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0화 (20/342)

20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0화

5. 황태자가 오다(5)

쿠구구구구……

연무장의 바닥을 가르며 날아드는 불덩이.

세실리아도 익히 알고 있는 마법이다.

투사 속도가 느린 탓에 효율이 떨어지는 마법.

물론 그 위력 또한 누구보다 잘 아는 바, 당장에라도 몸을 던져 피해야 한다.

‘이대로는 죽어.’

문제는 얼음덩이를 막아내고 있는 방어막.

방어막을 펼친 상태로는 움직일 수 없다.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

이대로 죽거나, 일말의 가능성에 몸을 맡기거나.

세실리아의 선택은 당연하게도 후자였다.

겨우 이런 곳에서 죽자고 선택한 삶이 아니니까.

“해제.”

너덜너덜해진 방어막이 와르르 무너졌다.

자유를 부여받은 두 다리가 있는 힘껏 지면을 박찼다.

저 거대한 불덩이의 범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푸욱! 푹! 푸욱!

하나 얼음덩이들에게 자비란 없었다.

무방비로 노출된 그녀의 육신을 귀신같이 파고든다.

“흐으윽……!”

붙잡기 힘든 신음이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어깨부터 옆구리, 팔, 그리고 허벅지까지.

찌름을 넘어선 관통의 통증이 전신을 강타했다.

맨 정신으로는 버티기 힘들 극악의 고통.

‘살았다.’

그럼에도 세실리아는 확신을 가졌다.

치명적인 급소는 모두 피해갔다.

불덩이의 범위도 완전히 벗어났다.

아직 살 수 있다.

콰과과과과광-!

어마어마한 폭발음이 영주성 전체를 쩌렁쩌렁 울렸다.

세실리아를 비켜간 불덩이가 영주성의 외벽을 박살 내는 소리였다.

“마나 배리어……!”

연무장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세실리아.

그녀가 다시금 마나 배리어를 펼쳤다.

이제 허공에 남은 저 얼음덩이도 무용지물이다.

“하아! 하아! 하아…….”

얼음덩이에 당한 몸뚱이가 피를 잔뜩 토했다.

몸을 뉘인 바닥이 흥건하게 젖어갈 정도로.

하지만 괜찮다. 곧 사람들이 올 거다.

모두가 세실리아를 치료해 줄 터.

‘증거는 아무것도 없어.’

일단 살아남았다. 그거면 충분하다.

증거는 없다. 자신이 첩자라는 증거 말이다. 저 꼬마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증거까지 가지고 있을 리가 만무하다. 확신할 수 있다. 그만큼 매사에 철저했으니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으니까.

‘사람들은 내 말을 믿겠지.’

더군다나 그녀는 상아탑의 3클래스 마법사.

무려 11년을 상아탑에 헌신하는 척 살았다.

증거도 없는 꼬맹이의 헛소리에 의심을 받지는 않을 거다.

‘일단 회복하고 후일을 도모한다면…….’

세실리아가 앞으로의 처신을 계획하는 그때.

“휴우!”

이안이 그녀의 지척으로 다가와 털썩 주저앉았다.

유독 연무장 바닥에 떨어진 술병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하프 엘릭서라 하더니.’

레디오가 선물이라며 줬던 하프 엘릭서.

즉각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이 떠올랐고, 도움이 될까 싶어 미리 마셔 놨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피투성이가 된 채 널브러진 세실리아가 그 증거였다.

‘후유증은 좀 있을 것 같다만.’

아직도 쿵쾅거리는 마나하트가 문제라면 문제.

“이참에 한 건 올려볼 생각이야.”

애써 심장을 진정시킨 이안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쪽을 팔아서.”

“후후, 그게 가능할까?”

“가능하지.”

“증거가 없을 텐데? 난 확신할 수 있어.”

“맞아. 그때도 넌 깨끗했었지.”

“그때?”

“그런 게 있어.”

그때라니? 허세라도 부리는 걸까?

묘한 불안감이 세실리아를 괴롭혔다.

“콜드워커, 너희들 스스로도 모르는 증거.”

“또 무슨 헛소리를……!”

“재촉하지 마. 금방 알려줄 테니까.”

그 뒤로는 양쪽 모두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대체 무슨 일이…….”

“벽이 왜……?”

연회를 즐기던 수많은 이들이 연무장으로 몰려들었다. 모두들 산산조각이 나버린 영주성 외벽에 한 번 놀랐고, 피를 흘리는 세실리아를 보며 두 번 놀랐다.

“세실리아?”

함께 왔던 두 명의 마법사가 황급히 달려왔다.

척 보기에도 세실리아의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이 상처는…… 마법?”

순간 두 명의 마법사가 서로를 바라봤다.

지금 모그리안 영지 내의 마법사는 넷.

자신들을 포함한 세실리아와 파견마법사 마르코.

이 중 마르코는 탑주가 내린 임무를 수행 중이다.

