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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5화
7. 가장 확실한 투자
“새벽부터 어딜 그리 다녀오십니까?”
아직 일어나기에는 이른 아침의 오두막집.
자루를 짊어지고 나타난 이안을 레디오가 반겼다.
밤잠이 심하게 짧은 양반이다.
“일어나 계셨네요.”
“짧게 자는 게 습관이 되어서 말입니다. 하하.”
멋쩍게 웃어 보이는 레디오.
그가 이안이 내려놓은 자루에 관심을 보였다.
“그 자루는……?”
“아, 마침 드릴 게 있는데.”
레디오의 물음에 자루를 뒤적거리는 이안.
곧 보랏빛 덩어리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언뜻 자수정을 연상케 만드는 두 개의 물건.
“이게 무엇입니까?”
“가고일의 눈.”
“헙!”
순간 헛바람을 삼키는 레디오였다.
가고일의 눈, 실제로 본 적은 없으나 그 가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연금술사로서 당연한 일이다. 연금술사들에게 가고일의 눈이란 아티펙트에 가까운 재료니까.
“저, 정말로 이게……?”
“직접 뽑아왔으니 가짜는 아닐 겁니다.”
“지, 직접 말씀이십니까?”
가고일을 때려잡기라도 했다는 건가? 대체 어디서?
애당초 흔한 몬스터였다면 그 눈이 귀하지도 않았을 거다.
‘그런 놈을 어디서?’
슬쩍 나갔다 오더니 가고일의 눈을 던져준다.
이 소년 마법사, 도대체 정체가 뭘까?
예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이질감이 강하다.
“혹시 엘릭서 재료로 쓸 수도 있는 겁니까? 제가 자세한 쓰임새까진 몰라서.”
“자, 자, 잠시만.”
레디오가 황급히 가문의 도감을 꺼냈다.
신주단지 모시듯 보관함에 담긴 도감.
“……그냥 생으로 삼켜도 어지간한 엘릭서 급은 된다는군요. 마나하트를 가진 사람이 복용할 경우, 마나의 농도 자체를 짙게 만들어준다고 합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마나의 최대치, 즉 마나통도 중요하지만 마나의 농도 또한 필수적인 요소다. 똑같은 마법을 펼치더라도 짙은 마나를 가진 마법사의 마법이 더욱 강력한 법.
‘그래도 생으로 삼키는 건 좀.’
한입에 삼키기는 크기가 너무 크다.
하물며 보석 수준으로 딱딱하기까지.
몬스터의 눈이었다는 거부감도 한 몫 한다.
다른 방법을 원하는 이안이었다.
“가고일의 눈이 쓰이는 조제법도 꽤 됩니다. 보자, 그중에 최상품으로 쳐주는 엘릭서가…….”
다행이다. 약으로 만들 방법도 있단다.
탁자에 놓인 물그릇을 들이켜는 이안.
조금은 설레는 감정이 느껴졌다.
‘최상품 엘릭서라.’
전생에는 엘릭서의 힘을 빌려본 바가 적다.
몇 번 마셔보긴 했으나, 그마저도 높은 경지를 이루고 난 후의 일. 마시는 족족 흡수할 수 있었던 나이에는 기껏해야 아카데미에서 지원받은 기본 엘릭서뿐이었다.
“아, 여기 보이네요.”
이윽고 가고일의 눈이 사용되는 엘릭서.
그중 최상품 조제법을 찾아낸 레디오.
그가 이안을 향해 도감을 들이밀며 말했다.
“붉은 용의 다섯 숨결?”
“이름이 좀 거창하긴 하죠?”
엘릭서의 이름이 바로 ‘붉은 용의 다섯 숨결’이었다.
확실히 거창한 이름이긴 하다.
“이름 따라가는 건지, 재료도 무지막지합니다. 여기 재료들 좀 보십시오. 이게 만들라고 적어놓은 제조법이 맞는가 싶습니다만…….”
레디오가 가리킨 조제법의 재료부분.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재료의 집합소였다.
연금술에 무지한 이안조차 알만한 재료들.
가고일의 눈, 만드라고라의 뿌리, 암브로시아의 잎, 오우거의 피. 이안이 소문으로 접해본 재료들은 대충 이 정도였다. 이외에도 처음 들어보는 재료들이 난무했다.
“최상품이라 보여드리긴 하는데, 좀 힘들 것 같습니다. 정확한 계량치가 없죠? 기록하신 제 선조 분들께서도 실패했다는 뜻입니다. 아마 제 실력으로는…….”
레디오는 스스로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재료가 준비되었다 해도 자신이 없었다.
이런 무지막지한 엘릭서를 만들 자신이.
아까운 재료들이나 날려먹지 않으면 다행이리라.
‘구하지 못할 것도 없다.’
반면 이안은 생각했다.
저 재료들은 어떻게든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이야 오래 걸리겠다만, 어차피 이런 아티펙트급의 엘릭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글라스가 가진 재능이 필수다. 그 재능이 본격적으로 만개할 때까지, 그때까지라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재료는 구해드리죠.”
“예? 하,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바로 구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시간이 걸리겠죠. 그때까지는 이론부터 연구를 해보세요. 연구야말로 거래의 조건 아니었습니까?”
그렇다. 레디오는 이안과 그런 계약을 맺었다.
이안은 레디오의 생존과 차후 완쾌의 가능성을.
