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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8화 (28/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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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8화

9. 황궁에서(1)

“허리를 좀 더 조일까요?”

“적당합니다.”

“신발은 이것을…….”

황궁의 손님들이 머무는 응접실.

수많은 시녀에게 둘러싸인 이안이 보였다.

모두가 황궁의 젊은 시녀들이었다.

“장미를 좋아하십니까? 아니면 황금을?”

“……황금으로 하죠.”

“탁월한 안목이십니다.”

시녀들은 지금 이안의 옷을 고르고 있었다.

나아가 입혀주기까지 했다.

다른 이도 아닌 황제를 알현할 몸.

지극히 당연한 준비였다.

“폐하께서는 아직 어리신 이안 님이 감당해야 할 부담감을 고려하시여, 대전알현이 아닌 개인알현을 명하셨습니다.”

내관의 목소리가 주변을 맴돌았다.

방음 하나는 참으로 기가 막힌다.

“따라서 대전회의가 모두 종료된 뒤에 모실 예정이옵니다.”

대소신료들이 모두 모인 대전회의.

이안은 그 회의장에서 황제를 알현할 줄 알았다.

그것이 황명을 받잡은 자의 법도니까.

다만 현 황제는 이안의 출신성분과 어린 나이를 고려.

압박감이 심할 거라는 판단하에 개인 알현을 선택했다.

“혹 필요한 것이 있으시다면 여기 아이들에게 편히 말씀하십시오. 저래 봬도 아주 유능한 아이들이랍니다.”

그래, 유능한 시녀들임은 충분히 알겠다.

순식간에 이안을 귀족 도련님으로 만들지 않았던가?

“알겠습니다.”

“그럼.”

아주 조용한 발걸음으로 퇴장하는 내관.

저리 걷는 훈련을 받는다던데, 자객인지 내관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였다.

‘긴장되네.’

이안은 현 황제와 독대를 해본 경험이 없다.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어느 정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읽기 시작했을 때쯤, 현 황제는 이미 병석에 누운 산송장이었으니까.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현 황제에 대한 평가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정치적으로는 상아탑과의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귀족들을 규합시켰고, 치세로는 전란의 시대임에도 그럴싸한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가히 성군으로 기록될 만한 인물.

‘황태자를 향한 집착만 뺀다면.’

그러했던 황제도 말미에는 썩 모양새가 좋지 못했다.

끝까지 황태자를 옹립하고자 했고, 그 결과 5황자 라그나르의 상아탑은 물론 귀족과 백성들까지 차례차례 등을 돌렸다. 아마 그것이 현 황제가 남긴 유일한 오점이리라.

‘뛰어난 위인임은 틀림없다.’

이따금씩 사람들은 마법사를 ‘현자’라 부른다.

하나 그러한 인식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이안은 8클래스의 마법사였다.

그럼에도 현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클래스’란 단지 ‘마법적 역량’일 뿐.

‘현명함’과 ‘지혜로움’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덜떨어진 놈들이 더 많아.’

마법사라는 우월감에 허우적거리는 자가 대다수.

골방에 틀어박혀 마법연구만 일삼는 자도 존재한다.

그러한 자들이 무슨 현명함을 갖고 어떤 지혜를 품겠는가.

‘나도 크게 다르진 않았으니까.’

클래스 돌파를 위한 광적인 마법연구.

라그나르가 일으킨 통일전쟁 참전.

사실상 이 두 가지가 전생의 전부였다.

‘그런 의미에서, 황제는 격이 다른 위인이지.’

절정의 지혜와 판단력을 타고난 인물.

바로 그런 인물과의 독대.

긴장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전생에 이안이 모셨던 황제는 라그나르뿐.

그마저도 친구였기에 특별함은 없었다.

‘그 격을 배울 수 있다면 좋겠는데.’

이안이 무심코 창밖을 바라봤다.

하필 방을 내어줘도 별궁과 가까운 방을 줬다.

황실의 황자들이 기거하는 별궁.

덕분에 훤히 보인다.

‘놈’이 그토록 좋아했던 별궁의 정원이.

‘뭘 하고 있을까?’