그렇다는 것은.

“제가 그랬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이안에게 집중되었다.

외벽을 박살낸 것도, 세실리아에게 중상을 입힌 것도.

전부 스스로가 벌인 짓임을 시인하는 소년.

약간의 침묵이 감돌았다.

“소상히 말해보시오.”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가 침묵을 깨부쉈다.

제2 황실기사단장 올리버 레이우드였다.

“무슨 일이 있었소?”

“우연히 봤습니다. 저분이…….”

잠시 뜸을 들이며 세실리아를 바라본 이안.

세실리아의 얼굴에 의아함이 묻어났다.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어떤 복면 쓴 사람과 얘기하는 모습을.”

“하?”

그 말에 세실리아가 조소를 날렸다.

고작 한다는 게 말도 안 되는 거짓부렁이라니.

증거도, 증인도, 아무런 증명도 없는 거짓말.

비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계속하시오.”

“저를 보자마자 죽이려 하셨습니다.”

“해서 저렇게 만들었다?”

“살아야 했으니까요.”

실로 믿어주기 어려운 얘기였다.

세실리아는 명실상부 상아탑의 3클래스 마법사다.

한데 그런 자를 이겼다고?

지금껏 이안에 관한 소문은 충분히 들었다.

황성에서도, 북부에서도. 모두가 이안을 말했으니까.

최초의 마법사와 같은 천재다.

배우지 않고도 수많은 마법을 일으킨다.

대영주를 구하고 북부의 영원한 귀빈으로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선뜻 믿기란 어려웠다.

“그 말을 증명할 수 있겠소?”

단장 올리버 조차도 믿기 힘든 이야기.

진심으로 증명의 여부를 물었다기보다는, 그저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물음이었다.

“서로 뭔가를 확인하는 것 같았습니다.”

“확인?”

“몸에 새겨진 표식 같은…….”

이안이 의도적으로 말꼬리를 흐리자.

“확인하라.”

단장 올리버가 즉각적으로 명령을 내렸다.

다른 이도 아닌 세실리아의 몸수색을 명한 거다.

“이보시오 단장! 모욕이 지나치지 않소!”

“우리가 상아탑의 마법사란 사실을 잊은 게요?”

당연히 반발을 하고 나서는 상아탑의 마법사들. 3클래스 마법사 둘이 반발하고 나선다면 그 어떤 기사도 꼬리를 내리게 마련이다. 하나 올리버 레이우드는 아니었다.

스르릉!

오히려 검을 뽑아 마법사들을 견주었다.

다른 기사들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행동.

“가, 감히……!”

“감히?”

늙은 마법사의 말에 격분하는 단장 올리버.

그가 한층 격양된 어조로 말문을 쏟아냈다.

“전하께서 계신 자리요. 그 자리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소. 상아탑의 마법사가 연관되었고, 마땅히 밝혀내야 할 소임이 있소. 한데 감히? 지금 감히라고 하셨소?”

“그, 그건…….”

마법사들은 한마디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제아무리 마법사라해도 황족 위에 서지는 못한다.

속으로야 어찌 생각을 하든, 법도와 상식이 그렇다.

“하면 일단 치료부터…….”

“그건 확인이 끝난 뒤에 얼마든지 하시오.”

단장 올리버가 다시금 명령을 내렸다.

성별을 고려하여 하녀들에게 몸수색을 시켰다.

‘무서운 양반을 또 만났군.’

그런 단장의 얼굴을 보며 이안이 전생을 떠올렸다.

제국제일검, 아니 ‘대륙제일검’ 올리버 레이우드.

끝까지 황태자를 모셨던, 보기 드문 충성심의 기사.

‘결국 라그나르의 마법사들에게 죽었지.’

황태자를 지키는 최후의 결전에서, 그는 현 탑주가 포함된 마법사들을 상대로 무려 다섯의 사상자를 냈다. 모두 2클래스 이상의 마법사였다.

‘역사에는 그저 반역자로 남았지만.’

기사로서 가히 정점에 도달했던 인물.

적어도 이안은 그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아마 지금도 엄청난 경지를 이루고 있을 터.

마법사랍시고 함부로 덤벼들 상대가 아니다.

“보이는 게 있는가?”

단장이 몸수색에 나선 하녀들에게 물었다.

“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사옵니다.”

“확실한 것이냐?”

“거듭해서 살펴보았으나…….”

표식은커녕 아무것도 없다.

그 말에 두 명의 마법사가 노발대발하며 나섰다.

“내 뭐라 하였소! 의심할 사람이 따로 있지!”

“당장 치료부터 시작해야 하오! 당장!”

하나 올리버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오로지 이안을 바라보며 재차 확인할 뿐이었다.

“거짓이었소?”

“그럴 리가요.”

가볍게 대꾸한 이안이 세실리아에게 다가갔다.

설마하니 직접 몸수색이라도 하려는가 싶은 찰나.

