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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30화 (3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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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30화

    9. 황궁에서(3)

    “예? 하오나…… 아, 알겠습니다.”

    이안이 들을 수 있는 것은 근위병의 말이 전부였다. 근위병이야 워낙 당황한 나머지 목소리가 커졌다지만, 그 상대방의 목소리까지 잡아내기는 다소 어려움이 따랐다.

    ‘둘?’

    계단을 밟고 내려오는 소리.

    한 명이 아닌 두 명이었다.

    근위병과 함께 내려오는 걸까?

    ‘멈췄다.’

    둘 다 황가의 안식처 중간에 멈춰섰다.

    아직 랜턴불도 닿지 않는다.

    이안을 숨긴 어둠은 여전히 유효했다.

    “공주마마. 아무리 그래도 여기는 좀…….”

    먼저 들려온 목소리는 남자의 것.

    근위병이 아닌, 중후한 중년의 남자였다.

    ‘공주?’

    이 시점에 공주라 불릴 황족은 세 명.

    누가 되었든 라그나르가 아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숨죽인 채 가슴을 쓸어내린 이안.

    초대 황제의 관 옆에 바짝 붙었다.

    “방문할 사람은 드물고,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 데다가, 소리가 새나가지도 않아요.”

    다 큰 숙녀의 음성은 아니었다.

    다만 특유의 성숙함이 느껴졌다.

    “저는 공주로서의 책무, 케빈 님은 안식처에 걸린 주문 점검. 각자 볼일도 뚜렷하고요.”

    공주들의 연령대를 고려해볼 때, 아무래도 현 황제의 딸이자 황태자의 친동생 ‘하이리 그린리버’가 확실한 것 같았다.

    “황궁에는 사방팔방에 귀가 있다지요? 하지만 이 안식처 만큼은 아니에요. 장담할 수 있어요. 이만한 장소,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봐요.”

    “차라리 황궁 밖으로 나가서…….”

    “바깥은 더 위험해요. 케빈 님도 아시잖아요?”

    어째 대화의 흐름이 조금 이상하다.

    실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내용들.

    “선조님들께서도 이해해 주실 거예요. 아바마마와 오라버니를 위한 일이니까요.”

    “후우…….”

    계속되는 설득에 케빈이라는 자가 한숨을 토했다.

    “알겠습니다. 천벌 받을 것 같지만, 별 수 없죠.”

    끝내 공주의 청을 수락하는 케빈.

    도대체 뭘 하기에 천벌까지 운운하는 걸까.

    “저번에 가르쳐 드렸던 기초 술식들, 외워는 두셨겠죠?”

    “물론이지요.”

    제 머리를 쿡쿡 누르며 대답하는 공주 하이리.

    그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케빈이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라이트부터.”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타난 빛의 구체.

    명백한 1클래스 마법, 라이트였다.

    ‘마법사?’

    황실에 상주하는 마법사가 몇 있긴 하다. 대부분 1클래스의 한계를 넘지 못한, 속된 말로 ‘낙제생’ 출신의 중년 마법사들. 주로 그들이 황실 내 마법으로 작동되는 물건들을 관리한다. 물론 공주와 은밀하게 행동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이제 공주마마 차례십니다.”

    “음, 그러니까, 이렇게 마나를 흘려서…….”

    설마 공주도 마법을?

    이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라이트!”

    공주가 만든 아주 자그마한 빛의 구체.

    거의 아카데미 초년생 수준의 라이트였다.

    그럼에도 이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황족 중에 마법사가 있었다니?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숨겼던 건가?’

    상아탑과 아카데미 외의 마법 교육은 중죄다.

    마법사의 자질을 상아탑에 숨기는 것도 중죄다.

    저들이 안식처까지 숨어든 이유가 있다는 거다.

    ‘저 마법사도 가르침이 익숙한 것 같고.’

    1클래스의 마법사 역시 상아탑의 마법사다.

    일련의 행위가 중죄라는 사실을 모를 턱이 없다.

    그럼에도 저 케빈이란 마법사는 망설이지 않았다.

    단지 장소가 황가의 안식처라는 사실 자체만 문제 삼았을 뿐.

    “에게? 전 왜 이렇게 작아요?”

    “원인은 다양합니다. 가용된 마나의 양과 질, 술식의 세밀한 조절, 주문의 숙련도. 공주마마께서는…… 전부 다인 것 같군요.”

    “너무하셔요…….”

    “그, 그것이 마마께선 늦은 나이에 마나호흡을 시작하셨고, 처하신 환경상 연습량도 적은 탓에…….”

    “푸흡! 장난이에요. 장난.”

    약간은 가벼운 분위기.

    공주 하이리와 케빈의 마법 강의는 계속되었다.

    고작 1클래스 수준의 기초적인 강의.

    그것도 라이트 하나만을 반복하는 강의.

    심지어 몇 시간째 끝날 줄을 모른다.

    ‘언제 끝나?’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하는 이안이었다.

    처음에야 흥미로웠다.

    공주가 마나하트와 브레인을 타고났다?

    왜 그 사실을 숨기는 걸까?

