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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9화 (29/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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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9화

9. 황궁에서(2)

“황궁의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구경해 보고 싶사옵니다. 해서 제가 본 풍경들을 꼭 어머니께 들려드리고자 하옵니다. 황궁은 어떤 곳이고,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이안의 청에 황태자가 첨언을 하고 나섰다.

“소자에게도 옛 상아탑 구경이 소원이라 말한 아이입니다. 어린 나이답게 호기심이 아주 강한 아이죠. 너그러이 굽어 살펴주심이…….”

오늘따라 이안의 마음에 쏙 드는 황태자였다.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자 알아서 꽃을 뿌린다.

당분간은 나쁘지 않은 수단이 될 것 같다.

“으음.”

황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다.

상을 내리고자 했던 것도 맞다.

긴 대화를 나누지 못해 아쉬울 뿐.

“좋다.”

간단한 대답과 함께 무언가를 꺼내는 황제.

손바닥과 비슷한 크기의 보석 장신구였다.

“그 패를 보인다면 대부분은 통과가 될 게다.”

황제의 표식이 그려진, 황제의 손님임을 증명하는 패.

“근위병에게 보여준 뒤 길안내를 요구해도 된다.”

건네받은 그것을 손에 꼭 쥐는 이안이었다.

“바라는 상은 그것뿐이더냐?”

“더 무엇을 바랄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짐의 뜻대로 줘야겠지. 여봐라.”

황제의 말에 문이 열렸다. 큼직한 보관함과 함께 내관 둘이 들어왔는데, 그 뒤로 시녀들이 보였다. 아까 이안에게 옷을 입혀준 시녀들이었다.

“보여주거라.”

철컥!

명령에 따라 내관들이 이안 앞에 상자를 내렸다.

그러고는 뚜껑을 활짝 열어 내용물을 공개했다.

“짐이 내리는 상급이니라.”

상급이라는 말 그대로였다.

제국 고유의 문양이 새겨진 금화로 가득했으니까.

“또한 저 시녀 아이들은 평소에도 황실의 사가를 관리했던 아이들이다. 저택으로 파견을 해줄 것이니 지내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라.”

상급과 저택의 구조를 잘 아는 시녀들.

결코 나쁘지 않은 상이었다.

‘청소 걱정을 하셨었지.’

문득 어머니의 엉뚱한 감상이 떠오른 이안.

그렇지 않아도 고용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상은 넙죽 받아먹는 게 능사다.

어머니의 윤택한 삶을 완벽하게 보좌할 터.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 * *

별 문제없이 알현을 마무리한 이안.

긴장을 좀 했던 탓일까. 손이 다 축축하다.

확실히 황제는 남다른 위인이었다.

이안을 향한 의심이 확실하게 전해졌다.

결코 막연한 기대와 호감을 품지 않았다.

‘누구한테나 그렇겠지. 라그나르처럼.’

의심은 통치와 정치의 기본.

라그나르가 즐겨했던 말이다.

아비에게 배운 것이 틀림없으리라.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아.’

길어봐야 해질녘.

그 전까지 목표한 바를 이루어야 한다.

첫 입궁이니만큼 거창한 목표는 아니었다.

먼저 역대 황제와 황후를 모신 황궁 지하.

‘황가의 안식처’에 들어가는 것.

‘몰래 들어가야겠지만.’

황실은 오랜 전통으로 하여금 황제와 황후의 관을 황궁 지하에 나란히 모셔왔다. 역대 모든 황제와 황후가 안치된 그곳을 가리켜 ‘황가의 안식처’라 부른다.

‘근처까지는 수월하겠지.’

역대 황제와 황후들이 모셔진 자리이니만큼 황족을 제외한 외부인의 출입은 당연히 통제된다. 다만 황제의 패로 그 근처까지는 접근할 수 있을 터. 그거면 충분하다.

‘빠르게 볼일을 끝낸 뒤, 황실 도서관으로 간다.’

여기서부터는 크게 문제될 거리가 없다.

레디오와의 약속대로 황실의 약초 및 연금술 기록이나 가져갈 생각이었으니까.

‘별 자료는 없더라도.’