“어머!”

“저, 저런…….”

이어지는 이안의 행위에 모두가 흠칫 놀랐다.

사내들은 고개를 돌렸고, 여인네들은 어쩔 줄을 몰랐다.

하녀들은 물론 대영주의 부인부터 마가렛까지.

뒤늦게 연무장으로 달려온 베네사조차 당황시켰다.

“여깁니다.”

사람들의 시선에도 이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더욱 강하게 잡아당겼다.

세실리아의 상의자락, 그 목덜미를 말이다.

흉부가 훤히 다 드러날 정도로.

“무엇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군.”

오직 단 한사람.

올리버만이 똑바로 응시할 뿐이었다.

아무런 감흥도 없는 듯 보인다.

“계속 보세요.”

아예 세실리아의 몸으로 손을 가져가는 이안.

이번만큼은 세실리아 역시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지, 지금 뭐하는……!”

단언컨대 표식 따위는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의 몸이다.

몸에 새겨진 표식이 있다면 모를 리가 있겠는가?

그때였다.

“여기 어딘가에…….”

적은 마나가 세실리아의 상체에 주입되었다.

정확히는 피부를 맴돌다 증발해 버렸다.

그러자 곧 이변이 일어났다.

마나가 훑고 지나간 세실리아의 오른쪽 가슴.

그 상단으로 무언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푸른빛을 발하는 정체불명의 문양.

문양이 뜻하는 바는 알 수 없었다.

하나 이 현상 자체가 무엇인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마나…… 각인?”

가장 크게 놀란 사람은 오히려 세실리아였다.

자신의 몸에 마나각인이 새겨져 있었다고?

그것도 콜드워커를 뜻하는 문양이?

‘말도 안 돼.’

결단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나각인을 새겨본 바가 없다는 얘기다.

도대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녀가 흐릿해지는 눈빛으로 이안을 노려봤다.

놈이 수작을 부린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각인이 존재할 리가.

“아까도 손으로 뭘 하나싶었는데, 마나였네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거짓을 고하는 이안.

세실리아의 비웃음이나 샀던 거짓이, 이제는 신빙성을 갖추기 시작했다.

‘당연히 모를 테지.’

콜드워커들은 날 때부터 특유의 양성소에서 자란다.

그 당시 새겨진 일종의 ‘낙인’이라고 보면 된다.

관리자들이 보다 쉽게 관리할 수 있도록 찍어둔 낙인.

갓난아기 때의 일을 기억할 리가 있겠는가.

‘그쪽 관리자에게 얻어낸 정보니까.’

지금 떠올려도 혀가 내둘러지는 독종이었다.

어렵사리 생포했던 콜드워커의 상급관리자.

무려 일 년간 강도 높은 고문을 견뎌냈다.

끝내 실토하긴 했지만.

“이 문양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바가 있소?”

한편 올리버가 마법사들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그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이안 님께서는?”

이안 역시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의 아는 척은 오히려 독이 될 터.

“음.”

이내 생각에 잠긴 단장 올리버.

문양이 뜻하는 바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이안의 증언에 신빙성이 생겼다.

정황상의 증거라는 게 존재하는 법.

대대적인 조사를 착수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우선 치료부터 하라. 신문은 그 후에 하겠다.”

수하들에게 명을 내린 올리버.

그가 두 명의 마법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두 분께서는 마나감옥을 준비해 주시오.”

“크흠……!”

마나감옥은 마법사들의 특수한 마법진을 말한다.

마나의 흐름을 방해하는 안티매직 성질의 마법진.

마법사를 수감할 때 반드시 필요하다.

“단장님.”

올리버의 명을 끝까지 기다렸던 부단장이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

“어째서 주변 수색을 명하지 않으십니까?”

“그 복면의 괴한을 찾아야 한다는 건가?”

“아무래도 그래야…….”

“시간낭빌세.”

“예?”

부단장의 의견을 단호하게 끊어버리는 올리버였다.

“무의미한 수색으로 병력을 분산시키지 않겠다는 얘길세. 그보다는 경계를 강화시켜 전하의 안전부터 확보함이 옳아.”

“으음…….”

“잊지 말게. 우리가 어떤 임무를 받고 북부에 왔는지.”

철저히 황태자 위주의 행동방침이었다.

호위군으로서 옳은 판단이기도 했다.

부단장도 납득을 했는지 한발 물러섰다.

철컥!

이내 검을 거둔 올리버가 이안에게 말했다.

“모든 정황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내 오늘의 사건을 폐하께 고할 것이오.”

상을 받게 해주겠다는 완곡한 표현.

그것이야말로 이안이 바라는 바였다.

현 황제의 성격상, 원하는 상을 직접 물어볼 거다.

이치에 어긋나지 않다면 들어줄 가능성도 크다.

바로 그러한 상황이 직면했을 때, 이안은 요구할 것들이 있었다.

‘아주 많지.’

0