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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31화 (3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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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31화

    10. 상아탑의 초대(1)

    “우와……!”

    “이게 도대체 다 얼마야?”

    이제는 이안의 소유가 된 황족의 저택.

    레디오도, 베네사도, 더글라스도 황실로부터 내려온 보관함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오십 년은 군에 치료제 납품해야 벌겠는데?”

    “제가 도와드리면요?”

    “음, 그럼 사십구 년?”

    “아빠!”

    레디오 부자의 눈은 보관함에 담긴 금화만을 바라봤다.

    이게 대체 얼마일까? 오직 액수가 궁금했으니까.

    “황제폐하께서 우리 이안한테…….”

    반면 베네사는 금화의 액수 따위 보이지도 않았다.

    단지 황제가 내린 하사품이란 사실이 중요했다.

    누구도 아닌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에게 내린 하사품.

    “정말 저 황궁에 사시는 분께서…….”

    저 황궁에 사시는 가장 고귀한 분. 제국에서 가장 높은 존재 아니겠는가?

    바로 그러한 인물이 아들에게 상을 내렸다. 대저택에 어마어마한 상금, 하녀들까지.

    이것이야말로 가문의 경사요 홍복이리라.

    “믿는 구석이 있어서 보석을 막 쥐어줬나?”

    레디오의 아주 작은 중얼거림.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소리였다.

    “보석?”

    바로 옆에 있던 더글라스가 묻자.

    “보석이라니요?”

    감격에 빠졌던 베네사도 관심을 가진다.

    보석을 뿌리다니? 도대체 누가?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하.”

    다행이 아무도 캐묻지 않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레디오였다.

    요즘 들어 자꾸 속마음이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돌아오고부터 영 정신을 못 차리겠구먼.’

    레디오에게 수도 그린리버디움은 썩 좋지 않은 기억의 집합소나 마찬가지였다. 나고 자란 곳이지만, 온갖 더러운 일들이 너무 많았다. 특히 마나 중독. 그 족쇄를 얻은 것도 여기다.

    ‘그자는 파견을 나갔겠지.’

    레디오를 마나 중독에 빠트린 장본인.

    그 마법사는 당시 아카데미 졸업을 앞둔 마법사였다. 일 년이 넘었으니, 지금쯤 타 영지로 파견을 나갔으리라. 그것이 정식 마법사로 거듭나는 관문이니까.

    ‘당분간은 안전해. 당분간은.’

    파견의 기간이 5년이라고 들었다.

    그렇다면 아직 시간은 넉넉하다.

    중독을 치료할 수단을 얻고 뜨거나, 아니면…….

    ‘이안 님께 찰싹 붙는 수밖에.’

    레디오도 소문을 듣는 귀가 있다.

    평범한 사람치고는 마법사 역시 잘 안다.

    이안은 천재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천재.

    고위마법사의 자리쯤이야 떼다 놓은 당상일 정도로.

    ‘더 강한 쪽으로 붙는 거야.’

    상아탑은 온갖 출신들이 한곳에 모인 자리다.

    그런 만큼 출신성분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마법적 역량만이 유일한 증명의 수단일 뿐.

    ‘그렇다면 그놈도…….’

    방법은 많다. 그러니 겁먹지 말자.

    레디오가 불안한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그렇게 허리 숙이고 계시지 마세요. 계속 받고 있기도 민망하고…… 저도 부엌데기 출신이거든요. 그러니까…….”

    “응?”

    금화를 구경하던 베네사가 어느덧 측은한 얼굴로 하녀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황제가 금화와 함께 상이라며 보내온 하녀들인데, 모두 일렬로 서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페, 페이지 부인. 저희들은…….”

    “어떤 심정인지 잘 알아요. 개인의 문제가 아니죠. 제가 허락한다고 다른 높으신 분들이 허락하는 건 아니니까요.”

    베네사 또한 영주성의 부엌데기였다.

    어지간한 하녀들보다도 낮은 위치.

    누구보다 아랫것의 두려움을 잘 알고 있다.

    “편히 쉬시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요. 대신 허리라도 쭉 피고 계세요. 그러다 나중에 고생해요. 제가 그래요, 제가.”

    그야말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이었다.

    한번 망가진 허리는 쉬이 고쳐지지 않으니까.

    “음, 역시 좋으신 분이야. 페이지 부인.”

    그런 베네사의 심성에 레디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체조차 가늠이 안 되는 이안과는 다르게 정말 투명하고 착한 여인이다. 그 둘을 어찌 어미와 아들로 볼 수 있을까?

    “허리라, 가만있자. 관절에 좋은 비약이…….”

    “꿈 깨세요. 아빠.”

    그런 레디오의 생각을 단숨에 자르는 한마디.

    더글라스가 제 아비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다 큰일 나요.”

    “무슨 큰일이 난다는 게냐?”

    “저분은 이제 귀족이시잖아요?”

    “그야, 마법사의 모친이시니까.”

    “아버지랑은 이어질 수 없는…….”

    “요, 요 녀석이 지금 무슨 소리를!”

    말뜻을 이해하자마자 크게 당황하는 레디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건가 싶었다.

    “대장님이 아시면 싫어하실 텐데…….”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더글라스.

    그 눈빛에 레디오는 그저 식은땀만 뻘뻘 흘리기 바빴다.

    ‘아주 아비랑 맞먹으려들지?’

    이안과 어울리더니 부쩍 어른 흉내를 낸다.

