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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6화 (26/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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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6화

    8. 입성, 그린리버디움(1)

    수도에 도착하기가 열흘 남짓 남았을 때쯤.

    병사들은 조금씩 노곤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풀린 긴장 밖으로 쌓인 피로가 흘러나왔다.

    콧대 높은 기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곧 도착할 거라는 안도감 때문일까?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그러한 분위기를 단칼에 휘어잡는 단장 올리버.

    “우리는 타국의 첩자로 의심되는 인물을 후송 중이다. 만약 그녀가 첩자임이 확실하다면, 그 배후의 세력은 지금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구출작전을 계획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올리버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안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지금까지는 접근이 쉽지 않았을 거다.

    3클래스의 마법사 둘이 마나감옥을 유지했으며, 단장 올리버 또한 마나감옥을 철통 같이 지켰다. 물론 그 주변에 포진된 수많은 병사와 기사들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머리가 발아래 떨어져 나뒹군다? 아마 그 머리는 집과 가족들 생각으로 가득한 우리의 것이겠지.”

    순간 목덜미가 서늘해짐을 느끼는 병사들.

    다른 사람도 아닌 단장 올리버의 말이었다.

    감히 그 누구도 허투루 듣지 않았다.

    마법사의 목전에 칼을 뽑는 위인이 아니던가?

    “떨어진 목은 추하다. 핏물이 빠져 창백해짐은 물론 혀가 길게 빠지고 눈은 돌아가지. 그 흉측한 몰골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기 싫다면, 행군이 종료되는 순간까지 긴장을 풀지 마라.”

    창대 잡은 병사들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누구도 자신의 추해진 목을 가족에게 보내고 싶지는 않을 터.

    “명 받듭니다!”

    몇마디 말로 느슨해진 긴장을 바로 세우는 남자.

    이안은 그런 올리버의 모습을 감명 깊게 지켜봤다.

    ‘역시 적으로 둘 사람은 아니야.’

    이번 생에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안도, 그리고 저기 보이는 올리버도.

    ‘나도 긴장 좀 해야겠군.’

    이안으로서도 세실리아가 다른 콜드워커와 접촉하거나, 혹은 구출되는 상황이 썩 달갑지만은 않았다.

    ‘귀찮아질 테니까. 여러모로.’

    이안은 콜드워커의 존재를 안다.

    그 사실을 아는 자는 오직 세실리아뿐.

    한데 다른 콜드워커와 접촉을 한다?

    혹은 아예 구출이 되어버린다?

    ‘분명 내 얘기부터 하겠지.’

    그때부터 콜드우드 제국의 견제가 시작될 거다.

    국가적 기밀을 아는 타국 소년의 등장.

    결코 가만히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닐 터.

    ‘당분간 걸어야겠어.’

    정확히는 마나감옥 근처를 지켜야겠다.

    세실리아가 갇힌 저 마나감옥 근처를.

    그리 마음을 정한 이안이 마차 밖으로 나왔다.

    “이안 님, 어찌 나오셨습니까?”

    “그냥 좀 걷고 싶어서요.”

    그간 이안과 안면을 쌓은 병사의 물음.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두 발로 걸음에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지축을 흔드는 말과 병사들의 발소리.

    긴장으로 재무장된 행군은 계속되었다.

    하루를 넘어 이틀, 닷새, 일주일.

    그리고 대망의 열흘째 되는 날.

    “드디어…….”

    마침내 기나긴 행군의 끝이 보였다.

    그린리버 제국의 수도 ‘그린리버디움’. 그 웅장한 성벽이 육안으로 들어왔으니까.

    집과 가족이 그리운 병사와 기사들도.

    오랜만에 고향 땅을 밟는 더글라스도.

    생전 처음 수도를 방문하는 베네사도.

    모두가 한곳을, 저 성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정말 지척이다.

    “황태자 전하! 납시오!”

    선두에 선 병사들이 커다란 깃발을 흔들며 황태자의 귀환을 알렸다. 각각 제국과 황실, 그리고 기사단의 문양이 새겨진 깃발이었다. 지난 열흘, 그야말로 한 치의 빈틈조차 허용하지 않았던 완벽한 행군. 그들이 지금 수도 그린리버디움에 도착했다.

    “황태자 전하! 납시오!”

    제국의 심장을 품은 거대한 성벽.

    그에 걸맞은 거대한 성문이 활짝 열렸다.

    황태자의 무사 귀환을 반기는 나팔 소리와 함께.

    “황태자 전하! 납시오!”

    이윽고 성문을 완전히 넘은 황태자의 행렬.

    곧 그린리버 최대의 도시가 눈앞에 펼쳐졌다.

    모그리안 영지와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가히 제국 문명의 집대성이나 다름없을 대도시.

    “황태자! 저언하아! 나아압시오오!”

    이젠 거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병사들의 목청.

    거리의 수많은 백성들이 좌우로 갈라졌다.

    모두가 넙죽 엎드려 황태자를 향한 예를 올렸다.

    이 순간만큼은 거리의 거지도, 돈 많은 배불뚝이 상인도, 마실 나온 귀족가의 아낙도, 그 누구도 허리를 세울 수 없는 평등의 시간.