    여러 가지 호기심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깐, 이제는 지겹다.

    ‘대단한 재능도 아닌 것 같고.’

    늦은 배움과 호흡의 시작. 연습의 부족함.

    구구절절한 사정들을 전부 따져 봐도 저 정도면 땅바닥에 가까운 수준이다. 평생 1클래스에서 머무는 마법사들, 딱 그 정도의 재능이란 소리다. ‘도대체 왜 숨겼을까?’라는 호기심이 ‘뭘 하겠답시고 숨겼을까?’로 떨어지기까지는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이제는 빠져나가기도 힘들겠지.’

    처음 나타났을 때라면 통했을 거다.

    황궁을 구경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고, 근위병이 졸고 있어서 금지구역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대충 그런 식으로 핑계를 대면 그만이었으니까. 문제는 상황이다. 딱 봐도 비밀스럽게 마법을 전수받고 있다. 목격자를 순순히 보내줄까?

    “라이트!”

    이안이 지겨움에 몸서리칠 무렵.

    공주의 라이트가 제법 커지기 시작했다.

    제법 랜턴 대용으로 쓸 만해 보인다.

    “우와아……!”

    자신이 만든 라이트에 아이처럼 감탄하는 공주.

    이안보다 다섯 살쯤 연상이었던가.

    딱 그 나이 대 소녀의 표정이었다.

    ‘어렸을 때는 성격이 좀 달랐나 보군.’

    이안의 기억 속에 남은 하이리.

    그녀는 결코 밝은 성격이 아니었다.

    황태자가 그러하듯 과하게 타고난 미모.

    그럼에도 항상 꾹 다문 입, 어두운 표정.

    평생을 새장의 새처럼 살다 요절한 여인.

    ‘하긴, 지금은 불행할 때가 아닌가.’

    아직 황제는 건재하고 오라비 또한 황태자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전생의 암울했던 시기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공주마마. 오늘은 이쯤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듣던 중 반가운 소리를 케빈이 먼저 내뱉었다.

    “이곳에 너무 오래 있어도 의심하는 눈들이 생길 겁니다.”

    공주 또한 수긍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감사드려요. 어려운 부탁, 매번 들어주셔서.”

    “별말씀을. 오히려 걱정입니다. 소인도 결국 1클래스에 그친 자가 아니옵니까? 제 가르침만으로는 한계가 클 겁니다.”

    케빈 역시 1클래스 수준의 마법사.

    누군가를 지도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숙련도의 차이가 있다고는 하나, 그 숙련도 역시 1클래스의 영역일 뿐이니까.

    “차라리 지금이라도 상아탑에 알리시는 편이…….”

    “그, 그건 안돼요! 그랬다간 케빈 님도 위험해지시고…….”

    상아탑이라는 말에 격한 반응을 보이는 공주.

    황태자의 적개심과는 종류부터가 달랐다.

    막연한 열등감이 황태자의 반응이라면.

    공주의 반응은 명백한 ‘공포’였다.

    “열심히 해볼게요. 오라버니와 함께 입궁한 마법사, 이안 페이지였던가요? 그 아이는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마법을 부린다고 하잖아요? 계속 노력하다 보면 저도 언젠가…….”

    스스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탓일까.

    공주의 말꼬리가 점점 힘없이 처져 버렸다.

    “공주마마. 소인은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언제든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보필하겠습니다. 부디 자신감까지 잃지는 마시길.”

    스승과 제자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위로.

    두 사람은 곧 시간 차를 두고 안식처에서 나갔다.

    잠시 기다렸던 이안도 그 뒤를 조용히 따랐다.

    근위병이 돌아오기 전에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좀 수상한데. 특히 공주의 반응은…….’

    두 번의 삶을 살아가는 이안이다.

    어지간한 흐름은 예측이 가능하단 얘기다.

    한데 일국의 황녀가 마법사로서의 자질까지 감출 정도로 상아탑을 두려워하는 까닭, 그 까닭만큼은 전혀 예측이 되지 않았다. 본디 공포란 뚜렷한 원인과 함께 나타나는 감정. 황태자의 막연한 적개심과는 본질부터 달랐다. 분명히 뭔가 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본래는 아카데미의 신입생이었을 이안.

    현 시점에 황궁과 상아탑이 일으킬 사건들은 이후의 소문이나 기록으로만 접해봤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직접적인 관여도 충분히 고려해 볼 수 있는 상황.

    ‘탑주와 연관이 있겠지. 그 늙은이, 라그나르의 옹립을 오랫동안 준비했으니까.’

    지금으로서는 유일무이한 예측.

    확신이 가능한 진실이기도 했다.

    ‘아쉽지만, 황실도서관은 다음에.’

    별 탈 없이 황가의 안식처로부터 멀어졌다.

    계획했던 것보다 시간이 훨씬 지체되었다.

    버섯과 정보를 입수한 것으로 만족해야 할 터.

    “이안 님. 구경은 잘하셨습니까?”

    눈도장을 찍어뒀던 근위병들의 물음.

    이안이 천진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네. 충분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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