    아직 사춘기가 올 나이는 아닐 텐데.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이로구나.’

    모든 것이 아들을 위한 결정이었거늘.

    레디오가 탄식에 빠지는 그 순간.

    “이안. 황제폐하님은 잘 만나고 왔니?”

    아들을 반기는 베네사의 목소리.

    입궁했던 이안이 저택으로 돌아왔다.

    “폐하라고만 하셔도 돼요.”

    “그, 그래도…….”

    이안의 등장에 곧게 펴졌던 하녀들의 허리가 다시금 앞으로 숙여졌다. 그녀들도 아는 거다. 이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이 바로 저 어린 마법사, 이안 페이지란 사실을.

    “저 금화랑, 저분들까지 모두 황제폐하님께서 내려주신 상이라고 하더구나. 받아도 되는 건지…….”

    “고생 끝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안 믿으시더니.”

    “아, 안 믿다니? 그냥 실감이 안 나니까 그랬지!”

    아닌 말이 아니라 정말로 실감하기 힘들다.

    아들이 하루아침에 대단한 마법사가 되었다.

    뿐이랴? 황제의 부름을 받고 수도까지 모셔졌다.

    오자마자 황제를 알현하더니 상까지 받아왔다.

    ‘꿈도 이 정도로는 못 꿀 것 같아.’

    어렵고 힘들게만 살아온 베네사다.

    남편을 잃고 나서는 더더욱 그랬다. 아들에게 좋은 일이 일어났다면 진즉에 펑펑 울었을 거다. 누구보다 행복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의 경우는 그저 좋은 수준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좀처럼 얼떨떨함이 사라지지를 않았다.

    “그럼 실감나실 때까지 기다리죠, 뭐.”

    이안도 그런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러니 섭섭할 것도, 재촉할 것도 없다.

    정리가 되실 때까지 기다리면 그뿐.

    오직 좋은 것만 해드리면서.

    ‘전생에는 하지 못했던 일들.’

    기분 좋게 웃은 이안이 레디오를 바라봤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어쩐지 긴장한 눈치다.

    “잠시 저랑 얘기 좀 하시죠.”

    “예? 얘, 얘기 말씀이십니까?”

    자신을 지목하자 크게 놀라는 레디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아, 아뇨, 얘기 좋죠. 얘기.”

    그리 중얼대며 더글라스를 찌릿 바라본다.

    또 둘 사이에 뭔가 장난이 있는 것 같다.

    두 부자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거린 이안.

    레디오와 함께 조용한 방으로 들어갔다.

    “비약을 하나 만들어주셔야겠습니다.”

    “어떤 비약을 말씀하시는 건지?”

    “이 버섯으로.”

    이안이 챙겨온 버섯들을 하나둘 꺼냈다.

    레디오도 처음 보는 회색의 버섯.

    당연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버섯이니까.

    “이게 도대체 무슨 버섯이랍니까?”

    “돌 심장 버섯이란 건데, 독버섯입니다.”

    “독버섯이요? 독버섯으로 무슨 비약을…….”

    물론 독을 재료로 쓰는 약이 있기는 하다.

    하나 이안이 지금껏 바라왔던 종류들. 마법적 역량의 증진을 도와주는 그러한 약에는 전혀 쓰임새가 없었다.

    “신경반응을 마비시킵니다. 심장도 멈추죠.”

    “이 독버섯이 말입니까?”

    “네. 위험한 버섯이니 조심해서 다루세요.”

    그래, 말만 들어도 무서운 독버섯이다.

    레디오가 몸을 부르르 떨며 버섯을 바라봤다.

    돌 심장 버섯이라니, 도감에는 있을까?

    “그 정도로 위험한 독버섯으로 무슨 비약을 만들라는 말씀이십니까? 독약이라면 모를까, 비약은 좀…….”

    “혹시 신문마법을 아십니까?”

    “알기는 압니다.”

    레디오 또한 과거에 겪어본 바가 있다.

    그 빌어먹을 마법사 놈한테.

    모를 리가 있겠는가.

    “그 신문마법을 피하고 싶습니다.”

    단박에 이안의 말뜻을 알아듣는 레디오였다.

    신문마법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이미 눈치를 채기는 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가능이야 할 것 같습니다만, 급한 겁니까?”

    “급합니다. 빠를수록 좋겠죠.”

    “음…….”

    잠시 고민에 빠진 레디오.

    몇 가지 떠오르는 재료들이 있었다.

    잘 조합한다면 만들지 못할 것도 없다.

    “후우, 이거 또 더글라스가 싫어할 텐데…….”

    다소 뜬금없는 레디오의 한마디.

    “아, 이런 비약은 실험을 많이 해야 하거든요. 약효는 적당한지, 부작용은 없는지. 사람한테 할 수는 없으니까 주로 동물들이 대상입니다. 쥐나 토끼, 그런 친구들이 대부분이죠.”

    아무리 연금술사의 꿈을 가졌다고는 하나, 더글라스는 나름대로 평범하게 자란 꼬마아이다. 동물들을 대량으로 잡아다가 실험하는 일이 결코 달갑지만은 않으리라.

    “또 녀석이 울고불고 난리를 치게 생겼습니다.”

    “제가 잘 달래보도록 하죠.”

    그 정도야 못해줄 것도 없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이안.

    바로 그때였다.

    “이안 님.”

    방문 너머로 들려오는 하녀의 목소리.

    “상아탑에서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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