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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32화
10. 상아탑의 초대(2)
하녀로부터 건네받은 상아탑의 편지.
그곳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하나 마법사라면 접하는 즉시 알 수 있다.
이 편지지에 마나가 흐른다는 사실을.
‘취향하고는.’
예로부터 상아탑은 이런 은밀함을 좋아했다.
오직 마나하트와 마나브레인을 동시에 가진 마법사들끼리만 보고 읽을 수 있는 연락책. 상아탑 특유의 우월함과 소속감을 이끌어내는 방법 중 하나였다.
우우웅……!
이안의 마나를 머금은 특수한 글자.
그것들이 조금씩 제 모습을 드러냈다.
-친애하는 마법사 이안 페이지에게.
황실이 그러하듯, 상아탑 역시 그대와의 만남을 학수고대하고…….
시작은 어떤 편지가 그러하듯 진부한 내용이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가벼운 인사말들.
대충 훑고 내려 본론부터 확인했다.
-정식학도로 입학하는 날까지 만남의 기회를 미루는 게 순서이나, 이미 남다른 재능을 가진 어엿한 마법사를 신출내기 마법학도와 동일시하기도 어려운 일이 아니겠소?
이안의 예상대로였다.
상아탑은 기다려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루 빨리 이안의 재능을 확인해 보고 싶겠지.
가벼운 조사인 척 신문을 하고도 싶을 거다.
물론 그 뒤에는 상아탑이 만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신문마법이 깔려 있을 터.
-그러한 바, 오늘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후 조촐한 만남의 자리를 마련할까 하니, 상아탑 명부에 이름을 올린 마법사로서 부디 상아탑의 초대에 응해주길 바라오.
문제가 있다면 저 일주일이라는 기간.
미루고자 한다면 미룰 수도 있긴 하다.
하나 이안은 뜸을 들일 생각이 없었다.
변수란 줄이면 줄일수록 좋은 거니까.
“일주일이라네요.”
이안이 레디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비약 또한 일주일 내로 완성되어야 한다.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촉박한 시간.
더군다나 처음 접해보는 재료가 아니던가.
“힘드실 것 같다면, 다른 연금술사한테도 의뢰를…….”
원래도 그럴 계획이었다. 이안이 모그리안 영지에서 레디오를 만나지 못했다면, 해서 주변에 믿을 만한 연금술사가 없었다면 말이다.
하는 짓은 고약하나 실력 있는 뒷골목 연금술사를 몇 안다. 그런 자들의 입을 틀어막는 방법이야 얼마든지 존재하니까.
“아, 아닙니다. 일주일! 못 할 것도 없죠.”
레디오 또한 매우 뛰어난 편에 속하는 연금술사.
자존심도 자존심이거니와, 객관적으로 불가능할 일도 아니었다.
“잠자는 시간만 좀 포기하면, 어떻게든 될 겁니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부탁은 무슨,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더글라스나 잘 좀 다독여 주십시오. 거 요즘은 제 아비보다 이안 님을 더 따르는 것 같더군요. 그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이안 님이야 워낙에 유별나신 분이고…….”
또다시 말이 많아진 레디오.
그만큼 긴장될 거리가 없다는 증거였다.
벌써부터 다양한 조합이 떠오를 정도였으니까.
어째 천 마디 장담보다 저 횡설수설이 더 믿음직스러웠다.
* * *
일주일이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표현처럼 눈 깜빡할 새 지나가 버릴 정도로.
뚜각 뚜각 뚜각…….
이안은 지금 상아탑의 마차에 몸을 실고 있었다.
행선지는 당연하게도 상아탑.
제국 대부분의 마법사가 생활하는 그곳.
‘두 시간 정도 약효가 있을 겁니다.’
이안이 품속 약병을 만지작거리며 떠올렸다.
비약조제에 성공한 레디오의 당부였다.
‘두 시간이라.’
신문의 시간은 길지 않을 터.
그 정도면 충분할 거다.
‘도착했군.’
마차 밖으로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풀과 꽃, 나무. 형형색색의 나비.
도시를 벗어나 숲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환경들.
하나 상아탑은 분명 도시 속에 있었다.
‘주변을 숲처럼 꾸며놨으니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도시 속의 숲.
처음 상아탑을 이전해 왔을 때부터 유지된 환경이다.
전통이라면 전통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도착했습니다.”
마부의 말과 함께 마차를 빠져나온 이안.
익숙할 대로 익숙한 상아탑이 그를 반겼다.
옛 상아탑과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비교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거대한 규모.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백색의 외관.
잘 만들어진 건축물 그 자체였다.
“이제야 오셨네? 최초의 마법사님.”
한 무리의 젊은 마법사가 이안에게 다가왔다. 새파랗게 어린 후배의 마중을 나온 것이 영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한창 엘리트 의식으로 충만할 새내기 마법사들. 최초의 마법사와 같은 재능이니 뭐니 하는 꼬맹이가 전혀 달갑지 않았다.