분명 저 별궁 어딘가에 있을 터.

첩실 소생으로 황실의 다섯 번째 황자. 황제를 가장 많이 닮았으나, 황제의 자비로움 대신 냉혹함을 타고난 인물, 이안의 오랜 친구이자 가장 지독한 원수.

‘라그나르.’

이번 생에 놈을 만난다면 어찌해야 할까?

시간을 되돌린 첫날부터 줄곧 해온 고민.

아직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만큼은 분명하다.

‘똑같이 돌려준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다.

수확의 때가 한참 멀었다는 얘기다.

이안이 느꼈던 그 절망, 배신감.

고스란히 돌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안 님. 폐하께서 기다리십니다.”

얼마 후, 다시 돌아온 내관이 말했다.

“가죠.”

내관의 뒤를 따라나선 이안.

그 길에 꽤 많은 사람들이 지나쳤다.

하인들은 물론 회의가 끝난 신료들까지.

모두가 하나같이 이안을 힐끔거렸다.

“저분이 그 마법사?”

“첩자를 생포했다는 그…….”

“그 첩자도 경지가 3클래스 였다던데.”

북부나 수도나 다르지 않았다.

호기심으로 가득한 시선들.

황제의 부름을 받고 왔기에 의구심은 없었다.

“대단하구먼. 저 어린 나이에.”

“요새 상아탑이 아주 난리랍니다.”

“그럴 만도 하지. 보기 드문 일이니.”

“어디 드물다 뿐입니까?”

“무슨 최초의 마법사? 그런 얘기들을 하더군요.”

“마법사들한테 전설이라는 그……?”

“허어, 아무렴 그 정도씩이나…….”

신료들이야말로 항시 귀를 열어두는 사람들.

이안에 관련된 나름의 정보가 꽤 많았다.

“이쪽으로.”

수군거림을 넘어서 당도한 황궁의 본성.

오직 황제만을 위한 공간으로 가득한 그곳에 이안이 섰다.

“폐하, 마법사 이안 페이지가 알현을 청하고 있사옵니다.”

“들라하라.”

굳게 닫힌 알현실의 문.

그 너머로 들려오는 중후한 목소리.

황제 테리 그린리버의 목소리였다.

“드시지요.”

과연 황실의 문은 관리부터가 달랐다.

열림에 있어 일말의 소음조차 없다.

이윽고 훤히 보이는 알현실의 내부.

“미천한 소인이 황제폐하의 용안을 뵈옵니다.”

황제의 옆에는 황태자가 함께 있었다.

딴에 이안과의 친밀함이라도 과시하고픈 모양인지 손을 번쩍 들며 반긴다.

“고개를 들어라.”

이안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는 황제.

그 관찰하는 눈매가 마치 라그나르를 닮았다.

아니, 라그나르가 황제를 닮은 거겠지.

“북부의 귀빈, 이안 페이지라.”

황제가 종이 한장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이안의 정보가 한눈에 담긴 기록이었다.

“짧은 사이 참 많은 일을 했더구나.”

“황공하옵니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을 예법이 아니더냐? 자, 그만하면 충분하니 거기 앉아나 보아라.”

배우지도 못했을 예법, 애쓰지 마라.

이미 전생에 한번 들었던 얘기다.

라그나르를 처음 만났을 때, 당시 놈도 그런 말을 했었자.

과연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고 했던가.

“먼 길 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저택은 좀 마음에 들더냐? 특별히 황실의 사가를 하나 통째로 내어준 것인데.”

“소인은 꿈에서도 본 적이 없는 과분한 저택이옵니다.”

“그래서 지금 좋다는 게냐? 싫다는 게냐?”

다소 장난스러운 황제의 물음.

이안이 침착하게 대답할 말을 골랐다.

“좋사옵니다. 어머니께서도 행복해하셨습니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의 대답이 제법 만족스러웠다.

“하면 짐작은 좀 하고 있느냐? 짐이 황태자를 보내 너를 황궁으로 불러들인 이유, 오자마자 대뜸 저택까지 하사한 이유 말이다.”

그 까닭을 이안이 모를 리가 있겠는가.

문제는 어떤 대답을 고르냐는 건데.