애당초 서책 몇 권 봐서 알아낼 정도였다?

란데오르의 꽃을 약재로 쓰는 방법이?

그랬다면 미지의 식물도 아니었겠지.

‘일단 시늉이라도 해야 하니까.’

단지 약속을 잊지 않았다는 시늉이 필요했다.

그래야 레디오도 이안을 믿지 않겠는가.

그 믿음은 고스란히 엘릭서 연구의 의욕으로, 또한 더글라스의 믿음으로 내리전해지리라.

‘다른 물건들은 나중에.’

지금은 이 정도 목표가 딱 적당하다. 당장 황실 보물고에 보관된 아티펙트들, 혹은 황실 약재방의 약초들을 훔쳐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나머진 요구할 수 있는 때를 기다린다.’

분명 멀지 않은 시기에 기회가 찾아올 터.

그러니까 지금은 당장 필요한 물건을.

훔쳐가도 문제되지 않을 물건부터 챙기자.

그게 이안이 계획한 오늘의 목표였다.

“마법사님.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요소요소를 지키는 근위병들이 정중하게 물었다.

어린 마법사가 입궁했다는 소문은 이미 파다하게 퍼졌다. 덕분에 이안의 얼굴을 알아보는 근위병은 물론, 눈치껏 알아본 척을 하는 근위병도 있었다.

“폐하께서 이것을 보여드리라고 하셨는데요.”

아무것도 모르는 양 황제의 패를 내미는 이안.

“충!”

황제의 패는 곧 황제의 뜻.

근위병들의 군기가 바짝 들어간다.

“저기, 대정원은 어디 있나요? 책에서 봤는데.”

“이쪽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덕분에 드나들기도 한층 수월해졌다.

잠깐씩 길안내를 받으며 눈도장도 찍어둔다.

‘적당히 둘러보는 척하다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으레 가보고 싶을 만한 곳.

대전이라든가, 역대 황제들의 조각상이 세워진 황궁의 대정원이라든가. 책으로 많이 소개되었던 명소들을 쭉 둘러본 뒤, 슬쩍 황가의 안식처 쪽으로 방향을 잡으리라.

‘그놈, 만나지는 않겠지?’

지금 라그나르와 마주치는 것.

이안이 가장 걱정하는 상황이었다.

눈으로 보고도 감정을 다스릴 수 있을까?

본능에 이끌려 손부터 나가면 어쩌지?

손짓 한번이면 능히 죽일 수 있다.

그 과정에 무엇이 어려울까.

‘아직은 안 돼. 아직은.’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마음을 다스려 놔야겠다.

그리 다짐한 이안이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계획대로 황궁의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휴우.”

얼마나 떠돌았을까.

아직까지는 라그나르와 마주치지 않았다.

대부분의 근위병들에게 눈도장도 찍어뒀다.

슬슬 황가의 안식처로 접근하는 이안이었다.

‘위치는 공주궁 바로 옆.’

황족의 피를 이어받은 여인들.

즉 공주들이 황가의 안식처를 관리한다.

황실의 법도가 그러했다.

공주란 자칫 권력의 부속품쯤으로 여겨지며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자책하기 십상인 위치. 그러한 그녀들에게 역대 황제와 황후를 모시는 신성한 임무를 부여함으로써 황족의 고귀함과 자존감을 일깨워 주는, 일종의 배려였다.

“크으응…… 커어어…… 푸후……!”

이윽고 도착한 황가의 안식처.

그 지하로 통하는 계단의 입구.

앞을 지키는 근위병이 졸고 있었다.

코고는 소리가 아주 일품이다.

‘다른 근위병들은 눈에 불을 켜고 다니던데.’

근처까진 패를 수십 번 꺼내 들 정도로 삼엄했다.

한데 정작 근방의 경계가 저 모양 저 꼴이라니.

안식처인 만큼 고요함을 선택한 결과였다.

“푸후우……!”

“슬립.”

이미 잠을 자고 있기는 하다만 한 번 더 재워서 나쁠 건 없다.

살짝 덮어씌운다는 느낌으로 마법을 부린 이안.

재빨리 황가의 안식처 내부로 진입했다.

