓을 솎아내는 데 특화된 마법이니까.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저 평온함이 한번쯤 흔들릴 법한 질문.
탑주는 마지막 질문의 목표로 그것을 정했다.
“자네가 마나반응검사를 받았던 그때, 약간의 소란이 있었음을 알고 있네. 자네와 어머니를 모욕했던 병사, 그 조나단이라는 이름의 병사를 기억하겠지?”
그 물음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이안.
아직까지는 별다른 생체반응이 없었다.
“한데 그 병사가 다음 날 시체로 발견되었더군.”
탑주가 날카로워진 눈매로 말문을 이어갔다.
일말의 반응까지 잡아내리라는 집중력이었다.
“혹시 그 병사의 죽음, 자네와 연관이 있지는 않나?”
과연 탑주는 탑주다.
확실히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자신들의 마법을 과신하지 않는다. 제3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의심한다.
‘약의 효과라는 사실까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현 시점의 한계였다.
마법사와 연금술사는 제법 가깝다.
협업의 기회도 상당히 많을 뿐더러, 연금술사를 통해 엘릭서를 제공받기 때문이다. 물론 동등한 관계라기보다는 상하의 관계였지만.
‘덕분에 마법사들도 기본은 알아.’
이안이 몇몇 약초에 밝았던 것처럼, 여타 마법사들도 연금술의 기본은 안다.
탑주 허버트 또한 예외는 아닐 터.
오히려 더 많이 알면 많이 알겠지. 그렇기에 이 함정을 피할 수 없다.
‘지금으로서는 상식 밖의 일.’
신문마법을 피해갈 수 있는 비약.
그러한 효과를 가진 약초, 혹은 독초.
아마 떠올리는 것조차 불가능할 거다.
‘이쯤에서 약효를 지워낼까?’
본디 마법사들은 독에 잘 당하지 않는다.
방대한 마나로 독효를 몰아내고 장기까지 보호할 수 있는데, 이는 전생의 라그나르가 더글라스로 하여금 특별한 극독을 개발했던 까닭이기도 했다.
‘분명 마지막 질문이라고 했지.’
탑주는 드러나는 모습을 중시한다.
한번 내뱉은 말은 지킬 가능성이 높다.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는다면 말이다.
‘듣고 싶은 답을 내어주마.’
돌 심장 비약의 약효를 몰아낸 이안.
그가 결심한 듯 천천히 입술을 뗐다.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이안의 말은 명백한 거짓이었다.
자연스레 본능적인 반응도 일어났다.
탑주가 원했던 여러 생체적 반응들.
그 변화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신문마법을 펼치고 있는 탑주, 그리고 모든 고위마법사들에게.
‘거짓말?’
모두 이안의 거짓말을 간파했다.
그런데도 표정들은 한결 가벼워졌다.
신문마법의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자신들이 펼친 술식의 문제도.
더 강한 존재에게 파훼당한 것도.
제3의 무언가가 개입된 것도 아니다.
단지 저 소년의 대답이 사실이었을 뿐.
‘꼬마는 꼬마로군.’
탑주와 마법사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끝까지 사실만을 대답했던 소년이다.
한데 살인 앞에서 결국 거짓을 내뱉었다.
그 어떤 대답보다도 의미하는 바가 컸다.
‘재능을 가진 아이인 편이 낫다.’
그나마 가장 나은 경우가 아니겠는가?
압도적인 실력을 숨기고 있는 존재보단.
“아무렴, 자네가 죽였을 리 없지.”
생각이 정리된 탑주가 미소를 지었다.
여유로움을 완벽하게 되찾은 얼굴이었다.
“까다로운 질문에 진심어린 대답을 들려줘서 고맙네.”
누구도 이안의 거짓말을 캐묻지 않았다.
병사 하나 죽인 거야 별문제도 아니다.
살육을 즐기는 미치광이라면 또 모를까.
“내 마음 같아서는 이쯤하고 식사나 함께 했으면 좋으련만, 아직 남아 있는 절차가 있으니 양해를 좀 해주게나.”
