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7화 (27/342)
  • 27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7화

    8. 입성, 그린리버디움(2)

    ‘탑주까지 해본 마당에 뭘 모를까.’

    그런 이안이 상아탑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철저히 이안의 시선으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자존심의 탑.’

    언제나 황족보다는 조금 아래, 그 밖에 모든 이보다는 훨씬 위에 서기를 원하는 자들, 실제로도 그러한 위치에 선 자들, 그 기다란 탑의 높이만큼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존재. 그것이 바로 상아탑이며 마법사다.

    ‘급하게 인계받은 것도 자존심 때문이고.’

    이는 결코 정치적인 알력다툼.

    혹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한 처사가 아니었다.

    그저.

    ‘기사단 따위가 마법사를 신문하는 상황이 싫을 뿐.’

    기사단 ‘따위’란 이안의 개인적인 표현이 아니다.

    단지 상아탑 전체의 관점을 대변하는 표현.

    ‘마법사의 일은 오직 상아탑만이 해결한다.’

    누구도 상아탑의 일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것이 상아탑의 지론이며 자존심이다.

    한데 기사단 따위가 마법사를 신문한다?

    상아탑으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

    ‘안에서는 또 분위기가 다르지.’

    대외적으로는 마법사의 권위를 높이 세운다.

    마법사 개인의 권위가 곧 상아탑의 권위니까.

    하나 내부적으로는 세실리아를 어찌 다룰까?

    그녀의 혐의가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수많은 사람이 봤고 수많은 소문이 돌았다. 이미 그 자체로 상아탑의 이름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긴 죄인이라는 얘기다. 분명 상아탑 가장 깊숙한 지하 감옥에 가둬놓고 수습할 방법을 모색할 터.

    ‘그쪽이 안전하기도 훨씬 안전하니까.’

    제국의 가장 강력한 마법사가 모인 상아탑.

    바로 그 상아탑이 만든 지하 감옥.

    황제의 침실보다 안전할 가능성이 크다.

    아니,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있다.

    하물며 기사단본부와의 차이는 어떻겠는가?

    외부와의 접촉 가능성이 0에 수렴하다는 얘기다.

    ‘콜드워커라도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였다. 상아탑의 태도가 오히려 반가운 이유.

    이안으로서는 손해볼 게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마음이 편해질 지경이다.

    ‘이제 남은 건 황제, 황궁, 상아탑.’

    생각을 정리한 이안이 주변을 둘러봤다.

    여전히 바깥 구경에 한창인 어머니.

    슬슬 졸린지 꾸벅꾸벅 조는 더글라스.

    그 옆으로는…….

    “음?”

    이안의 시선을 사로잡는 들어온 레디오의 안색.

    어딘가 아프기라도 한 듯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아직 중독의 증세가 나타날 시기는 아닐 터.

    “어디 편찮으십니까?”

    “……예?”

    “안색이 좋지 않으셔서.”

    “아, 그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하…….”

    입성 전부터 낌새가 보이기는 했다. 한데 방금 상아탑의 마법사들을 지나치고부터는 안색이 눈에 띄게 파래졌다. 아무래도 중독의 근본적인 원인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아직 다 털어놓기는 힘든가 보군.’

    본인이 감추겠다는데 구태여 캐물을 필요는 없다.

    스스로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수밖에.

    급하면 급할수록 이안을 찾을 테니까.

    “워! 워!”

    그때, 마부가 긴급히 마차를 멈춰 세웠다.

    아직 황궁에 도착하려면 멀었을 텐데 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이안 님. 황태자 전하께서 찾으십니다.”

    이제는 익숙한 담당 제국군의 목소리.

    안내에 따라 마차 밖으로 나오는 이안이었다.

    그리고 곧 익숙한 장소가 눈앞에 펼쳐졌다.

    “여긴…….”

    본래 황족들이 황궁 밖에서 머물러야 할 때 주로 사용하는 ‘사가’ 중 하나. 또한 전생에서는 이안이 5클래스의 경지를 이루었을 때 축하 선물로 하사받았던 대저택.

    “마음에 드느냐?”

    황태자 하이든이 이안에게 물었다.

    이 저택을 두고 묻는 말이 분명했다.

    “아바마마께서 너에게 특별히 하사하신 저택이니라.”

    이안은 새삼 감회가 남달랐다. 전생에 이 저택을 하사받았을 때가 26살. 그것도 지금의 황제나 황태자가 아닌, 황실을 장악한 라그나르로부터 받았던 저택이다. 한데 그 저택을 이번 생에는 14년이나 더 빨리 얻게 될 줄이야.

    ‘괜찮은 저택이긴 하지.’