레디오는 이안을 위한 엘릭서를 연구하는 것.
“제 실력으로는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 아예 불가능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큽니다. 재고해 주심이…….”
“몇 년이 걸리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재촉도 없고요.”
“으음…….”
그럼에도 영 자신이 없어 보이는 레디오.
어떤 동기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더글라스도.”
이안이 넌지시 그 이름을 꺼냈다.
레디오의 가장 소중한 존재. 더글라스.
“연금술에 관심이 많아 보이더군요.”
“……요즘 들어 유독 그런 것 같긴 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겠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요즘 녀석이 연금술에 관심을 가진 이유.
다 아비를 살리고 싶어서가 아니겠는가.
란데오르의 꽃을 재료로 쓰게 되는 그날.
자신이 직접 약을 조제하기 위해서.
“대대로 연금술을 업으로 삼은 집안이라 들었습니다.”
“…….”
“더글라스도 그 피를 이어 받았을 텐데.”
“아직 어린아이…….”
“녀석이 만든 치료제, 저도 봤습니다.”
“……!”
이안의 말에 흠칫 놀라는 레디오.
그렇지 않아도 놀라움을 느끼는 중이었다. 요 며칠 도감을 뒤적거리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기초적인 상처치료제를 만들어내는 게 아닌가? 더글라스가 말이다.
‘제대로 된 계량도 없이 만들어낼 줄은…….’
아무리 기초적인 물약이라도 정확한 계량이 필요하다.
재료의 계량이 어긋날 경우 약은 효능을 잃는다.
한데 더글라스는 그 계량을 감으로 잡아냈다.
레디오의 상식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
“제가 알기로 연금술사라는 직업, 대우가 상당히 좋은 것으로 압니다. 황성에 따로 교육하는 기관도 있다죠?”
확실히 실력 있는 연금술사는 그 대우가 좋다.
연금술사를 키워내는 황실기관이 존재할 정도로.
재능이 있다면 충분히 키워줄 가치가 있었다.
출셋길이 열리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레디오도 마나 중독에 걸리기 전까지는 제법 괜찮은 생활을 영위했을 터.
“이 정도면.”
그리 말하며 자루를 뒤적거리는 이안.
이번에는 여러 개의 최고급 다이아몬드를 꺼냈다.
“앞으로 돈 문제는 없을 겁니다. 더글라스를 교육하는데 들어갈 모든 비용. 그마저도 많이 남겠죠.”
“가, 갑자기 이게 다…….”
갑작스런 보석세례.
그것도 하나같이 초고가의 보석들.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는 레디오였다.
“투자를 해볼까 합니다.”
“투자라 하시면…….”
“앞으로 진행될 레디오씨의 모든 연구, 그리고.”
이안이 오두막집의 안쪽을 바라봤다.
세상모르고 잠든 더글라스가 보인다.
“더글라스의 재능까지.”
이안의 말에 레디오가 두 눈을 감았다.
아주 깊은 생각에 잠긴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들의 미래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 치료제, 저도 놀랍긴 했습니다.”
기나긴 침묵을 깨는 레디오였다.
“아들 녀석이 대단한 재능을 가졌다 싶기도 했죠. 근데 말입니다 그거, 기초 중에도 기초격인 물약입니다. 복잡한 계량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요. 알고 계셨습니까?”
“압니다.”
“그럼 더 잘 아시겠네요. 그깟 치료제 하나 감으로 만들었다고 대단한 연금술사 되는 거, 그것도 절대 아니거든요?”
“압니다.”
“그걸 아시는 분이 지금 재능을 사니마니 하시는 겁니까?”
“투자란 원래 그런 거니까요.”
“허어……!”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토하는 레디오였다.
물론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긴 했다.
목숨을 연명 받는 것도 모자라, 더글라스를 향한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단다. 넙죽 받아먹어도 모자랄 판이다. 하나.
‘이건 더글라스의 미래야. 신중해야 해.’
자칫 아들의 인생까지 저당을 잡힐지도 모르는 일.
마법사에게 저당 잡힌 인생은 본인 하나로 족하다.
마법사란 결코 믿지 못할 족속들이다.
끝내 원하는 엘릭서를 얻지 못한다면?
자신은 물론, 더글라스조차 만들 수 없다면?
그땐 돌변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이안이라 해도.
‘하지만…….’
그럼에도 자꾸만 마음이 동했다.
이안이 제시한 조건, 저 보석들을 처분한다면 능히 평민에게 허락된 모든 교육과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뿐이랴? 전체적인 삶의 질도 크게 상승할 터.
‘그편이 더글라스에게도 좋지 않을까?’
인생의 어느 순간보다 치열한 저울질.
그만큼 레디오에게 더글라스는 소중했다.
세상 어느 부모가 그러하지 않겠냐만.
“아무리 봐도, 이안 님은 어린아이가 아니십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대는 레디오.
해가 완전히 뜨고 나서야 결정을 내렸다.
“대체 뭘 숨기고 계신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에이!”
냉큼 보석부터 챙긴 그가 한결 편해진 어조로 말문을 이어갔다.
“나중에 딴말하시기 없습니다! 제가 실패하더라도, 만에 하나 더글라스가 대성하지 못하더라도! 물론 제 아들은 크게 대성할 겁니다. 하긴 할 건데. 아무튼…….”
역시 평온함을 되찾으면 말부터 길어지는 양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