이안에게 알고 싶었던 것은 모두 알아냈다.
확인하고 싶었던 것도 모두 확인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이안의 마법적 역량.
그 객관적인 클래스를 측정해 볼 차례였다.
“알다시피, 자네가 가진 그 재능은 상아탑으로서도 처음 겪어보는 힘일세. 아무런 정보도 없는 미지의 힘이지. 해서…….”
탑주가 탁자에 놓인 수정구를 잡았다.
상아탑의 층층마다 연결된 통신구였다.
“보다 정확한 측정이 필요하네. 자네의 실질적인 역량은 물론 앞으로의 성장가능성까지. 그걸 알아야 우리 상아탑이 선배로서 올바른 방향을 잡아주지 않겠나?”
보다 정확한 측정.
이안의 클래스가 2클래스 마스터 내지 3클래스 초입 수준일 거라는 내부의 ‘추측’을 ‘확정’으로 바꾸겠다는 뜻이리라.
‘지금부터가 문젠데.’
클래스의 분류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당연하게도 마나통의 한계.
두 번째가 바로 술식의 ‘연산능력’이다.
고급마법일수록 점점 어려운 술식이 필요하다.
술식을 빠르게 정확하게 풀어내지 못한다면 마법은 발현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타고난 지능’의 영역이니만큼 수많은 마법사들을 좌절시킨 원흉이었다.
‘지금 난 연산능력이 필요 없는 상황이니까.’
이안은 상상만으로 마법이 발현된다는 거짓을 사실처럼 만들었다. 덕분에 연산능력을 시험받지는 않을 터.
‘마나만 확인하겠군.’
이안의 예상은 정확했다.
승강기로 타고 올라온 젊은 마법사들.
퉁명스러운 태도로 이안을 안내했던 그들이 아주 커다란 반투명 구체를 탑주의 방 가운데로 옮겨왔다.
‘뭐야……? 신문마법을 통과했어?’
젊은 마법사들의 표정이 얼떨떨했다.
분명 헛소문일 거라고 여겼다.
신문마법으로 밝혀질 거라 믿었다.
곧 마나감옥에 처박힐 운명이라 생각했다.
‘다 사실이었다고……?’
아직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
그러나 이안은 여전히 탑주의 방에 있다.
강력한 신문마법을 당당히 통과한 채로.
“이게 뭐죠?”
이안의 눈앞에 대령된 커다란 구체.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었다.
모르는 척하는 버릇이 생겨 버린 모양이다.
“마나저장기라고 부르는 물건이네. 이 상아탑의 대부분을 움직이는 중요한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지.”
마나승강기, 온도조절기, 통신구 등 상아탑에 없어서는 안 될 마법물품들을 작동시켜 주는 원동력. 그것이 바로 마나저장기다.
“지금은 충전된 마나가 없어 색깔이 그렇지만, 마나가 충전되면 충전될수록 푸른빛을 머금는다네. 저기 저것처럼.”
탑주가 가리킨 곳에도 마나저장기가 있었다.
푸르다 못해 아주 진한 남색의 구체였다.
저장기에는 최대 3클래스 마스터 수준의 마나가 충전되는데, 충전되면 충전될수록 그 색깔이 진해져 충전된 마나의 규모를 표시한다.
“그 저장기에 마나를 주입시켜 보게나.”
“전부 말입니까?”
“그래야겠지. 한계를 보려는 것이니.”
“주입하는 방법은 똑같나요?”
“물론일세.”
단호함이 느껴지는 탑주의 대답.
이안이 조심스레 두 손을 뻗었다.
구체에 마나를 주입시키기 위함이었다.
‘적당히 숙여줄 때가 온 건가?’
여기까지는 예상했던 그대로 흘러왔다.
이제 오늘의 가장 중요한 쇼가 남았다.
‘2클래스 마스터 수준의 마나만 채운다면…….’
현재 상아탑이 파악한 이안의 역량은 2클래스 내지 3클래스 초입. 딱 그 예상만큼만 보여준다면? 고위마법사들을 안심시키면서도 적당한 입지를 점하게 될 터.