“따라와. 귀한 분들께서 기다리신다.”
젊은 마법사의 날선 목소리.
이안에게는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오히려 확신을 더해주는 한마디였다.
‘귀한 분들이라.’
정식마법사의 자격을 얻어 세상 무서울 게 없을 놈들이다. 그런 놈들이 저렇게 칭할 만한 존재, 4클래스의 경지를 이룬 고위마법사들과 탑주 허버트밖에 더 있겠는가?
‘반가운 얼굴이 많겠어.’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들어선 상아탑의 1층.
마법사들은 이 1층을 ‘입문의 전당’이라 부른다.
전생에 이미 수천 번은 더 밟았을 이곳.
예나 지금이나, 아니 미래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처음 들어왔을 때, 그때는 엄청 설렜는데.’
문득 여기를 처음 밟았던 때가 떠오른 이안.
그땐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신비로웠다.
밖에서 보이는 것만큼 넓고 웅장한 내부.
라이트 주문이 걸려 사방을 밝히는 조명.
실시간으로 적절하게 조절되는 온도.
백색 로브의 위풍당당한 마법사들.
온갖 마법에 둥둥 떠다니는 책들.
특히 예상과는 다르게 자유로운 분위기.
‘마법사들은 다 근엄할 줄 알았지.’
어렸을 때의 기억으로는 그랬다.
현실을 알게 된 지금은 아니지만.
1층의 마법사들은 그야말로 햇병아리들. 근엄함보다 오만함이 하늘을 찌를 터.
‘나도 비슷했으니까. 저때는.’
마법사들의 안내에 따라 들어선 막다른 길.
그곳에 황금빛의 원판 하나가 두둥실 떠 있었다.
성인 남성 다섯 명 정도는 올라설 수 있을까?
이안에게도 무척 익숙한 원판이었다.
‘승강기.’
정확한 명칭은 마나 승강기.
오직 마나의 힘으로 오르내리는 원판으로서 이 잔인하리만큼 높다란 상아탑을 층층마다 연결해주는, 상아탑의 수많은 마법사들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다.
“저 원판 보이지?”
“보입니다.”
“보입니다가 아니라 올라타라는 뜻이야.”
아까부터 볼멘소리를 해대던 젊은 마법사.
그가 원판을 가리키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영광인 줄 알아. 아무나 못 타는 거니까.”
틀린 말도 아니긴 했다.
황금원판은 오직 고위마법사의 전용 승강기.
클래스가 전부인 마법사들에게는 상징적 가치가 있었다.
‘전생에도 최연소였던가.’
당시 이안이 황금원판의 사용권한을 얻은 나이, 즉 4클래스의 마법사로 등극한 나이가 19살이다. 한데 이번 생에는 고작 12살의 나이로 황금원판을 밟았다. 물론 4클래스의 마법사임이 인정된 것은 아니다만, 그마저도 얼마 남지 않았다.
‘어쩌면 오늘이 될지도.’
이윽고 황금빛 원판 위에 올라선 이안.
무게를 감지한 원판이 작게 진동했다.
강력한 부유 마법의 전조 현상이었다.
지이이잉 - !
승강기가 일으킨 진동의 끝은 비행.
정확히는 일직선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조금의 쉴 틈도 없이 계속해서 올라갔다.
꿀꺽!
이안이 준비해 온 돌 심장 비약을 들이켰다.
둔해지는 감각과 함께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온몸의 신경을 통제받는 느낌이었다.
하나 그것도 잠시, 곧 모든 게 또렷해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아주 깔끔하게.
“후우…….”
숨을 길게 뺀 이안이 위를 올려다봤다.
총 22층으로 이루어진 높다란 상아탑.
1층 ‘입문의 전당’을 지나 ‘수련의 전당’, ‘지식의 전당’, ‘기록의 전당’, ‘안식의 전당’, ‘원소의 전당’ 등 수많은 전당 위로 연회장, 소회의실, 대회의실, 그리고 마침내 22층 꼭대기.
‘탑주의 방.’
승강기가 멈춘 그곳.
방이라고 부르기엔 심히 넓은 공간.
그 탑주의 방에 11명의 마법사가 있었다.
탑주 허버트를 포함한 10인의 고위마법사.
모두 각양각색의 개성을 뽐냈다.
남자, 여자, 노인부터 젊은이까지.
다른 마법사처럼 로브를 고집하지도 않았다.
‘시작부터 찍어 누를 속셈인가본데.’
가히 상아탑 최강의 전력이라 손꼽히는 이들.
그들이 한날한시에 모여 같은 소년을 응시했다.
이안 페이지라는 이름의 어린 마법사.
그 ‘최초의 마법사‘와 버금간다는 재능.
오직 그 소년의 재능을 확인하기 위해서.
혹은 그 위험한 재능을 길들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