    “황태자 전하! 납…… 엉?”

    계속해서 황태자의 귀환을 알리던 병사.

    그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목소리를 낮췄다.

    “멈추시오!”

    마나를 입혀 한껏 증폭된 목소리.

    정면으로부터 다가오는 어떤 무리의 소리였다.

    새하얀 로브를 입은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

    차림새만 봐도 알아챌 수 있었다.

    저들이 상아탑에서 나온 마법사란 사실을.

    “무슨 권리로 전하의 앞길을 막는 거요?”

    곧장 앞으로 나와 마법사들의 접근을 막는 기사단.

    단연 중심에는 올리버 레이우드가 있었다.

    “황명이외다.”

    그 한마디와 함께 백발의 마법사가 무리를 가르고 나왔다. 장식 하나 없는 단출한 로브 차림의 노인이었는데, 특이하게도 제 몸뚱이보다 훨씬 기다란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탑주……?”

    단장의 중얼거림에 모두가 흠칫 놀랐다.

    기다란 지팡이를 들고 나타난 마법사의 정체.

    이 제국에서 황족 다음으로 가장 높은 자.

    상아탑의 탑주, 5클래스의 대마법사.

    ‘허버트 레온’이었다.

    “오랜만에 뵙소. 단장.”

    “탑주께서 어찌…… 그보다 황명이라니요?”

    “폐하의 칙서를 받아 왔소.”

    탑주 허버트가 황명이 담긴 칙서를 펼쳤다.

    이안이 받았던 마나칙서가 아닌, 친필로 적힌 진짜배기 칙서였다.

    “황태자 하이든 그린리버는 지엄한 황명을 받들라.”

    황명이라는 알림과 동시에 전원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칙서 자체가 곧 황제의 의지이며 목소리.

    황태자가 하대를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첩자의 정황이 의심되는 마법사 세실리아의 조사 및 감시 등, 일련의 모든 권한과 책임을 지금 이 순간부터 상아탑에 위임하노니, 세실리아의 조속한 인계를 명하는 바이다.”

    한마디로 세실리아를 상아탑에 넘기라는 뜻.

    단장 올리버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아직 제대로 된 신문조차 하지 못한 상태였다. 본격적인 신문은 바로 이곳, 그린리버디움의 기사단 본부에서 시작하고자 했었으니까.

    “……많이 급하셨나 봅니다.”

    “불순한 일은 하루 빨리 처리해야 하지 않겠소?”

    단장의 뼈 있는 말에 가벼이 응수하는 탑주.

    오히려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단장의 어깨를 다독였다.

    “단장께서는 돌아가 쌓인 여독부터 푸셔야지. 신문은 우리 상아탑에서 책임을 지도록 할 터이니 너무 걱정 마시구려.”

    올리버는 여전히 내키지가 않았다.

    하나 방법이 없다. 상대가 무려 황명을 앞세웠다.

    단장은 물론 황태자에게도 불가항력의 힘.

    “탑주께 죄인을 넘겨드려라.”

    세실리아를 ‘죄인’이라 칭하는 올리버의 말에.

    “단장, 그녀는 아직 죄인이 아니오. 모든 정황이 밝혀질 때까지는 엄연한 상아탑의 마법사, 언사에 신중하길 바라오.”

    정정을 요청하는 탑주 허버트였다.

    이는 결코 개인을 위한 정정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이 집중되어 있는 상황.

    상아탑의 권위를 세우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오오, 탑주님!”

    세실리아의 마나감옥을 담당했던 두 명의 마법사.

    그들이 탑주에게 반가운 기색을 표했다.

    “먼 길 고생이 많으셨소.”

    “아니옵니다. 저희보다는 세실리아가…….”

    “일단 가서, 가서 얘기하도록 합시다.”

    목적을 달성한 마법사들이 막아섰던 앞길을 비켰다.

    다른 이들과 똑같이 좌우로 정렬해 몸을 숙였다.

    이제와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

    “……화, 황태자 전하! 납시오!”

    황태자의 행렬이 다시금 시작되었다.

    조금은 기세가 꺾여 버린 채로.

    그 작은 소란으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저놈들이 감히 누구 앞에서……!”

    애당초 상아탑을 증오했던 황태자는 물론.

    “단장!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리 황명이라지만, 저는 납득이 되질 않습니다!”

    제2 황실기사단의 기사들 역시 한마음으로 불만을 토해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북부로부터 수도까지, 날이 바짝 선 긴장감 속에서 힘겹게 후송해온 죄인을 강탈당한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물며 저들은 죄인과 동료가 아니었던가?

    “이게 다 무슨 일이라니?”

    심지어 아무것도 모르는 베네사까지 겁을 먹는다.

    그만큼 작금의 사태가 매우 불안해 보인다는 증거.

    “별일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하나 정작 이안은 별 감흥이 없는 듯 보였다.

    ‘오히려 잘된 일이야.’

    그 누구보다도 상아탑을 잘 아는 이안이다.

    상아탑의 특징과 행동방식, 추악한 부분까지도.

    어째서 그렇게 잘 알 수 있느냐?

    ‘탑주까지 해본 마당에 뭘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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