‘가장 나은 선택이겠지.’
최소화된 견제, 상류에 속하는 권한.
앞으로의 행보를 편히 이어갈 수 있으리라.
‘지금까지도 그랬으니까.’
조작된 정황으로 첩자를 팔아넘겼다.
아이의 얼굴로 황제를 기만했다.
비약을 이용해 신문에서 빠져나갔다.
기타 수많은 상황들이 떠올랐다.
지금 이 순간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악하게 대처해 나가면 그만이다.
그만이기는 한데.
‘하지만…….’
항상 영악했던 것은 아니다.
안일하게 대처했던 적도 많았다.
무려 두 번의 삶을 살면서도.
지금이 그랬다.
따로 노는 머리와 가슴.
어김없이 느껴지는 불만족.
가시처럼 한구석에 걸린 무언가.
‘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존재하는 해답.
이안은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평소보다 계산적이지 못할 때의 공통점.
불만족의 원인, 한구석 가시의 정체.
‘마법.’
다른 것들은 모두 양보할 수 있다.
상황을 가늠하며, 눈치를 봐가며.
겁먹은 어린아이가 되어 몸을 떨 수도, 거짓으로 남을 속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나 마법만큼은 그렇지가 않았다.
마법이 필요한 순간마다 유독 즉흥적으로 변했다.
이번 생뿐만 아니라 전생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법만큼은…….’
이안은 단지 8클래스의 마법사였다.
역사에 남을 현자도, 지도자도 아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
현명함, 지혜로움, 판단력.
그런 것들은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단지 마법만큼은.
‘다른 건 몰라도 마법만큼은.’
상아탑의 그 어떤 마법사도.
대륙의 그 어떤 마법사도.
현존하는 그 어떤 마법사도.
‘나보다 위란 없다.’
실로 자존심의 끝을 달리는 생각.
이안이 본격적으로 마나를 쏟아 부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조금의 절제도 없이.
“무, 무슨……?”
순간 모두의 이목이 저장기로 집중되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푸른빛이었던 마나저장기.
그 저장기가 빠르게 짙어지기 시작했다.
하늘색을 넘어서 파란색으로.
파란색을 넘어서 짙은 남색으로.
남색을 넘어서 검은색에 가까워질 정도로.
결국에는.
쩍! 쩌저적! 쩌적!
저장기의 표면에 금이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쾅 - !
이내 굉음을 토하며 터져 버리기에 이르렀다.
마나가 들어설 공간이 부족했으니까.
휘오오오오 - !
동시에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마나.
그 푸른빛의 기운이 태풍처럼 휘몰아쳤다.
“으윽!”
거센 풍압에 얼굴부터 가리는 마법사들.
마음대로 작동하기 시작한 마나승강기.
꺼짐과 켜짐을 미친 듯 반복하는 조명.
흩날리는 서류, 쓰러지는 의자.
잠잠해지기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
한바탕 난리 뒤에 찾아온 침묵.
누구도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후우! 후우! 후우……!”
거친 숨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후유증이 찾아온 이안의 숨소리였다.
더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표정들이 가관이군.’
저장기를 가져왔던 젊은 마법사들.
2클래스나 넘겠거니 했던 고위마법사들.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탑주까지도.
“이, 이게…….”
헬레느가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만큼 일련의 사태는 충격적이었다.
“이게 말이 돼……?”
급기야 저장기의 파편을 확인하는 헬레느.
주섬주섬 모아 표시된 규격부터 살폈다.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짓거리였지만.
‘저런 꼬맹이가 어떻게…….’
헬레느처럼 말과 행동으로 보이지 않을 뿐.
당황한 것은 모두들 마찬가지였다.
마나저장기가 버티지 못해 터져 버렸다.
3클래스 마스터 수준의 저장량.
분명 저 마나저장기의 한계치다.
한데 그 한계를 넘어버린 거다.
무엇을 뜻하겠는가?
‘3클래스 마스터…… 이상?’
최소 4클래스 초입 수준의 마나.
하물며 연산능력조차 필요 없는 존재.
12번째 고위마법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