불빛 한 점 없는 어두컴컴한 지하.

그야말로 어둠 속에 잠긴 평온의 안식처.

“라이트.”

이안의 마법에 곧 뚜렷한 풍경이 드러났다.

그리 넓지 않게 일자형으로 쭉 뻗은 공간, 좌우로 길게 세워진 각각 한 쌍의 커다란 관들.

모두 그린리버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보석인 에메랄드로 장식된 관이었다.

‘초대황제의 관 근처였던가.’

계속해서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 이안.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제국답게 황제도 많았다.

그 시작의 황제이니만큼 끝자락에나 있을 터.

‘이쯤 어디일 텐데.’

이내 도착한 초대 황제와 황후의 자리.

이안이 그 근처를 이리저리 둘러봤다.

도대체 무엇을 찾고자 하는 걸까.

‘우연히 발견할 만한 곳…….’

불현듯 천장 쪽으로 라이트를 비추는 이안.

곧 만족스러운 미소가 입가에 드리웠다.

‘찾았다.’

안식처의 천장에 다닥다닥 붙은 소수의 존재들.

아티펙트는커녕 비슷한 물건조차 아니었다.

‘돌 심장 버섯.’

전체적으로 퀴퀴한 회색빛을 띈 버섯들.

저 버섯들이야말로 지금 이안의 목표였다.

“아이스 스피어.”

이안이 평소보다도 기다란 얼음덩이를 만들어내더니 손으로 잡아 천장을 긁었다. 그러자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하는 회색 버섯들.

‘생각보다 많군.’

아직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독버섯이다.

복용할 경우 온 신경이 마비된다.

강력한 페럴라이즈 주문에 걸린 것처럼.

차이라면 점차 심장까지 멈춘다는 점.

‘이 버섯을 중화시켜 비약으로 만든다면.’

전생에는 이 버섯으로 비약을 만들었다.

신경 반응과 심장 박동을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해서 강력한 신문마법조차 피해갈 수 있는 비약.

‘첩보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지.’

덕분에 그린리버는 제국 간 첩보전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가히 대륙일통의 시작점이 되는 발견, 그것이 돌 심장 버섯이었다.

‘지금은 내가 더 급하다만.’

곧 상아탑에서 대대적인 압박이 들어올 터.

가벼운 조사랍시고 신문의 자리를 마련하지 않겠는가.

‘아마 탑주까지 가세하겠고.’

전생의 몸뚱이라면 또 모를까, 제아무리 이안이라도 탑주와 고위마법사들이 함께 펼치는 신문마법을 피할 길이 없다. 돌 심장 버섯이 필요한 이유는 그래서였다.

‘레디오라면 충분히 만들 수 있어.’

이안이 조제법까지 기억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까다롭지 않다는 건 기억한다.

손쉽게 대량생산이 가능했을 정도로.

‘이만하면 충분…….’

이안이 떨어진 버섯을 모두 챙긴 그때였다.

“이, 이 시간에 어인 행차시옵니까!”

마나로 강화된 청력이 소리를 잡아냈다.

황가의 안식처 바깥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

졸고 있던 근위병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누군가 깨운 모양인데.

‘근위병이 저렇게 놀랄 정도면…….’

게다가 이곳은 황족만이 드나들 수 있다.

저 밖에 나타난 자가 황족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

황제나 황태자, 공주일 수도, 혹은 다섯 명의 황자 중 한 명일 수도.

‘설마.’

놈은 황가의 안식처를 유독 좋아했다.

자신이 모셔질 안식처라는 이유였다.

스스로 황제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해제.”

라이트 주문을 거둔 이안.

조용히 어둠 한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그래봐야 랜턴 빛 한줌에 금방 들킬 운명.

다른 자라면 핑계를 대서라도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놈이라면?

‘라그나르.’

참아야 한다고 그렇게나 다짐했거늘.

정작 중요한순간에 감정이 동요한다.

손끝에 자꾸만 마나가 휘몰아쳤다.

아이의 숨통쯤이야 간단히 끊어낼 정도로.

마법이 아닌, 강화된 손아귀 힘만으로도 능히.

이대로는 위험하다. 이대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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