    황궁은 물론 상아탑과도 적절한 거리에 놓인 위치.

    게다가 도시상권의 중심인 상업지구와도 가깝다.

    도시생활을 영위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거처였다.

    ‘그렇지 않아도 집 하나 구해볼 생각이었는데.’

    이 정도 저택은 억만금을 줘도 구하기 힘들다.

    거처에 한해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으리라.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황태자 전하.”

    “하하하! 황은은 무슨.”

    이안의 반응에 크게 웃는 황태자 하이든.

    이제는 요 꼬맹이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단장보다는 아니지만, 그 아래 정도는 된다. 괴물 같은 재능을 가진 마법사임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잘난 놈들을 볼 때마다 나타나는 열등감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이놈을 내 수족으로 부린다면…….’

    해서 녀석이 가장 뛰어난 마법사가 된다면.

    아까 그 오만한 마법사들, 탑주 노인네까지 싹 다 물갈이를 해버릴 수도 있으리라.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흠흠! 일단 네 가족들은 이곳에서 머물도록 하고, 너는 나와 함께 황궁으로 가자꾸나. 아바마마부터 알현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안은 황명을 받고 그린리버디움에 입성한 몸.

    도착하는 즉시 황제부터 알현하는 게 순서였다.

    이안 또한 황제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그 전에.

    “……황태자 전하께서 허락을 해주신다면, 잠시 어머니를 모시고 저택 안을 둘러봐도 되겠습니까?”

    이안의 그 어느 때보다 진심어린 요청.

    “어머니? 오, 물론이지. 그리하려무나.”

    황태자 또한 흔쾌히 수락해 줬다.

    그 역시 돌아가신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 잠깐 나오셔야겠는데요.”

    마차 안 베네사를 모시고 나온 이안.

    그가 눈앞에 펼쳐진 저택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떠세요?”

    “뭐가?”

    “이 저택이요.”

    “여긴 갑자기 왜?”

    “그냥, 어떤지 말씀해보세요.”

    지금 도대체 뭘 묻는 건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는 베네사였다.

    그나저나 참 대단한 저택이긴 했다.

    모그리안 영지에서는 구경도 못 할 저택.

    그녀가 이안과 살았던 오두막집보다 족히 수백 배는 클까?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일단 넓고…….”

    “우리 집이래요.”

    “아름답…… 응?”

    순간 내뱉던 말문이 쏙 들어가는 베네사.

    “앞으로 저랑 어머니가 살 집이요.”

    “여, 여기가?”

    “네.”

    “이 저택이?”

    “그렇다니까요.”

    이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가?

    전생에는 결코 이루지 못했던 유일한 소망.

    아무리 대단한 마법사가 되었다 한들, 인간을 초월해버린 힘을 가졌다 한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현실까지 되돌릴 수는 없었다. 해드리고 싶었던 일, 함께하고 싶었던 일, 그 무엇 하나 이루지 못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 시간을 되돌린 끝에 드디어 이루어졌다.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들어가서 구경해 보실래요?”

    베네사의 손을 붙잡고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도 훨씬 더 아름다운 저택.

    잉어가 헤엄치는 연못, 마법으로 작동하는 분수대.

    갖가지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이 정원을 수놓았다.

    “……여기가 사람 사는 집은 맞니?”

    “원래는 황족들이 쓰던 곳이거든요.”

    “황족……?”

    “이제 집안도 보셔야죠.”

    정원을 지나 마침내 저택 내부로 들어왔다.

    규모도 규모거니와 전체적인 모양새까지.

    영주성의 거처와는 감히 비교가 힘들 지경이었다.

    흔히 ‘나랏님 사시는 곳’하면 누구나 떠올릴 화려함.

    딱 그러한 상상을 본떠 만든 듯 화려함의 극치이자 정수였다.

    “다시 여쭤볼게요. 어떠세요?”

    “음…….”

    이안은 듣고 싶었다.

    좋다, 최고다, 정말 멋진 집이다.

    이런 저택에서 살게 되다니 꿈만 같다.

    “이렇게 넓어서…….”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어머니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전생에는 볼 수 없었던 그 모습을.

    꿈에서조차 바라고 또 바랐던 모습을.

    이제 정말 목전이다.

    “이렇게 넓어서 청소는 다 어떻게 한다니……?”

    “…….”

    순간 말문이 턱하고 막히는 이안이었다.

    전생에는 무려 8클래스의 대마법사였던.

    두 번의 삶을 사는 누군가도 예상치 못한 한마디.

    “어머니…….”

    “왜, 왜 그렇게 봐?”

    꿈에서조차 바랐던 그 모습.

    아무래도 조금 더 미뤄야 할 것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