‘조금 직설적으로 가볼까?’

라그나르는 직설적인 화법을 좋아했다.

직설적인 자들은 숨김이 없어 좋다 했던가.

많이 닮은 만큼, 황제도 비슷할 가능성이 높다.

‘아니, 아직은 아니야.’

나중이면 모를까, 지금은 아니다.

적어도 원하는 바를 전부 얻을 때까지, 그때까지는 필요했으니까.

12살짜리 어린아이의 얼굴. 그 한정된 수단이.

“소인의 재주가 조금 뛰어난 까닭이 아니옵니까?”

“재주? 네 재주가 무엇이기에?”

“사람들의 얘기로는, 소인이 가진 마법을 부리는 재주가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들었사옵니다. 해서…….”

적당히 말꼬리를 흐린 이안.

“마법을 부리는 재주가 뛰어나다?”

“부끄럽지만, 그렇게 들었사옵니다.”

“단지 그뿐이라고 생각하느냐?”

“…….”

“정녕?”

이안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몸을 꼼지락거리며 침묵을 지켰다.

당황했음을 표출하기 위한 의도적인 몸부림.

“아바마마, 아직 어린아이가 무얼 알겠습니까?”

보다 못한 황태자가 이안을 변호하며 나섰다. 흡사 아끼는 도자기라도 떨어뜨릴까 노심초사하는 얼굴. 예상치 못한 황태자의 반응에 말문을 잃은 황제였다.

북부로 보내면서도 그리 반신반의했거늘.

“……그래. 너의 재주, 그 재주를 높이 사 부른 것은 맞느니라. 마법사들조차 입을 모아 칭송을 하더군.”

원래는 계속 몰아붙이고자 했던 황제였다.

아직 시작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을 정도로 사상 초유의 재능을 가진 소년이다.

떠보고 싶은 것이 참으로 많았으니까.

‘그보단 태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좋겠지.’

지금은 태자가 저 아이를 직접 감싸고 나섰다.

이럴 때는 한발 물러나는 것이 옳으리라.

그래야 저 아이도 태자를 더욱 따를 것이 아닌가?

‘알아볼 시간은 많다.’

마음을 정한 황제가 대화의 주제를 돌렸다.

“짐이 듣기로는 불미스러운 일, 그러니까 첩자의 정황이 의심되는 마법사, 그자를 색출하는 데 아주 큰 공을 세웠다고 들었다. 맞느냐?”

“소인을 해하고자 하기에, 대항을 했을 뿐이옵니다.”

“그래서 살아남지 않았더냐? 그것이 곧 공이니라.”

마법사의 살수로부터 살아남아 생포를 해냈다.

마나각인이라는 중요한 증거까지 알아냈다.

공이 아니면 무엇이 공일까?

이안 역시 충분히 예상했던 흐름.

“제국의 백성된 자가 큰 공을 세웠다. 어른이든 아이든 상을 받아 마땅한 일이지. 말해보아라. 혹 바라는 것이 있더냐?”

드디어 찾아왔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물음.

황태자도 따라했던, 현 황제의 독특한 공치사.

‘많이 고민했지.’

표면적으로는 황궁에 처음 방문한 이안이다.

이것저것 콕 집어 바라는 것도 무리가 따랐다.

어떤 특정한 기록을 살피고 싶다.

황궁 어딘가 숨겨져 있을 무언가를 찾고 싶다.

그러한 요구들이 가당키나 할까?

오래 생각했고, 끝내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어린아이다.’

시간을 되돌린 지금 가장 중요한 사실.

이안 자신이 아직 어리다는 것.

괴물 같은 재능과 나이는 별개의 문제다.

아직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리 생각할 터.

“……구경을 해보고 싶습니다.”

“구경?”

만약 성인이었다면 어울리지 않았을.

나아가 의심까지 받을지도 모르는 요구.

황태자에게 했던 것과 아주 유사한 방법.

그것이 답이었다.

“황궁의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구경 해보고 싶사옵니다. 해서 제가 본 풍경들을 꼭 어머니께 들려드리고자 하옵니다. 황궁은 어떤 곳이고,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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